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반찬에 찌개까지 갖춘 일품 도시락 우후죽순…
밥 짓는 편의점 ‘밥 소믈리에’ 등장

2015년은 식당 사업가 백종원씨의 별칭 ‘백주부’로 통하는 집밥 열풍이 거셌다. 그런데 유일하게 예외인 지대가 있었으니, 바로 ‘편의점’이다. 집밥의 눈높이에 맞춘 알찬 세트의 편의점 도시락이 대거 등장하며 우리 밥상을 대체하다시피 했다. 대형마트와 식품 대기업들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한식집에서나 먹을 법한 메뉴를 냉동·냉장 간편식으로 내놓는가 하면 나물 재료와 양념이 한 팩에 담겨 무쳐 먹기만 하면 되는 제품도 있다. 피곤하게 재료를 사다 손질하고 조리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유신재 <한겨레> 경제부 기자

아직까지 편의점에서 음료수나 담배, 주류 등만 구입해본 소비자라면 요즘 편의점 진열대에서 점점 자리를 넓혀가는 도시락의 품질과 가격에 깜짝 놀랄 것이다. 무려 10여 종류의 반찬이 가득 담긴 도시락을 4천원 안팎에 살 수 있다. 불고기, 제육볶음, 돈가스, 고등어구이, 닭가슴살볶음 등 요리 수준의 메뉴를 담은 다양한 도시락이 넘쳐난다.

▲ 1인 가구 증가와 식생활 패턴 변화로 편의점 업계의 도시락 판매 경쟁이 치열하다. 세븐일레븐이 걸그룹 멤버인 혜리를 모델로 내세운 ‘11찬 도시락’ 제품. 연합뉴스

편의점 도시락 진화의 가장 최신작은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2016년 1월 출시한 김치찌개 도시락과 된장찌개 도시락이다. 김치찌개 도시락은 숙성된 김치로 끓여낸 찌개와 달걀말이, 소시지채소볶음 등 5가지 반찬으로 구성됐다. 된장찌개 도시락은 쇠고기 삼겹양지가 들어간 된장찌개와 돼지고기를 양념해 구운 맥적구이, 카레감자채 등 7가지 반찬으로 구성됐다. 찌개는 별도 용기에 포장해 전자레인지에 쉽게 데워 먹을 수 있게 했다. 가격은 4500원이다. 이동 중 샐 염려가 있기 때문에 도시락은 국물이 없고, 그래서 퍽퍽할 수밖에 없다는 오랜 고정관념을 깬 제품이다. 또한 편의점 도시락이 대충 때우는 한 끼가 아니라 집밥을 온전히 대체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제품이다.

편의점마다 도시락 모델로 내세우는 인물들도 쟁쟁하다. 씨유(CU)는 외식사업가이자 인기 방송인 백종원을, 세븐일레븐은 인기 걸그룹 ‘걸스데이’의 멤버 혜리를, GS25는 ‘국민엄마’로 통하는 배우 김혜자와 개그맨 신동엽, 방송인 겸 외식사업가 홍석천 등을 앞세우고 있다.

빠르게 진화하는 편의점 도시락의 매출은 급성장하고 있다. 2015년 12월 출시된 씨유의 백종원 도시락은 출시 한 달 만에 누적 판매량 216만 개를 넘어섰다. 앞서 3월에 출시된 혜리 도시락은 2015년 누적 판매량 910만 개를 기록했다. 세븐일레븐의 도시락 매출 신장률은 2012년 34.2%에서 2015년 90.2%까지 치솟았다. 씨유는 국내 전체 편의점 도시락의 시장 규모를 2014년 2천억원, 2015년 3천억원으로 추정했으며, 2016년에는 5천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매출 급증 배경, ‘장기 불황’과 ‘1인 가구 증가’

편의점 도시락 시장 성장의 1차적 배경으로는 장기 불황을 꼽을 수 있다. 불황이 이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싼값에 한 끼를 손쉽게 해결하려는 사람이 늘면서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사람)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세븐일레븐 홍보팀 홍승연 과장은 “10여 년 전부터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판매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판매가 빠르게 늘고 있다. 식당은 김밥집을 빼곤 6천~7천원 이상을 써야 하는데, 편의점 도시락은 3천~4천원대에 한 끼를 든든하게 해결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라고 말했다.

1천원대 커피를 파는 저가형 커피전문점 브랜드가 급증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백종원씨의 요식업체 더본코리아가 운영하는 1천원대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 ‘빽다방’은 가맹점 수가 2014년 25개에서 2015년 말 기준 415개로 16배 넘게 늘었다. 편의점들도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자체 브랜드의 커피를 잇따라 선보였다. 세븐일레븐은 전자동 드립 방식 추출 커피에 ‘세븐카페’라는 브랜드를 붙였다. 세븐카페는 아메리카노 기준 작은 컵 가격이 1천원으로, 출시 뒤 매달 평균 20% 가까이 매출이 오르고 있다. 2011년부터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해 고급 원두커피를 1천원대에 판매했던 씨유는 커피·디저트 브랜드 ‘카페겟’(Cafe GET)을 선보였다. GS25의 자체 브랜드 ‘카페25’도 2016년 2월 현재 전국 1천여 곳의 점포에서 판매에 들어갔다.

도시락 전쟁에 나선 편의점들이 불황보다 더 주목하는 현상은 1인 가구의 증가다. 통계청의 ‘장래 가구 추계’를 보면, 1인 가구의 비중은 2000년 15.6%에서 2010년 23.9%, 27.1%로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2021년이면 1인 가구의 비중이 30%를 넘어 그야말로 세 집 가운데 한 집은 혼자 사는 시대가 된다.

▲ 서울의 한 편의점 도시락 진열대 앞에서 고객이 어떤 제품을 고를지 고민하고 있다. 굳이 한정식집을 가지 않아도 가성비가 뛰어난 한식을 언제든 편의점에서 먹을 수 있다. 연합뉴스

아무리 집밥 열풍이 뜨겁다지만 혼자 사는 사람이 집에서 밥을 해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요리에는 주재료뿐만 아니라 소량의 다양한 부재료가 들어간다. 1~2인 가구가 어쩌다 한 번 적은 양의 요리를 하기 위해 파·고추·마늘 따위 부재료를 산다면 다 먹지 못한 채 냉장고 속에서 썩히기 십상이다. 그뿐만 아니다. 요리는 어느 정도 이상의 양을 해야 맛이 난다. 양지머리 한 근을 넣고 끓인 6인분 국이 100g을 넣고 끓인 1인분 국보다 훨씬 맛있다. 많은 식당에서 찌개 등을 주문할 때 2인분 이상을 요구하는 게 단지 귀찮아서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 1~2인 가구의 집밥은 경제적·미식적 측면에서 모두 비효율적이란 얘기다. 이 때문에 4천원 안팎에 10여 가지 반찬과 밥을 먹을 수 있는 편의점 도시락의 경쟁력은 막강한 것이다.

씨유가 도시락 판매량을 시간대별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편의점 도시락이 1인 가구의 식탁을 점령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직장인들의 수요가 몰리는 점심시간대(오전 10시~오후 1시) 판매가 24.1%로 가장 높지만, 오후 6시~밤 9시 판매는 18.6%, 밤 10시~새벽 1시 판매는 19.8%나 됐다. 씨유 쪽은 “편의점 도시락은 오피스가와 주택가를 중심으로 점심시간대 구매 비중이 가장 크고, 대부분의 식당들이 문을 닫는 밤 10시~새벽 1시의 야간시간대가 그다음으로 높은 구매 비중을 보이고 있다. 혼자 사는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점심시간 외에 저녁시간대 매출 비중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편의점 도시락의 경쟁자는 다른 편의점이 판매하는 도시락뿐만이 아니다. 이마트가 ‘피코크’라는 브랜드로 판매 중인 냉장·냉동 간편가정식 역시 급증하는 1~2인 가구를 겨냥한 제품이다. 이마트는 국, 찌개, 볶음밥, 짬뽕, 파스타, 샐러드, 녹두전, 순대, 떡갈비, 김치찜 등 수백 종의 피코크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CJ제일제당, 풀무원 등 식품기업들도 경쟁적으로 간편가정식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대형마트 경쟁 브랜드의 등장

양념장의 진화도 1인 가구 증가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최근 오징어볶음용 양념, 고등어조림 양념, 뚝배기불고기 양념, 고추장불고기 양념 등 백설 요리양념장 네 종류를 출시했다. 집밥 메뉴로 인기 있는 불고기와 생선요리를 고기나 생선 등 주재료 외에 별도의 양념이나 재료 없이도 간편하게 완성할 수 있는 제품이다. 기존 요리양념장이 대부분 상대적으로 용량이 큰 유리병에 담긴 것과 달리 이들 제품은 150g 소용량 파우치 포장을 선택했다. 기존 요리양념장은 온 가족이 모이는 설과 추석에 연간 매출의 60%가 집중됐기 때문에 용량이 커야 했지만, 이 제품들은 1~2인 가구의 집밥 수요를 노렸기 때문에 소용량 포장을 택했다는 게 CJ제일제당의 설명이다.

대상(주) 청정원이 업계 최초로 출시한 나물무침 전용 양념 ‘나물&엔’ 3종은 천일염·볶음참깨·마늘·생강 등이 모두 들어 있어 시금치, 도라지, 버섯 등 원재료에 넣고 무치기만 하면 손쉽게 나물을 완성할 수 있는 제품이다. 역시 스틱 형태의 소포장을 택했다. 이주은 CJ제일제당 백설팀 팀장은 “소형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2~3인분, 3~4인분 요리를 쉽게 만들 수 있는 양념장 제품 개발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날이 커지는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편의점들은 도시락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세븐일레븐이 최근 선보인 찌개 도시락도 오랜 연구·개발의 결과다. 세븐일레븐은 과거에도 찌개 도시락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실패했다. 큰 솥에 찌개를 끓인 뒤 1인분씩 나눠 담는 방식이었는데, 도시락마다 찌개 건더기의 양이 들쭉날쭉해 균일한 품질을 보장할 수 없었다. 시행착오 끝에 모든 도시락에 같은 양의 찌개 건더기가 들어갈 수 있는 제조공정을 만드는 데 성공해 이번 제품이 나올 수 있었다. 씨유는 11월 도시락 상품 혁신을 위해 요리사와 조리, 소스, 시즈닝 등 여러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상품연구소를 새로 만들었다. 앞서 5월에는 강원도 원주에 도시락과 주먹밥 등을 생산하는 간편식품 전용 공장을 설립했다.

특히 도시락의 중심이 되는 밥을 맛있게 짓기 위해 편의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2013년 일본의 유명 밥 전문가로부터 자문받아 도시락 생산공장의 취반시설을 모두 교체했고, 2016년부터는 모든 도시락과 삼각김밥, 김밥에 명품 쌀품종 중 하나인 ‘삼광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씨유는 경기도 화성, 경남 함안, 전북 익산 등에서 생산된 도정한 지 3일 이내 햅쌀만 사용하고 있다. 모든 편의점들이 밥 짓는 기술과 영양학적 지식을 갖춘 밥 전문가인 ‘밥 소믈리에’를 두고 있다.

oh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