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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Biz] 덕후 전성시대
‘덕후 문화’와 기업의 마케팅
[70호] 2016년 02월 01일 (월) 문동열 economyinsight@hani.co.kr

바야흐로 ‘덕후’의 전성시대다. 덕후는 특정 분야를 취미 이상으로 좋아하고 빠져들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질 정도로 그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오타쿠’, 미국에서는 ‘너드’로 불린다. 최근 대중문화와 기업 등에서는 ‘덕후 시장’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덕후가 거대한 소비집단으로 부각되면서 관련 시장이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제 콘텐츠 제작이나 기업 활동에서 덕후의 마음이 비즈니스 성공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한 지상파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일반인 시청자 패널. MC는 그를 ‘괴수 능력자’라고 소개한다. 그가 역대 제작된 모든 괴수 관련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그야말로 괴수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식을 보유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가 진짜 ‘능력자’인지를 시험하기 위해 제작진은 출연자의 눈을 가린 채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따온 괴수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려준다. 출연자는 소리만 듣고 몇 년에 제작된 어느 영화에 나온 괴수인지를 딱딱 알아맞힌다. 패널과 스튜디오 내 방청객은 그의 ‘능력’에 감탄하며 그를 진정한 ‘능력자’라고 치켜세운다. 최근 방영 중인 <능력자들>(MBC)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 인기 일본 만화 <원피스>의 루피(오른쪽)와 <드래곤볼>의 손오공 분장을 한 사람들이 2015년 8월 미국 뉴욕의 힐턴호텔에서 열린 제43회 국제 에미상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최근 들어 주로 인터넷의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개인 미디어 등에 취미 수준을 벗어나 자신들의 남다른 능력을 뽐내는, 비슷한 분야의 전문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능력자’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런 능력자를 예전에는 ‘마니아’라고 많이 불렀으나 요즘 젊은 층들 사이에서는 ‘덕후’라는 표현이 더 친근하다.

덕후는 특정 분야를 취미 이상으로 좋아하고 빠져드는 사람들과 함께 어떤 분야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질 정도로 열중하고 몰두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게임 덕후’ ‘소녀시대 덕후’ ‘자동차 덕후’같이 단어 앞에 해당 분야의 이름을 붙여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뭐든지 줄여서 쓰는 인터넷 용어의 습관 탓에 ‘겜덕’ ‘소덕’ ‘차덕’처럼 줄여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젊은 층의 은어였던 이 말을 최근에는 일반 대중매체나 미디어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이는 이전까지 종종 비하하는 의미로 많이 쓰였던 덕후라는 표현의 위상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의미할 것이다.
 
사회 부적응자를 지칭했던 초기 덕후 문화

덕후라는 말의 어원은 이웃 일본의 ‘오타쿠’(御宅)라는 단어의 끝부분을 한국식으로 변형한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오타쿠는 1970년대 일본에서 탄생한 특수한 문화적 성향을 가진 집단을 지칭하는 말로 주로 대중문화 애호가를 의미한다. 탄생 초기에는 애니메이션, 공상과학(SF), 게임, 컴퓨터 등 주로 ‘서브 컬처(’Sub Culture)라 불리는 비주류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기호성이 강한 취미나 완구의 애호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 일본 도쿄의 전자상가 아키하바라는 오타쿠 물품 시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 지역을 이루고 있다. 아키하바라에서 애니메이션 주인공 분장을 한 사람들. 연합뉴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오타쿠는 그렇게 어감이 좋은 단어는 아니었다. 어린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장난감 등에 20~30대 어른이 열광하며 빠져드는 모습이 기성세대에겐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 오타쿠 취미를 가진 범죄자가 등장할 때마다 마치 이런 취미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보도하는 미디어들에 힘입어 그동안 일본 사회에서 오타쿠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변태’나 ‘소아성애자’에 준하는 그것에 가까웠다.

영어권에서도 오타쿠에 해당하는 용어로 괴짜라는 의미의 ‘긱’(Geek), 멍청이나 세상 물정 모르는 공부벌레라는 의미의 ‘너드’(Nerd)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영어권 역시 주로 컴퓨터나 게임 등에 빠져 자기네들끼리 도통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이해하기 힘든 문화에 빠져 열광하는 집단을 비하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최근까지 일본의 오타쿠나 영어권의 긱·너드로 불리는 계층이 주요하게 소비하는 문화가 기성세대가 주도하는 주류 문화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저급한 문화’로 인식돼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덕후는 지금까지 종종 비하적인 의미로 쓰여왔다. 이들이 향유하는 문화가 철저히 비주류였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를 포함한 주류 문화권에서는 뭔가 이해하기 힘든 것에 열광하고 빠져드는 이들이 기이하게 보였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적 성공과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놀이’에 빠져 그렇게 쓸모 있어 보이지 않는 능력을 자랑하는 젊은 층의 모습에 경악한다. 덕후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임의 경우 근절해야 할 사회악으로까지 치부돼왔다.

하지만 최근 덕후의 비주류 문화가 서서히 주류 문화에 편입되면서 성장 중이다. 덕후의 대표 문화였던 게임은 수출 한류의 큰 효자 노릇을 하는 등 이미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10~20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웹툰이 대형 제작사에 의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일은 이제 비일비재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연예인들 중에서도 ‘덕밍아웃’(덕후라는 단어와 동성연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을 조합한 단어로 공공연하게 자신이 덕후임을 밝히는 일 -편집자)하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덕후의 역습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최근 미국 너드들의 바이블로 불리며 열광적인 ‘너드 팬덤’을 보유 중인 <스타워즈> 시리즈의 최신인 <스타워즈-깨어난 포스>가 개봉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스타워즈> 열풍이 불었다. 핼러윈도 아닌데 <스타워즈>의 코스프레를 한 팬이 길거리에 넘쳐나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나 <스타워즈> 보러 가니까 기자회견을 빨리 끝내자’며 농담하는 광경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또한 미국 너드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트콤 <빅뱅이론>은 평균 2천만 명이 넘는 시청층을 자랑하며 현재 시즌9가 방영되고 있다. 방영 초기만 하더라도 아무도 이런 롱런을 예상치 못한 이 특이한 ‘너드 코미디’는 매년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의 단골 수상작이다.

덕후 문화는 키덜트(Kidult) 산업과도 맞닿아 있다. 그동안 장난감은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맥도널드나 롯데리아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어린이 고객의 판촉을 위해 준비한 어린이세트의 피규어를 구하기 위해 어른들이 어린이세트를 대량 구매하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아예 한 패스트푸드점은 최근 세트 메뉴를 구입하면 한정판 피규어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키덜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키덜트 시장은 한국에서만 연간 7천억원 규모로 매년 성장 중이다.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업체들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사회의 잉여? 새 문화 흐름의 리더?  

이렇듯 최근 대중문화와 기업 등에서는 ‘덕후 문화’ 또는 ‘덕후 시장’을 새롭게 조명 중이다. 아직까지는 신기한 ‘풍물’ 수준에서 바라보는 정도지만 해가 갈수록 기존 주류 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고 있다. 초기 덕후 문화를 향유했던 40대가 이제 주요 소비 계층으로 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덕후라는 특수 집단의 가치가 올라가는 현상은 이들 집단이 거대한 소비집단이자 엄청난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프로슈머’라 불리는 계층 중 가장 적극적이며 주도적인 계층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최근 콘텐츠 제작 시장에서 제작자가 반드시 염두에 두고 공략해야 할 분야는 이 덕후 집단이라고 한다. ‘오타쿠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콘텐츠 제작이나 기업 활동이 이미 오타쿠에 맞게 재편돼가고 있다.

일본 하쿠호도 브랜드디자인 청년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의 오타쿠 시장은 2015년 현재 약 3조엔(약 30조원)에 육박한다. 일본의 각 기업에서는 오타쿠 시장을 젊은 층의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기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연구소의 오타쿠 연구에 따르면, 오타쿠는 문화를 대할 때 3C라는 소비 프레임워크를 갖는다. 3C는 각각 수집(Collection), 창조(Creativity), 커뮤니티(Community) 형태로 발전해간다. 덕후는 먼저 강한 흥미를 가진 대상을 되도록 많이 모으고 싶다는 수집적 소비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안정적이면서도 지속적인 구매 활동과 연결된다. 콘텐츠 제작자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로열티 높은 소비자가 지속적으로 소비함에 따라 관련 상품을 계속 생산하는 기반을 갖추게 된다. 동시에 오타쿠들의 창조, 커뮤니티의 프레임에 의해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나 상품을 기반으로 한 사용자 제작의 2차 콘텐츠가 생산되면서 이것의 공유를 통해 자연스럽고 광범위한 바이럴 마케팅까지 이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콘텐츠 제작이나 기업 활동에서 덕후의 마음이 비즈니스 성공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마케팅을 안 하는 LG전자의 마케팅팀에 지쳤다’는 ‘컴퓨터 덕후’들의 콘텐츠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일견 LG전자를 공격하는 ‘안티’적 의미로 보이지만, 내용을 가만 들여다보면 LG전자의 여러 제품이 화려한 마케팅이나 홍보 문구로 고객을 기만하지 않고 좋은 제품을 합리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컴덕’들의 지원사격임을 알 수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글로 만화로 게시물로 이런 내용을 다른 커뮤니티로 전파하면서 자연스럽게 ‘LG의 제품은 정직하고 품질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혹자는 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고도로 계산된 LG의 마케팅’이 아닐까 주장하지만, 어쨌든 이를 보는 소비자는 재미 속에서 나름의 메시지를 찾아내고 있다.

rabike0412@gmail.com

* 문동열은 영상 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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