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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멸종 위기에 빠진 ‘바나나’
바나나의 미래, 유전자조작이냐 멸종이냐
[70호] 2016년 02월 01일 (월) 프리츠 하베쿠스 economyinsight@hani.co.kr

불치병 걸린 ‘캐번디시’ 품종…
대안 품종은 현 재배 방식으로 생산 불가능


현재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바나나는 대부분 ‘캐번디시’ 품종이다. 캐번디시가 최근 공격성을 띤 곰팡이균과 전염병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바나나는 인류에 귀중한 식량 자원이다. 오렌지나 레몬 등 병충해 위협에 노출된 과일은 여럿 있지만 바나나의 위기는 그 심각성이 다르다. 바나나의 멸종이 가속화하면 바나나 수확에 전적으로 생계를 의지하는 아프리카 농민들은 물론 싼값에 과일 바구니를 채우는 소비자에게도 위협이 된다. 프리츠 하베쿠스 <차이트> 기자는 2014년 2월 한 콘퍼런스에서 독일 카셀대학의 안드레아스 뷔르케르트 교수로부터 멸종 위기에 처한 바나나의 대안 품종을 오만에서 발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뷔르케르트 교수의 오만 연구 여행에 동행했다.

프리츠 하베쿠스 Fritz Habekuß <차이트> 기자
 
   
▲ 브라질 동쪽 항구 도시인 헤시피의 한 시장에 흠집 많은 바나나 더미가 쌓여 있다. 유일하게 상업용 생산이 가능한 바나나 품종인 캐번디시가 전염병에 걸려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 REUTERS

수확한 바나나는 노랗게 후숙만 하면 된다고 레스하트 도무제티는 말한다. 바나나를 노랗게 만드는 일이 직업이니까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30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그에게 화물선에서 2~3주 동안 운송 기간을 거친 바나나가 전달된다. 세계 최대 과일 제조 업체인 돌(Dole)과 일하는 도무제티는 인적이 드문 산업지구에 창고를 갖고 있다. 열대과일 바나나는 판매되기 전 일단 그의 창고에서 후숙 과정을 거친다. “바나나는 어린아이처럼 신경 써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바나나를 깊은 잠에서 깨우는 것이다.” 도무제티는 이렇게 말하며 주차장 문 크기의 후숙실 입구를 가리킨다.

내부가 서늘한 후숙실에서는 축축한 마분지 냄새가 난다. 후숙실에는 총 1152개의 바나나 상자가 있다. 화물차 한 대를 가득 채울 분량이다. 각 상자의 중량은 최소 18.41kg이다. 이 바나나들은 나흘 전부터 후숙실에서 익고 있다. 이틀 뒤 화물차가 후숙실의 바나나를 슈퍼마켓으로 운송하게 된다. 슈퍼마켓에서 바나나는 1kg당 1.49유로(약 2천원)에 팔린다. 어처구니없이 저렴한 가격이다.

저가의 바나나 시대는 머지않아 끝날지도 모른다. 독일인 1인당 매년 10kg 이상 먹는 바나나가 전염병에 걸려 시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현재 바나나는 어느 과일보다 더 자주 살충제를 뿌려줘야 한다. TR(Tropical Race)라는 명칭으로도 잘 알려진 ‘파나마병’ 탓이다. 파나마병은 박멸할 방법이나 살충제가 전무하다. 파나마병에 걸리면 관목의 뿌리와 줄기가 서서히 썩어 들어간다. 파나마병은 바나나의 에이즈와 같다.

파나마병은 여러 유형이 있다. 현재 가장 위험한 ‘TR4’는 1990년 대만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TR4는 대만에서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로 점차 확산됐고 이후 요르단에 상륙해 몇 달 전에는 아프리카 동부 해안 국가인 모잠비크까지 전파됐다. 아랍의 사막 국가인 오만에서도 TR4가 확인됐다.

그런데 바로 오만에서 바나나 전염병을 막을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10년 전 독일인 교수 안드레아스 뷔르케르트는 오만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 고대 무역로를 따라가는 방법으로 오만에서 수백 년 전에 사라진 바나나 품종을 찾아낸 것이다. 뷔르케르트 교수의 처음 발상은 한마디로 미친 생각이었지만 그가 사막의 한 계곡에서 발견한 옛 바나나 품종은 멸종 위기에 처한 바나나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바나나 전염병 경로

1천 개 품종 중 ‘캐번디시’만 생산·판매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우선 현재 바나나 1kg의 가격인 1.49유로(약 1900원)라는 지점으로 화제를 전환하자. 이 가격은 바나나가 상당히 인공적 조건에서 만들어지는 대량생산품이기에 가능하다. 이는 동시에 바나나가 처한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다. 현재 바나나의 대량생산에서 남는 이익은 거의 없다. 판매가의 3분의 2는 비료와 살충제 비용으로 사용되며, 운송비와 후숙에 들어가는 관리비도 추가로 든다. 오로지 바나나를 대량생산하는 거대 농장만이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세척, 운송, 후숙에서 판매까지 각 생산 단계는 최대치로 표준화되고 기계화됐다. 또 바나나 품종은 최대한 단일해야 한다. 결국 슈퍼마켓을 찾는 소비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전체 수출 바나나의 99%는 캐번디시(Cavendish) 품종이다.

소비자들이 ‘바나나’로 알고 있는 모양과 색깔(노란색), 냄새, 맛은 모두 캐번디시 품종이다. 캐번디시는 1천 개가 넘는 바나나 품종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전체 바나나 품종 중 300개 품종을 먹을 수 있다. 이 가운데에는 자두잼처럼 부드러운 바나나, 초록색 바나나, 보라색 바나나도 있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바나나도 있다. 크렘브륄레(커스터드 푸딩 위에 딱딱한 캐러멜을 톡톡 깨서 먹는 프랑스식 디저트 -편집자) 맛이 나는 것도 있다. 독일 유기농 상점에는 코스타리카산의 조그맣고 뭉툭한 유기농 바나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슈퍼마켓에는 캐번디시 바나나만 매대에 놓여 있다.

대량 판매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과일은 여러 요소를 갖춰야 한다. 생산적이면서도 질병에 취약하면 안 되고, 다양한 온도와 강우량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몇 주가 걸리는 운송 기간에도 끄떡없고 맛이 있어야 한다. 바나나 품종 중 이 모든 조건을 갖춘 것은 단 하나다. 바로 캐번디시다.

이런 까닭에 캐번디시 품종은 전세계로 전파됐다.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대규모 농장들은 캐번디시만 재배했다. 재배 단일화는 캐번디시를 인기 있고 막강한 품종으로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스스로의 미래를 위험에 빠트리게 했다. 단식 재배는 병충해와 질병을 유발하는 지름길이다. 이미 수많은 바나나 재배 농가를 재정적으로 무너뜨린 ‘블랙 시가토카’(Black Sigatoka) 곰팡이균이 대표적이다. 블랙 시가토카는 바나나 잎을 서서히 말라 죽이고 바나나 열매를 이른 시기에 익게 한다. 이 곰팡이균은 인간과 환경에 유해한 고가의 살진균제(곰팡이의 생육을 억제해 사멸시키는 화학물질 -편집자)만이 박멸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데 블랙 시가토카 곰팡이균에 저항성이 생겨나면서 살진균제도 점점 효력이 떨어지고 있다. 바나나 뿌리를 갉아먹는 선충류(일종의 기생충 -편집자)나 바나나를 뚫고 들어가는 바구미, TR는 또 다른 문제다.
 
   
▲ 멸종 위기에 처한 캐번디시 품종을 대체할 새 바나나 품종이 오만에서 발견됐다. 싹을 통해 번식하는 이 품종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바나나의 미래가 달려 있다. 쿠바 아바나의 바나나농장에서 어린 바나나 관목들이 자라고 있다. REUTERS

바나나 멸종은 인류에 ‘대참사’


결론적으로 온갖 전염병의 위협은 대형 바나나농장과 캐번디시 품종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바나나 품종의 멸종을 의미할 수 있다. 전분 성분이 있고 단맛이 덜한 요리용 바나나 등 세계 바나나 생산량의 4분의 3 정도는 수출되기 전 이미 생산지에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나나 멸종은 누구에게나 반갑지 않은 현상이다. 전적으로 바나나를 통해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우간다 등 아프리카에서는 소규모 경작지가 점점 사라지고 대규모 농장이 들어서고 있다. 통상 바나나의 병충해를 막는 최상의 보호책은 다양한 품종 재배다. 다양성이 사라진 경작지에서 바나나 전염병이 도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바나나의 미래는 글로벌 식생활의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다행히 전체 바나나 품종이 캐번디시처럼 병충해와 기생충에 무기력하게 노출돼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뷔르케르트 교수가 오만으로 향했던 그날을 기점으로 세계는 캐번디시보다 저항력이 더 센 품종 중 하나를 알게 됐다. 독일 카셀대학에서 열대·아열대 지역의 생태학적 식물 재배 및 농업생태 시스템을 연구하는 뷔르케르트 교수는 오리엔탈 고대 무역로에 원래부터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고대 무역로에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옛 바나나 품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는 오만이 다양한 바나나 품종을 보유한 인도와 오랫동안 무역 교류를 해온 전통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이후 그는 고대부터 내려온 잊혀진 바나나 품종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바나나가 농경지가 아닌 1년 내내 습한 곳에서만 자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곳은 오만에서 단 한 곳밖에 없다. 바로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서 자동차로 1시간 떨어진 와디티위의 끝자락에 위치한 ‘움크비르 오아시스’다. 뷔르케르트 교수는 험준한 계곡을 통해 오아시스에 도달하는 여정에 나섰으나 두 번 연속으로 실패했다. 세 번째 시도 때는 상공에서 접근하기로 했다. 그는 2003년 오래되고 덜컹거리는 헬리콥터를 타고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그가 학수고대하며 어렵게 찾아헤맸던, 이젠 멸종됐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바나나 품종을 찾아내는 데 결국 성공했다.

당시 발견한 바나나 품종을 취재진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해 뷔르케르트 교수는 12년 만인 2015년 외딴 오아시스로 <차이트> 취재진과 다시 항해에 나섰다. 그가 오아시스를 처음 방문한 이후 오만은 크게 달라졌다. 오만은 원유로 벌어들인 돈으로 현대적인 국가로 변모했다. 전제군주국 오만을 45년간 통치하고 있는 술탄 빈 사이드 카보스 국왕은 대규모 인프라 프로그램을 실행해 조그만 오아시스까지 모두 도로망으로 연결했다. 이제 오아시스에서 몇km 떨어진 작은 동네인 할루트까지 타르로 포장된 매끈한 도로가 깔렸다. 뷔르케르트 교수는 더 이상 헬리콥터를 타고 오아시스로 갈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스포츠실용차(SUV)로도 오아시스에 갈 수 있다.

뷔르케르트 교수가 할루트의 먼지투성이 광장에 도착하자 주민들은 정오의 뜨거운 열기가 가져다주는 무기력에서 슬슬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늘에 앉아 있던 경작농 차미스 라시드 알무카이미는 머리에 터번을 감으며 차를 향해 뛰어왔다. 그는 뷔르케르트 교수를 향해 자랑스레 미소를 지었다. 알무카이미는 뷔르케르트 교수와 한참 인사를 나누고서야 조수석에 올라탔다. 우리는 오아시스까지 몇km를 더 달렸다. 이 구간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 수리남의 바나나공장 노동자들이 수출용 바나나를 세척하고 있다. 주위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바나나는 수확 뒤 일정 기간 노란색으로 후숙하는 과정을 거쳐야 소비자가 먹을 수 있다. REUTERS
 
‘새 품종 발굴’ 오만으로의 여정

오아시스는 수백m 높이의 암벽 뒤에 가려져 있다. 암석사막의 한가운데에 있는 조그만 강은 수천 년째 유유히 흐르고 있다. 정교한 수로망을 통해 관개되는 계단식 밭에는 야자수와 레몬나무가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앞서가던 알무카이미는 맨발로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갔다. 고대 무역로는 경사길을 따라 산으로 이어진다. 도로망과 연결되기 전 고대 무역로는 바닷가 주거지로 연결된다. 알무카이미는 이어 계단식 밭을 지나갔다. 이윽고 녹지대가 사라지면서 암석사막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 개울은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수m 깊이의 강바닥으로 떨어질 만큼 위험하다. 알무카이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맨발로 앞장서서 개울을 건너갔다. 우리의 시야에 다시 들어온 그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는 폭포 앞에 서 있다. 쉴 새 없이 물이 떨어지는 폭포 앞에 흐릿한 물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다. 이곳에는 습한 국지기후가 형성돼 있다. 정글 반경은 30m도 채 되지 않는다.

여기가 바로 오만의 새 바나나 품종이 발견된 곳이다. 13년 전 뷔르케르트 교수와 알무카이미는 이 길을 지나왔다. 당시 알무카이미는 정글로 기어 올라가서 바나나를 찾아다녔다. 그는 정글 한가운데에서 어린 바나나 가지를 하나 발견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어린 가지를 떼어내 정글을 내려갔다. 드디어 뷔르케르트 교수는 목적을 달성했다. 오만 정부의 동의 아래 그는 어린 가지를 실험하기 위해 독일로 갖고 갔다.

현재 학계에서는 오만에서 발견된 어린 가지를 식물명으로 ‘무사 아쿠미나타 움크비르’(Musa acuminata Umq-Bi’r), 줄여서 ‘움크비르 바나나’로 부른다. 당시 샘플로 채취한 어린 가지에서는 현재 바나나가 20개 이상 자라났다. 그중 몇개는 독일 남부 도시인 예나의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 온실에서 자라고 있다. 이곳에는 생물생태학자 디르크 횔셔가 일한다. 그는 일명 ‘PP’라고 불리는 페닐페나레논(Phenylphenalenone) 등 알려지지 않은 화학성분에 관심을 갖고 있다. PP는 자연 살충제다. 모든 바나나 품종은 PP를 생성하지만 오만에서 발견된 바나나 품종처럼 PP를 많이 생성하는 품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횔셔는 바나나 바구미나 선충류 등의 해충에 정기적으로 이 바나나를 먹이고 있는데, 매번 몇 주 만에 해충이 죽어버리는 결과를 확인했다. 오만에서 발견된 이 바나나 품종은 어떤 해충도 막아내는 것으로 보인다.

오만 바나나는 현재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 특성을 캐번디시에 이식하는 데 성공한다면 바나나의 저항력을 키울 수 있고 살충제를 덜 뿌려도 된다. 환경과 바나나농장 노동자 모두를 보호할 수도 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 이 바나나는 기존 재배 방식으로는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바나나는 생식력이 없어서 씨앗이나 열매가 아닌 싹을 통해 번식한다. 성장을 끝낸 바나나나무의 뿌리에서 어린 가지가 자라나고, 어린 가지에서 새로운 바나나 관목이 자라나는 것이다. 에콰도르든 인도네시아든 상관없이 모든 캐번디시는 원래 단 하나의 원조 관목에서 나왔다. 횔셔는 “현재 바나나의 멸종 위기를 벗어나려면 기존 재배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어떤 병충해도 이겨낼 듯한 바나나 품종  

하지만 해결책이 하나 있다고 한다. 기존 재배 방식이 실패하면 유전자 기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2012년 바나나 유전자가 알려졌고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오만 바나나 품종에 있는 자연 살충 성분인 PP 유전자를 새로운 방식으로 캐번디시에 이식할 수 있다면, 캐번디시는 약점 하나를 덜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소비자가 ‘유전자 바나나’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유전자가 조작된 식물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선택 가능한 사항이 아니다.” 돌(Dole) 유럽본부의 자비에르 루셀 마케팅 이사는 말한다.

루셀 이사는 바나나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병충해나 바나나의 멸종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살충제를 더 합목적적으로 투입하고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는 TR의 확산에 대한 두려움을 내비치려 하지 않았다. “TR로 인한 바나나의 멸종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다.”

루셀 이사의 말이 옳을 수도 있지만 제대로 살균되지 않은 고무장화만 신고 돌아다녀도 바나나 재배를 망칠 수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보호’가 과연 얼마나 현실적일까? 지금까지 그래왔듯 병충해가 퍼지는데도 농부들이 대량생산과 단일화에만 의지하고 바나나 생산 업체들이 앞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바나나의 멸종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정황은 많다.

이미 60년 전 바나나 품종은 멸종된 적이 있다. 바로 캐번디시의 선조 격인 ‘그로스미셸’(Gros Michel)이다. 캐번디시와 비교해 그로스미셸은 튼튼하면서도 컨테이너에 다발로 그냥 쌓을 수도 있었다. 크림처럼 입에서 녹았고 감칠맛도 더 있었으며 더 달았다. 그런데 TR4 전염병과 가까운 TR1 전염병이 발생했다. 10년 사이에 TR1 전염병은 세계로 퍼져나갔고, 전체 바나나농장의 99%는 쑥대밭이 됐다. 하지만 바나나 업계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방치했다. 바나나 업계는 붕괴 직전에야 캐번디시가 TR1 전염병에 저항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만 캐번디시는 관리에 민감한 품종이어서 바나나 업계는 운송 단계를 새로 구축해야 했다. 무엇보다 캐번디시는 그로스미셸보다 맛이 훨씬 떨어졌다. 바나나 업계 관계자들은 캐번디시가 슈퍼마켓에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처럼 상황은 다르게 전개됐다. 캐번디시는 미셸그로스 품종과 비교해 상당히 많은 단점이 있음에도 충분히 유사점이 많았다. 특히 캐번디시는 당시로서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런데 이제 유일한 대안인 캐번디시의 수명이 다했다. 소비자는 머지않아 유전자가 조작된 바나나를 먹든지, 바나나를 아예 먹지 않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수 있다.

ⓒ Die Zeit 2015년 48호
Banane in Not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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