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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저주’에 빠진 주택시장
[Special Report]'하우스 푸어' 시대
[5호] 2010년 09월 01일 (수) 전강수 economyinsight@hani.co.kr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
 
하염없이 올라갈 것만 같던 부동산 가격이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몇 년 동안 부동산 가격 상승을 전제로 경제적 의사결정을 해온 경제주체들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건설업체들은 분양을 못해 난감한 상황에 빠졌고 부동산 개발에 돈을 댄 금융기관들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화 우려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거래까지 급격히 위축되면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가계들은 집을 팔지도 못하고 대출 이자를 계속 부담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빠졌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급격한 상승세가 지속됐고,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올랐던 부동산 가격이 왜 갑자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을까? 이명박 정부가 보금자리주택 정책으로 주택 공급 가격을 낮춘 것이 효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진단이다. 가격 변화는 전체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변화가 생겨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정부가 주택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하니까 주택가격이 내려가는 것이라고 설명하니 말이다. 이는 마치 오염된 호수에 맑은 물 한 동이를 부으면 호수 전체가 맑아진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요와 공급의 변화를 가지고 부동산 시장 침체를 한번 제대로 설명해보자. 우선, 작금의 시장 침체는 공급이 증가해서 생긴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공급이 증가해서 가격이 하락할 때는 거래량이 늘어나기 마련인데, 지금은 가격 하락과 함께 거래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그림>의 ⓐ에서 보다시피, 공급이 증가할 때, 즉 공급곡선이 S1에서 S2로 이동할 경우, 가격은 P1에서 P2로 하락하지만 거래량은 Q1에서 Q2로 증가한다. 현 시장 침체의 원인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것은 ⓑ이다. 이 그래프는 수요가 감소하는 경우를 보여주는데, 이때 가격 하락(P3→P4)과 거래량 감소(Q3→Q4)가 동시에 발생한다.
   
 

문제는 가격 하락과 거래량 감소를 동시에 일으키는 수요 감소가 최근에 실제로 일어났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근 부동산 수요는 실제로 급격히 감소했다. 부동산 수요, 특히 주택 수요는 인간의 근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인데 어떻게 급격히 감소할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실제 주거를 목적으로 하는 부동산 수요, 즉 실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는 실수요 외에 투기적 가수요가 존재한다. 투기적 가수요란 실제 사용이 아니라 자본이득 획득을 목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하려는 수요를 가리킨다. 이는 부동산이 자산으로 활용되면서부터 생겨난다. 
 
투기적 가수요의 팽창과 소멸  
실수요와는 달리, 투기적 가수요는 단기간에 급격히 변화할 수 있다. 그것은 미래 가격에 대한 전망이 좋을 때는 갑자기 팽창하고, 전망이 나빠지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시중의 유동성도 투기적 가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유동성이 풍부하고 대출이 용이할 때는 투기적 가수요가 팽창하지만, 반대로 유동성이 줄어들고 대출이 어려워지면 그것은 급격히 축소된다. 우리 사회에서 미래 부동산 가격 전망은 2007년 이후 서서히 나빠지다가 최근 들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그 이유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판단을 하게 만드는 요인을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승자의 저주란 불확실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 최고가로 입찰한 사람에게 팔릴 때 낙찰받은 사람이 그 물건 때문에 고통을 겪는 현상을 가리킨다. 승자가 고통을 겪는 이유는 승리를 위해 과다한 비용을 치르기 때문이다. 투기가 기승을 부릴 때는 부동산값의 상승에 관해 가장 어리석은 과대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비싼 값을 치르고 많은 부동산을 구입하면서 시장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보통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 부동산 구입의 대열에 합류한다. 여기서 문제는 부동산 구입에 성공한 사람들이 오히려 승자의 저주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원래 부동산을 구입하면 처음 얼마 동안은 부동산을 이용해 얻을 수 있는 수익(임대료)이 구입 가격의 이자(부동산 이용 수익+자본이득 기대치)보다 적다. 현금흐름 측면에서 적자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투기 장세에는 부동산 매입자가 지급하는 가격이 보통 때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현금흐름 측면에서의 적자도 보통 때보다 훨씬 커진다. 그래도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을 지배하는 동안에는 적당한 시기에 부동산을 매각해 보유 기간의 적자를 메우고 거액의 자본이득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민첩한 투기꾼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타이밍을 잘 잡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가격이 더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매각을 늦춘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다. 매각을 늦추며 버티던 사람들이 보유 부동산의 매각에 나서면서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가 둔화된다. 그러면 미래 가격의 전망이 악화되기 시작하고, 보유 부동산을 매각하려는 사람이 늘어난다. 이는 다시 부동산 가격과 미래 가격의 전망에 하방 압력을 가하게 된다. 이런 일이 생기면 그 전까지 하염없이 팽창하던 투기적 가수요는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심지어 실수요자까지도 부동산 구입을 꺼리게 된다. 그 결과 거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
정부가 금리를 인상하거나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이 과정은 더욱더 급격하게 진행된다. 부동산 거품의 형성과 붕괴를 경험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금리 인상이 거품 붕괴의 큰 원인이었다.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극심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경험한 일본의 경우, 거품 붕괴를 촉발한 것은 중앙은행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었다.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 붕괴를 경험한 스웨덴과 핀란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금리를 크게 인상하는 일은 없었지만,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통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일은 있었다. 
 
금리 인상은 거품 붕괴의 원인  
가격 하락과 거래 위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 DTI 규제가 제법 강력하게 시행됐다는 것, 이른바 ‘하우스 푸어’(House Poor)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 등을 종합해보면,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투기적 가수요의 소멸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진행된다고 해서 일본식 거품 붕괴가 진행되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 부동산 가격 대폭락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시장 침체 이전 부동산 거품의 성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1980년대 말 일본의 부동산 거품은 그 규모가 거대했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부동산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지만, 2000년대 우리나라의 부동산 거품은 일본만큼 거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도권의 ‘버블 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또 아파트를 중심으로 국지적·제한적으로 발생했다.
현재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주로 지난 몇 년 동안 가격이 폭등했던 버블 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또 아파트를 중심으로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투기가 국지적으로 진행됐듯이 시장 침체 또한 국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과는 대조적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침체 양상을 보였던 대구와 부산의 부동산 시장은 최근에 오히려 거래량이 늘고 가격이 완만하게 상승하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서, 부동산 시장 침체가 국지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입증해준다.

보유세 강화 등 장기 정책 복원해야
부동산 가격은 폭등해도 문제지만 폭락해도 문제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우리는 2002~2006년에 확실히 경험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폭락 또한 그에 못지않은 문제를 야기한다. 투기 대열에 합류했던 사람들과 투기에 의한 활황에 기대어 마구잡이로 주택을 공급했던 건설업체의 파산이 이어지고, 그들에게 자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부실화돼 금융위기가 발생하며, 이것이 다시 경제 전체의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로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시장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 경착륙이 발생하지 않게 시장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시장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하는 것이다. 최선의 정책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해 제거하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폭락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은 투기적 가수요의 발생과 소멸이므로, 정책의 초점은 투기적 가수요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투기적 가수요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노린 수요다. 따라서 부동산 불로소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갖는 보유세(특히 토지 보유세) 강화 정책이나 개발이익환수 정책 등을 제대로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 보유세는 단기간에 대폭 강화하기가 어렵고 시장 상황에 따라 강화와 완화를 반복하기 어려운 세금이기 때문에, 단기 시장 조절용 정책 수단으로는 부적절하다. 그것은 시장 상황이나 정권의 소재에 상관없이 시행하는 장기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 보유세를 충분히 강화하고 개발이익 환수 정책을 제대로 시행할 경우, 부동산 불로소득과 투기적 가수요의 발생 여지는 대폭 줄어든다. 그래도 부동산 가격은 변동하겠지만 변동폭은 크게 축소될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부가 가격 변동을 조절해야 할 수도 있는데, 이때 대출 규제를 강화하거나 완화하는 정도로 대처하면 된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1년 사이에 참여정부가 어렵사리 구축해놓은 보유세 강화 정책을 무력화했고,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도를 크게 완화했다. 중요한 장기 정책들이 결정적으로 후퇴한 것이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 부동산 투기를 억제할 수 있는 규제 장치들까지 무차별적·급진적으로 완화해버렸다. 그러고는 대출 규제 하나로 가격을 조절하는 단기 정책에 몰두하고 있다. 장기 정책 없이 단기 시장 조절 정책에 몰두하는 모습은 참여정부 이전의 역대 정부들을 닮았다. 참여정부 이전의 역대 정부들은 투기가 기승을 부릴 때는 온갖 규제책을 쏟아내며 투기 억제에 몰두하고, 시장이 침체할 때는 규제를 전면 완화하며 부동산 경기를 적극 부양하는 냉·온탕식 정책 운용을 반복했다. 시장 침체기에 실시한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은 늘 효과를 발휘했다. 시장 침체가 조기에 해소되고 얼마 뒤 투기가 재발했던 것이다.

일시적 대출 규제에만 올인한 MB 정부
이명박 정부가 역대 정부들과 다른 점은 아직까지는 강화된 대출 규제로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건설업체와 부동산 소유자들은 DTI 규제를 완화해 부동산 시장을 적극 부양하라고 아우성이다. 건설업에 매우 친화적인 이명박 정부가 언제까지 강화된 대출 규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DTI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당장 시장 침체가 끝나고 투기가 재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머지않은 장래에 시장 상황이 역전돼 다시 투기 광풍이 불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의 장기 정책을 유지했다면 지금 경착륙을 방지하기 위해 DTI 규제 정도는 완화하더라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장기 정책을 무력화하고 투기 억제를 위한 규제 장치를 모조리 폐지한 상태에서 하나 남은 DTI 규제마저 완화한다면, 그것은 지금은 숨죽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되살아날 투기적 가수요에 강력한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재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DTI 규제 완화 여부에 집중되고 있지만, 사실은 장기 정책의 복원이 더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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