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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 은행’ 지속 가능한가
[Cover Story]금융업계의 유기농 '소셜뱅크'
[5호] 2010년 09월 01일 (수) 나디네 오버후버 economyinsight@hani.co.kr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주도하는 부자들의 기부 행렬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기부가 과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착한 사마리아의 자본’이 될 수 있을까.
전례 없는 금융위기 속에서도 탄탄한 실적을 거두고 있는 독일과 인도, 브라질의 ‘사회적 은행’(Social Bank)들은 억만장자들의 기부와는 다른 관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사회적 공익에 따라 투자와 대출을 결정하는 이들은 금융업계의 ‘유기농 가게’로 불리며 착한 자본으로서의 가능성을 시험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들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맹목적 이윤 추구의 유혹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들린다.
‘미소금융’과 ‘햇살론’이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한국은 과연 ‘착한 사마리아 자본’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을까. 편집자
   
 

나디네 오버후버 Nadine Oberhuber 경제전문기자
 
요즘 시중은행은 위로는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의심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당하는 굴욕을 겪고, 아래론 자산관리 서비스가 형편없다는 고객의 원성을 받으면서 신뢰도가 급전직하하고 있다. 그 대척점에 바로 ‘사회적 은행’(Social Bank)이 있다. 사회적 은행은 사회적 기준과 도덕적 기준에 의거해 투자와 대출을 결정한다. 지속 가능한 투자를 추구하는 사회적 은행은 금융업계의 ‘유기농 가게’로 부를 수 있다. 최근 사회적 은행을 찾는 고객이 늘어나면서 한쪽에서는 “늘어나는 고객을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다”는 배부른 하소연도 흘러나온다.
 
급성장 GLS방크, 절대규모는 미미
독일 최대 규모의 사회적 은행인 GLS방크가 올해 들어 지금까지 유치한 신규 고객 수는 이미 지난해 신규 고객 수를 넘어섰다. 매달 신규 고객이 2천 명에 달한다. 지난해 GLS방크의 예금액 증가율은 30%에 달했다. 이 정도 증가율은 2009년이 처음은 아니다. 그 전 몇 년간 이 은행의 예금액 증가율은 20% 이상이었다. 다른 사회적 은행에도 고객이 몰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독일 민간 연구소인 유럽경제연구소(Centre for European Economic Research)의 마티아스 쾰러 연구원은 “GLS방크의 예금액 증가율만 보더라도 사회적 은행들이 폭발적인 성장일로에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은행의 성장세가 현실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사회적 은행은 금융위기라는 타이밍을 잘 맞췄을 뿐이며, 최근 고객이 몰리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다. 사회적 은행 자체를 진지하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적 은행 중에서 가장 오래된 36년의 역사를 가진 GLS방크의 자산 총액은 14억유로로, 단연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14억유로는 도이체방크 자산 총액의 1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금액이다.
쾰러 연구원은 “사회적 은행의 시장점유율은 기대 이하”라며 현실을 일깨웠다. GLS방크를 제외한 독일 내 사회적 은행은 6군데 남짓 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업계 내에서도 정확한 수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은행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독일 내 사회적 은행의 총고객 수는 20만 명으로, 이들 고객 파일을 모두 합쳐도 명함 케이스에 다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소셜 뱅킹’이 핵심 경쟁력
그럼에도 사회적 은행이 앞으로 금융업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회적 은행의 금융 업무는 독일에서 ‘소셜 뱅킹’(Social Banking)이라는 용어로 불린다. 마케팅 전문가 발터 카펠만은 “도덕적으로 결점 없는 금융 업무를 가리키는 소셜 뱅킹이야말로 금융업계의 장기적·핵심적 경쟁력 요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럽경제연구소가 최근 금융업계 전문가 2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업계 매니저 2명 중 1명은 소셜 뱅킹이 금융 시스템의 장기적 트렌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독일 국민의 절반은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자산 증식’을 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금융위기가 사회적 은행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부실채권, 은행 구제, 은행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실추시킨 금융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의 고액 연봉을 둘러싼 논란도 사회적 은행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 독일의 ‘소셜뱅킹연구소’(Institute for Social Banking)의 카타리나 벡크는 “현 금융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과거에는 자산증식이 사람들의 목적이었다. 재테크를 하는 사람들은 은행에 맡긴 자신의 돈이 아동노동이나 무기거래, 그리고 환경파괴에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자신이 맡긴 돈이 행사하는 엄청난 영향력과 그 돈을 누가 굴리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사람들이 서서히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독일 보훔의 GLS방크 본사 건물

유기농·대안학교 등 투자처 밝혀
사회적 은행은 고객의 돈을 환경·문화·교육 프로젝트에만 투자한다는 것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사회적 은행의 예금 투자처는 각 은행의 결산보고서에서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GLS방크는 대출 건마다 유기농 제과점이나 발도르프학교1) 등 투자처를 밝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객이 원하는 금융 업무의 투명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기업컨설팅사 ZEB의 파트너 울리히 호이어는 최근의 금융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지됐던 사회적 은행의 성장세를 가속화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하며, 최근 사회적 은행 성장세의 뿌리 깊은 원동력은 다른 곳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사회적 은행의 성장세는 “독일 사회에서 이미 10여 년 전부터 나타나는 가치관의 변화”를 대변하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 주류를 이루는 가치관은 유기농과 환경, 그리고 의식적인 삶의 욕구로 집약된다. 안전한 먹을거리와 천연 화장품, 유해물질이 없는 옷 등 다양한 소비 분야에서 이런 가치관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관련 학계는 ‘건강한 생활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이른바 ‘로하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치관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야흐로 독일인 3명 가운데 1명은 로하스족에 속하는 시대가 되었다.
 
‘로하스족’이 금융업계 변화 끌어내

호이어는 “로하스적인 삶의 방식을 금융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자각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은행의 고객 수가 600만 명 선까지 거뜬히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는 점이다. 유기농 식품이 제아무리 인기 있다고 하더라도 독일의 식품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4%에 불과하다. 금융업계의 ‘유기농 가게’로 불리는 사회적 은행의 사정이 이와 다르라는 법이 있을까? 물론 1997년만 해도 ‘그린펀드’(환경과 금융을 접목한 예금상품) 수는 12개에 불과했다. 지금은 독일어권에서 그린펀드 수는 무려 330개로서 그 총액이 310억유로에 달한다. 또한 미국의 ‘지속 가능한 기업연구소’(Sustainable Business Institute)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은행 고객의 42%는 친환경적인 재테크 상품을 선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친환경적인 재테크 상품을 선택하기 위해 은행까지 바꾸는 고객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형은행도 이미 그린펀드나 적어도 친환경적인 기치를 내건 금융상품을 선보이고 있어 사회적 은행의 입지는 여전히 좁아 보인다.
 
고객의 이중성과 성장 한계

알리안츠사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평균적인 은행 고객은 상당히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다. 은행 고객 4명 가운데  3명은 자기가 돈을 맡긴 은행이 고위험군 금융상품에 투자하지 않기를 바라며, 3명 가운데 2명은 은행이 고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겨 투자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반면 최소한의 이자 수익 보장은 물론이고 평균 이상의 수익을 받길 원한다. 이쯤 되면 사회적 은행이 고객의 눈높이를 따라가기란 매우 힘들어 보인다.
사회적 은행은 고객에게 높은 이율을 약속할 형편이 못 된다. 사회적 은행의 콜머니 이자율은 0.75~1.5% 수준이다. 사회적 은행에서 일반계좌를 개설하려면 수수료까지 내야 한다. 수수료 없는 일반계좌가 대세인 요즘에 고객이 납득하기 힘든 조건이다. 특히 고객의 86%가 은행을 고를 때 ‘일반계좌의 저렴한 수수료’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꼽은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은행이 저위험군 금융상품에 투자한다면 수수료를 더 지급할 용의가 있다는 고객이 3명 가운데 1명에 불과하다는 것만 봐도 사람들이 은행에 무엇을 바라는지 잘 알 수 있다.
사회적 은행은 설립 목적에 공감한 고객이 대거 몰려온다고 해도 이를 무작정 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고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사회적 은행은 성장의 한계에 쉽게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호이어는 “사회적 은행이 풀어나가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외적 성장과 더불어 소셜 뱅킹의 원칙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 사회적 은행은 고객의 돈을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투자하고 부적절한 대출을 최소화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고 말했다.
고객은 사회적 은행이 문제의 소지가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설립 목적에 공감해 사회적 은행을 거래은행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은행에 대한 고객 충성도가 얼마나 높은지는 관련 인터넷 포럼 사이트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사회적 은행의 고객들은 마치 프로축구팀의 열혈 팬만큼이나 충성도가 높다. 이 고객들 덕분에 뉴스채널 <n-tv>와 재테크 잡지〈뵈르제 온라인>(Borse Online)의 설문조사에서 GLS방크는 2010년 ‘올해의 은행’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전까지 ‘올해의 은행’에 뽑힌 곳은 대형은행뿐이었다. 대형은행조차 금융업계에서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대중의 관심 밖에 있었다.
사회적 은행에서 파장된 금융업계의 개혁이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최근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금융업계가 도덕적·환경적으로 올바른 사회적 은행 덕분에 ‘이미지 개선’과 ‘수익률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으로 내다본다. 마티아스 쾰러 연구원은 “교육 수준이 높고 수입이 많은 고객층에 힘입어 사회적 은행 역시 고수익을 낼 수 있으며, 그 결과 사회적 은행의 고객 수익률은 시중 일반은행의 고객 수익률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회적 은행에 대한 ‘이상’은 여기까지다. 그다음은 사회적 은행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나갈지에 달렸다. 
ⓒ Die Zeit
번역 김태영 위원 

[Tip & Tap]
1) 발도르프학교(Waldorfschule):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에 의해 1919년 독일에서 창립됐다. 발도르프학교의 교육 목적은 평범한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찾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학생과 교사의 유대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고 교육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 학교에서는 1학년에서 8학년까지 담임교사가 바뀌지 않는다. 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은 개별 보충수업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져 유급이 없으며, 학기 말 성적표에도 학생의 학습 발달과 성취도 및 재능 등에 대한 교사의 견해만 명시될 뿐, 수치화된 성적은 없다. 현재 독일 내 발도르프학교는 217개로, 전세계적으로 발도르프학교 996개와 발도르프유치원 1500여 개가 운영되는 등 꾸준한 성장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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