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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박정원호(號) 위기의 두산 구할까
재벌가 ‘첫 4세 경영’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72호] 2016년 04월 01일 (금) 박현정 economyinsight@hani.co.kr

재무구조 개선과 감원으로 인한 직원 동요 수습 급선무…
신성장동력 발굴도 시급

두산그룹 창업주 장남의 맏아들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국내 재벌가 중 처음으로 ‘4세 경영’ 시대를 열어젖혔다. 박 회장은 1985년 두산산업에 입사한 뒤 1994년 임원이 되었고, 2016년 두산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다. 마치 두산그룹 ‘펜트하우스’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탄 듯하다. 그룹 안팎에선 박정원 회장이 안착할 때까지 당분간은 박용만 회장이 뒤를 받쳐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정원 회장 앞에 놓인 그룹의 해결 과제는 산적해 있다. 두산의 미래에 ‘불안과 희망’이 혼재돼 있다.

박현정 <한겨레> 기자
 
120년 역사를 지닌 두산그룹이 국내 재벌 가운데 처음으로 ‘4세 경영 체제’를 시작했다. 고 박승직 창업주의 증손자인 박정원(54)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은 삼촌인 박용만(62) 회장에 이어 2016년 3월28일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동안 지주회사 (주)두산 이사회 의장은 그룹 회장을 맡아왔다. 박정원 회장은 3월25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이사회 의장에 선임됐다. 창업주 아들인 박두병 초대회장은 자녀들에게 가족 간 ‘공동소유·공동경영’ 유지를 남겼다. 이에 두산은 가족회의를 통해 경영 방향을 결정했다. 그동안 장남 박용곤 회장을 비롯해 5남인 박용만 회장까지 ‘용’자 돌림 형제들이 그룹 회장을 돌아가면서 맡아왔다. 박용곤 회장의 맏아들인 박정원 회장의 취임으로 ‘원’자 돌림 4세에게 경영권이 대물림됐다.

재벌 3·4세 하면 떠오르는 진부한 장면들이 있다. 창업주 4세 가운데 가장 연장자로, 오랫동안 경영권 승계 ‘1순위’로 꼽혀온 박정원 회장의 발자취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그는, 1985년 두산산업(현 (주)두산 글로넷BU) 뉴욕지사 사원으로 입사해 도쿄지사를 거친다. 1992년 일본 기린맥주에 들어갔다 2년 뒤 동양맥주(OB맥주의 전신) 이사대우를 맡으며 두산으로 복귀했다. 입사 뒤 임원이 되기까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1999년 (주)두산 관리본부 전무, 2005년 두산건설 부회장, 2009년 두산건설 회장으로 올라섰으며 박용만 회장이 그룹 회장에 취임한 해인 2012년부터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맡아왔다. 박 회장은 현재 두산건설 회장, 두산베어스 구단주를 겸하고 있다.
 
박용만 회장 ‘수렴청정’ 전망도

   
▲ 박용만 회장의 후임으로 두산그룹 새 회장에 취임한 박정원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 박정원 회장은 야구와 수입차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그룹 제공

소문난 야구광으로 알려진 박정원 회장은 수입차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은 2012년 계열사 디에프엠에스(DFMS)를 통해 벌여온 혼다코리아와 재규어·랜드로버 판매 사업을 중단했다. 재벌가 자녀들이 수입차나 빵집 등 수익을 쉽게 올리는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커진데다 수입차 판매 수익성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DFMS는 ‘원’자 돌림 4세 10명이 지분 100%를 갖고 있던 두산모터스와 ‘용’자 돌림 3세 5명이 지분 100%를 보유한 건물관리 업체 동현엔지니어링이 2011년 합병하면서 만들어진 회사다. 박정원 회장은 2004년 설립된 두산모터스의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앞서 1999년 (주)두산은 신주인수권부사채(BW·발행 뒤 소정의 기간이 지난 뒤 일정한 가격으로 발행 회사의 일정 수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를 발행해, 박정원 회장을 비롯한 4세들에게 헐값에 넘기는 수법으로 편법 증여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2003년 두산그룹은 관련 채권을 모두 소각했다. 박정원 회장은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편법 입학시켰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박 회장이 두산상사 사장이던 2004년 싱가포르 현지법인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려 영주권을 얻었고, 아들도 싱가포르 영주권자 자격으로 국내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킨 사실이 2014년 뒤늦게 밝혀졌다.

박정원 회장의 생각을 엿볼 만한 언론 인터뷰는 찾기 힘들다. 박용만 회장은 2012년 4월 그룹 회장에 취임한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자신의 경영 방침에 대해 설명했다. 박정원 회장은 회장 취임 기자간담회 등 대외 행사를 따로 계획하고 있지 않다. 두산 전·현직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용만 회장은 활동적이며 소신이 강하지만 박정원 회장은 과묵한 편이다. 보고받을 때도 필요한 말만 하고 주로 듣는 편이라는 것이다. 두산베어스 구단주로서의 활동 외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었던 까닭에, 2015년에는 직원들 사이에서 박 회장 동생인 박지원(51)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그룹 회장이 될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박정원 회장이 지금까지 보여온 성향상, 그룹 경영 방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박용만 회장은 그룹 회장에선 물러나지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직을 계속 맡으며 두산인프라코어 사내이사로도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박용만 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은 어느 정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용만 회장의 퇴진과 관련해선 최근 경영 실적 악화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2015년 (주)두산은 두산중공업·인프라코어·건설·엔진 및 종속회사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1조7008억원의 대규모 당기순손실을 냈다.

박용만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두산을 소비재에서 중공업 그룹으로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07년 미국의 건설용 소형 중장비 업체인 ‘밥캣’ 인수도 그의 작품이다. 두산은 이 업체를 51억달러(약 5조9천억원)를 들여 인수했는데, 전체 인수금 중 39억달러(약 4조5천억원)가 빚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중장비 수요가 급감하면서 밥캣 인수는 핵심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두산인프라코어의 발목을 잡아왔다.

   
▲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한 박정원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이자 두산베어스 구단주(오른쪽)가 2015년 10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실적 악화의 배경에는 외부 환경뿐 아니라, 투자와 관련해 경영진과 실무자 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까닭에 일부 직원들은 전임 회장과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닌 박정원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면 회사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느냐는 기대감을 표현한다.

두산그룹은 여전히 유동성 위기를 피하기 위한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중공업·건설 분야 침체가 계속되면서 수익성 저하 문제도 풀어야 할 난제다. 두산은 계열사 간 재무적 연관성이 강하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들이 (주)두산 지분 43.76%(2015년 9월 기준)를 소유해 그룹을 지배하고, (주)두산이 지분 41.4%를 보유한 두산중공업이 다시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두산엔진 등을 지배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주)두산 지분 6.29%를 지닌 최대주주다.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과 박용만 회장 지분은 각각 4.19%, 3.15%다.

박용만 회장이 이사회에서 회장직 사퇴를 공식화한 2016년 3월2일, 두산인프라코어는 공작기계 사업부문을 국내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1조13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우선협상대상자가 바뀌는 등 공작기계 사업부문 매각이 지연되면서 시장에서는 유동성 위기가 닥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공작기계 사업부문 매각금 대부분은 인프라코어 차입금 상환에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안에 두산밥캣 국내 상장을 추진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스(NICE)신용평가는 2016년 3월18일 두산건설에 대해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BB+)으로 내렸다. 한국신용평가는 보고서에서 “두산과 두산중공업의 자회사 지원 부담과 관련이 큰 두산건설의 경우 차입금 상환 부담이 커 유동성 리스크가 여전하다”고 평가했다.

구조조정 동요 수습이 최우선 과제

박정원 회장은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경영전략 구축뿐 아니라 2011년 이후 인력 감축을 반복적으로 목격한 직원들의 동요도 수습해야 한다. 박 회장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눈길이 많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15년 학계·민간연구소·증권시장 전문가 등 50명에게 의뢰해 재벌 3·4세 11명을 평가한 보고서를 보면, 박정원 회장은 경영능력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43.4점을 받았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점수였다. 정작 이 보고서를 작성한 위평량 박사는 “(이 점수는) 전문가 입장에서 경영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세 경영 체제’ 자체도 두산그룹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박혜원(53) 두산매거진 부사장, 박지원(51) 두산중공업 부회장, 박진원(48) 전 두산산업차량비즈니스그룹 사장, 박태원(47) 두산건설 사장, 박형원(46)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 박서원(37) 오리콤 부사장 겸 (주)두산 전무, 박재원(31) 두산인프라코어 부장 등 박정원 회장의 형제와 사촌들은 계열사 곳곳에 포진해 있다. 형제경영에 이어, 사촌끼리 회장직을 이어받는 경영체제가 구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4세들이 독립적으로 계열사를 맡아 경영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2005년 박두병 초대회장 3남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추대되자, 고 박용오 회장은 오너 일가의 비리가 담긴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는 이른바 ‘형제의 난’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자녀를 위한 3세들 간 대리전 성격이 짙었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당시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그룹의 핵심이 된 두산건설에서 박용오 회장 아들들이 소외되자, 불안과 갈등이 표면화됐다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금호그룹이나 해태그룹 사례에서 보듯 가족 간 공동경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이사회가 아닌 오너 일가가 두산그룹 경영의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향후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계열사 3만9천 명의 밥벌이를 책임지고 있는 두산그룹의 미래는 안갯속이다.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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