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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Biz] 콘텐츠 산업에 돈이 돌게 하려면…
콘텐츠 기업 활성화를 위한 보증제도
[73호] 2016년 05월 04일 (수) 김윤지 economyinsight@hani.co.kr

콘텐츠 제작 기업들의 자금난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콘텐츠 기업은 대부분 영세한데다 담보력이 취약하고 고위험·고수익의 특성 탓에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양질의 제작 인력을 갖추고도 자금난 때문에 좋은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서구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콘텐츠 기업을 전문적으로 분석, 평가하는 보증기관에서 보증서를 발급해 콘텐츠 기업들이 쉽게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국내에서도 기술보증기금 등이 이런 역할을 맡고 있지만 전문성이 부족하다보니 기업과 금융권 모두 어려움을 겪는다. 전문적인 평가·보증 기관이 필요한 이유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서울 구로구 디지털밸리에 있는 온라인게임 개발 2년차 게임업체. 개발 중인 게임은 완성도가 괜찮을 것 같은데 제작 자금이 떨어져가고 있음. 투자자를 유치하려면 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지금까지 해온 고생을 생각하면 투자자에게 너무 많은 지분을 떼어줘야 하는 게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 한 6개월 정도 버틸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은행은 언감생심.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자자를 구해야 하나.

콘텐츠 기업들의 자금난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인력과 아이디어밖에 없고, 규모가 작아 영세한데다 담보로 활용할 자산이 부족해 은행권 이용이 어렵다는 문제는 늘 존재해왔다. 창조경제 활성화와 맞물리면서 아이디어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금융도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늘었지만 은행 문턱은 쉽게 낮아지지 않았다. 자신의 콘텐츠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금융권이 야속하다는 이야기는 제작자들에겐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금융권의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금융권에서 기업에 대출을 제공할 때는 상환 능력 심사가 기본이다. 떼일 것을 각오하고 빌려주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그건 다른 대출자들의 돈을 허투루 다루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다. 빌려준 돈을 떼이지 않고 돌려받기 위해서는 계획대로 자금이 순환되지 못할 때를 상정해봐야 한다. 그래서 기업의 재무제표를 꼼꼼히 확인해 다른 자금의 흐름을 살피고 만약의 경우 돈 대신 받을 자산을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콘텐츠 기업은 은행원의 눈으로 보기엔 허술한 게 너무나 많다. 자신이 만드는 콘텐츠가 제대로 완성만 되면 충분히 돈을 갚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경우 그 계획은 틀어지기 일쑤다. 수입을 약속한 해외 업체가 갑자기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어제 돈을 빌려준 기업이 몇 달 뒤 문을 닫고 없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고는 문화산업에선 흔한 일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 2016년 2월 서울 동작구 메가박스 이수점에서 한 시민이 영화 <귀향>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귀향>은 자금난 등으로 인해 제작에 착수한 지 14년 만에 개봉하게 됐다. 연합뉴스
머나먼 콘텐츠 기업과 은행 사이

일각에서는 은행이 담보물에 의존하지 않고 기업이 가진 가치와 잠재력을 다르게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기술금융, 이른바 ‘지적재산(IP·Intellectual Property)금융’이 도입되면서 많이 거론되고 있다. 그나마 지적재산금융은 특허로 출원된 기술이라 검증이라도 된 축이다. 하지만 특허가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다시 살펴야 한다. 개별 기술 하나하나의 가치를 따지는 일은 재무제표만 보던 은행원에겐 너무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금융위원회에서 ‘기술정보 데이터베이스’(TDB)라는 것을 만들어 금융권이 공동으로 이용하도록 했지만, 금융권 종사자의 시각에선 여전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특허화되지 않은 개별 콘텐츠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금융쟁이’에겐 리스크가 크다. 그래서 금융권에선 ‘콘텐츠는 대출보다 투자의 영역’이라 주장해오곤 했다. 그나마 투자는 여러 개의 투자상품 풀 가운데 한두 개만 성공해도 나머지 실패를 보전할 수 있다. 투자한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얻는 수익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출의 경우 자금이 제대로 회수되더라도 금리 정도의 수익만 거둘 뿐이어서 나머지 실패를 보전하기 어렵다. 여신을 제공한 업체가 대박을 치는 성공을 한다고 해서 더 많은 이자를 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산업이 제대로 ‘산업화’되려면 금융, 특히 제1금융권을 통한 자금 조달이 원활해야 한다. 투자 방식이 적합하다고 하나, 모든 자금을 투자로 해결할 수는 없다. 앞에 언급한 회사들의 경우처럼 회사가 성장해나가는 단계에서는 적절한 대출이 필요한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산업도 은행권의 뒷받침 없이 자리잡거나 발전한 경우는 없었다.

특히 자금 조달을 투자에만 의존하는 경우, 제작 콘텐츠가 성공을 거둬도 정작 콘텐츠 기업에 남는 게 없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콘텐츠 기업 관계자들은 털어놓곤 한다. 투자자의 몫을 떼면 기업에 회수되는 부분이 높지 않으니 영세성은 극복되지 않고 계속 가혹한 투자를 통해 연명하는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기업이 규모를 키우며 성장하기 위해선 투자가 꺼려지는 단계가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콘텐츠에 자신감이 높아지면 투자보다 대출에 욕심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콘텐츠 산업이 발달한 영미권이나 유럽에서도 은행은 콘텐츠 기업에 냉엄하다. 이들 역시 콘텐츠 기업을 심사할 역량이 부족하고, 리스크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금융 방식이 생겨났는데, 유럽에서 활용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보증 방식이다.

프랑스에선 보증으로 콘텐츠 산업 지원

   
▲ 2016년 2월 서울 중구 문화창조벤처단지에서 문화 융성을 위한 금융지원 확대 업무 협약식이 끝난 뒤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김한철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권선주 기업은행장(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콘텐츠의 자금 흐름을 전문적으로 분석·평가하는 보증기관에서 보증서를 발급해 은행에 제공함으로써 콘텐츠 기업들이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도 보증기관의 보증서가 있으면 부실이 발생해도 자금을 어느 정도 회수할 수 있으니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대출을 집행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은행 자체의 시각으론 판단할 수 없는 콘텐츠 가치를 평가하고 적절한 대출 범위를 제공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대표적 기관이 프랑스의 문화산업보증기구(IFCIC)다. 문화산업보증기구는 1983년 프랑스 문화산업 분야 중소기업의 은행권 이용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다. 프랑스 국영은행인 카세데포, 프랑스 혁신청 등 공공 금융기관이 지분의 49%를 차지하고 20여 개의 민간 금융기관이 나머지 주주를 구성한다.

이 기관에서는 프랑스 콘텐츠 중소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받으려 할 때 보증서를 발급해 은행에 제공한다. 대출금의 최대 55%까지 보증서를 발급해주기 때문에 부실이 발생해도 은행에서는 55%까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자체 자본은 1800만유로(약 236억원) 정도지만, 2010~2013년 유럽연합(EU)에서 따로 출자를 받아 보증펀드를 운용하면서 유럽 영화에 대한 보증을 해왔다.

이 기관이 은행에 보증서를 발급할 수 있는 기본 원천은 문화산업에 대한 전문성이다. 제작팀 경력, 이전 제작 작품, 투자 지분 구조, 현 재무 상황 등 대출을 받으려는 기업의 일반 현황은 물론 해당 콘텐츠 제작물의 성격, 단계별 저작권 확보 상황, 금융 조달 방안, 예상 현금흐름표, 예상 위험 요소 등을 평가위원회(콘텐츠 산업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로 구성)에서 평가한 뒤 보증서 발급 여부를 결정한다. 은행원들이 아무리 들여다봐도 종잡을 수 없는 분야에 대한 평가를 대신 수행하고 적절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 보증을 제공하는 기관이 있다. 그런데 이런 기관들은 아무래도 다른 산업과 차이가 많은 콘텐츠 기업을 평가하는 데 조금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콘텐츠 산업은 특히 핵심 인력에 좌우되는 성격이 큰지라, 그 산업에 밀착한 전문가가 모여 평가하면 조금 다른 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해당 산업을 많이 알면 콘텐츠의 성공과 실패 가능성이나 자금 흐름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더 많은 의견을 가질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산업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면 일반적인 기업의 잣대로만 평가하기 쉽다. 프랑스 문화산업보증기구처럼 전문적인 평가·보증 기관이 필요한 이유다.

콘텐츠 기업들의 자금 수요는 언제나 높기 때문에 특화된 보증기관이 한두 개 더 있으면 콘텐츠 기업에도 선택권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일반 기업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평가를 받아도 무리 없는 기업이 있을 테고, 그런 방식으로는 도저히 평가되지 않는 기업도 있을 터다.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는 기관에서 평가받을 수 있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시장에서 조금 다른 툴이 돌아가면서 각 방식에 대한 우열을 검증하다보면 더 많은 기업에 기회가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런 평가와 보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과거 데이터가 축적되는 것이다. 많이 평가하고 많이 보증을 제공해 어떤 경우에 사고가 나고 어떤 경우에 예상을 뛰어넘게 되는지에 대한 정보가 쌓여야 평가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인공지능 ‘알파고’도 수많은 데이터를 더 많이 더 빨리 분석함으로써 그런 강력한 판단력을 갖게 된 것이다. 정성적 평가든 정량적 평가든 정확한 판단의 원천은 데이터양이다.

그런데 시장 자율에만 맞길 경우 서로 이용을 꺼려 데이터가 쌓이는 데 하염없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이때 정부가 나서서 마중물을 조금 부어주며 이용을 촉진하게끔 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그냥 기업에 퍼주는 지원금 제도보다 이러한 인프라 구축이 더 유용할 수 있다. 배고픈 자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가 잘 크고 잘 잡히는 저수지를 하나 만드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던 때를 발견하게 된다. 기술금융 도입과 관련한 세미나 자리에서 한 고위 담당자가 “예전에 개인신용평가 제도를 도입할 때도 이렇게 어려웠는데, 지금 개인신용평가는 기본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던 게 생각난다. 어쩌면 콘텐츠 기업들도 몇 년 뒤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yzkim@koreaexim.go.kr

* 김윤지 연구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 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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