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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유로존 위기와 글로벌 경제 재앙
유럽 위기는 현재진행형
[73호] 2016년 05월 04일 (수) 윤석천 economyinsight@hani.co.kr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은 유럽의 위기는 현 글로벌 경제의 침체를 낳은 주요 원인이다. 선진국들의 잇따른 추락은 세계경제를 대침체로 몰고 갔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술 더 떠 이들의 위기는 신흥국으로 비화한 상태다. 자칫 유럽이 실패할 경우 세계경제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세계경제는 금융위기 혹은 유럽의 재정위기 때보다 더 취약하다. 당시만 해도 상대적으로 신흥국들이 건강한 상태였으나 현재는 이들마저 위험한 상황이다. 유럽의 실패는 사상 초유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미국 경제는 나름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병의 뿌리까지 완전히 치유됐느냐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말이다. 반면 유럽의 병은 좀처럼 낫지 않고 있다. 미국과 비슷한 처방을 썼지만 회복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모든 병리적 현상은 그 근원이 치료되지 않는 한 만성화되기 마련이다. 유럽의 병이 쉬 낫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의 침체를 이끈 건 이른바 주변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의 부채였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을 ‘피그스(PIIGS) 국가’라 부른다. 이들 국가는 2011년과 2012년 발생한 유럽 부채 위기의 주요 진원지였다. 이들 모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이에 유럽중앙은행(ECB)은 천문학적인 유동성을 투입해 이들 국가를 수렁 속에서 건져냈다. 일단 난파된 배들은 침몰을 면했다. 하지만 그 상흔은 여전하다. 언제 다시 가라앉을지 모를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들을 실질적으로 구해낸 건 독일이었다. 독일은 여전히 승자다. 경제는 한층 강건해졌으며 실업률은 4.5%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터질 수 있다. 이젠 독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독일과 유럽 문제의 핵심에 이탈리아 뱅킹 시스템의 취약성이 있다. 2015년 말에 발표된 데이터를 보면 이탈리아 은행의 무수익여신은 총 3천억유로(약 388조원)에 달한다. 총 대출 잔액의 17.3%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유로존 은행의 무수익여신 대출 평균은 6.8%다. 독일은 2.3%에 불과하다. 금융위기가 최악이었을 때, 미국의 무수익여신 대출도 3%를 넘지 않았다. 이탈리아 은행의 무수익여신 수준은 미국 최악의 시기에 비해 6배에 달한다. 이탈리아 은행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에 대한 설명은 이 통계만으로도 충분하다. 한데도 아직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경제는 유럽에서 4번째로 크고 전세계 국가 중에서는 8번째 규모다. 각국과의 상호연관성이 클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의 뱅킹 시스템 붕괴는 유럽 모두에 시스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는 이탈리아에 막대한 규모의 익스포저(Exposure·손실 발생이 가능한 금액 -편집자)를 갖고 있다.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도 그렇다. 이탈리아 은행의 취약성이 폭발하는 순간 유럽 각국으로의 전염은 불가피하다.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2016년 4월7일 프랑스 메츠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유로존 경제를 떠받치는 독일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유럽 전체가 와해될 가능성이 크다. REUTERS
독일 흔들리면 유로존 와해 우려

이뿐만 아니다. 독일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자칫 독일을 취약국으로 만들 수 있다. 독일은 수출에 의존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독일은 유로존의 희생을 담보로 무역 흑자를 내고 있다. 2016년 2월에만 독일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00억유로(약 25조9천억원)를 넘었다. 이는 지난 몇 년 동안 이어진 유로 약세 덕분이다. 독일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독일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은 뭐니 뭐니 해도 유로존이다. 유로존이 흔들리면 독일의 행보도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독일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은 뻔하다.

유럽연합(EU)은 고상한 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꿈이 그렇듯 그것이 현실에서 구체화되기는 어렵다. 유로존은 강자의 힘을 바탕으로 한 경제 연맹이다. 문제는 재정 연맹체가 아니라 단일 통화체제라는 데 있다. 이질적인 재정정책과 문화가 판이한 국가들이 연합을 이룬다는 건 애초에 이루기 어려운 꿈이었다. ‘유로’라는 단일 통화는 약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강자의 곳간으로 옮기는 수단에 불과하다. 독일은 자국의 막대한 부를 이용해 역내에 유로를 공급하는 한편 그 약세를 통해 수출을 늘려왔다. 독일은 가난한 유로존 국가에 유로를 수년 동안 대출해줬다. 그 덕분에 독일은 이들 국가에 자국산 제품을 팔 수 있었다. EU 내 다른 수출 국가들도 독일과 같은 행동을 했다. 그 결과 유로존의 무역 불균형은 일상이 되었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은 정부 부채로 이들 무역 적자를 막아왔다. 그로 인해 주변국의 산업은 경쟁력을 급격히 상실했다. 동시에 통화정책의 주권을 잃었기에 통화 절하를 통한 수출 경쟁력 회복 기회마저 잃었다. 방법은 강국이 강요하는 긴축정책으로 총수요를 줄여 무역균형을 맞추는 수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들 국가는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상황에서 독일마저 흔들리면 유로존이란 통화연맹체는 와해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또 있다. 그리스다. 이탈리아와 비교하면 유로존 위기의 진원지였던 그리스 상황은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 그리스의 경제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는 또 다른 이유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스는 시리아와 이라크 같은 중동 국가의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오는 주요 관문이다. 그리스는 최근 몇 년 동안 유럽에 영향을 끼치는 두 가지 도전의 진원지다. 부채 위기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자 난민 유입 창구다. 난민 위기는 이미 재난이다.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한데 EU는 이 상황에 무력할 뿐이다. 난민 문제를 놓고 유럽 각국은 이전투구에 가까운 갈등을 빚고 있다. 이는 비교적 풀기 어려운 도전이다. 이 문제를 풀 열쇠 역시 독일을 비롯한 강국들이 쥐고 있다. 한데 이들 국가는 자국 이기주의를 내세우며 그 해결에 대한 속 시원한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는 얼마든지 유럽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유럽 통합을 저해하는 또 다른 변수도 있다. 영국은 EU를 탈퇴하려 한다. 2016년 여름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가 예정돼 있다. EU를 탈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이는 위험한 선례가 된다. EU란 꿈이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많은 국가가 그 뒤를 따를 수 있다. 이는 향후 수년 동안 세계 무역과 통화 흐름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EU 국가들의 천문학적인 국가 부채와 지정학적 갈등에서 파생하는 유럽의 위기는 두 가지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우선, 새로운 경제구조가 EU에서 탄생하게 될 가능성이다. EU가 해체되지 않으려면 어떤 방식이든 반드시 국가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최선책은 모든 유로존 국가의 부채를 일정한 공식에 따라 공동 부담하는 것이다. 공식이란 경제 규모에 따라 차등 배분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최종적으로 유럽중앙은행(ECB)의 대차대조표로 옮겨져야 한다. EU가 진정한 동맹체가 되려면 재정 통합이 필수적이다.

   
▲ 영국이 2016년 여름 유럽연합(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탈퇴 쪽으로 결론이 날 경우 유럽은 또 한 번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2016년 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유럽 분열 가시화 땐 글로벌 경제 타격

통화 연맹만으론 빈국과 부국 사이의 갈등이 깊어질 뿐이다. 유로존 국가들은 각자 균형예산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물론 이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완수해내야 한다. 그래야 부채 공동 부담의 당위성이 명분을 얻는다. 이는 독일이 주도해야 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독일은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수출로 만들어내며 그중 절반을 EU 회원국 수출에서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최선을 넘어 이상에 가깝다. 결국 유럽은 부채를 처리할 방법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에 따라 유로존은 해체돼 각국은 마침내 과거의 통화체제로 복귀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각국은 되찾은 통화주권을 이용해 수출 경쟁력 확보에 너도나도 나설 것이다. 이들의 통화가 독일 마르크화에 대해 급격히 절하될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통화는 독일 마르크화에 대해 훨씬 약해질 것이다. 유로존 국가들의 통화는 달러 대비 30∼40% 정도 절하될 수 있다. 소국들에선 더욱 심각한 절하가 일어날 것이다. 이에 따라 마르크화가 초강세를 보이고 독일 수출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유로존 주변국들의 위기가 마침내 핵심국으로 전이돼 또 다른 유럽발 위기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이 선전하고 있지만 이는 과거처럼 글로벌 경제에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미국의 회복으로 되레 달러 유동성은 줄어들고 있다. 에너지 혁명을 뒤에 업은 미국은 중동으로의 달러 방출을 줄이고, 제조업이 살아나면서 아시아로의 달러 방출 역시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긴축 조짐은 글로벌 시장에 퍼진 달러를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의 문이 닫히고 있다. 두 번째 큰 시장인 중국의 사정마저 여의치 않다. 중국은 경착륙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즐비하다. 수출에서 소비로 전환을 준비 중이지만 아직도 수출에 의존한 경제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는 건 당분간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분열이 가시화된다면 글로벌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유럽은 세계의 시장이다. 만약 그 시장까지 얼어붙는다면 이젠 침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세계는 공황의 위험에 얼마든지 빠져들 수 있다.

maporiver@gmail.com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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