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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책] 알렉스 퍼거슨 리더십 이야기
<리딩>
[72호] 2016년 04월 01일 (금) 박세연 economyinsight@hani.co.kr

박세연 번역자
 
알렉스 퍼거슨 전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노동자로 일하던 10대 시절에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30대 초반에 스코틀랜드 축구팀인 이스트 스털링셔를 이끌며 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40대 중반인 1986년에는 세계 최고 프로축구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해 2013년 은퇴하기까지 총 38개의 우승컵을 구단에 안겨줬다. 1999년에는 영국 프로축구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 3개의 우승컵을 거머쥐는 트레블을 달성했고,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아 알렉스 퍼거슨경이 됐다.

놀라운 업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명장으로 알려졌지만 국내 축구 팬들에게는 박지성 선수의 감독으로 더 친숙하다. 그는 몇 년 전 축구 세상의 중심에서 물러났고, 박지성마저 은퇴하며 우리의 기억에서 점점 멀어졌다.

   
▲ <리딩> 알렉스 퍼거슨·마이클 모리츠 지음 | 박세연·조철웅 옮김 | RHK 펴냄 | 1만8천원

그런 그가 2015년 말 <리딩> (Leading)이란 제목의 새 책을 들고 나타났고 나의 번역 작업도 동시에 시작됐다. 그런데 작업을 거듭하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미 몇 차례 자서전을 펴낸 그가 왜 다시 책을 들고 세상으로 나온 것일까? 지난 회고록에서 못다 한 말이 많았던 것일까?

하지만 이런 질문은 프롤로그를 읽으며 금방 풀렸다. 퍼거슨은 은퇴 뒤 미국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초청을 받아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세계 최고 경영 대학원에서 축구가 아닌 리더십을 주제로 강의하며 아마 많은 고민과 노력을 쏟았을 것이다. 축구를 벗어나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비즈니스 분야로 확장하기 위해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다듬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이 이 책을 탄생시킨 직접적 계기가 됐다. 게다가 오랜 친구인 마이클 모리츠까지 공저자로 합류하며 퍼거슨은 자신의 축구 인생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재구성했다. 애플 전문 기자로 출발해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벤처 캐피털인 세쿼이아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모리츠는 이 책에서 퍼거슨의 이야기를 비즈니스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는 과정에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리딩>의 진면목은 목차에서 나열하는 다양한 비즈니스 덕목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퍼거슨이 털어놓은 축구와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에 있다. 이 책을 구상하며 완성도 높은 회고록이나 조직관리에 대한 경영서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그는 아마 더 고상하고 이론적인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퍼거슨은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리고 독자가 바로 자기 옆에 앉아있는 것처럼 말한다.

가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 공격수 웨인 루니가 자신보다 연봉이 더 높은 것에 대해 구단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거나, 유망주 시절 데이비드 베컴을 영입하기 위해 실제 로커룸에서 그를 1군 선수와 만나게 함으로써 베컴의 영혼을 빼앗았다거나, 자신의 아들마저 비정하게 방출했던 일로 아직도 아내의 타박을 받는다는 일화는 세계적인 명장으로서 그의 존재감을 다소 초라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의 재미는 물러난 거장의 아련한 추억이나 리더십 기술에 관한 조언이 아니라, 축구로 삶을 살아오며 일상에서 겪었던 모든 소소한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데 있다. 퍼거슨의 투박한 솔직함이야말로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이다.

이런 태도는 퍼거슨이 은퇴 이유를 밝히는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아내 때문에 은퇴를 결심했다고 했다. 2012년 처제가 세상을 뜨고 아내는 큰 상심에 빠졌다. 그 순간 그는 평생 아내에게 진 큰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오랜 세월 동안 세계 최고의 구단을 이끌었던 리더가 사임을 결정한 이유는 다름 아닌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번역 작업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퍼거슨이 나열하고 있는 다양한 리더십 기술 가운데 무엇이 그의 성공에 가장 크게 기여했을까? 나는 그것이 단순한 비즈니스 덕목이 아니라 이 책 전반에 깔려 있는 퍼거슨만의 ‘지독함’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어떤 것에 미쳐 있는 사람에게 ‘결혼했다’는 표현을 쓴다. 퍼거슨은 축구와 결혼한 대표적 사례다. 축구 때문에 개인의 삶은 물론 가족도 완전히 포기해야 했다. 물론 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균형과 완전히 동떨어진 태도다. 한편으론 그토록 놀라운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의 집요함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떠올려본다.

모리츠가 공저로 돼 있지만 본문 대부분은 퍼거슨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인다. 모리츠가 작성한 에필로그는 기자 특유의 세련된 문장이 돋보이는 반면, 본문의 이야기들은 축구에 인생을 바친 한 사나이의 거친 발을 떠올리기에 충분할 만큼 직설적이고 투박하다. 차근차근 책장을 넘기다보면 투박함은 어느새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맛은 없지만, 퍼거슨의 거친 텍스트 속에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 남자의 인간적 면모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퍼거슨이 이 책을 오랜 친구와 함께 집필했듯, 나 역시 대기업에서 해외스포츠 스폰서 업무를 담당하며 프리미어리그의 광팬이 된 학창 시절 벗과 번역 작업을 해 더욱 뜻깊었다.

seion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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