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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북한 스포츠 외교의 전설 ‘미스터 장’
북한의 유일한 국제사회 자유인 장웅 IOC 위원
[69호] 2016년 01월 01일 (금) 알렉산더 오장 economyinsight@hani.co.kr

쿠웨이트 국왕부터 IOC 위원장까지 친구로 둔 마당발…
아들은 IOC 사무국에서 근무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거물급 IOC 위원 등 세계 유명 인사들을 거리낌 없이 만나고 다닌다. 장웅의 왕성한 활동을 따라 엿본 IOC의 세계는 마치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마피아 조직처럼 작동한다. 장웅은 2015년 8월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에서 물러났다. 1996년 IOC 위원으로 선출된 그는 정년이 80살이라 2018년에는 위원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최근 그의 건강이 좋지 않다. 북한은 국제 스포츠계에서 장웅을 대신할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
 
알렉산더 오장 Alexander Osang <슈피겔> 기자

북한의 유일한 국제 외교관이 사는 곳은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외곽에 위치한 낡은 도시형 주택단지에 있다. 이곳을 방문하려면 독일 다뉴브강을 건너 게임센터, 간이식당, 슈퍼마켓이 늘어선 길고 시끄러운 거리를 지나 빈의 거의 끝자락에 위치한 슈탐메르스도르프 지역까지 가야 한다. 그 누구도 어떤 조직의 세계 본부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장소이지만, 정원 울타리에는 분명히 국제태권도연맹(ITF) 문패가 걸려 있다.

   
▲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77살의 나이에도 국제사회의 거물급 인물들을 두루 만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농구선수 출신인 그는 1996년 IOC 위원으로 선출된 뒤 북한을 대표하는 스포츠 인사로 활약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앞에는 오래된 벤츠 승용차가 세워져 있다. 현관문 옆에는 긴 전화번호가 적힌 리스트와 초인종, 그리고 북한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자 ITF 총재인 장웅이 거주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주변은 아주 조용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집 안 어딘가에서 벨이 울렸다.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 과거 빈에 북한의 해외 비밀정보기관 본부가 있던 시절의 기괴한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잠시 뒤 밝은 청색 목욕 가운을 입은 키 작은 남자가 나타났다. 미스터 장이 집에 있냐고 묻자, 그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집 안으로 사라졌다.

역사상 단 한명밖에 없는 북한 IOC 위원이 일하는 건물의 현관 크기는 약 5m²로 보였다. 25분 뒤 장웅이 나타났다. 카키색 캐주얼 차림에, 약간 구부리고 걷는 키 큰 남자였다. 그는 책상 5개가 놓인 어두운 방으로 안내했다. 고무나무 화분이 있는 방 두개를 지난 뒤 드디어 한가운데 넓은 책상이 있는 방에 도착했다. 벽에는 북한의 산을 찍어 사진으로 제작한 달력이 걸려 있다. 현관에서 이 방에 이르는 짧은 거리는 마치 북한으로 통하는 ‘마법의 문’과 같았다. 장웅도 사람이 바뀐 듯 보였다. 넓은 책상 뒤에 앉은 그는 공산당 간부처럼 보였다.
 
공산당 간부는 다른 사람에게 질문만 할 뿐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 세계에서 가장 이미지가 나쁜 공화국을 대표해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그는 반문했다. “고립됐다고요?”
 
장웅은 달력을 넘기며 10일 뒤 IOC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가야 하고, 그 뒤 중국의 축구학교 방문 일정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가 총재로 있는 ITF 주최 세계선수권대회가 불가리아 플로브디브에서 열리며, 스위스 로잔의 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친구인 쿠웨이트 국왕 셰이크 사바 알아흐마드 알사바가 주최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간다고 했다. 장웅은 셰이크 사바의 아버지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좋은 친구였는데 아쉽게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북한 태권도의 창시자 ‘최홍희’와의 인연 
 
이윽고 장웅의 표정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그는 자신도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운동과 일을 너무 많이 했다고 한다. 이젠 지쳤다. 그는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 “아랍 사람들은 주말을 모르니까요.” 오스트리아 내 북한 영토인 이곳에서는 왠지 낯설게 들리는 말이다.
 
어쩌면 이런 발언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장웅은 서구권에서 공식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북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비밀에 감싸인 왕국 북한과 온갖 묘기가 난무하는 ‘IOC 서커스 세계’의 이해관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그 일은 아주 잘 돌아가고 있다. 두 세계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처음 서로 알게 됐을 때 장웅은 어두운색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2년 전 미국 뉴욕에 있는 ‘독일인의 집’(Deutschen Haus)에서는 당시 IOC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던 토마스 바흐를 위해 리셉션이 열렸다. 당시 아들 장종혁을 데리고 왔던 장웅은 김정일과 김정은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아들도 자신의 일을 이어받을 것처럼 소개했다. 다른 IOC 내빈들, 요르단 왕자, 장대높이뛰기 선수 세르게이 붑카, 전 미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는 이미 장웅의 아들을 아는 것으로 보였다. 뉴욕 이스트강의 물결이 저녁 햇살에 반짝였다. 고향으로부터 이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웅은 전혀 낯설어하지 않았다.
 
장웅은 당연하다는 듯 오스트리아 빈의 주소가 적힌 명함을 건네주면서 한번 방문하라고 말했다. 그는 폐쇄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관계를 확대하려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빈이었을까? 장웅은 10분에 걸쳐 최홍희라는 남자와 얽힌 자신의 인생사를 이야기했다.
 
최홍희는 북한에서 전설적 인물이다. 20세기 김일성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그는 대한제국군 친위대 출신의 인물한테 배운 전통무예와 일본 주오대학 재학 중 배운 가라테를 조합해 태권도를 만든 이라고 한다. 최홍희는 일본 군대와 한국 군대에 복무하며 여러 전쟁에 참여했다. 1972년 한국의 독재자 박정희의 탄압을 피해 캐나다로 망명한 그는 나이가 들자 고향에서 죽기 위해 평양으로 돌아왔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장웅을 침대 옆에 불러놓고 유언으로 자신이 설립한 ITF 총재가 돼달라고 청했다. ITF 본부는 중립국인 오스트리아에 있었다. 장웅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2002년의 일이다. 이후 장웅은 빈의 외곽에 위치한 이곳에서 살고 있다.
 
그때까지 장웅은 상당히 단편적인 공산당 간부 경력을 쌓고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평양 농구단과 북한 농구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고, 은퇴 뒤 트레이너와 체육위원이 됐다. 장웅은 조선체육지도위원회 부서기장과 조선올림픽위원회 서기장을 역임했고 1996년 IOC 위원으로 선출됐다. 최홍희 장군의 한마디는 처음으로 평범한 장웅의 이력에 북한식 성공 스토리에서 매우 중요한 ‘동화적’이고 ‘초인적’ 요소를 부여한 것이다.
 
그는 북한의 전설 속 인물 중 하나가 됐다. 백두 혈통이 흐르는 지도자들에게 매우 가까이 다가선 것이다. 2014년 초 장웅은 스포츠팬이자 동시에 엘리트 선수 육성에 관심이 많은 북한의 최고권력자 김정은을 만났다. 그 만남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장웅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 IOC 위원인 모나코의 앨버트 2세 왕자(왼쪽)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2014년 12월 모나코에서 열린 제127차 IOC 임시총회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들은 장웅 위원의 절친한 친구다. REUTERS
 
그는 다른 권력자인 토마스 바흐(독일 출신으로 현 IOC 위원장 -편집자)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바흐를 ‘올림픽의 현명한 지도자’라고 불렀다. 얼마 전 장웅이 77살 생일을 맞았을 때 캐나다 토론토에 있던 바흐가 축하 전화를 했다. 바흐는 생일을 잊는 법이 없다고 했다. 또 병원에 입원한 IOC 위원의 병문안을 빠트리지 않았고, 장웅에게 심장병 전문의도 소개해줬다. 현재 장웅은 빈의 한 사설 병원 심장병 전문의에게 주기적으로 진료받고 있다. 내일 다시 진찰받으러 병원에 가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병원비는 IOC가 부담한다.
 
“IOC 위원 중에는 나이가 많고 허약한 사람이 많다.” 장웅의 이 말은 IOC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정확하게 적용된다.
 
사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독일어를 가르치려 빈으로 데리고 온 장웅의 손자가 문 밖에 서 있었다. 10살 손자가 심심하다고 투정하자 장웅은 아내를 불렀다. 손자는 지금 오스트리아 중학교에 다니는데 이젠 독일어를 꽤 잘한다고 했다. 장웅은 얼마 전 손자가 영국 옥스퍼드식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 신청하도록 했다. 이 집은 장웅 집안의 간부 양성소가 된 것처럼 보인다.
 
아들 장종혁도 한때 이 집에서 살았다. 빈대학에서 공부한 장종혁은 지금 로잔의 IOC 사무국에서 일한다. 역시 이 집에서 몇년간 살았던 다른 손자는 현재 북한 축구 국가대표 선수로, 얼마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올림픽체육회(DOSB)에서 3개월 인턴 근무를 시작했다.
 
오직 아내만 타향살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고 장웅은 말했다. 외국어를 거의 못하는 장웅의 아내는 평양에 사는 세 딸을 몹시 그리워한다. 장웅이 IOC 업무로 세계를 돌아다니는 일이 잦기 때문에 아내는 이 집에서 혼자 있을 때가 많다. 만약 장웅이 아내에게 미안해한다면 그는 이를 완벽하게 감추고 있는 듯 보인다. 한국인의 정신에 오늘날까지 깊이 뿌리박힌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여성의 위치는 남성보다 아래에 있다. 이 경직된 상하관계는 특히 아버지와 아들, 형제간에 적용된다.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다르지 않다. “가족은 중요하다”고 장웅은 말하지만 그가 말하는 가족이 어떤 가족인지 알 수 없다.
 
장웅은 2014년 중순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128차 IOC 총회 개막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앞에서 넷째 줄 왼쪽 끝에 앉아 있었다. 첫줄 중앙에는 토마스 바흐 부부와 말레이시아의 IOC 위원 툰크 임란 왕자가 앉았다.
 
‘북한 IOC 위원’ 장웅의 일상과 후계 구도

무대 위에서는 임란 왕자가 이번 총회를 위해 특별히 작곡을 의뢰한 찬가를 국립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있었다. 행사는 다채롭고 화려했다. 바흐 위원장은 연설에서 과거 옛 소련의 정치가 스탈린이 5개년 계획을 고안했던 것처럼 자신이 제시한 ‘어젠다 2020’을 자주 언급했다. 장웅은 조용히 모든 것을 지켜봤다. 이어 열린 칵테일 리셉션에서는 기분이 좋아진 임란 왕자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불렀다.

늦은 저녁, 장웅은 IOC 위원들이 머물고 있는 만다린오리엔탈호텔의 바에 들어섰다. 그는 이제 정치가처럼 보였다.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왕자가 장웅에게 다가와 악수한 뒤 미소를 지으며 안부를 물었다. 이후 장웅은 고개를 저으며 의자에 앉았다. 빈의 의사들이 심장병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조만간 예정된 북한 방문은 비행 시간이 너무 길다면서 만류했다고 한다.

물론 말레이시아로 오는 일도 힘들긴 했지만 IOC가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제공했고 무더운 밖으로 나갈 일이 없으니 괜찮다고 한다. IOC의 세계는 냉난방 시설이 잘돼 있고 인공 조명으로 가득 차 있다. 바깥 세상이 케냐 나이로비인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인지, 낮인지 밤인지 알지 못한다.

IOC에서 건강은 중요한 주제다. 쿠알라룸푸르 총회가 시작됐을 때 투표권을 가진 위원은 103명이었다. 아니, 약 103명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다. 얼마 전 오스트리아의 IOC 명예위원인 레오 발너가 사망했다. 그 전에는 쿠바의 로페스도 세상을 떠났다. “겨우 66살밖에 되지 않은 아직 젊고 튼튼한 남자였다”고 장웅은 말했다. 남한의 IOC 위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년 전 심장 발작으로 쓰러진 뒤 계속 혼수상태다. “그는 억만장자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쓰러지고 끝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현재 의식이 있는 유일한 한국인 IOC 위원이다.

프랑스의 전 육상 허들 선수 출신인 IOC 위원 기 드뤼가 테이블로 다가와 장웅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자넬 볼 수 있어 좋군. 내 친구, 건강 조심해.” 장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쿠알라룸푸르 총회는 2022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후보지로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중국 베이징만 남았다. 독일 뮌헨을 포함한 다른 도시들은 모두 유치를 포기했다. 알마티의 올림픽 유치 사절단은 올림픽 유치를 위해 혼신을 다했다. 그에 비해 눈이 거의 오지 않는 베이징은 ‘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만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쪽이든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장웅은 미소를 지었다. 이 때문에 그는 여기에 있어야만 했다. 장웅은 IOC에서 특별한 프로필이 없다. 북한 대표라는 약간 이색적인 느낌을 제외하면 거의 영향력이 없다시피 하다. 그는 멀쩡한 은퇴자를 위한 고용 프로그램처럼 들리는 이름을 가진 4개의 위원회에 속해 있다. 하지만 수십억달러가 걸린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투표권을 갖고 있다. 그는 계속 버텨야 한다. 그의 자리를 이을 만한 북한 출신 후계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IOC의 관심을 받으려면 공식 석상에 자꾸 나와야 한다”고 장웅은 말했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북한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 국제 무대의 공식 석상에 나오는 북한 사람은 사실상 그와 김정은, 단 두명뿐이다.

아버지와 다른 위원들이 투표하는 동안 아들 장종혁은 텅 빈 만다린오리엔탈호텔 레스토랑에서 물 한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자신이 절대 아버지의 후계자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장종혁은 38살이지만 더 젊어 보였다. 어쩌면 그가 아버지와 오랫동안 세계를 돌아다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부자는 같은 호텔방에 머문다. 장종혁은 축구선수였다. 그는 평양축구단과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였다.
 
선수생활을 끝낸 뒤 장종혁은 평양에서 체육학을, 빈에서는 행정학을 전공했다. 2년 전부터 IOC 사무국에서 일하는 그는 아내, 자녀 두명과 함께 스위스 로잔에서 살고 있다. 그는 이보다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북한 출신 IOC 위원이 선출될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다. 그의 아버지는 소련이 건재했을 때 유명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북한은 상당히 고립된 상태다.
 
“물론 우리는 ‘North Korea’(북한)라고 하지 않고,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라고 한다”고 말하며 장종혁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정치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그는 자신이 지금 쿠알라룸푸르의 호텔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것은 운동선수로서의 활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그의 아버지가 처한 상황도 그를 여기로 이끌었다. 장종혁은 “아버지는 올림픽 가족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매일 힘들게 일한다. 그러나 힘든 일정을 수행할 건강 상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종혁은 북한으로 돌아가기 충분할 정도로 배울 때까지 로잔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녀들이 선생님과 부모님, 조국에 대해 매일 경의를 표하도록 교육하라고 아내에게 얘기한다. 그는 아주 작은 나라인 그의 조국을 세상이 왜 가만 놔두지 않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심장 이상’ 건강에 적신호

2시간30분이 지난 뒤 장웅이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근소한 차이였다고 한다. “4표”라고 장웅은 중얼거렸다. 베이징이 단 4표 차이로 알마티를 물리치고 2022년 겨울올림픽을 유치했다. 노구의 장웅은 몸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아들이 그를 부축해 호텔방으로 올라갔다. 심장에 문제가 생긴 뒤 밤에 잘 못 잔다고 장종혁은 말했다. 그는 밤새도록 아버지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의 중국 올림픽 유치 사절단 중 한명과 마주쳤다. 그녀는 중국에 투표해줘서 감사하다고 장웅에게 말했다. 장웅은 깊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이 여성을 바라봤다. 이번은 비밀투표였다. 하지만 장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아들이 응급차를 불렀다. 아버지가 열이 계속 오르고 있다고 했다. 장웅을 병원으로 부랴부랴 옮겼다. 아들은 아버지의 병원 침대 옆에서 밤을 지새웠다. 말레이시아 의사들은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최소 나흘은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24시간 뒤 장웅은 다시 양복을 입었다. 바흐 IOC 위원장과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그는 이 약속을 절대 취소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불편한 걸음걸이로 호텔에서 나오자 호텔 앞에는 쿠웨이트의 셰이크 사바 국왕이 경호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장웅은 아주 부드럽게 셰이크의 옷깃에 손을 댔다. 그들은 손을 맞잡고 영국의 앤 공주와 모나코의 앨버트 2세 왕자가 서 있는 근처 소파로 갔다. “미스터 장은 좋은 친구”라고 사바 국왕이 나중에 말했다. 북한의 상황이 어렵지만 여기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IOC에서 장웅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날 오후 남수단이 IOC 회원국으로 최종 승인을 받았다. 남수단 사절단은 눈물을 흘렸다. “올림픽 운동은 분열된 세계를 하나로 모은다. 모든 나라는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바흐는 개회사에서 말했다. 어쩌면 IOC는 북한이 세계의 구성원이라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인지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장웅은 IOC에서 북한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서 IOC를 대표한다. 이는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충분한 여유 공간을 만들어준다.

   
▲ 2015년 7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중국 베이징이 2022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발표되자 류옌둥 중국 부총리(가운데)와 왕안순 베이징 시장(왼쪽), 류펑 중국 국가체육총국 국장이 손을 한데 모아 기뻐하고 있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장웅 위원은 베이징에 한표 행사했음을 시사했다. REUTERS

축구 세계의 정치, 아프리카 부족의 패밀리 정치, ‘코사 노스트라’(마피아 범죄조직의 계파 -편집자)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IOC의 정치도 인맥을 통해 이뤄진다. IOC는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회원국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맞춰 조정한다. 이러한 이해 균형은 합법적이지만 가족주의 원리로 움직이지 않는 민주사회에서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티타임에 쿠알라룸푸르의 회의장 복도에 서 있던 한 독일 사절단은 “저 북한 사람이 아들과 함께 흔들거리며 다가오면 얼른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 사람은 항상 고향의 누군가를 보살펴달라고 청한다. 한 팀 전체일 수도, 선수 개인일 수도 있다. 지금 함부르크처럼 자국의 도시가 올림픽 유치 경쟁에 나선 경우에는 그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장웅은 재미있는 대화 상대는 아니지만 충성스럽다. IOC 위원장 선거에서 그는 토마스 바흐에게 표를 준 것이 틀림없다.”

201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젊은 북한 축구 국가대표 선수 두명이 도착했다. 그중 한명은 장웅의 손자다. 이름은 윤강수(21)로 이번 독일 교육 프로그램 참여가 벌써 네번째다. 매번 그의 할아버지를 아는 독일 IOC 위원장이 도움을 준다. 윤강수 본인은 베른트 피셔와 클라우스 슐라프너만 안다. 독일 올림픽체육회로부터 북한 선수를 돌보는 임무를 받은 사람들이 지금은 윤강수의 독일인 할아버지 같은 역할을 한다.

은퇴 뒤 북한으로 돌아갈 장웅의 삶

피셔는 과거 보르마티아 보름스 축구팀에서 트레이너로 일했고, 따뜻한 기후를 가진 작은 나라 5~6곳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슐라프너는 만하임 등 축구팀에서 트레이너로 일했고 중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을 했다. 그는 여전히 긴 코밑 수염을 기르고 있고, 사람들은 아직도 만하임 시절처럼 그를 ‘슐라피’라고 부른다. 슐라프너는 베이징올림픽에서 장웅을 알게 됐다. 그는 장웅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느꼈다고 말했다.

장웅은 조선 마지막 황제의 친위대부터 고모부를 처형한 독재자(김정은을 가리킴 -편집자)를 거쳐 독일 축구계에 체크무늬 모자(클라우스 슐라프너를 가리킴 -편집자)를 등장시킨 남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미스터 장’은 다재다능하다.

장웅은 불가리아에서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주최했다. 이는 동구권 대회다. 서구권 태권도협회들은 한국이 주도하는 세계태권도연맹(WTF)에 속해 있다. 장웅은 수년간 남북한 태권도 단체의 통합을 시도해왔으며, 최근 두 단체의 통합의향서를 발표했다. 2000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올림픽 때는 남북 선수단이 하나의 깃발을 들고 동시에 입장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출전하게 한 적도 있다.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폐막하고 3일 뒤 장웅은 남한의 WTF 회장과 로잔의 팔리스호텔 로비에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웃었다. 남북관계는 여전히 복잡하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이 중국을 꺾었다고 장웅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IOC 평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로잔에 왔다. 이 위원회 소속 다른 위원은 요르단 왕자, 토마스 바흐, 모나코 앨버트 2세 왕자, 프랑스의 기 드뤼다.

   
▲ 장웅 위원은 80살이 되는 2018년 IOC 위원에서 물러난다. 장 위원이 2010년 11월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체조 단체전 시상식에서 메달을 수여하기 전 장내 소개를 받으며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웅은 건강해 보였지만 심장이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그는 불가리아에서 ITF 총재에 재출마하지 않았다. 이제 더 젊은 북한인 ITF 총재가 취임했다. 새 총재의 비자 문제가 해결되면 장웅은 빈의 거처를 떠나 평양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내는 벌써부터 즐거워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그도 즐거울까? ‘물론’이라고 대답했지만 장웅의 얼굴은 차갑게 식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장웅은 처음에는 은퇴한 사람처럼 바람막이 옷을 입고 나타났다. 그 뒤 양복을 입고 왔다. 그는 20년 이상 로잔에 올 때마다 머물던 팔리스호텔 계단 앞에 섰다. 이 호텔은 그에게 항상 같은 방을 준비해준다. 어제 그는 아내와 함께 아들의 작은 아파트를 방문했다. 사진을 찍은 뒤 그는 곧 토마스 바흐와 점심 식사를 하러 간다. 그때에는 지금 옷깃에 단 올림픽 오륜 마크 옆의 김일성 얼굴 배지를 빼고 갈 것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처럼, 장웅도 여러 역할을 하며 신속하게 변신한다. 이것이 그의 직업이다.

그 뒤 며칠간 장웅은 또다시 빈의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의사들은 조만간 수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수술하게 된다면 그는 빈에서 조금 더 머무르며 쉬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어쩌면 금방 그는 다시 여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재다능한 미스터 장은 김일성 배지를 다시 옷깃에 달고 영구 귀국하게 된다.

그는 고국에서 남은 생애 동안 계속 자신을 숨기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자유 세계의 경험으로 형성된 정체성을 북한에서는 숨기고 살게 될 것이라는 뜻 -편집자). 아니면 반대로 다시는 자신을 숨기지 않고 살게 될지도 모른다(지금까지 IOC 위원으로 외부에 보여준 삶이 장웅의 본질을 숨기고 산 것이라는 뜻 -편집자).

ⓒ Der Spiegel 2015년 45호
Der vielseitige Mister Chang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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