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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오일머니로 오일 없는 경제생태 구축
산업다각화에 명운 건 사우디아라비아
[74호] 2016년 06월 01일 (수) 임채익 economyinsight@hani.co.kr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호시절을 뒤로하고 저유가 시대에 진입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는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제는 현재가 아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저유가 리스크로 인한 재정의 불안정성, 궁극적으로 언젠가 고갈될 원유를 생각하면 원유 의존 탈피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국가의 먹거리를 다양화하는 ‘사우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한국 기업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코리아 프리미엄’을 활용해 위기에서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임채익 KOTRA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무역관장

한국이 오늘날 경제적 도약을 이룩한 밑바탕에는 3가지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1960~70년대 간호사와 광부 서독 파견, 월남전 파병, 사우디아라비아 건설노동자 진출이다. 경제개발을 위한 외자가 절실하던 시절, 한국 노동자들은 이름도 생소한 이역만리 외국에 나가 불철주야 일해 벌어들인 외화를 본국에 송금했다. 이 자금은 공장을 짓고 기계를 구매하는 데 사용돼 산업화의 기반이 됐다.

그런 면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중요한 국가다. 한국 경제 발전 역사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고, 한국이 필요로 하는 원유의 3분의 1을 수입하는 시장이자 100억달러(약 11조9천억원)에 육박하는 수출시장이기도 하다. 또 이와 비슷한 규모의 건설 프로젝트 수주를 안겨준다. 일각에서는 셰일에너지 개발 붐으로 배럴당 100달러 이상 고유가 시대는 끝났다고 단정하며 사우디아라비아를 ‘해가 지는 나라’로 평가절하한다. 현장에서 느끼기에, 이런 견해는 너무 성급한 단견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셰일에너지 개발을 간단히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는 시추 기술 발달로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가스와 원유를 생산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야말로 석유나 천연가스 이외에도 무한한 세일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미래가 더 유망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계 최고층 빌딩 ‘킹덤타워’ 앞을 한 남자가 지나가고 있다. 최근 사우디에선 유가 하락으로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기업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REUTERS

오일 의존 경제 탈피, 산업다각화에 ‘올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활한 면적을 보유하고, 걸프협력회의(GCC·페르시아만 연안 6개 아랍 산유국이 결성한 지역협력기구 -편집자) 경제의 약 40%를 차지하는 아랍의 맹주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GCC 산유국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이른바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해 산업다각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원유 자원 고갈에 따른 대책으로 제조업 및 서비스업을 육성해 미래 먹거리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 말 기준으로 하루 약 103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연간 4445억리얄(약 140조9천억원)을 벌어들여 국가재정을 충당해왔다. 국가재정을 석유에 의존하는 것은 당장은 편리하고 손쉬운 국가 운영 방법이지만, 석유자원이 고갈하거나 최근처럼 유가가 추락하는 상황이 닥치면 곧장 위기로 연결되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05년 석유 의존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국가 생존과 발전을 위해 화학과 자동차, 의료, 교육, 금융,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자재 등 제조업과 금융서비스업을 집중 육성하는 중·장기 경제계획을 마련했다. 2015년 현 국왕 즉위 이후에는 기존 정책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사우디 비전 2030’이라는 국가 운영 및 경제개발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이 계획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비석유산업 육성에 올인해 석유 의존을 하루빨리 줄이겠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외국 제조업체 유치를 위해 얼마나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는 한 사례를 들면 금방 알 수 있다. 2015년 대구 물포럼 참석차 방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수전력부 장관은 행사장 앞에서 홍보 부스를 운영하고 있던 국내 기업 제품에 반했다. 그는 방한 기간 3일 동안 이 기업을 3번이나 찾아가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권유했다. 이 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을 때 차관 등 고위 공무원들은 자국에 생산시설을 마련하고 투자하도록 3시간 동안 설득했다.

KOTRA 리야드무역관에는 하루 두세 건씩 한국 기업과 합작투자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온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립라인에서부터 전력기자재, 맨홀 뚜껑 제조에 이르기까지 업종도 다양하다. 이들의 요청은 단순하다. 제조 분야의 노하우와 기술을 가진 한국 기업들이 좀 도와달라는 것이다.

우선 제조 설비를 자신들에게 판매한 뒤 생산 방법과 기술을 전수해주면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해주기를 바란다. 사우디아라비아 기업들은 이를 양국 기업이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제로 상태에서 오늘날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한국 기업들은 부족한 기술과 경험으로 서러움을 겪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도와줄 ‘최적의 파트너’라고 설명한다.
 
사우디 민자개발사업 노려라

   
▲ 사우디아라비아의 쿠라이스 유전 인근 사막에서 가스가 오렌지색 불꽃을 내며 타오르고 있다. 사우디는 석유 의존을 점차 낮추려고 한다. REUTERS

사우디아라비아는 2005년부터 2014년 11월까지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고유가 행진으로 초호황기를 구가했다. 정부는 넘쳐나는 달러를 활용해 자국에 필요한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발주했고 전세계 유명 건설업체들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몰려들었다.

한국 기업들 역시 이 시기에 연간 100억달러 이상을 수주하며 제2의 중동 붐 신화를 일으켰다. 한국 기업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주한 전체 건설 프로젝트 규모는 2016년 4월 말 기준으로 1344억달러(약 160조원)에 달해 전체 수주액의 18.6%를 차지한다. 현재 상황이 어떻든지 사우디아라비아가 한국 건설 프로젝트 수주의 중심 국가인 것은 분명하다.

잘나가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저유가라는 유탄을 맞으며 2015년 10월 이후 신규 건설 프로젝트 발주를 거의 중단하다시피 하고 있다. 일부 건설 프로젝트의 경우 공사대금이 지급되지 않아 해당 업체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저유가 행진이 건설업계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현상은 큰 기회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건설 프로젝트 자금을 예산에 의존하던 태도를 바꾸고, 민자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정부 예산에 기반한 건설 프로젝트를 따내려 하지 말고, 수익성이 클 것으로 기대되는 사업을 발굴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선제적으로 민자사업을 추진하도록 제안할 필요가 있다. 실제 한국 기업들은 2010~2013년 발주된 대형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서 적자를 면치 못했으나, 민자를 투입해 건설한 발전소 사업에선 짭짤한 수익을 걷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조금만 관심 갖고 살펴보면 시급히 발주돼야 할 건설 프로젝트가 예산상 문제로 보류된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도시 지하철 등 대중교통 시스템, 담수 설비, 소형 발전소 등 사례는 즐비하다.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찾기는 쉽지 않다. 정교한 원가 계산과 체계적인 자금조달 방안을 마련하면 몇십 년간의 고수익을 보장받는 노다지 사업을 확보할 수 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은 94억8천만달러(약 11조2700억원)로 11위 수출 대상국이다. 물론 수입은 195억6천만달러(약 23조2600억원)로 무역 역조가 심한 편이지만, 석유의 31%를 사우디아라비아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무역 적자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수출 실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액 94억8천만달러가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실적인지는 생각할 점이 많다.

우선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코리아 프리미엄’이 확실하게 존재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한국인과 한국산 제품을 매우 좋아한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신뢰의 아이콘이며 품질이 좋고 인기 있는 제품으로 인식한다. 품목이 무엇이든 한국산이라면 마케팅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판매 확대가 가능한 장점을 지닌 시장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 대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편견 탓에 시장 진출에 소극적이다. 현재 수출 실적은 감나무에서 홍시가 떨어져 저절로 입으로 들어온 결과라고 봐도 될 만큼 한국 기업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무관심한 실정이다.
 
‘저유가는 기회’ 코리아 프리미엄 활용

사우디아라비아 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끌 만한 제품은 의약품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식약청에 등록된 의약품은 한 손에 꼽을 정도고, 의료기기 역시 거의 등록돼 있지 않다. 사우디아람코(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 -편집자)와 사우디전력청에 기자재를 납품하려면 벤더(판매사)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된 한국 기업은 60곳에 불과하다.

수출 인프라 구축에도 소극적 대응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기업과 제품의 정보가 실시간 검색되는 정보화 사회에선 아무런 대가 없이 몇백만달러의 수출 계약을 맺고 몇억달러의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기는 불가능하다. 기업과 제품은 무엇보다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피땀 어린 기술 개발과 마케팅 활동도 뒤따라야 한다.

저유가에 시달리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상황은 외형적으로 힘겹게 보이지만, 역으로는 호경기에 포착하기 어려운 좋은 기회를 한국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저유가로 시장이 침체해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기업에는 판매 부진과 시장 위축의 결과를 안겨주는 반면, 이 기회를 활용해 역발상을 하는 기업에는 큰 결실을 맺게 해줄 것이다. 어느 신세가 되느냐는 한국 기업들이 결정할 몫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산업다각화 정책에 적극 편승해 설비와 기술, 인력을 수출하고 민자를 활용한 건설 프로젝트 사업을 제안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다면, 저유가 시대는 한국에 가장 큰 기회를 제공하는 은인이 될 것이다.

cilim@kotra.or.kr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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