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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민낯 드러낸 폴란드의 성공 스토리
폴란드 경제 성장의 빛과 그림자
[67호] 2015년 11월 01일 (일) 보즈테크 칼리노프스키 economyinsight@hani.co.kr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서구 자본에 대한 의존도 커지고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에 신음

폴란드는 2000년대 초반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 가운데 기존 회원국과의 격차를 가장 획기적으로 줄인 나라로 꼽힌다. 폴란드 역대 정부는 민영화, 조세 감면, 외국 자본 유치 등의 정책을 추진해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그 과실은 폴란드 국민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임금상승률은 경제성장률의 절반에 불과하다. 외국계 기업들은 이익을 대부분 본국으로 가져갔다.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을 감수해야 했다. 폴란드 국민들은 정부의 장밋빛 경제성장론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보즈테크 칼리노프스키 Wojtek Kalinovski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베아타 시들로 폴란드 법과정의당 대표가 2015년 10월 22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REUTERS

폴란드의 집권 엘리트층은 그동안 폴란드가 유럽에서 유일하게 경제 성장과 안정이 보장된 국가라고 선전해왔다. 유럽이라는 저성장의 사막에 존재하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폴란드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두 우파 정당, 시민연단과 법과정의당 간 정권 교체에서 알 수 있듯 폴란드 국민 대다수는 더 이상 정부의 선전을 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5월 폴란드 대통령 선거에서는 전국적으로 불어닥친 유로존 가입 반대 물결을 타고 야당인 보수 성향의 법과정의당 후보가 지난 7년 동안 여당이던 중도 성향의 시민연단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대이변을 연출했다(폴란드는 내각중심제 국가며 대통령은 법률안거부권 등을 보유할 뿐 실질적 정책집행권은 없다 -편집자). 정치신인 안제이 두다의 대통령 당선과 20%의 득표율로 1차 투표에서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록가수 출신의 파베우 쿠키스 같은 ‘반체제’ 성향 후보에 대한 젊은 층의 지지는 폴란드 사회가 얼마나 깊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23개 은행 중 16개가 외국계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목표로 실시된 급진적 경제 개혁인 이른바 ‘충격요법’ 이후 폴란드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경험했다.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 폴란드 역대 정부는 무엇보다 가격경쟁력 제고, 민영화, 조세 감면 정책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특히 독일 기업을 필두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급증했고 EU 가입 이후 유럽기금이 유입되면서 공산당 체제 아래서 폐허가 된 폴란드의 생산구조가 근대화됐다. 또한 수백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최근 10년 동안 폴란드 국내 총투자에서 FDI가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15%로, 이는 5%에도 못 미치는 프랑스 국내 총투자 대비 FDI 비율과 비교된다.

그 결과 폴란드는 서구 기업들의 중요한 소득 원천이 되었다. 폴란드 중앙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폴란드에 진출한 서구 기업들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150억유로(약 150조원)의 이익을 기록했으나, 그중 755억유로가 폴란드에 재투자되지 않고 본국으로 이전됐다. 반면 어떤 폴란드 기업도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다.

더구나 유럽의 노동분업 체계에서 폴란드가 차지하는 위상도 여전히 매우 취약하다. 즉, 고숙련 일자리와 연구·개발 일자리는 대부분 서유럽 국가에 집중됐다. 따라서 폴란드도 다른 동유럽 국가들처럼 서구 기업들의 공장 해외 이전 대상 국가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폴란드 경제는 서유럽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존 관계의 심화는 폴란드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다국적기업의 폴란드 경제 지배는 제조업뿐 아니라 은행업과 유통업 등 서비스업에도 미치고 있다. 특히 폴란드 경제에서 가장 수익률이 높은 은행 부문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총자산의 63%를 갖고 있으며, 23개 은행그룹 중 16개 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1990년대 폴란드 은행들을 대략 60억유로(약 7조8천억원)에 인수했다. 이렇게 인수된 폴란드 외국계 은행들의 수익은 2013년 한해에만 약 28억유로에 이른다. 그중 23억유로가 본국으로 송금됐으니 이들 투자자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의 은행 지배가 폴란드 금융시스템의 근대화에 기여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폴란드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을 촉진해 국민경제의 잠재 성장력을 저해했다. 2009~2010년 유로존 위기 때 폴란드의 외국계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빠르게 개선시키는 데 급급한 나머지 자신들의 결정이 폴란드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일반인에 대한 대출을 급격하게 축소했다.

이 은행들은 폴란드 국민이 국내 화폐인 즈워티 대신 주로 스위스프랑으로 표시된 외화 대출을 받도록 부추겨 환위험을 국민에게 전가했다. 현재 외화 부채를 지고 있는 폴란드 국민은 약 100만명이다. 1990년대 초 폴란드 은행의 민영화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한 스테판 고발렉 전 재무차관은 이후 민영화의 폐해를 깨닫고 외국계 은행들의 주식을 폴란드 국민이 인수해 경영권을 되찾자고 열렬하게 주장했다.

   
▲ 외국인 투자자들은 폴란드 경제에서 가장 수익률이 높은 은행 부문의 총자산 63%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소유한 폴란드 BPH은행의 바르샤바 본사. REUTERS

이러한 경제 의존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폴란드의 임금 수준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서유럽의 평균 임금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EU 통계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 폴란드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8.4유로(약 1만1천원)로 2000년보다 2배 증가했다. 하지만 독일의 시간당 임금 31.4유로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폴란드의 노사관계는 사 쪽에 유리하다. 폴란드 정부는 외국 기업의 공장 유치를 위해 노동자를 희생시키고 있다. 2000~2014년 폴란드 국내총생산(GDP)은 64% 증가했지만 임금은 37% 상승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같은 기간에 총부가가치 중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44%에서 41%로 감소했다.

게다가 정부의 고용정책은 유연성 제고가 핵심이다. 2009년 위기 이후 폴란드의 불안정 고용은 2배 이상 증가했다. 불합리한 계약을 한 노동자는 유급휴가가 없고 실업수당이나 퇴직금 같은 사회복지수당도 받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가 없고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다.


시간당 임금은 독일의 4분의 1 수준

현재 폴란드에서 불안정 고용 상태인 노동자 수는 약 140만명이다. 특히 30살 미만 청년층의 25%가 이런 형태의 노동계약에 묶여 있다.

폴란드가 고숙련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하청 국가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이는 폴란드 지배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실 폴란드에서는 체제 전환을 계기로 집권층, 외국계 기업 고위 간부, 에너지 및 1차 산업 부문 국영기업들로 구성된 신(新)상류층이 등장했다. 신상류층은 서유럽 상류층의 생활 수준과 유사한 생활을 영위한다. 반면 일반 대중의 생활은 열악하다. 실제 폴란드의 소득 격차는 서유럽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따라서 임금을 올리고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은 폴란드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하락시킬 수 있으며, 상류층이 누리는 특권의 물적 기초를 위협할 수 있다.

폴란드가 유럽의 노동분업 체계에서 지위 상승을 꾀하려면 여러 기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폴란드는 이를 온전히 갖추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시급한 것은 공정하고 효율적인 행정기관과 믿을 수 있는 사법기관이다. EU가 해마다 발간하는 ‘국가별 부패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EU 회원국 국민의 평균 4%가 ‘일상적인 부패행위에 노출돼 있다’고 답변한 반면 폴란드 국민은 15%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런데도 현 집권여당인 시민연단은 부패행위 근절을 추구하기보다 ‘합리적 폴란드’와 ‘급진적 폴란드’를 대비시킴으로써 안제이 두다 대통령과 법과정의당을 공격하는 문화전쟁에만 열을 올렸다.

물론 이 전략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폴란드의 성장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수많은 유권자가 법과정의당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두다 대통령과 법과정의당은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극우 성향을 취하지만 경제·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좌파적 입장을 보인다. 더구나 두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폴란드 자유노조인 솔리다르노시치(Solidarność)의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외국계 은행과 유통 기업들에 대한 특별세를 도입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처럼, 안제이 두다 대통령도 독일이 지배하는 유럽에 맞서 폴란드의 국익을 더욱 잘 방어하겠다고 선언했다. 시민연단정부가 추진했지만 실제로는 한번도 준비되지 않았고 공론화되지 않았던 유로존 가입 문제의 경우 두다 대통령은 회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차후 총선에서 법과정의당이 정권을 잡으면 폴란드의 유로존 가입은 더더욱 먼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기후변화 방지 노력 분야에서도 폴란드는 다른 EU 회원국들과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2014년 10월, EU가 채택한 ‘2020~2030년 3차 기후-에너지 목표’는 경제의 석탄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EU 회원국 중 지난 1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지 않은 유일한 대국인 폴란드에서 맹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최근에는 난민 문제까지 겹쳤다. 총선을 앞둔 폴란드는 난민 강제할당제 수용 불가 입장을 천명했다. 따라서 법과정의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폴란드는 시민연단 정부의 유산인 사회 불안에 더해 EU 내 갈등의 새로운 온상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5년 10월호(제350호)
La Pologne, une fausse ‘success-story’
번역 박수현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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