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불장난’이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판을 뒤덮고 있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은 하루 종일 북한의 도발과 우리 정부의 강경 대응 뉴스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안보 이슈는 선거와 화학적 결합을 하면 전통적으로 정부·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해왔다. 대외 불안은 내부 결속을 다지고, 안보 심리 확산은 정부·여당에 대한 표로 이어진다. 그런데 안보 이슈의 불똥이 경제위기로 번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사람들은 관념적인 ‘국가 안보’보다 눈앞의 ‘가족 생계’가 우선이다.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북쪽에서 불어닥친 바람이 대한민국을 휘감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북한의 개성 지역에 대한 군사통제구역 선포가 이어졌다. 급기야 여당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우리나라의 핵무장 필요성까지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국회 연설을 요청해 ‘북한의 체제 붕괴’를 거론하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사실상 폐기했다. 북한 관련 뉴스가 온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인 사드(THAAD) 배치 논의도 한창 진행 중이다. 역대 그 어느 북풍보다 후속 파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으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도 뒤따를 예정이어서 쉽게 소멸할 이슈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민 여론은 우리 정부의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에 호응하고 있다. 효과에 대한 의문, 중국과의 관계 악화, 주변 지역의 전자파 위험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에 압도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서도 불가피성을 받아들인다.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핵을 지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여론도 우호적이다. 그만큼 이번 사안을 과거의 단순한 북한 도발 수준이 아닌 안전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야권 일각에서는 북풍을 정부·여당이 선거를 앞두고 키운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여론의 호응은 그다지 높지 않다.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이 국가 안위를 위한 정부 결단의 진정성을 외면하고 위기 상황에서 다른 목소리를 냄으로써 국론을 분열시킨다고 비판한다. 여야는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인 만큼 이 사안이 전체 선거 판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 의식이 높아져 여당에만 유리하고 야당에는 불리한 과거의 북풍 패턴은 이제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긴 하지만 여당에 유리한 현상을 부정할 수는 없다. 중도층까지 흡수하는 효과가 뚜렷하진 않을지 몰라도 야당의 공세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 후반에 실시되는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이라는 창으로 전쟁에 나서려던 야당은 안보 국면과 맞닥뜨리면서 상대의 굳건한 방패를 만난 셈이다.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려야 했던 여당으로서는 야당의 예리한 무기인 정권심판론이 제약되니 내심 안도할 수 있게 됐다.
　
여당, ‘천안함 지방선거’의 씁쓸한 기억

▲ 2016년 2월16일 서울역 대합실 텔레비전 화면 속에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안보 이슈와 관련해 국회 연설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 가운데 군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안보는 전통적으로 여당에 유리한 선거 이슈다. 연합뉴스

선거일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현재 북한 이슈가 안보적 사안으로 끝까지 간다면 야당은 국내 선거의 공간이 형성되지 않으니 어려운 선거가 될 것이다. 공세를 해야 하는 야당으로서는 싸움터가 있어야 정부·여당을 불러내 ‘맞짱’을 뜨는데 국가 안보가 강화돼야 한다는 기류가 확장되면 싸움터는 좁아지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을 불러낼 장소도, 준비한 칼을 휘두를 공간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여야 대결보다는 남북 대결에 온 신경이 쏠리면 대중도 야당의 공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어렵다.

하지만 북한 이슈가 ‘경제적 사안’으로 전환될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북한 도발의 위협이 크다고 해도 일단 막연한 우려일 수밖에 없다. 개인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남북 긴장 관계가 고조되고 경제에 타격을 주면, 그때는 국가 전체의 문제에서 국민 개인의 실질적 문제로 이동하게 된다. 경제가 흔들리면 취업과 고용 안정성, 가계소득에도 영향을 끼쳐 개인의 피해로 나타난다. 북한에 대한 분노와는 별개로 악화된 경제 상황을 관리하지 못한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형성될 수 있다.

2010년 6월2일 지방선거에서 실제 이런 일이 있었다. 그해 3월26일 우리 군의 천안함이 북한 소행으로 침몰하면서 안보 국면이 조성됐다. 정부는 선거가 임박한 5월20일 북한 소행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중인 5월24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 발표 장소는 전쟁기념관이었다.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환율은 폭등했다. 금융시장은 매우 불안정하게 움직였다. 유럽의 재정위기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던 터에 대통령의 대북 강경 대응 기조가 발표되자 영향이 훨씬 컸다.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다음날인 5월25일 경제지표를 보면, 코스피는 전날보다 44.10포인트 내린 1560.83으로 장을 마쳤다.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26.37포인트 내린 449.96으로 마감했다. 이는 2009년 4월 447.94를 기록한 이후 최저치였다. 하락폭과 하락률은 2010년 들어 최고였다. 외국 투자자들의 매도 주문이 이어진 탓이었다. 미국 달러화 가격은 1250원에 거래를 마쳐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당황한 여당은 공식적으로 천안함 정쟁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뒤늦게 사태가 심각하다고 깨달은 것이다. 당시 야당이 설정한 ‘전쟁이냐 평화냐’의 프레임이 성과를 봤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경제불안으로 개인들에게 실질적 피해가 나타나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선거 결과는 야당의 승리였다.

북풍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북풍으로 경제가 불안정해지자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여당에 책임을 묻는 기류가 형성된 것이다. 북한의 도발이 선거가 임박해 발생하고 단순한 안보 국면에서 선거가 치러졌다면 여당에 유리했겠지만, 국민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제 사안으로 불이 옮겨가며 역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아직 북핵 실험과 개성공단 중단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다.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다면 안보 국면이 더 강화될 수도 있다. 북한의 후속 도발이 없는 상황에서 남북 긴장이 고조되며 경기가 흔들리면 북풍이 여당에 유리하다는 전통적 패턴은 다시 깨질 수도 있다.

waymaker@opinionlive.co.kr

* 윤희웅은 오피니언라이브(OPINIONLIVE)에서 여론분석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과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