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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슈] 다국적기업 옥시RB의 두 얼굴
온 나라를 뒤흔든 ‘가습기 살균제 파동’
[74호] 2016년 06월 01일 (수) 최예용 economyinsight@hani.co.kr

규제 허점으로 가습기 살균제 안전성 입증 않고 판매…
끝까지 책임 회피 급급


보건환경 전문가, 운동가, 피해자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부각되고 있다. 제도의 허점과 정부의 무관심 속에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천만 명이 가습기 살균제를 쓴 것으로 추산된다. 여론조사 응답자 중 20%가량이 고농도에 노출됐거나 건강 이상 경험이 있다고 호소했으니 200만 명가량이 위험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2016년 4월25일까지 접수된 피해자는 1848명이고 이 중 사망자는 266명이다. 엄청난 수이지만 잠재적 피해자에 비하면 1%도 채 안 된다. 나머지 피해자를 찾아낼 때야, 가습기 살균제 참사 규명 작업은 마무리된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환경보건학 박사

“먼저 RB가 보건과 환경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 문제되고 있는 지카바이러스 문제 해결을 위해 대규모 연구기금을 기부했습니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세계적으로 주도 기업에 속합니다.” 2016년 5월6일 영국 런던에서 만난 레킷벤키저(RB) 최고경영자(CEO) 라케시 카푸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꺼낸 말이다. “그렇게 잘하는데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일하는 겁니까? 사과를 한다면 한국에 가서 피해자들 앞에서 진심으로 해주세요.” 우리의 요구사항을 전했다. 그는 우리 요구에 답하지 않고 전날 주주총회장에서 한 말을 반복했다. “심히 유감이고”(profoundly regret) “개인적으로 미안하다”(personally sorry). 자기 할 말만 하곤 바쁘다며 가버렸다.

한 국가를 뛰어넘는 힘을 갖는다는 다국적기업의 실체를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건을 통해 반복해서 확인하고 있다. 영국의 생활용품 다국적기업 레킷벤키저는 처음부터 대한민국 국가의 존재를 무시하는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려 했다.

먼저 대한민국 정부기관인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8월과 11월 발표한 역학조사 결과와 동물실험 결과를 전면 부정했다. ‘우리는 지난 10여 년 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제품을 팔아왔다. 우리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국정감사장에서 공언했다. 그러면서 유명 대학에 제품 안전 조사를 맡겼더니 정부 조사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2단계 책임 모면 전략이다. 3단계 전략은 민사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과 물밑 접촉을 통해 낮은 수준의 합의를 꾀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에게 나타난 폐질환은 황사나 레지오넬라가 원인일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더니, 어느 순간 우리가 해보니 아니더라는 내용을 서울대 연구 결과라고 내놓는가 하면, ‘자, 이 정도면 어떠냐. 합의하지 않겠느냐. 끝까지 재판으로 간다면 누가 이기겠느냐. 선택하라’는 식의 반협박 수준으로 나온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사건을 일종의 과학 논쟁으로, 다시 말해 실체를 밝히기 어려운 문제로 인식하고 합의를 종용하게 된다. 피해자와 원고 쪽 변호인들도 이 정도 선에서 수용하는 게 좋겠다고 설득한다. 만족스럽지 않지만 끝까지 재판을 진행하면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르고, 현재 제안된 합의 금액을 받아낸다는 보장도 없다는 변호인단의 말에 넘어가지 않을 피해자는 드물다.

합의 수준은 교통사고 사망시 쌍방과실이 인정되는 수준에 불과하다. 더 가관인 건 합의서에, ‘이 합의금은 사건의 책임을 인정해서 주는 것이 아니다. 이후에 민형사상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 내용 자체를 공개하지 않는다.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가족 단위의 합의로서 다른 가족 구성원의 피해에 대해서도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을 담았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랜 시간 시달린 피해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정리해 잊고 싶어 하는 심정이라, 자포자기식으로 합의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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