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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처럼 무거운 환율의 족쇄
[In-depth]
[5호] 2010년 09월 01일 (수) 배리 아이켄그린, 피터 테민 economyinsight@hani.co.kr

배리 아이켄그린 Barry Eichengreen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경제학 교수
피터 테민 Peter Temin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 교수
   
배리 아이켄그린

최근 1930년대 시장의 교훈이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고정된 환율이 수행하는 역할과 금본위제도의 경험에서 도출되는 교훈에 논의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1930년대의 세계적인 위기에서 금본위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금본위제도의 특징은 국가 사이에 금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 금을 기준으로 각국 통화의 가치가 고정되는 것, 국제적인 조정을 담당하는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국제통화제도는 국제수지 흑자국과 적자국 사이에 비대칭성이 있게 된다는 의미가 있었다. 대외준비자산이 고갈돼 통화의 고정된 가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된 나라에는 벌칙이 가해진 반면, 금을 축적하는 나라에는 그로 인해 이자 수입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 말고는 아무런 벌칙도 가해지지 않았다. 국제수지 적자국에서 가동되는 조정 메커니즘은 대개 통화의 평가절하가 아니라 디플레이션이었다.
   
피터 테민

그 결과 1920년대 내내 미국 및 프랑스와 같은 국제수지 흑자국이 독일 및 영국과 같은 적자국으로부터 금과 대외준비용 외화를 빨아들였다. 흑자국에는 리플레이션(통화팽창 등을 통한 경제활성화) 조치를 요구하는 압력이 가해지지 않은 반면, 적자국에는 디플레이션(통화긴축 등을 통한 경제냉각화) 조치를 요구하는 압력이 점점 더 강화되곤 했다.
그런데 금본위제도는 단지 하나의 통화제도인 것만이 아니었다. 이데올로기이기도 했다. 대공황 시기에는 금본위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주된 선결 조건이라는 세계관에 따라 정책 선택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생산과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금본위제도 자체를 보존하기 위한 정책이 수립됐다. 중앙은행 사람들은 금본위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곧 고용을 회복시키는 길이며, 그렇게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고용을 증가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30년대 전반에 생산이 급감하고 물가가 급락하는 동시에 은행들이 문을 닫으면서 저축에서 손실이 나는 사태가 일어났는데, 이런 사태를 금본위제도가 예방해주리라고 사람들은 믿었던 것이다.
 
금본위제도라는 ‘이데올로기’
따라서 이런 결과를 그 전의 기대와 어긋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예외적인 사태를 예외적이지 않은 관점에서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게 됐다. 위기가 가장 심각했던 곳에서는 금본위제도에 부합하는 마인드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책 당국이 비난을 받았다. 예컨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와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통화관리의 유혹에 굴복했다는 질책을 받았다. 연준과 영란은행은 금본위제도의 규칙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신용화폐를 남발했으며, 금의 국제적인 이동을 불태화(不胎化)1)해 신용의 안정화 효과를 막았다. 그러다 보니 물가와 비용을 조정하지 못하게 됐다.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던 당시 경제 상황에서 이런 대응은 완전히 잘못된 사고방식에 따른 것이었다.
그때의 금본위제도에 비견되는 21세기 제도가 바로 위안화의 달러화 페그 제도와 유로화 제도다. 이 두 제도와 과거의 금본위제도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 유사한 점이 있다.
 
   
'위안화 절상' 이슈는 한국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유로존의 규칙은 금보다 단단하다
유로화를 채택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금보다 더 단단한 약속을 하는 것이다. 과거에 금본위제도에 속했던 나라는 위기가 닥치면 금본위제도에서 이탈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투자자들의 분노를 사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유로존에 속하는 나라는 위기가 닥쳐도 일시적으로 유로화를 포기할 수 없다. 그리스가 일시적으로 유로존에서 이탈해 ‘유로화 휴일’(Euro-holiday)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지만, 이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제안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유로존은 단지 금본위제도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브레턴우즈 체제2)도 따른다. 브레턴우즈 체제 자체가 그렇다기보다는 브레턴우즈 체제 수립으로 이른 그 전의 협상 과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당시 협상 과정에 참여한 주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케인스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에 금본위제도가 세계경제에 해로운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디플레이션에 빠진 나라가 대외준비자산이 상실되는 것에 대응해 디플레 정책을 채택하는 것은 그 나라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들에도 해롭다고 인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에서 그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 케인스가 내놓은 구상은 국제수지 적자국이 자국의 불균형을 줄이는 의무를 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흑자국도 자국의 불균형을 줄이는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이었다. 케인스의 이런 구상은 미국과 영국의 의견 불일치로 인해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케인스가 지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그 문제를 잊어버리고 있는 데 대한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또 하나의 중요한 환율제도인 위안화의 달러화 페그 제도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개발 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측면에서 검토해보는 것이 가장 나은 접근 방법이다. 위안화의 달러화 페그 제도에 주어진 역할은 다음 세 가지다. △중국의 제조업 제품 수출을 촉진하고 △해외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하기로 하는 결정을 쉽게 내리도록 유도하며 △중국 내 인프라 투자에 동원되는 저축의 주된 원천인 중국 기업들의 이익을 증대하는 것이다.
1920년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비신축적인 환율제도로 서로 묶인 나라들 가운데 어느 한 나라에서 채택되는 정책이 다른 나라들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1920년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런 인식에 토대를 두고 정책을 채택하거나 실행하려는 정책 당국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2006년 국제통화기금(IMF)은 비신축적인 환율제도로 자국의 정책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게 할 목적으로 일종의 ‘다자간 협의’ 틀을 마련했다. 미국과 중국은 매년 쌍무적인 ‘전략경제대화’를 연다. IMF는 정기적으로 다자간 감독을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통해 중요한 정책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논점은 금본위제도 아래 독일, 유로화 제도 속의 그리스, ‘세계적 불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미국과 같은 국제수지 적자국을 구속에서 풀어주자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독일·그리스·미국은 자국이 ‘예산 제약’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세 나라 모두 분수에 넘치는 소비생활을 했고, 재정과 경상수지에서 적자를 냈으며, 해외 차입으로 적자를 메웠다.
이 세 나라의 그런 태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 있는데, 바로 국제수지 흑자국의 정책이다. 1920년대와 30년대 전반에는 미국과 프랑스의 금 불태화 정책으로 인해 독일과 유럽 중앙부 국가들의 경제적 곤경이 더욱 심화됐다. 당시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국제수지 흑자국이 있으려면 어디엔가 적자국이 있어야 한다. 흑자국이 경제를 더욱 활성화하기를 거부한다면 적자국이 경제를 위축시켜야 한다. 흑자국이 긴급 금융지원을 거부한다면 적자국이 겪는 경제 위축 정도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 정치적 결과가 재앙적 수준이 된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됐다.
그와 비슷한 과정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그리스와 교역을 하는 독일은 큰 폭의 흑자를 내고 있다. 독일이 지출(소비와 투자)을 늘리기 꺼린다면 현금이 궁해진 그리스는 디플레 정책을 취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그리스가 당장 국내총생산(GDP)의 10%만큼 지출을 줄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그리스는 1930년대 전반의 독일과 마찬가지로 비용을 삭감해봐야 부채 부담만 더욱 무거워지게 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독일은 모라토리엄, 그리스는 채무 조정?
과거에 미국의 후버 대통령조차 결국은 독일의 대외채무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지금 그리스가 유일하게 스스로 채택할 수 있는 ‘내부적 평가절하’를 하려면 대외채무 조정(리스트럭처링)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후버 대통령이 나서서 독일의 대외채무에 대해 지급유예를 선언한 ‘후버 모라토리엄’이 미국 자체의 정책 변화를 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의 대외채무 조정은 유럽연합과 IMF의 태도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중국과 그 밖의 다른 나라들이 지출을 촉진하고 달러화에 대한 자국 통화의 상대적 가치가 더 빠르게 상승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고용을 늘리기 위해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수출경쟁력 강화뿐일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5년 안에 미국의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목표를 제시한 것도 이런 경로로 완전고용을 달성하겠다는 방안이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지출이 늘어나지 않고 인플레이션 가속화를 통해 실질환율이 조정되지 않는다면 미국 정부는 비용을 삭감하거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것을 통해 완전고용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이런 노력이 실패한다면 ‘보호무역주의’라는 역류에 물꼬를 열어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국제통화제도의 핵심은 환율의 양 당사국 모두 그 순조로운 작동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수지 적자국의 정책 조치만이 아니라 그 상대방이 되는 흑자국의 정책 조치도 국제통화제도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흑자국이 적자국에 조정의 책임을 모두 떠넘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케인스는 대공황의 경험에서 이런 교훈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그는 종전 이후의 국제통화제도 구축 방안에서 만성적인 국제수지 흑자국도 손보는 조치가 채택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당시 그가 내놓은 주장의 핵심을 잊어버린 것 같다. 
ⓒ Voxeu

[Tip & Tap]
1) 불태화 정책(Sterilization Policy)
외화자산이 유입돼 국내 통화량이 증가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취하는 정책. 주로 중앙은행이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하거나 지급준비율을 높여 유입된 외화자산을 흡수한다. 이런 정책들을 통해 전체적으로 통화량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2)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정하고 각국 외환의 안정을 위해 특별인출권(SDR·Special Drawing Rights)의 도입을 결정한 국제 통화제도 협정. 1944년 회의가 열렸던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턴우즈의 지명을 따 ‘브레턴우즈 체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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