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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수익에 눈멀어 퓰리처상도 시큰둥
블룸버그 창업자 마이클 블룸버그
[69호] 2016년 01월 01일 (금) 이자벨 휠젠 외 economyinsight@hani.co.kr

복귀 뒤 독단 경영으로 저널리즘 위기 불러…
은행가 고객을 위한 뉴스레터 전락 우려

마이클 블룸버그는 자신이 건설한 미디어제국 블룸버그사를 다시 이끌기 시작하면서 간판급 기자들을 대거 해고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메스를 들이댔다. 기자들은 블룸버그 저널리즘의 퇴행을 걱정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블룸버그의 최대 업적인 금융정보 제공 단말기인 ‘블룸버그 터미널’은 대안 매체의 등장이 임박하며 수익성 위기를 맞고 있다. 다급해진 블룸버그는 점점 고압적으로 변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자벨 휠젠 Isabell Hulsen <슈피겔> 경제부 기자
홀거 슈타르크 Holger Stark <슈피겔> 워싱턴특파원
 
그를 구원해줄 전화는 결국 오지 않았다. 미국 뉴욕시장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둔 마이클 블룸버그(73)에게 아직도 세상은 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입증해줄 전화 한통 말이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12년(2002년 1월~2013년 12월 -편집자) 동안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인 뉴욕의 시장을 했다. 그는 세계은행 총재, 유엔 사무총장, 미국 국무부 장관, 심지어 미국 대선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뉴욕시장으로서 이름을 알린 억만장자이자 미디어 갑부인 블룸버그는 단숨에 빌 게이츠와 빌 클린턴급으로 부상했다. 뉴욕시장 임기가 끝난 2013년 12월 블룸버그가 어떤 자리에 도전할지는 명명백백해 보였다.
 
   
▲ 마이클 블룸버그는 2013년 미국 뉴욕시장직을 떠난 뒤 공허함을 달래지 못하고 그가 세운 ‘제국’ 블룸버그사의 ‘황제’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직원들은 저널리즘의 본질이 훼손될까 우려한다. REUTERS

“마이클 블룸버그는 누군가 자신에게 전화해 자리를 하나 줄 것으로 생각했다”고 그를 개인적으로 잘 아는 블룸버그사의 전 고위 임원은 말한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뉴욕시장에서 퇴임하자마자 마법에서 풀린 듯 그에겐 엄청난 공허감이 밀려왔다.

퇴임 뒤 몇달 동안 박애주의자로 활동한 그는 자신이 세운 재단을 통해 아프리카를 위한 태양열 램프 개발을 후원했고 수억달러를 기부했다. 하지만 전방에서 지휘하는 일에 익숙한 블룸버그에게 이런 활동이 과연 만족스러웠을까.
 
블룸버그는 그때까지도 단호하게 배제했던 ‘옵션’을 선택했다. 2014년 말 종합미디어그룹 블룸버그사의 총수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누군가를 다스리기 좋아하는 야심가인 블룸버그는 시가총액 90억달러(약 10조6천억원)의 종합미디어그룹 블룸버그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런 배경에는 ‘블룸버그 터미널’(미국 금융정보 채널 -편집자)의 생존에 대한 우려와 삶의 지루함이 밀려든 탓이 크다. 블룸버그는 임원급 기자를 거의 전원 교체했고 80명 이상의 부장을 해고했다. 추정 수익 30억달러(약 3조5천억원)를 내면서 지금까지 절감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블룸버그사에서 아예 비즈니스 부문 전체가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
 
블룸버그의 급진적 구조조정 단행으로 미국에서 저널리즘의 미래로 추앙받던 비즈니스 모델에 흠집이 났다. 이 모델은 후원자가 사업 수익으로 고품격 저널리즘의 재정을 충당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형태다. 하지만 블룸버그 사례에서 보듯, 후원자가 용인하는 범위에서만 이 비즈니스 모델이 굴러간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블룸버그 저널리즘의 위기 
 
블룸버그사는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전통적인 언론사가 아니다. 블룸버그사 기자들은 원래 부수적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블룸버그사와 설립자 마이클 블룸버그는 미국 월가나 영국 런던증권거래소 은행가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블룸버그 터미널’로 큰돈을 벌었다. ‘블룸버그 터미널’은 오랫동안 회색 ‘코모도어 64’(8비트 가정용 컴퓨터 -편집자)처럼 플라스틱 단말기 형태였다가 최근에는 다양한 색채의 버튼이 있는 검은 키보드 단말기로 변모했다.
 
‘블룸버그 터미널’은 국채와 원자재 가격을 알려주고, 공해상의 컨테이너 선박과 화물 위치 및 속도를 파악하며, 기업 총수들의 요트와 경비행기를 포함한 자산을 리스트화하는 등 금융거래를 분석해 정보를 제공한다. 매일 600억개 이상의 정보가 검색되는 ‘블룸버그 터미널’의 1인당 연간 이용료는 2만달러(약 2300만원)에 이른다. 현재 구독자는 약 32만5천명이다.
 
‘블룸버그 터미널’은 블룸버그가 개발한 발명품이다. 그로서는 인생의 역작이다. 블룸버그는 1981년 살로먼브러더스 투자은행에서 해고되며 퇴직금으로 받은 1천만달러(약 110억원)로 39살에 회사를 설립했다. 금융정보 서비스망인 ‘블룸버그 터미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블룸버그를 세계 14번째 부호로 만들었다. 그의 자산은 355억달러(약 42조원)로 추정된다.
 
그의 자산에 비하면 블룸버그사 규모는 초라하게 보인다. 하지만 세계 73개국에 2400명 이상의 기자를 거느린 블룸버그사는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종합미디어그룹이다. 블룸버그는 ‘블룸버그 터미널’을 소수의 데이터광을 위한 틈새상품 이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블룸버그 터미널’을 금융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만들려 했다. 그러려면 ‘블룸버그 터미널’에 고객을 묶어둘 텍스트 기사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1991년 일종의 고객 서비스 개념으로 미국의 유력 경제지 <블룸버그 뉴스>가 탄생하게 됐다.
 
블룸버그사에서 저널리즘은 은행가들이 금융상품을 매입 또는 매도할지 결정하도록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저널리즘은 블룸버그사 설립자인 마이클 블룸버그의 이름을 알렸고 ‘블룸버그 터미널’ 고객들을 만족시켰다. 또한 ‘블룸버그 터미널’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그 수익으로 저널리즘 재정이 충당됐다. ‘블룸버그 터미널’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완벽한 모델이었다.
 
   
▲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트레이더들이 일하는 동안 ‘블룸버그 터미널’ 화면에 각종 금융 정보가 실시간 제공된다. ‘블룸버그 터미널’은 마이클 블룸버그의 업적 중 하나로, 그에게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줬다. REUTERS

하지만 블룸버그는 블룸버그사 경영권을 다시 손에 쥐면서 이 비즈니스 모델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에 블룸버그사 기자들은 지난 12년간 저널리즘 자유와 거대한 야망의 시대는 끝났다고 우려한다. 블룸버그사 기자들은 은행과 기업 총수의 세계를 위한 정보원이자, ‘블룸버그 터미널’을 사용하는 부유한 고객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비애를 곱씹고 있다. 기자들의 예감이 맞다면 참으로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담론에 일익을 담당하는 것으로 정체성을 찾은 블룸버그사의 독립적 고품격 저널리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자본주의의 윤활유로 전락해버렸다.

마이클 블룸버그 제국은 뉴욕 렉싱턴 애비뉴에 있는 블룸버그타워 6층에 있다. 블룸버그타워는 센트럴파크와 유엔본부 사이에 있다. 유리와 강철로 지은 블룸버그타워에는 전세계에 있는 직원 1만6천명 중 6천명이 일한다.
 
블룸버그타워에 들어서면 미디어 산업의 호황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일류 호텔을 연상시키는 휘황찬란한 조명의 복도가 나온다. 오렌지색 소파에서 광채가 나고 흰색 에나멜로 칠해진 라운지바에는 사과, 오렌지, 멜론이 바구니에 담겨 있다. 블룸버그사 직원들은 무료로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블룸버그는 직원들이 업무 중에 내 집 같은 편안함을 느끼길 원한다.
 
그의 가부장적 경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고압적 흔적도 보인다. 블룸버그타워 복도에 비치된 감자칩 스낵은 무료로 제공되지만 굉장히 작은 크기로 포장돼 있다. 블룸버그는 직원들이 건강하게 영양을 섭취하기 바란다. 엘리베이터는 전체 25층 가운데 층수 버튼에 흰 원이 그려진 곳에만 선다. 블룸버그는 직원들이 가급적 계단을 이용해 그곳에서 서로 더 접촉하기를 원한다.
 
몸집 불린 미디어, 막대한 손실 초래
 
모든 블룸버그사 지사에는 연보라색과 노란색으로 빛나는 물고기와 산호가 든 어항이 있다. 블룸버그는 어항이 직원들의 긴장 이완을 돕는다고 말한다. 자신을 위해 일하는 직원은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오로지 최상의 것만을”이란 말을 즐겨 사용한다.
 
하지만 경쟁사로 떠나는 직원은 블룸버그로부터 파문당한다. 블룸버그는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의 송별 파티에 참석하지 않는다. 그는 “나를 떠나는 직원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를 해줄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블룸버그사에 등 돌리는 직원은 더 이상 우리 사람이 아닌 ‘그들 사람’이라는 것이다.
 
블룸버그사 직원들은 입사와 함께 기밀 엄수 서약에 서명해야 한다. 아울러 블룸버그사를 그만두는 직원의 전자우편을 회사가 들여다보는 것에 동의한다는 조항에도 서명해야 한다. 블룸버그 제국은 선악으로 분명하게 구분되고, 특이한 가치관이 존재하는데다 이단스럽기까지 한 기괴한 세계다. 내부 직원들은 블룸버그사를 ‘환각 상태의 사이언톨로지(미국의 신흥 종교 -편집자)’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2002년 뉴욕시장이 되면서 블룸버그사 경영을 두 측근에게 넘겼다. 투자은행가 출신인 피터 그루어와 블룸버그 밑에서 2008년까지 뉴욕시 부시장직을 지낸 댄 닥터로프다. 두 사람 모두 블룸버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야망이 크지 않은 이상적 파트너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닥터로프와 그루어는 놀라울 정도로 아집이 세고 야심만만한 경영자 면모를 보였다. 두 사람은 ‘블룸버그 터미널’과 별도로 무료 온라인 금융정보 서비스를 확대했고 TV 비즈니스를 구축했다. 온라인 법률자문 서비스인 ‘블룸버그 로’(Bloomberg Law) 등 새 사업을 시작했으며 재정난에 시달리는 경제지 <비즈니스위크>를 인수했다.
 
두 사람의 계획은 ‘블룸버그 터미널’을 유료 구독하는 부유한 고객뿐만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구축해 블룸버그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또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대표적 언론에 도전장을 내밀기 위해 연봉이 100만달러로 알려진 스타 기자들을 스카우트했다. 다른 언론사에서 예산 삭감과 비용 절감이 화두가 되는 동안 블룸버그사의 기자는 계속 늘어났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기자 600명 이상이 채용됐다.
 
블룸버그가 뉴욕시장으로서 혁혁한 공을 세우는 동안 블룸버그사 기자들은 댄 닥터로프의 표현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뉴스 기관’이라는 야심만만한 목표를 향해 달렸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출신의 언론상 수상 경력이 있는 스타 기자들이 블룸버그사로 대거 옮겨왔다. 블룸버그사가 TV, 웹사이트, 잡지로 영역을 확장할수록 기자들은 ‘블룸버그 터미널’의 조력자라는 좁은 정체성에서 벗어났다. 블룸버그사 기자는 이렇게 ‘블룸버그 터미널’을 이용하는 은행가들과 설립자 마이클 블룸버그로부터 독립해나갔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에는 대가가 뒤따랐다. 몸집이 커진 블룸버그사는 넥타이와 양복 차림을 한 전통적인 뉴스 기자와 간편한 복장에 수염을 기른 인터넷·잡지 부문 기자 간의 권력다툼으로 엉망이 돼갔다. 블룸버그사 스스로 최대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블룸버그사는 내부 권력다툼 때문에 힐러리 클린턴이 대권에 도전한다는 공식 선언을 경쟁사보다 11분이나 늦게 보도하는 참사를 빚었다. 당시 웹사이트와 ‘블룸버그 터미널’ 담당자들은 어느 쪽이 보도할지를 둘러싸고 서로 훼방을 놓았다고 한 여성 편집국장은 토로했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자리를 비운 기간에 블룸버그사에 대한 평가는 천차만별이다. 블룸버그사는 경쟁업체인 캐나다 금융정보 회사 톰슨로이터를 제치며 전설적 수익을 기록한 반면, 미디어 부문은 아마존 덤불처럼 무성하게 자라난 것과 반비례해 엄청난 손실을 기록했다. 블룸버그 TV와 <비즈니스위크>는 연간 1억달러(약 11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낸 적도 있다.
 
블룸버그는 블룸버그타워로 복귀할 때 당시 회사 대표였던 닥터로프와 함께 카페에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했다. 닥터로프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이클은 회사에서 일종의 신이다. 그는 우주를 창조했다. 십계명을 만들고 사라졌다 돌아왔다. 신이 귀환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닥터로프는 이후 블룸버그사를 떠났다. 25년간 편집국장을 했던 맷 윈클러를 비롯한 다른 고위 직원들은 한직으로 밀려났다. 향후 블룸버그사의 권력을 누가 쥐게 될지는 피터 그루어가 마이클 블룸버그와 회의실에서 벌인 사건으로 분명해졌다. 그루어가 대화 내용이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회의실 문을 닫으려고 하자 블룸버그는 문을 열어놓으라고 맞받아쳤다. 그루어는 뜻을 굽히지 않고 문을 닫았다. 다음날 블룸버그는 회의실 문을 아예 떼내어버렸다.
 
블룸버그가 미디어 부문의 구조조정을 맡긴 사람은 존 미클스웨이트다. 스마트한 영국인인 미클스웨이트는 블룸버그가 제일 좋아하는 잡지인 <이코노미스트>의 편집국장을 9년간 했다. 미클스웨이트는 안락한 런던 사무실을 포기하고 블룸버그사의 대형 사무실을 선택했다. 미클스웨이트가 <이코노미스트>에서의 자유를 포기하고 블룸버그사 기자들의 전열을 가다듬는 일을 맡게 된 속내에 대해서는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블룸버그는 자신이 낙점한 전리품에는 후한 가격을 치른다는 말도 있다.
 
미클스웨이트의 유유자적한 영국식 매력은 블룸버그사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2015년 9월 그는 편집국 기자들에게 장문의 전자우편을 발송했다. 전자우편에는 전혀 영국스럽지 않은 신랄한 어조가 담겨 있었다. 그는 블룸버그사가 고객지향적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은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긴 호흡의 기사, 또는 고객보다 블룸버그사 기자에게 더 도움이 되는 기사를 읽으며 허비하는 것을 극히 싫어한다고 적었다. 따라서 블룸버그사에는 스포츠난과 교육난이 필요 없다고 전자우편에 썼다.
 
또한 블룸버그사는 ‘자본주의 연대기의 저자’가 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돈 버는 방법에 관심이 없거나 부자들에게 야유를 퍼붓고 싶은 기자, 은행가들에게 잽을 날리고 싶어 금융권에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꼬투리 잡기식의 보도 -편집자)을 펼치려는 기자는 블룸버그사와 맞지 않다”고 경고했다. 기자들은 향후 블룸버그사의 저널리즘이 폭넓은 독자층이나 민주주의 담론이 아닌 ‘블룸버그 터미널’ 고객의 수요 중심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했다.
 
잇따른 기자 해고, 그리고 경쟁 매체의 등장
 
저널리즘의 자유를 누렸던 많은 고위직 기자들이 이후 블룸버그사를 떠났다. 조슈아 토폴스키 디지털 국장은 그렇게 떠난 기자들 중 한명이다. 전통적인 통신사 편집기자들은 블룸버그사의 알록달록한 디자인으로 꾸며진 웹사이트를 ‘블룸버그 웨이’(Bloomberg Way)에 대한 배신으로 판단했다. ‘블룸버그 웨이’는 300쪽 분량으로 블룸버그 기사 작성 방식을 규정한 일종의 ‘성경’이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한번은 소그룹 회의에서 블룸버그에 웹사이트가 왜 필요한지 물었다고 한다. 토폴스키는 결국 블룸버그사를 떠났고, 블룸버그는 이후 웹사이트 구성을 직접 진두지휘했다.
 
블룸버그사에서 창의성 방면으로는 슈퍼스타인 조시 타이런기엘 <비즈니스위크> 편집국장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최근 해고됐다. 타이런기엘은 블룸버그사에 편협하고 고루한 사람이 많다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한다. 블룸버그는 2015년 9월 기자 80명을 해고했는데, 외교·안보 정책 담당팀을 포함한 블룸버그사의 워싱턴 사무실 소속 기자들도 포함됐다.
 
   
▲ 사람들이 뉴욕 블룸버그타워 현관 회전문을 오가는 모습. 블룸버그가 회사로 돌아온 뒤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REUTERS

블룸버그가 기자들이 신성시하는 가치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퓰리처상 수상에 얽힌 일화가 잘 보여준다. 블룸버그 뉴스는 미국 저널리즘에서 최고의 상으로 평가되는 퓰리처상을 2015년 4월 처음 받았다.

기자 재커리 마이더는 미국 기업들의 조세회피처 관련 기사 시리즈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수상 소식이 알려진 날 오후 마이더 기자는 블룸버그타워 6층 뉴스룸에 있었다. 동료 기자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 샴페인을 터뜨렸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축하할 기분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블룸버그는 자사 기자가 생애 첫 퓰리처상을 받은 소감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는 냉소적으로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런 일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퓰리처상 주최로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 공식 축하 만찬에는 마이클 블룸버그 외에 피터 그루어와 존 미클스웨이트도 참석하지 않았다. 2015년 6월 블룸버그사 관계자들이 세련된 뉴욕 웨스트 빌리지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연 수상 축하 파티에도 블룸버그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불참 이유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꺼렸는데, 관계자들 말로는 컬럼비아대학에서의 공식 만찬과 같은 행사에 블룸버그는 원래 잘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축하 파티는 기자들 내부 행사였다고 한다.
 
블룸버그사의 제러미 제라드 전 문화부 편집장은 “최근 블룸버그사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서글펐다”며, “블룸버그사의 새로운 노선은 저널리즘에 해악을 끼친다”고 말했다. 그는 “블룸버그사가 공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저널리즘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의 임무는 ‘은행가들을 위한 뉴스레터’로 전락한 것처럼 보인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블룸버그사의 변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전 측근은 전한다. “블룸버그는 자신의 업적에 대한 영향력을 잃었다고 느꼈다.”
 
블룸버그사는 최근 경쟁자가 생겼다. 블룸버그는 콧대가 높으며 단 한번도 할인하지 않는 비싼 매체다. 2015년 4월 블룸버그 웹사이트가 다운돼 금융계가 몇시간 동안 데이터를 제공받지 못했다. 이날 웹사이트 다운은 수많은 은행가로 하여금 자신이 블룸버그에 얼마나 종속돼 있는지 여실히 깨닫고 대안을 찾게 만든 계기가 됐다.
 
2014년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대형 투자은행 14곳은 ‘블룸버그 터미널’의 핵심 기술인 정보 교환 시스템을 대체하기 위해 ‘심포니’라는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구글은 불과 몇주 전 심포니 지분을 매입했다. ‘블룸버그 터미널’ 비즈니스가 오랫동안 보장해준 고수익은 이제 위험에 처했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자신의 업적이 존속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고 그의 전 측근은 전한다. 블룸버그 웹사이트와 TV에 무료 정보가 늘어날수록 고객이 고가의 ‘블룸버그 터미널’ 구독을 해지할 위험은 커진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블룸버그 터미널’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저널리즘적 야망을 비롯한 무엇이라도 희생시키려고 한다”고 블룸버그사의 전 임원은 말했다.
 
요즘 마이클 블룸버그가 블룸버그타워 복도를 잰걸음으로 다니는 것이 자주 포착된다. 그는 기자들의 세세한 업무까지 간섭하고 있다. 심지어 블룸버그 TV의 새로운 CI(기업이미지 통합 작업 -편집자)까지도 직접 디자인했다. 화룡점정은 화장실 휴지 일화다. 블룸버그가 화장실에서 거울 아래에 숨겨진 휴지를 한참 찾다가 잔뜩 화가 나 건물 관리인에게 전화했다고 한다. 건물 관리인은 결국 화장실 곳곳에 휴지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표지판을 붙여야 했다.
 
ⓒ Der Spiegel 2015년 47호
Die Rüeeckkehr Gottes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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