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재발견’.

이 제목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어떻게 생각하면 어이없는 제목입니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인간 역사의 시작부터 있던 존재인데, 뭘 ‘재발견’한다는 건가?

하지만 현실에서 여성은 계속 ‘재발견’됩니다. 요즘은 특히 기업들이 주도합니다. 새로운 고객으로서 여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번호에 강은주 프로스트앤드설리번 연구원이 소개한 자동차업계의 여성 고객 잡기 움직임이 딱 이런 예입니다.

여성의 재발견 중에서 가장 역사가 긴 것은 아무래도 ‘노동력’으로서 여성의 재발견일 겁니다. 산업혁명과 함께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여성 노동력이 주목받습니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한국이 산업화를 막 시작할 때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여성을 노동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처음 만들어진 존재가 이른바 ‘여공’, 곧 젊은 여성 공장노동자입니다.

이렇게 ‘재발견당한’ 뒤 여성들은 사회 곳곳에 퍼져나갔습니다. 처음엔 떠밀려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이후엔 주체적으로 나섰습니다. 이른바 ‘금녀 영역’을 하나씩 깨뜨리면서, 경제 활동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스스로 노동시장에서 나가는 여성들도 등장합니다. 지난호 집중 기획 ‘엄마가 돌아왔다?’를 기억하실 겁니다. 독일의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이 ‘전업주부’로 살기 위해 일자리를 마다한다는 내용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일부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또 한 번 ‘여성의 재발견’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6년 5월17일 서울에서 터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에 분노하고 희생당한 여성을 추모하는 물결로서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의 등장 말입니다. ‘분노하는 한국 여성’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사 감각이 발달한 사람은 ‘분노하는 한국 여성’을 보면서, 호신 장비 수요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분노를 해소할 레저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억울하게 희생 당한 젊은 여성 앞에서, 슬퍼하고 분노하는 추모 물결 앞에서, 장사 얘기나 하다니, 추하다고요?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런 발상 아래에는 아주 큰 미덕이 하나 자리잡고 있습니다. ‘2016년 여름 한국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점이 그것입니다. 이보다 훨씬 추하고 어리석은 건, 여성들이 분노하는 현실 그 자체를 회피하려는 자세일 겁니다. 가치판단 이전에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몇 안 되는 미덕 중 하나입니다. 경제적 합리성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제 바람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여성을 딱 한 번 더 발견했으면 하는 겁니다. ‘여성은 여성이기 이전에 그냥 인간’이라는 깨달음 말입니다. 남성들이 이 발견을 하는 순간, ‘여성 재발견의 번거로움’에서 곧바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신기섭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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