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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통신에서 반도체 신화 재현한다
‘기가시대’ 황창규 KT 회장
[71호] 2016년 03월 01일 (화) 김재섭 economyinsight@hani.co.kr

취임 뒤 KT 영업이익 ‘1조원 클럽’ 재진입…
‘기가 스토리’로 글로벌 1위 DNA 지향

황창규 KT 회장이 2016년 1월로 취임 2년째를 맞았다. 이른바 ‘황의 법칙’으로 삼성전자 반도체의 도약을 일궈냈던 황 회장은 이제 통신업계로 배를 갈아타 새로운 도전에 한창이다. 황 회장은 취임 뒤 이석채 전 회장 시절 낙하산 인사들을 전면 물갈이하고 인재 영입에 공을 들였다. 그는 경영 비전으로 초고속인터넷보다 10배 빠른 ‘기가 토피아’를 제시했다. 일각에선 그의 성과에 기저효과가 반영된 측면이 있다며 업적을 논하기엔 시기상조라고 평가한다. 황 회장의 임기는 이제 1년 남았다. 그의 퇴임 뒤 행보를 두고는 벌써부터 뒷말이 무성하다.

김재섭 <한겨레> 경제부 기자

   
▲ 황창규 KT 회장이 2015년 9월 서울 KT광화문빌딩 올레스퀘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미래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황 회장 취임 뒤 KT의 대내외 신용등급은 한단계 올라갔다. 연합뉴스

“과거에는 황창규란 이름 앞에 ‘황의 법칙’이란 수식어가 달렸으나 지금은 ‘기가’가 더 어울린다.”

KT가 황창규 회장 취임 2주년을 맞아 내놓은 ‘업적’ 자료 가운데 한 대목이다. 황 회장은 2014년 1월29일 취임해 2년 동안 이룬 성과 가운데 첫 번째로 ‘기가인터넷 시대 개막’을 꼽았다. 2016년 1월 말 현재 KT 기가인터넷은 가입자가 100만 명을 넘었고, 백령도와 청학동 등 정보화 오지 마을을 대상으로 ‘기가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다.

KT가 앞세우는 황 회장의 또 다른 업적은 ‘영업이익 1조원 클럽 재진입’이다. KT는 황 회장 취임 이듬해인 2015년 1조2929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2012년 이후 3년 만에 영업이익이 다시 1조원을 넘었다. 취임 첫해는 4066억원의 영업이익 적자를 냈다. KT는 “황 회장 취임 뒤 KT의 변화가 수치로 입증된 것이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가 KT의 신용등급을 ‘AAA 부정적’에서 ‘AAA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고,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도 KT의 신용등급 전망을 ‘A- 네거티브’에서 ‘A- 스테이블’로 높였다”고 설명했다.

물론 ‘기저효과’를 간과할 수 없고, 주력 사업인 이동통신 쪽 실적은 크게 개선된 것이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황 회장 취임 뒤 과거에 추진되던 사업 가운데 전망이 어두운 것들을 정리하며 투자금을 일시에 손실 처리하고,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하며 비용을 한꺼번에 반영해 영업이익을 악화시킴으로써 이후 영업이익 증가폭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동통신 쪽의 가입자 점유율과 가입자당 매출(ARPU) 등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업적’으로 꼽기엔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적 쇄신과 ‘기가시대’ 개척

황 회장은 내정자 때부터 “박근혜 정부 핵심 측근의 낙하산 인사” “반도체 쪽 일만 해온 사람이 통신에 대해 뭘 알겠느냐?” 등의 수군거림을 당했다. 그의 경영능력을 시험해보기라도 하듯, KT 계열사 직원의 대규모 사기 대출 연루와 고객 개인정보 대량 유출 등 대형 악재가 잇따라 터졌다. 대부분 이석채 전 회장 재임 시절에 벌어진 일이 뒤늦게 터진 것이었다. 황 회장은 박근혜 정부와 직접 인연이 없는데다 ‘채무’도 없다며 낙하산 인사설을 억울해했다.

황 회장은 변명 대신 ‘정면 돌파’로 승부했다. 우선 그는 이 전 회장 시절에 받은 ‘낙하산’(KT 내부에서는 이들을 ‘올레 KT’라고 불렀음)을 말끔히 정리했다.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된 임원을 포함해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내보냈다. 대신 이들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밀려났던 ‘원래 KT’들을 불러들여 중책을 맡겼다. 주위에선 “‘올레 KT’ 중에서도 쓸 만한 사람이 있다. 선별해서 쓰자”는 조언이 있었지만, 그는 “인사는 무엇보다 원칙과 일관성이 중요하다”며 거부했다.

회사 안팎에서는 “박근혜 정부 낙하산 인사를 받기 위해, 그리고 삼성 쪽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삼성 출신 인사들이 임원으로 영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입한 삼성 출신 임원 가운데 한 명이 부적격 사유가 드러나며 이마저도 중단됐다. 황 회장은 “낙하산 인사는 없다. 다만 회사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삼고초려해서라도 데려오겠다”는 원칙을 재천명하고 지금까지 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 KT의 한 임원은 “민영화 이후 최고경영자가 공개적으로 낙하산 인사를 받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실제 실천한 것은 황 회장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한편으로 ‘원래 KT’들의 공감을 살 만한 경영 비전을 제시하고 고삐를 당겼다. 취임 3개월 뒤인 2014년 5월 황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KT의 새로운 비전으로 ‘기가 토피아’를 제시했다. 3년 동안 4조5천억원을 들여 기존 초고속인터넷보다 10배 빠른 ‘기가인터넷 시대’를 열겠다는 선언도 했다. KT는 그로부터 5개월 뒤에 기가인터넷을 상용화하고, 지난 1월 말 현재까지 100만 명 넘는 가입자를 모았다.

기가는 정보통신 기술 용어다. 데이터를 초당 최대 1천 메가 속도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론상의 최고 수치다. 실제 이용 환경에서 이 속도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황 회장은 ‘기가 스토리’ 전략으로 ‘기가’란 용어에 대한 일반인들의 거부감을 없애는 동시에 기가인터넷 속도에 대한 ‘진짜’ 논란을 불식시켰다. ‘기가 아일랜드’(전남 신안군 임자도) 등을 만들어 기가인터넷이 뒤처지고 불편했던 삶을 편리하게 바꿔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했다.
 
반도체 수상 싹쓸이, 취미는 ‘왕릉 탐방’

   
▲ 황창규 회장이 KT가 운영 중인 직원 어린이집을 방문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황 회장은 독특하게도 왕릉 탐방을 취미로 즐긴다. KT 제공

이동통신 쪽에서도 국내 최초로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내놨다. 월 정액요금에 기본으로 제공된 데이터 가운데 쓰고 남은 것을 다음달로 넘겨 쓰거나, 다음달치 데이터를 당겨 쓸 수 있게 하는 ‘데이터 밀당’을 처음으로 도입해 ‘모바일 기가인터넷 시대’를 열고 있다. 황 회장은 ‘인터넷 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받고,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 거래를 통합 관제해주는 ‘스마트 에너지 센터’를 여는 등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KT 홍보실은 “‘황의 법칙’이 통신서비스에서도 통했다”고 강조한다.

황 회장은 전형적인 ‘엄친아’ 길을 걸어왔다. 그는 1953년 1월23일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전기공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스탠퍼드대학 전기공학과 책임연구원과 휼렛패커드·인텔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1989년 삼성전자에 영입돼 16메가 디램 소자 개발을 총괄했고, 1994년에는 세계 최초로 256메가 디램 개발을 성공시켰다. 2008년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퇴직 뒤에는 이명박 정부의 국가기술최고책임자(지식경제부 연구개발 전략기획단 초대 단장)와 유엔 인권정책센터 이사 등을 지냈다. 이 시기에 반도체 개발자에게 주어지는 상은 거의 다 받았다.

황 회장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고종 곁을 지켜 유명했던 화원 화가 황매산 선생의 손자다. 해군장교로 군 복무를 했고, 음악과 미술 등 예술 분야에 대한 식견이 넓다. 연대 음대 출신의 부인보다 음악에 더 박식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다. 부산고 시절 합창반 활동을 하는 등 노래 실력도 좋다. 박인수의 <향수>나 김종환의 <사랑하는 이에게> 등을 즐겨 부른다. 운동신경도 뛰어나다. 서울대 공대 테니스 대표 선수로 활동했고, 골프 실력은 싱글 수준이다.

그를 수식하는 ‘황의 법칙’이 말해주듯 황 회장은 반도체 전문가다. 반도체라는 게 공정에 나노 단위를 사용할 정도로 미세해, 개발과 제작 때 모두 고성능 현미경을 사용해야 작업이 가능하다. ‘황의 법칙’이란 것도 반도체의 집적도가 해마다 2배씩 높아진다는 뜻이다. 황 회장이 2002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겸 메모리사업부장(사장) 시절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SSCC)에 참석해 이를 담은 ‘메모리 신성장론’을 발표하고 그에 맞춰 메모리 신제품을 내놔 ‘황의 법칙’이라 불렸다.

재밌는 사실은 반도체 대가인 황 회장의 주요 취미 가운데 하나가 왕릉 탐방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석에서 “시간이 나면 왕릉을 찾는다. 조선 왕들의 능은 거의 다 둘러봤다”고 털어놨다. 그는 KBS <역사저널> 등 역사를 현대의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프로그램과 사극을 즐겨 본다. 그는 “소장한 비디오테이프만도 800여 개에 이른다. 시간이 날 때 왕릉을 둘러보고, 그 왕의 시대를 다룬 사극이나 역사 다큐멘터리를 찾아본다. 특정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왕은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했을까 생각하면 재미도 있고, 새로운 시야도 열린다”고 말했다. 주위에선 이를 두고 “제왕학을 공부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오가기도 한다.
 
임기 뒤 행보에 관심 촉각

황 회장의 임기는 3년이다. 2016년 말까지다. 이미 KT 내부에서는 황 회장의 연임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KT 안팎의 전망은 연임을 안 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황 회장이 연임하면 차기 정권까지 이어진다. 남중수 전 KT 사장과 이석채 전 KT 회장이 연이어 새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검찰에 불려가 곤혹을 치른 뒤 쫓겨나다시피 물러난 사례가 있다.

일각에서는 황 회장이 연임을 포기하고 고문이나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가 새 정부에 참여하려고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황 회장은 수출 주력 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고 국내 재계는 물론 글로벌 인맥까지 갖췄다. 행정 경험도 갖추고 있다. 산업 및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부처의 수장을 맡기에 자격 조건만 놓고 보면 충분한 셈이다. KT 회장 취임 뒤 낙하산 인사를 거부해 박근혜 정부와 적당한 거리를 둬온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당사자인 황 회장은 향후 행보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대신 ‘마부정제’(馬不停蹄·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를 강조한다. KT가 홍보실장을 삼성전자 출신으로 바꾼 뒤 황 회장의 지명도를 부쩍 높이고 이미지를 개선하는 언론 홍보에 집중하는 모습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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