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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보다 꿈
Editor’s Letter
[72호] 2016년 04월 01일 (금) 김연기 economyinsight@hani.co.kr

몇 년간 바둑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이세돌 9단을 가까운 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사석에서 만난 그는 반상(盤上)을 호령하는 싸움꾼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늘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천진난만한 표정과 묘하게 어울리면서 차라리 개구쟁이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까. 전쟁 같은 대국이 끝난 뒤 어떻게 재충전을 하느냐 물으면 “딸내미랑 놀지요?”라고 말하며 히죽 웃곤 했다. 간혹 술이 몇 순배 돌고 술자리가 불콰해지면 주변 사람들이 짓궂게 추궁했다. “한 분야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뤘는데 아직도 이루고픈 꿈이 남아 있나요?” 의외로 소박한 대답이 날아왔다. “딸이랑 아내랑 알콩달콩 사는 게 제 꿈이죠.”

지난겨울의 끝자락. 이세돌 9단과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결에 지구가 들썩였다. 인간이 무릎을 꿇은 대국 결과에 아쉬워한 사람이 많았다. 호사가들 입에서는 인공지능의 혁명이 몰고 올 미래를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오갔다. 여태껏 겪지 못한 미증유의 상황에 인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도 나왔다. 2020년까지 500만 개의 일자리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란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의 전망은 때마침 알파고 충격을 계기로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처럼 당장이라도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는 날이 올 것 같은 요란한 분위기다.

분명 인공지능은 앞으로 모든 산업 분야는 물론이고 인간의 생활양식 자체를 바꿔놓을 미래 혁신의 주무대가 될 것이다. 벌써부터 기업은 인공지능 분야에 적극적인 연구·개발과 투자를 해야 하고, 정부도 관련 규제를 풀고 필요한 지원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이 뒤따르고 있다. 이제라도 인공지능 혁명의 거대한 흐름에 빨리 올라타야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가.

세간의 변죽이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 정작 그 중심에 있던 이세돌 9단은 가족과 조촐히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비행기에 오르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마치 일주일간 전 지구의 무게로 짓누른 짐을 털어내기라도 한 듯이. 알파고가 대국을 이기고 차가운 화물칸에 실려 긴 잠에 들어간 순간 그는 가족과 알콩달콩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이뤘다. 꿈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알파고가 계산에선 이겼을지 몰라도 인간의 꿈까지 따라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시는 나 같은 나부랭이도 만들지만 나무는 오직 신만이 만든다’고 읊조린 조이스 킬머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알파고는 누구나 만들지만 꿈은 오직 인간만이 꾼다. 인공지능에 예속될 절체절명의 미래가 째깍째깍 다가오는데 무슨 한가하게 꿈 타령이냐고 타박할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꿈이 필요하고 아름다운 것은 인간만이 꾸는 꿈이 가진 창조성과 영원한 가치 때문이다. 그런 꿈의 힘을 믿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그 지루한 일상을 견디며 삶을 지속하는 것일 터이다. 따지고 보면 알파고도 뭇사람들의 꿈속에서 잉태되지 않았겠는가.

김연기 부편집장
ykkim@hani.co.kr

*정남기 편집장의 안식 휴가로 2016년 4월호 편집장 칼럼은 김연기 부편집장이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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