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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웅의 선거와 경제] ‘경제 실정’ 심판? ‘무능 야당’ 심판?
4월 총선 프레임 구도 살펴보기
[72호] 2016년 04월 01일 (금) 윤희웅 economyinsight@hani.co.kr

모든 선거는 ‘프레임 전쟁’이다. 유권자는 피곤하다. 정보는 흘러넘치고, 당장 먹고살기도 바쁘다. 총선 후보 정보를 면밀히 검토하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유권자 귀에 쏙 박히는 슬로건만이 ‘한 표’로 이어진다. 여당과 야당은 ‘프레임 전쟁’의 우위에 서려고 올인한다. 야당은 집권 후반기 선거 프레임의 레퍼토리인 정권심판론의 약발이 먹히지 않자, 정부·여당의 경제 실정을 심판하자는 플래카드를 들고나왔다. 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후광에 기대 무능한 야당을 심판하자고 맞선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 ‘America’(아메리카), ‘Jesus’(예수), ‘Freedom’(자유)만 말하면 돼. 사람들이 좋아하거든.” 미국 영화 <선거 캠페인>(The Campaign·2012)에서 전형적 정치인으로 나오는 극중 인물 캠 브래디가 보좌관에게 하는 말이다. 미국이라는 공동체, 기독교적 가치관, 자유를 중시하는 사상을 강조하면 다수 유권자에게 호감 인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개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은 단순한 표현을 만들어 반복한다. 프레임이 담긴 슬로건이다. 유권자가 후보자를 제대로 선택하려면 다양한 사항들을 체크해야 한다. 정책과 공약, 비전, 소속 정당, 도덕성, 학력, 외모, 화술 등 수없이 많다. 후보자들의 면밀한 비교평가를 통해 단 한 명의 지지 대상을 정해야 한다. 이런 선택 과정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후보자들 정보를 유권자가 모두 알고 있다는 전제가 성립돼야 가능하다.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016년 3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정을 심판하자’는 슬로건을 뒤에 두고 눈을 감은 채 다른 의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 관심도가 높지 않은 대부분의 유권자는 그렇게 꼼꼼하지 못하다. 시간을 내어 후보자들을 살펴봐야 하는데 대중은 시간이 없다. 여유가 생기면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쉬는 것이 우선순위다. 막상 투표장에 갈 때 유권자에게는 해당 후보나 정당에 투표해야 하는 ‘그럴싸한 이유’가 제공돼야 한다. 수십 가지 이유는 유권자가 듣더라도 기억하지 못한다. 기표하는 순간 생각나는 단 한 가지 이유를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바쁜 유권자들’은 자기 선택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렇게 투표장에서 기억나는 하나의 이유와 근거가 바로 프레임이 담긴 슬로건이다.

우리나라 선거에서도 후보들은 프레임, 또는 프레임을 적용한 슬로건을 만들려고 시간을 들인다. 여론조사도 하고, 심층 인터뷰도 해서 유권자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무엇에 반응하는지 찾아내려고 한다. 유권자가 원하고, 후보자가 내세울 수 있으면서도 경쟁자가 회피하고 싶은 포인트를 파악해 프레임을 짠다.

전국 선거의 경우 중앙당은 더 간명한 프레임과 슬로건을 내놓는다. 대통령선거처럼 앞으로의 비전이 무엇인지 중요한 전망적 투표를 할 때는 새로운 화두를 선점하려 애쓴다. 대통령 임기 중에 실시되는 국회의원선거에선 권력을 맡긴 정권에 대한 평가 심리가 반영돼 회고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야당은 대체로 정권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운다.

야당은 흔히 부실한 국정운영을 했다고 규정해 이를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여당을 심판하기 위해 야당을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인 것이다. 정권 초반에는 기대감이 크고 평가할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런 심판론이 나오지 않는다. 정권 후반부에 선거가 치러질 경우 심판론이 여지없이 출현한다. 가장 강력한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권심판론이 과거와 달리 요즘은 별 효과가 없다고 얘기한다. 너무 반복적으로 사용됐고, 야당이 심판의 도구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정권심판론은 막연하다고 비판한다. 무턱대고 심판만을 요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내용도 없이 심판하자고 하는 것은 대안 정당으로서 빈약한 메시지가 아니냐는 것이다.
 
총선 구도, ‘박근혜 대통령’ vs ‘야당’

이런 비판 탓에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제 실정 심판론’을 내세우려 한다. 경제가 안 좋으니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니 소구력이 크다는 판단이다. 더군다나 지금까지는 산업화 주도 경험이 있던 보수 정치세력이 경제 분야에선 진보 정치세력에 비해 절대 우위가 있다는 대중적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엔 이런 인식이 약화되고 있다. 두 번의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경제가 점점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보수 정치세력의 경제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 영입된 당대표가 경제학자이자 국가경제 실무를 맡았던 인물이라는 점, 지난 대선에서 경쟁 정당의 대선 후보 쪽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을 디자인해 효과를 봤던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경제 실정 심판론을 얘기하면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 경제를 화두로 내세우면 경제에 민감한 중도층을 수월하게 흡수할 수 있다는 계산도 한다.

여당은 전통적으로 방어적 차원에서 정권안정론을 들고나왔다. 보수층은 안정을 바라는 경향이 강하다는 가설에 기반한다. 정권이 흔들리면 국가가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심리에 가중치를 두는 것이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여당에 힘을 몰아줘야 한다는 논리다.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는 정권안정론보다 ‘야당심판론’을 내세울 태세다. 국정의 발목을 잡아온 비협조적인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공세적 프레임이다. 여당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거에 임하는 구도를 짜려는 것이다. 평가를 받아야 하는 수세적 입장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수층의 투표 의지를 자극하고 있다.

이는 최근 높게 형성된 정치 불신 기류를 활용하려는 측면도 있다. 아울러 여권 내에서 여전히 강고한 지지를 얻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위력을 최대한 이용하려 한다. 같은 국회 구성원인 여당이 야당을 심판한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지니 정치권에서 벗어나 있던 박 대통령이 나서서 국회, 더 구체적으로는 야당을 심판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현재 여권 내에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는 없다. 만약 있었다면 청와대와 선을 긋고 당이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르려 했을 것이다. 여권 내 구심점은 여전히 박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같은 시기에 비해 막강한 권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는 여당 대표가 아니라 박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는 양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성공시켜 레임덕을 차단하고 마지막까지 권력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박 대통령의 의지도 한몫하고 있다.

여야 각 정당의 본격적인 선거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캠페인은 본래 캠프를 차린다는 뜻의 군사용어다. 전략적 요충지에 캠프를 차려야 승리 가능성이 높아진다. 선거에서 캠페인은 대중이 반응할 만한 프레임을 설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선거의 요충지는 경제 실정 심판론의 지점일지, 야당심판론의 지점일지 궁금하다.

waymaker@opinionlive.co.kr

* 윤희웅은 오피니언라이브(OPINIONLIVE)에서 여론분석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과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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