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국내 > 이슈
     
[윤희웅의 선거와 경제] 투표로 절망의 정치를 심판하라
'공유지의 비극' 제19대 국회의 파산
[70호] 2016년 02월 01일 (월) 윤희웅 economyinsight@hani.co.kr

제19대 국회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가 이익을 우선해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는 국회의원 선서는 이미 과거 투표함에 묻은 지 오래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여당의 공천 잡음과 야권의 이합집산은 ‘공유지의 비극’을 재현한 제19대 국회의 불협화음을 잘 대변한다. 인간의 탐욕을 버린 ‘아름다운 공존’은 정치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줬다. 막말과 구태, 지역구 챙기기로 황폐화된 제19대 국회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면 유권자가 투표장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어느 마을에 목초지가 있다. 그런데 이 목초지엔 주인이 없다. 마을 목동들은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양을 최대한 많이 목초지에 풀어놓는다. 결국 늘어난 양들은 풀을 죄다 먹고 뿌리까지 먹어버리면서 목초지는 황무지로 변하고 만다. 통제할 수 없는 사리사욕이 공동체의 존립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는 개릿 하딘이 1968년 12월13일치 <사이언스>에 실었던 10여 쪽의 논문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내용이다. 그렇지만 생물학자 하딘의 이 짤막한 글은 인간의 탐욕과 시장의 한계를 명쾌한 사례로 보여줬고 다양한 학문에서 원용돼왔다.

‘공유지의 비극’을 불러온 인간의 분별 없는 탐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 속담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거나 러시아 속담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는, 비용이 적게 들 경우 이익을 향해 돌진하는 인간의 속성이 얼마나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지 보여준다. 해양생물학자였던 레이철 카슨은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 발표 6년 전인 1962년 사실상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내용을 사례로 제시한 바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은 합성살충제의 오염 문제를 다뤘다. 사람들이 농약을 과도하게 사용해서 애초 의도했던 잡초와 해충의 제거를 넘어 일반 곤충과 조류, 동물까지 죽거나 떠나게 만들어 생태계가 파괴되고, 봄이 와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황을 우화로 묘사했다.

‘공유지의 비극’은 원래 자연 자원에 한정된 얘기였지만 자연 영역뿐만 아니라 공공 영역, 특히 정치 분야에서도 ‘공유지의 비극’은 나타난다. 국회의원들은 예산을 본인 지역구 사업에 우선 배정한다. 전체적인 관점은 사라지고 의원들의 개별적 이해관계에 따라 예산이 배분되는 것이다. 당연히 공정하게 사용되지 못한다. 또 의원들은 각종 특혜 법안을 양산한다. 노년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정당은 노인을 위한, 청년을 지지층으로 하는 정당은 청년을 위한 법안을 제시한다.

또한 정치인들은 막말과 구태를 일삼는다. 정치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스스로 소멸시킨다. 공공성을 상실하고 사익을 추구한다. ‘정치적 자영업자’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거짓말쟁이의 집합소’라는 비판도 일상화됐다. 정치라는 목초지는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리고, 대중은 정치를 외면하게 된다. 막말과 구태를 반복하더라도 자기 개인에게만 화살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비판을 나눠 갖는다.
 
막말과 구태로 제 살 깎아먹은 19대 국회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5년 12월20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 선거구 획정과 쟁점 법안 통과를 논의하다가 잠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제19대 국회는 희망의 정치가 실종된 황무지로 변질됐다. 연합뉴스

결과는 어떠한가. 이번 제19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의정 평가에서 ‘잘한다’는 긍정 평가를 고작 5% 받기도 했다. 공공기관 신뢰도에서 국회는 최하위를 면하지 못한다. 현역 의원에 대한 물갈이 정서는 최고조에 달한다. 스스로 심판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아는지 ‘여당심판론’ ‘야당심판론’을 서로 얘기한다. 그러다가 새로운 정당의 출현으로 정치 전체가 심판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 정치 영역을 파괴한 대가를 치러야 할 처지에 몰린 것이다.

정치라는 목초지에서 무분별하게 사욕을 채우다가 공공성의 정치, 희망의 정치가 실종되는 황무지화가 진행된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이다. 애초 ‘공유지의 비극’은 시장의 실패를 의미하지만 이것은 ‘정치의 실패’라고 부를 수 있겠다.

서로 협력해 정치적 신뢰를 제고하면 현역 의원들에 대한 재신임도 역시 높아질 텐데 그러지 못한다. 이른바 ‘집단행동 딜레마’가 여기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행위자들이 서로 함께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배반해 결국 화를 자초하는 ‘죄수의 딜레마’를 정치권은 반복하고 있다.

하딘은 공유지의 비극을 막기 위한 해결책의 하나로 소유권을 지정해야 한다고 했다. 전통적 시장주의자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소유권을 정해주면 자발적 관리가 이뤄져 황무지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목초지를 구획해 나눠주면 각자가 현명한 방법으로 풀이 사라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본다.

실제 하딘은 중세시대 영주나 대지주를 중심으로 개방경지나 공유지를 산울타리나 돌담으로 구분해 사유지임을 표시해 관리했던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을 예로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 영역은 이런 사유화 방식으로 ‘공유지의 비극’을 막을 수 없다. 정치 영역에서 소유권을 준다는 뜻은 정당이나 계파를 허용하는 것인데 이미 그렇게 해왔고, 오히려 정당과 계파의 기득권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간의 극한 대결이 상시화되고, 공익을 위해 일하려는 개별 의원들을 제약하기도 한다.

2009년 여성으로서는 처음 노벨상을 탄 엘리너 오스트롬은 평생 공유지 비극의 해법을 연구해왔다. 그는 정부의 관여가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의 자발적 관리가 오히려 효과적 방안이라고 말한다. 그의 저서 <공유의 비극을 넘어서>는 피플 파워, 공동체 관리, 셀프거버닝(Self-governing)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 영역에 적용하자면 이는 국회의 윤리특별위원회나 각 정당의 윤리심의기구일 것이다. 문제는 이 기구들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봐주기, 솜방망이 처벌로 오히려 불신을 키웠다.

하딘은 공유지 비극의 해법으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거나 공해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내기도 했다. 정부나 힘있는 제3자가 직접 개입하는 것이다. 정치 영역에 적용하자면 국민이 직접 관여하는 방안일 것이다. 오스트롬은 이 방식이 정부의 실패를 가져온다고 반대했다. 이에 따라 ‘자치 관리’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치 영역의 공유지 비극 해법으로는 제3자, 즉 국민의 직접적 개입이 사실상 유일한 유효한 방안으로 보인다.

직접 개입할 날은 바로 선거일이다. 스스로 협력체를 만들지도 못하고 자발적 관리도 못하는 정치권을 관리하기 위해 국민이 직접 등장해야 한다. 전통적 방법이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이것이 정답이다. 정치는 ‘공유지의 비극’이 되었다. 정당과 계파는 ‘사유화의 비극’까지 낳았다. 유권자가 선거에 가만있으면 ‘방임의 비극’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waymaker@opinionlive.co.kr

* 윤희웅은 오피니언라이브(OPINIONLIVE)에서 여론분석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과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희웅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