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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책] 피셔·그린스펀·맨큐 그들과 버냉키의 대화
<행동하는 용기> 번 버냉키
[67호] 2015년 11월 01일 (일) 안세민 economyinsight@hani.co.kr

안세민 번역자
 

   
▲ <행동하는 용기> 벤 버냉키 지음 | 안세민 옮김 | 까치 펴냄 | 3만원

이 책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이했던 2008년 당시 세계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분투했던 벤 버냉키의 자서전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부터 시작해 스탠퍼드대학과 프린스턴대학 교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버냉키는 중산층 유대인 약사 집안 출신이다. 하버드대학 입학 허가를 받고 나서 등록금을 마련하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 신축 건물 공사가 진행 중이던 세인트유진 병원까지 걸어가서 육체노동을 한 적도 있었다. 첫날 시멘트 먼지를 뒤집어쓰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너무 피곤해서 밥 먹을 힘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하버드대학에 입학하고는 2학년 가을 학기에 저명한 보수주의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가 가르치는 경제원론을 듣고서 경제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학부 시절 데일 조겐슨 교수와 공동으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 경제학 박사과정으로 유명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입학할 때 조겐슨 교수가 “자네는 가장 좋은 곳에서 공부해야 돼”라고 말할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는 MIT 시절 스탠리 피셔 교수에게서 밀턴 프리드먼과 애나 슈워츠의 저서 <미국 통화의 역사>(A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소개받고는 당대 뛰어난 대가들의 역사적인 접근 방법에 크게 매료됐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학문 여정에서 거시경제학과 통화정책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는 대학에서 학문에만 몰두한다. 주로 통화 정책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통화 정책이 긴축 정책인지 팽창 정책인지를 어떻게 측정하는가, 통화 정책의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측정하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미국이 물가안정목표제를 통해서 어떤 혜택을 볼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여기서 물가안정목표제란 ‘특정한 기간(예를 들어 1년) 동안의 인플레이션 2% 달성’처럼 중앙은행이 공식적으로 약속하는 물가상승률을 의미한다.

2002년 초, 버냉키는 부시 행정부로부터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이사직을 제안받는다. 이 제안을 받고 그는 ‘정책을 개선해 국민이 더 잘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면 경제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자문한다. 결국 그는 연준에서 일하면 미국에서 가장 힘있는 기관의 내부에서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부시 행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버냉키는 2002년부터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연준)의 신입 단원이 된다. 그리고 그린스펀의 명성과 성취에 경외감을 갖기도 한다. 버냉키와 그린스펀은 많은 점에서 생각이 일치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많았다. 예를 들어 버냉키는 물가안정목표제처럼 연방준비제도의 투명성을 제고할 공식적인 정책 프레임워크를 신봉했지만, 그린스펀은 이를 강요된 투명성으로 여겼다.

2006년 그린스펀의 후임으로 연준 의장이 된 그는 물가안정목표제를 통해 연준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물가 안정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한다. 그는 대공황을 연구한 자신의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전통 이론과는 결별하고 대담한 용기로 새로운 정책을 제시한다. 실제 연준이 채택했던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등의 정책 수단은 경기 침체를 겪고 있던 유럽과 일본 등에도 도입됐다.

하지만 그에게 엄청난 위기가 닥쳐온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투자 실패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고,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됐다. 세계 최대 보험사 AIG도 파산 직전까지 갔다. 주가가 폭락하고 월스트리트는 패닉 상태에 빠졌고 투자와 소비가 급랭하면서 세계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

버냉키는 이 책에서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복기하면서 모기지 시장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어떻게 머니마켓펀드(MMF), 환매조건부채권(RP), 기업어음(CP) 시장으로 번져나가 금융 시스템 전체를 패닉 상태에 몰아넣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금융위기 상황에서 대형 투자은행과 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지원, 세계 중앙은행들과의 공조 체제 구축, 양적완화에 이르기까지 연준이 추진했던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차근차근히 설명한다.

또한 버냉키는 이 책에서 연준의 역사와 기능, 미국 통화 정책의 역사, 케인스 경제학과 신고전주의 경제학 간의 논쟁 등 일반인이 알아야 할 통화와 거시경제 전반에 관한 지식을 알기 쉽게 옆에서 이야기하듯이 들려준다. 따라서 이 책은 독자에게 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복잡하고도 단순한 흐름을 알 수 있도록 해준다. 세계 금융시장에 대한 안목을 넓히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 엄청난 금융위기의 현장을 진두지휘했던 버냉키 의장 자신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 책에는 당대의 뛰어난 경제학자들이 연준이나 경제자문위원회 멤버로 활동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논문 또는 교과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그레고리 맨큐, 프레데릭 미시킨 같은 학자들이다. 버냉키 자서전을 통해 그들에 대한 재미난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sehminah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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