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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Biz] 중국에 부는 한류 열풍의 그늘
중국 시장에 ‘올인’하는 한류 콘텐츠
[72호] 2016년 04월 01일 (금) 문동열 economyinsight@hani.co.kr

한국 콘텐츠 산업이 중국 시장에 ‘올인’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우려된다. 일부에서는 ‘콘텐츠의 다양성 부족’을 가장 큰 부작용으로 꼽는다. 콘텐츠 제작부터 배급까지 ‘돈줄’을 쥔 차이나머니가 이른바 ‘되는 콘텐츠’에만 투자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제작사 처지에서는 차이나머니의 입맛에 맞춰 한류 스타만을 내세워 뻔한 콘텐츠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한국 콘텐츠가 중국 일색의 시장 의존도에서 벗어나 인도나 남미와 같은 뉴라이징 시장을 공격적으로 파고들어가야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좀 극단적으로 들리겠지만 중국 시장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시장입니다. 중국은 의외로 한국 콘텐츠나 한류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어요. 물론 개인 차원의 한류 팬은 많이 있죠. 하지만 그 수는 전체 시장에 비하면 아주 적고, 그 열기는 언제든지 사그라질 수 있습니다. 항상 그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연락하면 거의 대부분 중국 출장 중이었기에 한동안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중견 방송 제작자를 얼마 전 만날 일이 있었다. 그에게 안부 겸 중국 시장 상황에 대해 가볍게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정작 본인의 프로젝트는 중국에서 ‘잘나간다’는 업계의 평가가 있던 터라 중국 내 한류에 대한 그의 평가는 솔직히 의외였다. 물론 그 제작자의 개인적 의견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 중국 시장을 경험한 많은 콘텐츠 제작자들은 입을 모아 콘텐츠 시장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체감온도 차이는 크다고 말한다.

   
▲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대만 국기를 흔드는 모습이 방송에 나온 뒤 중국 네티즌들의 비난 목소리가 커지자, 쯔위와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가 공개 사과를 했다. 서울 강남구 JYP엔터테인먼트 사옥. 연합뉴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5년 콘텐츠산업통계를 보면, 2014년 한국의 대중국 문화 콘텐츠 수출은 홍콩을 포함해 13억달러(약 1조5천억원)에 달하며 전체 문화 콘텐츠 수출액의 약 26%를 차지하고 있다. 약 16억달러(31%)에 달하는 일본 수출액과 합하면 일본과 중국 두 나라에만 57%가 넘는 수출 의존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국 수출액의 증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반면, 최근 일본 내 한류가 주춤하면서 조만간 한국의 콘텐츠 수출 1위 국가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뀔 거라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몇 년 사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성장한 한국 콘텐츠의 중국 수출 시장은 아베 신조 정부 출범 이후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 악화로 인해, 일본 내 한류가 쇠퇴하면서 적신호가 켜진 한국 콘텐츠 수출에서 주요 시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다보니 최근 중국 시장을 의식한 한국 콘텐츠 시장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중국 내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방송, 연예 매니지먼트, 영화, 게임 등 콘텐츠 장르를 불문하고 곳곳에서 중국과의 합작 프로젝트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2015년 말에 발효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본격 가동하면서 이 움직임은 더욱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에 올인 중인 한국 콘텐츠 산업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곳이 항상 한류의 선봉을 담당하는 방송과 드라마 분야다. 그 상징적인 변화 중 하나가 많은 드라마 제작자들의 숙원이었던 드라마 사전 제작 붐이다. 그동안 거의 생방송에 준할 정도의 짧은 제작 일정으로 ‘쪽대본’과 철야 촬영이 일상화된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이 일거에 해소되는 중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전 제작이 늘게 된 이유는 중국 수출이 드라마 비즈니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원인이 크다.

2015년부터 해외 드라마에 대한 중국 당국의 사전 심의가 강화되고 그동안 규제가 느슨했던 인터넷마저 사전심의제가 강화되자, 중국 시장을 노리는 한국 방송사나 드라마 제작자들은 최소 방영 6개월 전에 방영 계획을 보고해야 하는 중국 당국의 규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전 제작에 나서는 것이다. 물론 아직 사전 제작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잡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근 많은 드라마들이 사전 제작 중이거나 사전 제작 준비 중인 것을 보면 제작자의 한 사람으로서 격세지감마저 느낀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 콘텐츠 업계를 지배하던 시스템마저 일순간에 바꾼 중국 시장의 파워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한국 시장의 과도한 ‘중국 시장 눈치 보기’로 인해 한국 콘텐츠가 우리만의 정체성까지 잃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이미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긴 했지만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JYP의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흔드는 장면이 나오면서 일파만파 파장이 거세진 일명 ‘쯔위 사태’는 한국 콘텐츠 업계에도 보이지 않는 파문을 남겼다.

거기에 2016년 1월 방영된 KBS 드라마 <무림학교>에서 극중 마오쩌둥 초상화가 담긴 위안화 화폐를 불태우는 장면이 나와 중국 네티즌의 엄청난 항의를 받자 곧바로 이를 수정하겠다고 제작사가 부랴부랴 수습에 나선 해프닝도 있었다.

한국 콘텐츠 산업 전반에 중국 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중국 눈치 보기’가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 진출한 중국 투자업체들의 적극적인 간섭으로 인해 한국 콘텐츠의 ‘중국화’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거기에 한국 시장을 배제한 채 중국 내수 시장만을 겨냥한 콘텐츠 제작이 잇따르는 등 한국 콘텐츠 산업의 중국 올인 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2014년부터 차이나머니가 공격적으로 한국 시장을 두드릴 때만 해도 한국 콘텐츠 업계는 고무적이었다. 일본 내 한류가 주춤하면서 여러모로 타격을 입고 있던 한국 콘텐츠 산업이 차이나머니라는 구원투수를 통해 다시 한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그동안 제작비 조달에서 콘텐츠 유통을 장악한 방송사, 콘텐츠 대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중소 규모의 콘텐츠 제작사들은 차이나머니의 한국 유입을 쌍수 들어 반기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현재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긍정적 면도 없지는 않지만, 반갑지 않은 현실도 같이 드러나고 있다.

차이나머니는 허상인가

   
▲ 2016년 1월 드라마 <무림학교> 제작발표회에서 출연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무림학교>에서 마오쩌둥 초상화가 담긴 위안화를 불태우는 장면이 나와 중국 네티즌들이 항의하자 제작사는 곧바로 사과를 했다. 연합뉴스

최근 한국과 중국의 콘텐츠 시장을 보면 ‘모순’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된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 막을 수 있는 방패가 나오는 중국 고사가 떠오른다. 어느 쪽이 창이고 방패인지를 굳이 들자면 경우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부분 한국은 중국 시장을 어떻게든 뚫으려는 창이고 중국은 이를 막으려는 방패다. 그렇다고 둘 다 대등한 위치는 아니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중국 시장에 힘겹게 끌려가는 형국이다. 최근 만나는 많은 한국 제작자들은 중국 시장을 이해하기 힘든 시장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열려 있지만 또한 모든 것이 자유롭지 않은, 모순된 시장이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 콘텐츠 업계에서 중국 시장의 가장 큰 리스크는 중국 당국의 규제다. 정치는 정치이고 콘텐츠는 콘텐츠라고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특히 제조업과 달리 국적성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콘텐츠 산업은 정치 상황이나 국제 정세에 쉽게 타격을 입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경제 시스템은 자본주의이지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중국 당국이 가장 위협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해외 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이다. 이는 중국이 지향하는 ‘중화강국’을 만들기 위한 ‘중화 소프트파워’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다. 현재 중국 당국이 잇따라 내놓고 있는 콘텐츠 관련 규제를 보면 그런 중국의 의도가 명확하다.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육성하기 위해 해외 인력을 데려와, 노하우를 흡수하고 제작 역량을 강화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는 데 반해 해외 콘텐츠는 매일같이 각종 규제를 생산해내며 족쇄 채우기에 바쁘다.

한국 시장의 과도한 한류 스타 의존 현상도 리스크의 하나로 지목된다. 일본 시장에서부터 여러 차례 지적된 사항이지만, 일부 한류 스타만 배불리는 기형적인 콘텐츠 제작 시스템이 현실적으로는 한국 콘텐츠의 경쟁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기본적인 시선이다.

2015년 한국을 방문한 중국 내 최대 음원 유통 회사 중 하나인 하이양(海洋)음악그룹의 셰궈민 최고경영자(CEO)의 말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95%가 중국어로 된 음악을 듣고 유통시장에서도 90%가 중국어로 된 음악이다. 한류 열풍이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 시장에서 한국 음원의 유통량은 1.5% 미만이라고 한다. 이처럼 전체 중국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사실 ‘한류 스타’ 의존도가 낮은 게임 장르를 제외하면 2% 미만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한류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콘텐츠 자체의 재미로 승부하는 게임 장르가 한때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가져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시장을 영속적인 한국 콘텐츠의 주요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팔고 보자’는 생각보다는 내부부터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중국 눈치 보기’로 중국인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만 생산하면 결국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고, 일부 한류 스타의 몸값만 올리는 것에 시달리다 중국 내수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지금이야 제작 역량을 흡수하기 위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빠르게 제작 역량을 키우는 중국이 어느 순간 특색이 없어지고 중국화된 한국 콘텐츠에 매력을 느낄 것 같지는 않다.

1990년대 아시아 시장을 주름잡았던 대만 콘텐츠 산업이 현재 몰락하고 있는 것도 초기 많은 제작 인력과 노하우의 유출을 방관한 채 중국 시장에 너무 의존하다보니 정체성을 잃어버려 콘텐츠로서의 매력까지 한꺼번에 상실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대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한국 콘텐츠가 한류 스타에 편승한 중국·일본 일색의 시장 의존도에서 벗어나, 인도나 남미 같은 뉴라이징 시장을 공격적으로 파고들어가야 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제작비를 한류 스타의 몸값에만 사용하는 현 제작 시스템의 의존도를 낮추고, 콘텐츠의 기반이 되는 스토리나 제작 기술 향상에 자본을 투자하는 등 기반 투자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렇게 내실을 다지는 것만이 중국이 빠르게 따라오더라도 한발 앞서나갈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한국 콘텐츠 산업이 항상 매력적인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경쟁력 있는 시장이 되는 길이 아닐까 한다.

rabike0412@gmail.com

* 문동열은 영상 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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