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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웅의 선거와 경제] 국정화는 정부·여당을 이롭게 할까
한국사 국정화의 이해득실
[67호] 2015년 11월 01일 (일) 윤희웅 economyinsight@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교과서 국정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가깝게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 멀리는 2016년 4월 총선에 국정화 이슈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다. 좌와 우로 나뉘는 이번 이슈의 이념적 성격으로 볼 때 국정화는 중도층의 거부감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상대적으로 흐트러진 야권 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0월2일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5 경북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개회식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오른쪽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뉴시스

‘통치의 기술’ 측면에서 정부와 여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엄연한 패착이다. 물론 2016년 4월 총선 승리를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없진 않다. 정권이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보수 성향층의 느슨해진 결집력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미 보수층은 여당인 새누리당으로 충분하게 결집돼 있기 때문이다. 경쟁 세력인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에 비해 정당 지지율이 2배나 높지 않은가.

낮은 지지율이 보여주듯 진보 성향층 혹은 야권 성향층은 현재 야당에 대한 지지를 표출하지 않고 있다. 야당을 중심으로 모여 있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다. 야당은 지리멸렬한 상황이다.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조직으로서 질서를 찾기 어렵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분의 길은 끝나지 않고 있다. 이런 야당에 정부·여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가뭄에 단비 같은 정치적 호재가 됐다.

각 진영의 이념적 정체성과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안은 보수 성향층에게만 민감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진보 성향층도 이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당 지지층은 이미 결집돼 있는 데 반해 야당 지지층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안으로 인한 지지층의 결집 증가분을 따지자면 야당에 훨씬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다. 현저하게 밀리는 상황에서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이념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 논란 이전의 상황을 보면 여당은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야당은 존재감이 전혀 없어 굳이 위기 때 쓰는 카드를 꺼낼 이유가 없었다.

한편 이념적 사안은 총선에서 여당을 괴롭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선거의 본질은 ‘정부·여당에 대한 평가’다. 정당 간의 순수 대결이 아니다. 정부가 그간 일을 잘했다면 칭찬의 의미로 여당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고, 그간 일을 잘못했다면 야당 후보에게 표를 줌으로써 정부에 회초리를 드는 것이다. 정권 중·후반기에 치러지는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제법 냉정해진다. 정권 초반의 기대감은 사라지고 ‘매의 눈’으로 정권의 성적표를 매긴다. 그런데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념적 사안을 내놓을 경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불필요한 일만 했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특히 이념적 대결에 거부감이 큰 중도 성향층에 이런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정부·여당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선거가 경쟁 구도로 치러지지 않는 영남 지역 의원들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박빙 구도로 치러지는 서울 등 수도권의 여당 의원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별로 내키지 않을 것이다. 야권 성향층을 자극함으로써 젊은 층의 투표율이 높아지고, 괜한 이념 문제로 중도층의 외면을 받으면 재선에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새누리당 내에서 일치단결의 대오가 다소 흐트러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론도 중요하고 보수의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당장 본인의 당선 여부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것을 그냥 놓아둘 순 없기 때문이다.

여당엔 득이 없고, 야당에 오히려 득이 되는 사안을 왜 이렇게 나서서 밀어붙이는 것일까. 선거라는 절체절명의 장을 코 앞에 두고서 말이다. 정치적으로 볼 때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의 배경이 무엇인지 갑론을박이 있을 만하다. 혹자는 미래 세대에 대한 역사 교육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선거가 끝난 다음에 시도하면 될 일을 왜 지금 하느냐는 물음엔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념적 이슈, 중도층 반발 부를 수도

아마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의지 때문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의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소신이 강했고 이런 견해를 수차례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최근 당·청 관계에서는 청와대가 주도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여당은 마지못해 끌려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선거로 다시 평가를 받아야 하는 당은 청와대에 비해 대중의 흐름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시기를 조정하자거나 국민적 지지를 확대하기 쉽지 않으니 신중히 접근하자는 목소리를 낼 만하다. 하지만 현재 당·청 간 권력관계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정권마다 최고 지도자의 소신과 의지가 반영된 특별한 이슈를 제기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왔다. 특히 자신감이 충만해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것이 통치의 안정성을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미 찬반이 명확히 갈려 있는 사안을 건드리는 경우 특히 그렇다.

2004년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획득했다.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과거사진상규명법, 국가보안법 폐지 등 이른바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했다. 총선에서의 승리는 진보와 보수 간 대결 구도로 얻은 게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적 반발로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감이 넘쳤던 당시 정부·여당은 이념적 사안을 전면에 내세웠다.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정권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는 비록 이념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미 수도권과 지방 간 대립이 정해져 있어 어느 한쪽으로 수렴되기 어려운 ‘세종시’ 사안을 건드렸다. 임기 초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위기에 처했다가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을 들고나오면서 위기에서 벗어난 정부는 자신감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세종시 수정안을 제시해 기존 안을 변경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수정안은 폐기됐고 여권 내부의 주도권은 당시 박근혜 전당 대표에게 넘어갔다.

현재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어서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의 정치적 의미를 일반 대중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미 이념 성향에 따라 명확한 자기 입장을 갖고 있는 사안이다. 여야의 여론전에 따라 다소간의 움직임은 있을 수 있지만 여론이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기는 어렵다.

대중이 어떤 사안을 둘러싸고 이미 뚜렷하게 구분돼 있는 경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절반 정도의 호응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이는 오히려 국정에 대한 우호적 기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특정 어젠다를 추진하는데도 탄력을 받지 못하면대통령의 리더십에 심대한 손상이 가게 된다. 너무 깊숙이 들어왔지만 지금이라도 적절한 출구전략을 찾는 게 합리적인 길이다.

waymaker@opinionlive.co.kr

* 윤희웅은 오피니언라이브(OPINIONLIVE)에서 여론분석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과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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