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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중앙은행은 디플레 대응책 갖고 있나
디플레이션 시대의 통화정책
[67호] 2015년 11월 01일 (일) 윤석천 economyinsight@hani.co.kr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인플레이션 정책을 펴고 있다. 더 나아가 자국 통화가치 절하를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상품 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압력은 오히려 커져가는 상황이다.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는 불황 탓도 있지만 기술혁신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이는 디플레이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디플레이션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에 기반한 통화정책이 필요한 때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금리는 우산 역할을 해야 한다. 세찬 비가 내릴 때 조금이라도 빗방울을 막아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정책금리는 우산살만 남은 우산과 같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경제위기가 온다면 오늘의 중앙은행은 무엇으로 그것을 방어할 수 있을까. 마이너스 금리와 양적완화를 재개하는 것뿐인데 이마저도 금리 우산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 분명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대외 여건은 별개로 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연준이 기다리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설령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에 충분한 인플레이션이 온다 해도 그 지속 기간은 비교적 짧을 것이다. 과거와 같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으로 보는 건 어리석다. 우리는 현재 디플레이션 압력이 점차 거세지는 세계에 살고 있다. 매우 거대한 힘이 그 뒤에 있다. 쉽게 없어질 힘이 아니다. 오히려 나날이 강해질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산물이다. 그 때문에 중앙은행은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을 유도해낼 수 있다. 하지만 높은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는 물론 선진국 얘기다. 선진국 중앙은행이 앞으로 다뤄야 할 것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디스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다.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공기처럼 생각한다. 옆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다. 반대로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험은 거의 없다. 디플레이션 상황에서의 삶은 인플레이션 시대의 삶과 전혀 다르다. 전문가들 역시 디플레이션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른다. 두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말하려는 것은 가격 디플레이션이다. 통화 디플레이션이 아니다.

디플레이션은 정말 두려운 것인가? 물리쳐야 할 ‘악’ 혹은 ‘괴물’인 걸까? 아니다. 긍정적 측면도 많다. 생산의 주체가 아닌 소비의 주체라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싫어할 까닭이 없다. 전체적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이라면 말할 필요가 없다. 일반 가계(소비자)의 경우, 디플레이션은 환영할 만한 현상이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노동 가격이 구매하는 물품 가격보다 더 빠르게 떨어지지만 않으면 된다.


디플레이션은 정말 악, 그 자체일까? 

   
▲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015년 9월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정책을 펴고 있지만 디플레이션이 본격화하고 있어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REUTERS

인플레이션을 당연하게 생각하듯 디플레이션도 ‘정상’일 수 있다. 이 또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화폐공급이 한정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 중앙은행 시스템하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세계는 역동적으로 화폐를 공급하고 있다. 각국은 자국 화폐의 인위적 절하를 끊임없이 도모한다.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그럼에도 도도한 디플레이션의 흐름을 막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세계는 강력한 가격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가격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기 마련이다. 인류는 지속적으로 생산성을 높여왔다. 사람들은 더 적은 자원을 이용해 더 많은 것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른바 ‘창조적 파괴’가 수많은 경쟁 속에서 발아하고 있다. 그로 인해 가격은 계속 떨어진다. 시장이 완전히 자유롭다고 가정하면 가격이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완전 경쟁 여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가격이 오를 수 있는 조건은 통화 절하뿐이다.

21세기 들어 가격 디플레이션 압력은 더욱 강해졌다. 기술과 사회학적 변이가 그 압력을 높이고 있다. 단기간에 극적으로 비용이 낮아지는 ‘파괴적 변이’(disruptive transition)가 진행되고 있다. 생산성이 급격히 높아졌다. 개별 노동자가 생산해내는 가치의 양은 지난 50년동안 급격히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최근 10년의 생산성 향상은 눈부시다. 하지만 이에 그치진 않을 것이다. 생산성은 더 빠르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간섭, 즉 규제만 없다면 말이다. 누구도 혁신의 힘을 후진시킬 수는 없다.

예를 들어보자. 파괴적 혁신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는 곳이 의료 분야다. 이 분야는 파괴적 혁신의 보고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매일 신기술을 쏟아내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접목된 새로운 기술이 전통적 의학기술을 무력화한다. 이젠 누구나 자신의 혈당을 스스로 체크할 수 있다. 대중화된 혈당측정기 덕분이다. 그로 인해 의사에게 내던 막대한 진료비를 아낄 수 있다. 이는 매우 단순한 예다. 이보다 더한 기술, 과거엔 의료 전문가들만의 영역이던 수많은 분야가 빠르게 일반화되고 있다.

앞으로 약국이나 슈퍼마켓에서 영업하는 작은 클리닉을 볼 가능성이 높다. 이 클리닉에서는 전문의가 아닌 간호사나 보조 의사가 처방전 발급이나 백신 접종과 같은 간단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소비자에겐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가격이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1차 병원은 이들 클리닉에 밀려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대신 현재의 1차 병원은 다른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전문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전문의가 어디 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구 건너편에서도 얼마든지 로봇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이들 기술 중 대부분은 개발이 완료된 상태다. 어떤 기술은 즉시 이용 가능하다. 단지, 정부와 법률이 막고 있을 뿐이다. 법률이 바뀌고 규제가 사라지면 의료비용도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의료산업은 인간을 점차 덜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분명 오늘날의 의료시스템에 구멍을 낼 것이다. 구글 시대의 도서관, 모바일 전화 시대의 전통적 전화선, 우버 시대의 택시를 생각해보라. 과거의 것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혁신은 전 산업에 걸쳐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에너지 분야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는 건 오일과 가스를 더 많이 발견해서가 아니다. 컴퓨터 세계에서나 가능했던 기술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무어의 법칙’(새롭게 개발되는 메모리칩의 능력은 18~24개월 만에 약 2배가 된다는 법칙)이 에너지 분야에도 적용된다. 태양에너지 원가의 지속적 하락은 실로 놀랍다. 농업과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우린 모든 산업 현장에서 기계와 로봇 그리고 컴퓨터 사용으로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한 생산성을 만들어낸다.


막을 수 없는 디플레이션 압력

   
▲ 한 노인이 2015년 8월 ‘완전 폐점 세일’이란 문구가 적힌 상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선진국을 비롯한 일부 신흥국의 인구고령화는 지구촌 전체에 디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다. REUTERS

사실 파괴적 기술은 과거부터 있었다. 산업혁명 이래 신기술은 기존 산업을 파괴해왔다. 증기기관, 철도, 전구, 자동차, 그리고 인간을 일에서 벗어나게 한 여러가지 발명품들이 모두 파괴적 혁신이었다. 다만 오늘날은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 혁신 사이클이 훨씬 빨라졌다. 아이폰은 2007년에 탄생했다. 8년이 지난 지금, 당시 아이폰은 원시적으로 보인다. 비록 눈에 띄진 않지만 동일한 일이 거의 전 산업에 걸쳐 벌어진다. 우린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싼 것을 끊임없이 발견 혹은 발명해내는 중이다. 이 추세는 지속될 것이며 심지어 가속화할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이것은 ‘생산성 향상에 의한 디플레이션’ 현상이다. 디플레이션 유발 압력은 나날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사회학적 요인도 디플레이션에 일조한다. 선진국을 비롯한 일부 신흥국의 인구고령화는 지구촌 전체에 디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다. 노인 세대는 그 속성상 디플레이션적이다. 노인들은 덜 소비한다. 청년 세대가 열광적으로 구매하는 것 중 상당수를 노인들은 구매하지 않는다. 이미 갖고 있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일본이 인플레이션 유발에 실패하는 원인도 인구고령화에 있다. 그토록 엄청난 돈을 찍어내도 소용없다. 노령화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이 너무 강해서다. 이는 일본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겪어야 할 미래라 할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생산성 향상, 인구구조 변화, 너무 많은 부채는 모두 디플레이션 환경을 키운다. 이는 글로벌 경제에 일반화된 현상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높은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여전히 디플레이션 시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이 디플레이션 압력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오산이다. 도도한 디플레이션 압력에 인간이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되레 가격 디플레이션에 대한 중앙은행의 잘못된 처방이 통화 디플레이션을 키우고 있다. 중앙은행들의 회심작인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로 세계의 부채시장은 말 그대로 폭증하고 있다. 레버리지는 사상 최고 수준이다. 이런 신용 거품은 언젠가는 꺼진다. 그렇게 되면 시장은 급격한 신용 축소로 통화량이 급감하는 통화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

실제 우리가 염려해야 할 건 바로 이같은 상황이다. 현재 중앙은행들은 디플레이션 대응책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글로벌 경제의 리스크다. 인플레이션 대응책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디플레이션 대비가 절실하다. 다가오는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순응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부터는 디플레이션 시대다. 디플레이션을 ‘거악’으로 폄하하는 패러다임부터 당장 바꿔야 한다.

maporiver@gmail.com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 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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