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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긴축론자여 공부 좀 해라
[VS]재정지출 논쟁
[5호] 2010년 09월 01일 (수) 로버트 스키델스키 economyinsight@hani.co.kr

미국발 금융위기 뒤 정부지출은 선이었다. 유럽발 재정위기 뒤엔 긴축이 도덕이 됐다. 대표적 케인시언과 ‘유동성 급정체’ 이론의 대가가 상대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글을 맞물렸다. 때론 가시 돋친 듯하지만 출구를 찾는 진정성은 매한가지다. 준칙과 재량, 경제학의 영원한 숙제다. 편집자

로버트 스키델스키 Robert Skidelsky 영국 워릭대학 정치경제학 명예교수
   
스키델스키

이른바 ‘구덩이의 법칙’은 물리학 법칙과 마찬가지로 가차 없이 관철된다. 구덩이에 빠졌는데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땅을 더 파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메워야 할 구덩이가 여러 개 있을 때 어느 구덩이를 먼저 메워야 할지를 판단하려면 가장 위험한 구덩이가 어느 것인지 알아보면 된다. 이런 ‘구덩이의 법칙’은 특히 정부의 재정정책에 어김없이 들어맞는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끈질기게 오래 계속되는 ‘과소고용’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경제가 큰 충격을 겪은 뒤 일정한 침체 수준에서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는 의미로 말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외부 자극이 없다면 저점으로부터의 경제회복이 더디고 불확실할 뿐 아니라 다시 악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한 ‘과소고용 균형’은 고정된 상태라기보다는 물체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중력의 힘과 같은 것이었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이 ‘준경기침체’라고 표현한 상황도 바로 그것이다. 사실 ‘더블딥 경기침체’라는 말보다는 ‘준경기침체’라는 용어가 더 적당하다. 이것은 흥분과 붕괴가 거듭 이어지면서 진행되는 무기력한 경기회복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케인스와 반대로 정통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민간 부문에서 재원을 훔쳐가는 것을 중단하고 재정 균형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경제가 큰 충격을 겪은 뒤에도 ‘자연스럽게’ 종전의 성장률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고방식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이론은 유럽중앙은행(ECB)의 회보 7월호에 진술돼 있다.
 
정부지출이 구축 효과? 거짓말!
ECB는 부채로 조달한 자금으로 이뤄지는 정부 공공부문의 지출은 민간 부문의 지출을 ‘밀어낸다’(crowd out·경제학 용어로 ‘구축’ 효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런 공공지출은 실질이자율을 끌어올리거나, 가계가 나중에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되리라고 예상해 저축을 늘리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재정지출 확대정책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공공 부문의 지출은 민간 부문의 지출보다 본질적으로 덜 효율적이기 때문에 재정지출이 확대되면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CB의 회보에 이런 글을 쓴 필자들이 그와 같은 유형의 ‘밀어내기’가 최근 2년 사이에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들 자신이 설명했듯이, 자원이 과소사용 상태에 있다면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이 추가 수요를 창출해 민간 부문의 지출을 ‘끌어들인다’(크라우드 인). 회보는 관찰된 증거를 요약하면서, 유로존이 재정지출 확대정책을 취함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보다 2009∼2010년 국내총생산(GDP)을 1.3% 더 증가시켰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사례에는 재정지출 확대정책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훨씬 더 분명하다. 경제학자인 앨런 블린더와 마크 잰들은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동안 비난을 많이 받은 금융부문 구제계획인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TARP)을 포함해 2009∼2010년에 채택된 경기부양 정책들이 대공황이 재연되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한 것이 2009∼2010년 GDP를 3.4% 더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정 적자 감축론자들은 여기서 물러나지 않고 그들의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다. 재정지출 확대는 정부 재정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림으로써 경기회복을 가로막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금 경기회복세를 공고하게 굳히려면 신뢰할 만한 재정 적자 감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려운 건 파산이 아닌 강경한 정부
재정 적자 감축이 어떻게 신뢰를 회복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일까? 재정 적자 감축은 소비자에게 조만간 영구적 세금 인하가 이뤄질 것으로 믿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플러스 부(wealth)의 효과가 발생해 민간 부문의 소비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금을 올리면서 재정 적자를 감축하는 정부 정책이 나중에 세금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소비자가 믿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나의 그럴듯하지 않은 가설은 또 하나의 그럴듯하지 않은 가설을 부른다. 재정을 견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투자자가 경제의 공급 측면이 개선되리라고 예상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름 아닌 실업, 그로 인한 기술적 숙련도와 자신감의 상실, 투자 제한이야말로 경제의 공급 측면에 타격을 준다.
재정견실화 전략의 ‘신뢰할 만한 발표와 실행’이 정부 부채의 위험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우리 귀에 자주 들린다. 재정견실화 전략을 그렇게 실행하면 실질이자율을 떨어뜨려 민간 부문의 지출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일본·독일·영국의 장기 정부 부채에 대한 실질이자율은 이미 0%에 가깝다. 투자자들은 불황과 디플레이션의 위험이 채무불이행 위험보다 더 크다고 볼 뿐 아니라, 같은 이유에서 주식보다 채권을 더 선호한다.
재정 적자 감축론자들의 주장 가운데 마지막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정부의 차입 수요를 줄이는 것이 장기이자율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 생산을 더욱 증가시키는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낮은 장기이자율이 경기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익에 대한 기대도 경기회복을 위해 필요한데, 이는 활기찬 수요에 의존한다. 기업인들이 얼마나 저렴한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는지 간에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의 충분한 수요를 기대할 수 없다면 그들은 돈을 빌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와 같은 ECB의 주장은 지적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진실은 이렇다. 기업인들의 자신감을 위축시키는 것은 정부 파산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재정 균형을 달성하겠다는 각국 정부의 단호한 태도다. 그런 각국 정부의 태도가 고용, 소득, 구매 주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 기업인들의 자신감을 위축시키고 있다.
백번 양보해 ECB의 주장처럼 ‘불건전한 재정’에 대한 두려움이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가정해보자. 그 뒤 ‘그런 두려움은 합리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와 같은 나라를 제쳐놓고 말한다면, 오늘날의 상황에서 그런 두려움을 강조하는 것은 과장이 아닐까? 만약 그것이 과장이라면 ECB와 공적 기구가 해야 할 일은 경제에 대한 비합리적인 믿음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비합리적인 믿음에 맞서는 것이다.
 
동아줄 잘라 침체 장기화에 기여
문제는 지금의 위기 속에서 각국 정부가 ‘지적 불구’ 상태임이 드러났다는 데 있다. 그것은 각국 정부가 경제를 진단하고 운영하는 데 적용하는 이론이 혼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2009∼2010년에 실제로 일어난 경제위기와 이에 대한 정책 담당자들의 상식적 판단에 따라 각국 정부는 적자재정을 운영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불황은 일어날 수 없고, 전시를 제외하고는 적자재정은 언제나 유해한 것이라는 이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금 각국 정부는 그동안 스스로 풀어낸 구명용 밧줄을 경쟁하듯 서둘러 중간에서 절단하려는 것이다.
각국의 정책담당자들은 ‘사이비 합리성 논리’를 창안해 경기침체를 장기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제발 ‘케인스 이론’을 다시 공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케인스가 남긴 교훈을 되살려 실제 정책 운용에 적용하길 바란다. 
ⓒ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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