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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웅의 선거와 경제] 힐링이 필요한 대통령의 ‘거친 언어’
지도자의 언어가 갖춰야 할 요건
[68호] 2015년 12월 01일 (화) 윤희웅 economyinsight@hani.co.kr

 
집권 3년차 끝자락에 새삼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가 주목받고 있다. 박 대통령의 단순하고 간결한 언어는 선거 때마다 ‘약발’이 잘 먹혔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의 절제된 언어는 지지 기반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박 대통령의 언어는 거칠고, 편을 가르며, 수직적이다. 대통령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선출된 지도자다. 대통령은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과 치유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대통령이 쏟아낸 적의의 언어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이쯤 되면 앞에서 기대한 ‘관용의 정치’ ‘휴머니스트 통치’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각별하다. 교양, 해박, 멋, 유머, 임기응변, 포용력, 매력, 능란한 정치술, 위기 관리 능력, 외교력, 서민 마음 알아주기, 경기 부양, 공정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것을 다 충족시키면 통치자는 전지전능한 사람이 된다.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 최대치는 아니어도 최소치는 충족시켜야 한다. (중략) 국민들은 투사가 아니라 신사로서의 대통령을 갖고 싶어 한다. 그 기대는 애초에 깨졌다. 교양, 포용력, 이해력, 유머, 해박함 등에 대한 기대도 깨졌다. 남은 것은 신념, 의지, 결단, 오기, 돌파의 이미지다. 다시 말해 대통령은 공격수인 것이다.”

   
▲ 절제된 화법을 구사해온 박근혜 대통령이 ‘거친’ 단어를 써가며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2015년 10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6년도 예산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호근 서울대 교수의 저서 <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2005)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대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언어와 관련해 비판과 우려의 시각이 지배적인 대표적 인물은 노 전 대통령이다. ‘권력 언어’의 위선을 벗겨냈다는 우호적 평가도 있지만 지도자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국정의 걸림돌이 됐고 리더십의 약화를 불러왔다. ‘깽판’ ‘그놈의 헌법’ ‘막가자는 거죠’ ‘보따리 정치’ 등은 임기 내내 대통령을 비난하는 소재로 활용됐다. 시인 고은도 “노무현 대통령의 언어는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의 화법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신만이 정의라고 외치는 입만 있지 타인의 얘기를 경청하는 귀는 없다”며 정치권을 꾸짖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이 있다. 박 대통령의 공식 석상 발언을 보면 부쩍 전투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규제 철폐를 강조하면서 규제를 ‘단두대’에 올려야 한다고 했다. 규제가 ‘암덩어리’며 ‘쳐부술 원수’라고도 했다. 적폐는 경제의 활력을 잃게 하는 ‘원흉’이라고도 했다.

또 ‘배신의 정치’에 이어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고, “(진실하지 않은 사람들을) 심판해야 한다”고도 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서는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박 대통령은 추석을 맞이하여 부사관 이하 모든 국군 장병들에게 격려 카드와 특별 간식을 ‘하사’할 예정입니다”는 문장이 올라오기도 했다.


분열과 갈등 키우는 박 대통령의 언어

대통령의 언어가 거칠어지고 있다. 국정의 성과를 내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순수한 의도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청중은 바짝 긴장하게 된다. 이런 격한 표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위기 상황에서 국정의 긴장감을 높이고 개혁의 고삐를 바짝 죌 때다. 하지만 반복되면 대통령의 이미지가 투쟁적이고 권위적으로 비친다. 국가 최고 지도자라면 국민의 마음을 보듬는 위안과 격려의 말도 제시돼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다.

대통령의 언어가 편을 가르고 있다. 진실한 사람과 진실되지 않은 사람, 은혜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혼이 정상인 사람과 비정상인 사람으로 국민을 갈라친다. 통합의 언어를 사용하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편 가르기 표현은 대통령을 한쪽의 수장으로 국한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고 국정의 안정성을 해친다. 후보로 직접 선거를 치를 때는 지지층을 단박에 확보하기 위해 ‘갈라치기 전략’으로 구도를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선거전의 플레이어가 아니다. 모든 국민의 지도자다. 국민 전체를 바라보는 통합의 시각에서 언어가 표출돼야 한다.

대통령의 언어가 ‘왕의 언어’를 닮고 있다. 대통령의 보좌진이 올린 ‘하사한다’는 표현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군 통수권자로서 부하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에 ‘하사’가 틀린 표현은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장병들에게 직접 ‘하사’하면서 사용했어야 한다. 일반인이 볼 수 있는 곳에 올릴 단어는 아니다. 당시 언론도 ‘하사’를 ‘제공’과 ‘전달’로 바꿔 기사 제목을 뽑았다.

박 대통령의 언어는 그동안 ‘먹히는 말’의 정석을 잘 따랐다. 단순하고 간결했다. ‘단어만으로 충분하다면 굳이 문장을 쓰지 말라’는 조언에 충실했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나는 짧은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대신 긴 편지를 썼다”고 했듯이 박 대통령의 간결한 표현은 고민과 탐색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다듬는 과정처럼 고르고 또 골라 단어와 표현을 정했을 것이다. 위기의 당을 이끌 때, 상대와 싸워야 할 때 박 대통령의 언어는 힘을 발휘했다.

말이 적으니 실수도 적었다. 말이 많으면 구설에 오르기 쉽지만 절제된 박 대통령의 말은 신뢰를 줬다. ‘원칙과 신뢰’의 아이콘으로 지난 대선 때 인식됐던 것도 절제된 언어 사용에서 비롯됐다. ‘정치인의 말은 곧 정치인 그 자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단순하고 간결한 언어가 참된 빛을 내기 위해서는 타당해야 한다. 그에 맞는 이유가 대중과 공감돼야 한다.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할 때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거친 표현에 대한 수용도가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 ‘심판’ ‘배신’을 말할 때 ‘충분한 이유가 있는가’의 기준으로 볼 때는 공감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대통령의 언어가 타당성을 잃으면 두고두고 논란으로 이어지고 희화화되기도 한다. 듣는 사람들과 유대감이 형성돼야 발언에 힘이 실리게 된다. 단순하고 간결한 표현이 생명력을 갖기 위한 전제인 것이다.

청중의 공감이 전제되지 않은 간결한 표현은 소통을 제약하고 여러 해석이 난무하게 된다. 충분한 설명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청중은 혼란스럽다. 구약성경의 바벨탑 이야기는 의사소통이 안 되면 탑을 끝까지 쌓지 못하고 무너뜨린다는 교훈을 알려주기도 한다. 소통이 미흡하면 공동체는 허약해진다.

전투에서 평화의 언어로, 분열에서 통합의 언어로, 하명에서 대화의 언어로, 분노에서 용서의 언어로, 닫힌 언어에서 열린 언어로 이동이 필요하다.

waymaker@opinionlive.co.kr

* 윤희웅은 오피니언라이브(OPINIONLIVE)에서 여론분석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과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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