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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최후 카드 ‘헬리콥터 머니’ 빼드나
궁지 몰린 주요국 중앙은행
[74호] 2016년 06월 01일 (수) 윤석천 economyinsight@hani.co.kr

세계는 통화정책의 한계를 목격하고 있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그도 모자라 마이너스 금리로 통화정책은 계속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세계경제는 좀처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의 중앙은행 총재마저 “통화정책은 해법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세계의 중앙은행은 이제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헬리콥터 머니’다. 헬리콥터 머니는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중앙은행이 정부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극단적인 경기부양책이다. 헬리콥터 머니가 과연 위기 타개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윤석천 경제평론가

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는 “통화정책은 해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중앙은행의 글렌 스티븐스 총재는 “중앙은행들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좀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은행들은 이제 새로운 해법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중 하나가 바로 ‘헬리콥터 머니’다. 2016년 3월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헬리콥터 머니에 대한 질문에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라고 답했다. ECB의 다른 이사들도 계속 헬리콥터 머니를 언급하고 있다. 이 용어의 유래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밀턴 프리드먼은 그의 에세이에서 헬리콥터 머니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새로 찍어낸 돈을 헬리콥터에서 뿌리는 것을 상상하면서 만들었다 한다.

헬리콥터 머니란 중앙은행이 새로 찍어낸 돈을 헬리콥터에서 뿌리듯 시중에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전 국민에게 나눠주거나 중앙은행이 정부에 직접 돈을 줘 재정정책에 쓰게 할 수도 있다. 사실, 헬리콥터 머니 정책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세계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대표적으론 초인플레이션으로 끝난 바이마르공화국의 경우이고 미국도 과거에 시행한 적이 있다. 하나, 초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된 정책이다.

헬리콥터 머니 정책은 과연 금단의 열매일까?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하는 마당에 그것을 검토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만성적 저성장과 디플레이션 상황에 놓인 국가라면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정책이다. 무엇보다 이 ‘금단의 열매’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선임이코노미스트인 페터 프라트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모든 중앙은행은 헬리콥터 머니를 선택할 수 있다. 통화를 발행해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그것이 헬리콥터 머니다. 문제는 언제 시행하고 그 시기는 적당한가일 뿐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경제학자인 리처드 클라리다는 이렇게 전망했다. “우린 향후 5년, 적어도 10년 내에 헬리콥터 머니의 변형(아마 그 실체는 은폐될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헬리콥터 머니의 가능성

   
▲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근 중앙은행의 극단적인 경기부양책을 뜻하는 ‘헬리콥터 머니’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라며 관심을 보였다. REUTERS

양적완화와 재정정책은 거의 실패했다. 일단 그 이유를 알아보자. 왜 양적완화는 작동하지 않은 걸까? 벤 버냉키가 주장했듯 양적완화는 ‘포트폴리오 밸런스 채널’(Portfolio Balance Channel)이다. 국채나 자산유동화증권(MBS)과 같은 안전자산을 중앙은행이 매입한다. 시중엔 안전자산이 사라진다. 민간투자는 자연스레 위험자산(기업채 시장 등)으로 집중된다. 시중금리가 하락한다. 목표는 금리를 낮춰 민간의 부채 수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부채 가격이 싸니 빚내어 소비와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한데 실패했다. 이유는 민간이 극심한 위험 회피 현상을 보이며 국채 등 안전자산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 욕구보다 현금 보유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전통적 재정정책도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재정정책은 정부가 민간에 채권을 팔아 그 돈으로 직접 수요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 차입이 늘어날수록 정부의 지급능력에 대한 우려는 커진다. 국채 금리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는 시중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민간투자를 위축시킨다. 게다가 가계는 정부가 늘어난 부채를 갚느라 가까운 미래에 세금을 올릴 거라 예상해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이것이 이들 정책이 효과를 보이지 못한 이유다. 하나, 헬리콥터 머니는 다를 수 있다. 헬리콥터 머니는 양적완화와 재정정책을 합해놓은 것이다. 정부는 중앙은행에 채권을 발행한다. 중앙은행은 새롭게 창조된 돈으로 그 값을 치른다. 정부는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투자를 하거나 고용을 한다. 세금을 감면해주고 국민에게 직접 나눠준다. 총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반 국민이 아닌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기 때문에 민간투자는 크라우딩아웃(Crowding Out·민간부문의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는 이른바 구축효과 -편집자) 현상을 보이지 않는다. 국채를 민간이 사면 국가가 금융과 자본시장의 자금을 대량으로 흡수하게 되어 시중의 자금 사정이 악화된다. 이로써 민간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한데 민간이 아닌 중앙은행이 사면 이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게 된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공급했던 돈을 회수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헬리콥터 머니는 매입한 채권을 되팔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일단 공급된 돈은 회수되지 않는다. 채권 매입을 통해 벌어들인 이자까지 정부에 돌려준다. 정부는 채권 상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세금을 올려 상환자금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가계는 세금 인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소비가 늘어나고 물가가 오르면서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상승하게 된다. 그에 따라 GDP 대비 부채비율은 안정될 것이다.

이런 주장이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헬리콥터 머니의 역사는 실패로 끝난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바이마르공화국, 1990년대의 짐바브웨 등이 좋은 예다. 그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헬리콥터 머니를 금하는 이유다. 하나, 정부 부채를 중앙은행이 직매입하는 정부 부채 현금화(Monetization)가 반드시 초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의외로 오늘의 중앙은행은 끊임없이 정부 부채를 현금화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만 해도 양적완화를 시행하기 전인 1997년과 2007년 사이에 국채 보유액을 3550억달러(약 419조원)까지 늘렸다. 유통 통화 역시 그 비슷한 수준까지 증가시켰다. 미국 정부는 연준으로부터 3550억달러를 빌려 썼고 되갚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려했던 높은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통화량 증가가 반드시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앙은행이 정부 지출에 직접적으로 돈을 지원한다 해서 반드시 초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통화정책에도 글로벌 경제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면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 파리의 한 은행에서 직원이 유로화 지폐를 세고 있다. REUTERS

영국 경제학자 아다리 터너는 헬리콥터 머니의 옹호자인데 그는 저서 <부채와 악 사이>에서 몇 개국을 예로 들었다. 1860년대 미국 연합정부, 1930년대 초 일본 등이 정부 부채를 현금화했다. 그는 가장 성공적인 예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을 들었다. 1940년과 1945년 사이에 연준의 국채 보유액은 25억달러에서 220억달러로 급증했다. 전쟁 수행에 필요한 정부자금을 지원한 때문이다. 연 GDP의 9%에 맞먹는 금액이다. 이는 정부 부채의 현금화였다. 중앙은행이 매입한 국채 대부분은 영구적이었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전쟁은 명목 GDP를 크게 끌어올렸다. 반면 물가상승률은 미미했다. 임금과 물가에 대한 통제 덕분이었다. 임금과 물가 통제가 끝나면서 물가는 1945년과 1948년 사이에 34%나 급등했지만 곧 낮은 한 자릿수로 복귀했다.

헬리콥터 머니가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낳을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플레이션을 제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지급준비율을 높여 새롭게 찍어낸 현금의 유통량을 통제할 수 있다. 은행의 대출총액을 규제함으로써 인플레이션과 명목 GDP 상승을 제한할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산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처럼 정부의 의지에 따라 상당 부분 조절이 가능하다.

오늘날 각국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나, 극단적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에도 좀처럼 목표를 달성해내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 이로 인해 심각한 악성 종양이 자라나고 있다. 자산시장 거품이 양산되고 있다. 가공할 정도로 풀린 돈이 동맥경화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계층, 기득권 세력에게만 집중됨으로써 실물경제 회복에 쓰이기보다는 투기 재원이 되고 있다. 세계는 공식적으론 디플레이션 위협에 시달리고 있지만 자산시장은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헬리콥터 머니를 ‘기본소득제’와 연관해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중앙은행은 국가의 기관, 즉 국민의 기관이다. 따라서 그것이 생산해낸 돈은 분명 국민의 돈이다. 왜 부자를 돕는 건 투자라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건 비용이라 하는가? 마찬가지다. 왜 중앙은행의 돈이 은행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에게 가는 건 위험하지 않고 대중에게 직접 향하는 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가? 인플레이션 위험을 말하지만 우린 이미 충분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통계에서 제외되는 자산시장 인플레이션이 극에 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진정 위험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거품이 빠질 때 우린 다시 지금보다 더한 디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헬리콥터 머니는 분명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방점은 국가(중앙은행)가 생산해낸 돈의 배분에 있다. 그것이 골고루 공평하게 배분될 때 ‘헬리콥터 머니’ 역시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기축통화국에 해당되는 얘기다. 통화정책 운용에 제한받는 나머지 국가들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것이 안타깝다.

maporiver@gmail.com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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