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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Biz] 콘텐츠 시장에 부는 ‘레트로’ 열풍
경제위기와 복고주의 문화 트렌드
[68호] 2015년 12월 01일 (화) 문동열 economyinsight@hani.co.kr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 ‘레트로’ 열풍이 거세다. 레트로는 복고주의를 지향하는 유행이나 패션 스타일을 뜻한다. 30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 <백 투 더 퓨처>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레트로 마케팅은 추억을 되살려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국내에서 레트로 열풍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했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현실에서 벗어나 과거에서 위로를 얻으려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 1985년에 개봉해 큰 흥행을 거둔 공상과학(SF) 영화 <백 투 더 퓨처>가 개봉 30주년을 맞아 2015년 10월21일 전세계 영화관에서 일제히 재개봉했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연합뉴스

2015년 10월21일. 1985년에 개봉해 큰 흥행을 거둔 공상과학(SF) 영화 <백 투 더 퓨처>가 개봉 30주년을 맞아 전세계 영화관에서 일제히 재개봉했다. 이날 영화는 전세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석권하며 하루에만 전세계에서 480만달러(약 56억원)를 벌어들였다. 한국에서도 30년 전 영화 제목 그대로인 <빽 투 더 퓨쳐>로 재개봉돼 화제를 모았다.

‘백투더퓨처 데이’로 명명된 10월21일은 <백 투 더 퓨처>의 팬덤(Fandom·광적인 사람을 뜻하는 ‘Fanatic’과 영역을 나타내는 ‘Dom’의 합성어로, 연예인이나 특정한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또는 그런 현상을 부르는 말 -편집자)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하다. 주인공 마티와 브라운 박사가 타임머신 드로리안을 타고 향하는 미래의 시간이 바로 2015년 10월21일 오후 4시29분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영화관에선 이제 영원히 오지 않을 영화 속의 이날을 기념하며 다채로운 이벤트를 벌였고, 전세계 팬덤은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저마다의 1980년대를 추억하며 그렇게 <백 투 더 퓨처>를 영원한 과거로 떠나보냈다.

이렇듯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과거에 연관되어 형성된 감정’을 심리학에서는 ‘노스탤지어’(Nostalgia)라고 한다. 이러한 노스탤지어 감정을 자극해 콘텐츠 소비의 동기로 활용한 마케팅이나 콘텐츠를 두고 ‘레트로(Retro·회고, 추억이라는 뜻의 영어 ‘Retrospect’의 준말로 복고주의를 지향하는 하나의 유행, 패션 스타일을 뜻한다 -편집자) 마케팅’ 또는 ‘레트로 콘텐츠’라고 부른다.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노스탤지어라는 용어는 17세기 요하네스 호퍼라는 스위스 의사가 자신의 논문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전장에 나가 장기간 고향과 떨어져 지내는 스위스 용병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고향이나 과거를 그리워하는 현상을 대뇌질환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정신병’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노스탤지어에 대한 부정적인 개념은 20세기까지 줄곧 이어져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노스탤지어라는 감정은 현실 부적응으로 인한 우울증 또는 심리적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 감정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레트로 콘텐츠, 금융위기 이후 급성장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심리학자들은 노스탤지어가 심리적 장애와 별도로 존재하는 ‘인간 본연의 심층적 감정’이라는 사실을 각종 연구를 통해 증명해냈다. 2000년대 초반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진 소비행동 심리학에서는 노스탤지어가 소비 심리를 끌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과거의 영화·음악·드라마·책 등이 당시 추억을 형성하는 데 주요한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 밝혀지면서 레트로 콘텐츠는 흔히 ‘과거를 끌어와 현재를 파는 기술’로 불리며 각광받기 시작했다.

영국 사우샘프턴대학의 팀 와일드슈츠와 콘스탄틴 세디키데스는 2006년 발표한 논문에서 노스탤지어에 대한 몇가지 흥미로운 조사를 했다. 그들은 피실험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노스탤지어를 느끼는지 구체적인 경험이나 상태에 대해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사우샘프턴대학의 연구진은 조사를 통해 여러 감정 중 슬픔이 노스탤지어를 떠올리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발견했다. 실제로 단순히 누군가를 슬픈 기분에 빠져들게 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노스탤지어를 유도하는 자극에 더 민감해지며, 과거의 기억에 자리한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기 쉬운 상태가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왜 슬픈 감정의 상태에서 노스탤지어를 느끼는가. 연구진은 그것을 우리 감성의 자기방어 체계라고 설명한다. 조사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슬픔과 상실감을 느낄 때 해독제처럼 노스탤지어의 기억을 활용했다. 노스탤지어를 느끼면서 슬픔과 상실감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노스탤지어에 쉽게 빠지는 사람일수록 더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덜하다는 사실이 발견되기도 했다.

즉, 노스탤지어는 정신병이나 심리적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우울증이나 감정 기복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치료제기 때문에 현실이 팍팍하고 경기가 불황일수록 레트로 콘텐츠가 쉽게 소비된다는 것이다.

   
▲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는 추억을 되살려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레트로’ 열풍이 거세다. 2015년 들어서도 <응답하라 1988> 등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레트로 콘텐츠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tvN 제공

그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레트로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시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다. 사회적으로 짙은 패배감이 깔리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과거에 복고를 지향한 시대물 영화나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의 시대물 콘텐츠는 단순히 과거의 시공간적 배경을 역사적 배경으로 가져와 당시의 시대적 환경이나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최근 레트로 콘텐츠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보편적인 추억과 시공간적 노스탤지어가 주요 요소로 작용한다. 즉,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개인적 추억’이 콘텐츠를 끌어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누적 관객 400만명을 돌파하며 한국 멜로영화 역대 흥행 1위에 빛나는 <건축학개론>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 레트로 콘텐츠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국민 첫사랑’ 수지를 탄생시킨 영화 <건축학개론>은 역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적 아픔보다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슴속에 품고 있을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냈다. 예를 들면 남성 2인조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을 비롯해 당시 감성을 자극하는 배경 음악이나 삐삐(무선호출기), 무스(머리 모양을 고정할 때 쓰는 크림), CD플레이어 등 당시 소품을 등장시켜 사람들의 노스탤지어를 최대한 끌어낸 것이 콘텐츠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최근 레트로 콘텐츠는 대부분 1990년대 문화를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1990년대는 한국이 정치적으로 서서히 안정되어가며 문화적으로도 폭발적 성장을 거듭해가던 시기였다. 여기에 더해 당시 10~20대를 보낸 계층이 이제 30~40대로 한국 사회의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잡았다는 것도 1990년대 레트로 콘텐츠가 성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또한 산업 현장이란 측면에서 볼 때 현재 한국 콘텐츠 산업을 이끌어가는 주요 제작자들이 대부분 이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90세대’라는 점도 1990년대 레트로 콘텐츠가 성장하는 숨은 이유 중 하나다.


추억과 향수의 대상은 1990년대

2012년 개봉한 <건축학개론> 이후 1990년대는 한국의 레트로 콘텐츠 붐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노스탤지어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해 7월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그 잠재력이 폭발했다. 그리고 한국 레트로 콘텐츠는 2013년 <응답하라 1994>의 히트와 함께 <러브레터> <레옹> <8월의 크리스마스> 등 1990년대 영화의 재개봉 붐으로 이어졌다. 

2014년에는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특별기획인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를 통해 1990년대 음악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토토가 이후 잊힌 1990년대의 가수들이 대거 다시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2015년 들어서는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이나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 <응답하라 1988> 등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1990년대 레트로 콘텐츠 흥행을 이어가는 중이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노스탤지어를 연구하는 독일 쾰른대학의 필립포 코르다르 교수는 “기억은 언제나 미화되기 마련이며 이렇게 ‘장밋빛으로 덧칠된 안경’으로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것이 과거 기억에 대한 왜곡을 일으켜 현실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런 부작용보다 노스탤지어를 품은 경험의 일부는 급할 때 꺼내먹을 수 있는 비상약처럼 팍팍한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워야만’ 한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도 2015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80년대 카페’라는 것을 만들어 과거를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이처럼 레트로 콘텐츠는 언제나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타났다 사라지며 우리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존재다. 분명 2015년 현재를 사는 우리가 레트로 콘텐츠를 통해 과거를 추억하고 ‘그땐 그랬지’란 말로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며 즐거워하는 것도 언젠가는 과거가 되어 지금 현재를 되돌아보는 순간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추억은 늘 아름다운 법이지만 과연 그때 우리는 지금을 어떤 모습으로 추억하고 있을까?
 

rabike0412@gmail.com

*문동열은 영상 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 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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