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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 맞은 부양론자여 현실을 보라
[VS]재정지출 논쟁
[5호] 2010년 09월 01일 (수) 기예르모 칼보 economyinsight@hani.co.kr

기예르모 칼보 Guillermo Calvo 미국 컬럼비아대학 국제행정대학원(SIPA) 경제학 교수
   
기예르모 칼보

현재 미국에서 재정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가 ‘수요 부족’을 불러왔다는 가정에서 흔히 시작한다. 이런 전제에서 보면, 수요를 늘리는 정책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진 경우엔 재정 확대 정책이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Krugman·2008). 이 경우 높은 공공부채가 문제될 수 있지만, 고용이 완전히 회복되면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에 의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서브프라임 위기는 금융의 중개 기능에 불신의 그림자를 던져줬다. 대출자와 차입자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대출을 중단했다면 이는 차입자가 신용불량이 됐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금융 부문의 건전성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얘기를 대출자가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사소한 금융 문제가 현재의 지구적 위기로 비화된 주된 이유다.
 
수요 부족? 케인시언의 착각!
이런 논리라면 수요 부족은 거의 당연한 결과다. 만약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면, 차입자의 수요는 떨어져야 할 것이다. 대출자는 자신의 돈을 예치할 곳을 찾아야 한다. 가장 유력한 대안은 현금이나 재무부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경우 차입자 쪽의 긴축 상황은 대출자의 방만한 대출로 상쇄되지 않고, 수요 부족은 더욱 심각해진다. 차입자 쪽의 갑작스러운 긴축은 신용경색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부 케인스학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차입자가 의욕을 상실하거나 자부심을 잃게 된 것은 아니다. 이런 심리적 상태는 위기 상황이 진전되면서 차입자에게 일어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차입자가 긴축하게 되는 근본적 원인은 갑자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신용시장에 있다.
재정 확대를 지지하는 이들은 정부가 재무부 채권을 발행해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차입자는 못하고 대출자는 안 하는 지출을 정부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 적자의 추가분을 대출자들의 자금으로 충당하고 경제는 완전고용으로 회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위기에 처한 경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차입자가 감당할 수 없는 소비를 정부가 촉진한다는 가정은 사실과 다르다. 예를 들어 정부가 태양광 에너지에 지출하는 운용자금에 중소기업들은 접근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각 부문에서 수요 부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태양’은 차입자가 있는 곳에서 떠오르지만 중천에 이르면 정부가 조달하려는 분야만 비추게 될 것이다.
차입자의 구미에 맞는 사업 부문과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집중된 분야는 서로 다르다. 따라서 실업 상태에 처한 차입자가 여기서 새로운 직업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은 실업 문제에 거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이다. 정부조달 상품을 생산하는 부문은 과열되겠지만, 다른 민간 부문은 노동자 신규 고용을 꺼릴 것이다. 노동력의 재배치는 비용이 많이 들고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도 없다. 가령 벽돌 쌓는 일을 하는 사람이 당장 컴퓨터 기술자가 될 수는 없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지만 실업률이 여전히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Calvo and Loo-Kung·2010). 더욱이 금융 중개기관들에 대한 신용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런 식의 비효율적이고 고용 없는 경기 회복은 재정적 경기부양책이 중단되는 순간 맥이 빠지게 될 것이다.
정부가 차입자의 상품에 지출을 늘린다면 재정적 경기부양 효과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미국 정부는 세금공제(Tax Credits)와 연준의 부실자산 매입을 통해 어느 정도 이런 역할을 했다. 이런 정책은 차입자의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금융업계가 서브프라임의 충격을 소화할 시간을 주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런 충격 완화 장치는 불필요한 고통을 막아내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고통 경감이다.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신용을 재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돈 쏟아부어도 실업 해결 안 돼
완전고용을 위한 모든 조처가 서브프라임 위기 이전의 소비 수준을 회복하는 것이라면, 신용회복 정책은 잘한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정도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경제는 부동산 거품으로 심각하게 왜곡됐다. 차입자가 이전처럼 많은 주택을 지을 수 없을 것이고, 건설노동자들은 다른 경제활동에 재배치돼야 한다. 노동력의 재배치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쉽지 않다. 실업률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과도기에는 실제로 더 올라갈 수도 있다.
신용회복 정책은 더 많은 돈을 푸는 실업보상 계획을 필요로 한다. 다행히도 미국은 물가가 낮고 공공 부문의 디폴트 위험이 작아 이런 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이고, 대출자는 여전히 재무부 채권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실패한 이들의 충격을 완화하는 수준을 넘어서면,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는 과정을 지연시킬 위험을 안게 된다. 미국 경제는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민간 부문에 자원 배분 지침을 내려줄 중앙계획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은 시행착오를 거쳐 새로운 패턴을 발견한다. 점진적으로 퇴출돼야 할 경제활동에 정부가 계속 자원을 투입한다면, 새로운 시장 개척은 어렵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신용시장을 원상회복시키려면 비금융 민간 부문이 새롭고 유망한 경제활동을 찾아내 선도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은행가는 대출서류를 뒤섞어놓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실제로 극심한 금융위기로부터 회복되는 과정에서 은행의 신용이 경기회복을 선도하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볼 때 낮은 실질임금과 저평가된 통화가 경기회복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실질임금은 서브프라임 위기 이전 수준에 여전히 근접하고 있다. 수출 주도의 성장은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이 분명한 탈동조화(Decoupling)를 보이지 않는 한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Calvo et al.·2006, Calvo and Loo-Kung·2010).
나는 미국 경제가 새롭게 완전고용의 균형을 회복하려면 이행 기간에 실질임금을 더욱 축소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노동 보조금 같은 부분적인 완충 장치가 수반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려면 공공정책이 여전히 큰 역할을 해야 한다. 가령 빈곤층과 실업자들의 과중한 고통을 막기 위해 실업보험을 연장하거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경색이 악화되지 않도록 급격한 물가하락을 막는 조처가 필요하다.
 
고통 줄이려 마약 하면 비싼 대가 치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주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1. 경기부양 재정지출을 유지하거나 늘린다면, 아마도 경제활동이 슬럼프에 빠지고 실업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더블딥)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기술적 진보가 지체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2. 경기부양 재정지출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면 더블딥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고통만 피한다면, 중기적으로 경제에 활력을 더 불어넣을 수도 있다.
나는 두 갈림길 가운데 두 번째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실업급여 확대 같은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점진적으로 도입하면서 정부 지출을 점차 줄여나가야 한다. 선택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이런 선택이 ‘정치적 편의주의’에 따라 결정될까 두렵다.
사회보장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다면 무역보호주의가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이지만, 치솟는 재정 적자를 걱정하는 정책결정자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 Vox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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