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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구조 바꿔야 상생 가능
[Issue]
[5호] 2010년 09월 01일 (수) 조이현 economyinsight@hani.co.kr

조이현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정치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이 화두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포스코 미소금융’ 지점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기업 캐피털 회사의 높은 이자율을 거론하며 “사회정의상 맞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에 대한 언급과 강조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2년이 지난 2005년 5월 청와대에서 재벌 총수들과의 대책회의 자리에서 “대·중소 협력은 정부 정책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고 판단된다. 시장에서 기업 간 협력이 이뤄져야 비로소 상생협력이 가능하다”고 대기업의 역할을 주문했다. 즉,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에 대한 관심과 정부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말만 무성할 뿐 그동안 큰 변화는 거의 없었다. 왜 그럴까?
 
상생협력, 그 해묵은 과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은 산업의 중·장기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 등 사회 통합을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유효한 정책 지표로서 영업이익률 차이와 임금격차, 그리고 전체 기업 중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비중을 들 수 있다(<표> 참조). 이는 각각 대·중소기업 간 수익성 양극화, 소득 양극화, 혁신 역량 양극화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대·중소기업 간 영업이익률 격차는 2004년 5.3%포인트까지 확대됐으나 그 뒤로는 감소하고 있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수준도 2004년에 57.2%로 가장 낮았으나 이후로는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핵심 역량 강화 지표 중 하나인 중소기업의 R&D 비중은 2004년 20.9%로 가장 낮았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8년 28%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조에서는 대·중소기업 간 격차는 10년 전과 비슷하게 여전히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정도를 살펴보기 위해 종사자 수를 비교해보자. 전체 산업에서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비율은 2003년 86.8%에서 2008년 87.7%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회 전체 고용구조 측면에서 대기업은 구조조정 등으로 일자리가 감소(2003년 전체 산업 종사자의 13.2%→ 2008년 12.3%)하는 반면, 중소기업은 꾸준히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대외 의존 탈피 산업집적화로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에는 아직도 많은 장애 요인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와 관련해 대기업의 잘못된 경영 관행과 노력 부족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구조적 요인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 잘 안 되는 이유를 거시적·미시적 산업구조 측면에서 살펴보자.
우선, 거시경제 측면의 대외 의존적인 산업구조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1970년대 초부터 수출지향적 발전 전략을 취해왔고, 이에 따라 해외 시장에서 요구되는 가격과 품질 수준에 맞추기 위해 원재료, 생산설비, 주요 부품 등도 수입에 크게 의존했다. 이에 필요한 기술도 선진국에서 도입해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생산설비 확보, 기술 개발 등은 부차적인 수단으로 인식됐다. 그 결과 국내 기업 간 협력이 활발하게 추진되지 못한 것이다. 대외 의존적인 산업구조는 관련 기술의 국내 축적을 어렵게 한다. 이런 대외 의존 심화는 외국 기업에 대한 국내 기업의 의존적 관계는 증가시킨 반면, 국내 기업 간 협력의 필요성은 크게 낮춘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에는 국내 산업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이 잘 안 된 이유를 찾아보자. 첫째, 설비 수요 기업들의 국산 제품 사용 기피다. 국내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수요 대기업이 중소 공급 기업에 기술정보를 제공하고 공동 연구개발과 양산화, 자금 지원 등 다방면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 설비의 품질과 성능 등과 관련해 신뢰성 부족 등을 이유로 수요 대기업이 국산 설비의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고, 따라서 중소 공급 기업에 대한 지원이 미미했다.
둘째, 부품 표준화와 공용화의 미흡이다. 동종 기업 간 과당경쟁으로 품목별·규격별·모델별 분업이 원활히 추진되지 못했고, 또 기업 간 협력생산, 부품의 표준화·공용화 등이 제대로 안 돼 기업의 협력을 어렵게 했다. 업체 간의 과당경쟁과 협력 부족으로 공동개발이나 공동생산 노력이 적었고, 매우 적은 생산량임에도 많은 비용을 지급하고서라도 이를 자체 생산하려는 경향이 많았다. 하자 우려 때문에 주요 부품을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셋째, 산업 집적의 미흡을 들 수 있다. 특정 기업이 반드시 지리적으로 인접한 다른 기업과 거래관계를 가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정한 지역에 동종 또는 다른 업종의 기업이 입지해 하나의 기업 집적을 이룰 경우 이 기업들 사이의 협력이 쉬워지고, 이를 통해 종합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산업 집적이 제조업의 기반이고 경쟁 우위의 원천으로 불리는데, 이것이 기업 간 협력과 이를 통한 산업 경쟁력 증대로 연결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 이탈리아의 경우 소기업 연합체가 잘 형성돼 있고, 정부도 지역 클러스터에 대해 생산공정상의 연계뿐만 아니라 물류, 유통, 연구·개발 등 각 기능의 연계에 중점을 두어 조세 및 인프라 등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산업 집적이 미흡했으나 최근 들어 정부가 지역별로 소규모 업종별 클러스트를 구축해 확산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바람직한 모습이다.
 
사회적 신뢰 부족도 제약 요인

넷째, 중소기업의 영세성과 낮은 기술 수준도 하나의 원인이다. 모든 중소기업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직도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기술 수준 또한 낙후됐다. 그래서 대·중소기업 간 혹은 중소기업 간 협력 확대가 쉽지 않아 서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소기업의 기술력 향상에는 완성품 생산기업이 부품공급 기업에 기술지도·시설지원·인력파견 등을 통해 기술을 이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 이런 종류의 기업 간 협력이 비교적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에 비춰볼 때 부족한 실정이다.
다섯째, 사회적 신뢰 부족을 들 수 있다. 기업 간 협력이 형성·확대되려면 신뢰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중요하다. 일본은 상호 협력적인 기업 형태가 크게 발전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신뢰 형성이 미약하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합리성이나 상식에 의해 일이 결정되기보다 혈연·학연·지연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고, 기업 간 거래에서도 기술력이나 경영능력보다는 혈연·지연 등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많다.
우리나라에서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 문제가 정부 차원에서 주요 정책 이슈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나라도 드문 것 같다. 그만큼 대·중소기업 협력 문제는 한국만의 특수성을 지닌 과제라고 볼 수 있다. 기업의 수익성과 임금 격차, 경쟁력 등의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심각하다. 기업 간 양극화는 국가 경쟁력 또는 경제·사회에 미치는 파급력 측면에서 큰 문제다. 최종 제품과 부품소재 산업 간의 균형 발전은 산업 전반의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주요 요인이다. 특히 두 부문 간 지식과 정보, 인력 교류·커뮤니케이션은 산업 전체의 혁신을 자극하는 요소다. 대·중소기업 간 격차는 이런 교류·협력을 부진하게 만들어 산업 경쟁력 전체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실업 및 사회 양극화의 주요 원인이 된다. 대기업의 고용인원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산업계 고용의 88%를 점유하고 있지만, 대·중소기업 종업원의 임금 격차는 10년 전에 견줘 별로 나아진 게 없다. 대·중소기업 협력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통합을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다. 한국 경제는 정부가 주도하는 대기업 중심 정책으로 발전했고, 대기업 성과의 과실은 중소기업에 제대로 전파되지 못했다. 게다가 부품소재 중소기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탓에 대기업 역시 높은 수입의존도를 보이면서 대일무역 적자 확대 등을 초래하고 있다.
 
정부 개입보다 유인 제도 필요
기업 간 양극화 문제를 다루는 데 대기업을 성장의 이익을 독식한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결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없다. 대기업이 앞장서 중소기업과의 동반 성장을 위한 생산적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먼저다.
상생협력은 기업 스스로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초해 이뤄진다. 따라서 기업 간 사적 거래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개입할 경우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역할은 대·중소기업의 양극화가 고착화하거나 확대되지 않게 시장 실패가 발생할 수 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적절한 정책적 대응을 하는 것이다. 조정자로서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협력 인프라 구축 등 유인 제도를 통해 상생협력을 촉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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