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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위험계급 ‘프레카리아트’
[Focus]가이 스탠딩 교수 인터뷰
[5호] 2010년 09월 01일 (수) 조계완 kyewan@hani.co.kr

조계완 국내편집장

가이 스탠딩(Guy Standing) 교수는 영국 배스(Bath)대학의 ‘경제적 안정’ 분야 교수로, 국제노동기구(ILO)의 ‘사회·경제적 안정 프로그램’ 국장을 지낸 바 있다. 그는 <글로벌 노동유연화>(1999)와 <세계화 이후의 일>(2010)을 펴내는 등 국제 노동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BIEN·Basic Income Earth Network)의 공동 창립자이자 명예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에 온 그는 <이코노미 인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0년간 노동시장의 급속한 유연화가 새로운 위험계급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층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청년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한국에서도 프레카리아트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8월19일 오전 서울 마포에 있는 롯데시티호텔에서 이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으로 고용과 삶의 안정에 미치고 있는 파괴적 충격은 어떤 것인가?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지난 30년에 걸쳐 진행된 세계화라는 전 지구적 변환이 초래한 위기다. 이 변환 과정을 보면 시카고학파와 연관된 신자유주의적 경제사상이 세상을 이끌고 금융자본이 주도하면서 전 지구적 시장체제가 구축됐다. 그 결과 2008년 위기가 터졌다고 본다. 이 30년간의 거대한 변환 과정에서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고용 없는 성장’이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에는 경제위기 이후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경기회복’(Jobloss Recovery)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것이 위기를 불러온 근저에 깔려 있던 문제들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 시장이라는 사이렌은 사람들을 ‘불안정’이라는 바위 위로 유혹했다. 이런 지구적 변환은 공동체와 사회적 연대라는 강력한 관념을 제거했고, 자유와 평등도 침식시켰다. 지구화는 경제적 불안을 초래하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1929년 대공황 때도 경험했던 위기인데 모든 선진국에서 거대한 규모로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불평등을 문제 삼지 않는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경제 전체에 퍼지는 ‘트리클다운(Trickle Down) 효과’를 신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리클다운은 더 이상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불평등은 사회를 좀먹고 패자를 불만과 좌절, 상대적 박탈감에 빠뜨린다.

최근 스탠딩 교수 본인이 ‘프레카리아트’라는 용어를 사용해 노동시장의 새로운 집단을 지칭하고 있는데.
일용직과 임시직 등 비정규직, 그리고 파견·용역 등 간접노동으로의 변화는 전세계적인 경향이다. 노동시장의 급속한 유연화가 양산하고 있는 새로운 계층이 바로 프레카리아트다.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안정적인 고용 전망을 갖지 못한 사람들, 별다른 직업 경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 등으로 구성된 집단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을 프레카리아트(Precariat·‘불안정한’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Precari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라고 부를 수 있다. 프레카리아트는 전 지구적 변환이 초래한 최근의 사회·경제 위기가 보여주는 핵심적인 특징이다. 불안정한 직업들을 전전하면서 불안한 노동 생애를 날마다 보내고 있는 프레카리아트는 전세계적으로 수십억 명에 이른다. 대부분은 ‘도시 유목민’처럼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미래에 어디에 있을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이들은 정체성도 없고, 일정한 직업도 없고, 자기 인생의 미래를 설계하지도 못한다. 프레카리아트는 일자리를 갖고 있어도 사내 복지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며,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연금 복지도 제한적으로만 받는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비정규직으로 서비스 섹터를 전전하며 살아간다.

비정규직이 점차 프레카리아트화된다는 얘긴가?
한국과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보험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는데, 이는 프레카리아트가 되거나 프레카리아트로 남아 있을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개발도상국은 물론 심지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하는 잘사는 나라에서도 과도한 노동 유연화로 불안정 노동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하루 일을 끝내고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채팅을 하고 축구 경기에 광적으로 흥분하면서 여가를 보낸다. 극도의 불안정으로 인해 자기 삶을 설계할 수 없기 때문에 인터넷과 축구와 같은 스포츠에 여가를 많이 의존하는 것이다. 현대판 ‘빵과 서커스’(로마시대에 민중에게 먹을거리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정치와 민주주의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만든 정책)라고 할 수 있다.

프레카리아트는 비정규직 범주와 무엇이 다른가?
프레카리아트는 단순히 고용형태나 임금수준 등을 넘어 사회와 공동체, 삶의 안정과 불안 등의 측면에서 폭넓게 노동자 집단을 파악하는 개념이다. 프레카리아트는 소득 불안정으로 인해 삶의 방식도 극도의 불안정성을 보인다. 대다수 프레카리아트는 창의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가져다주는 윤리규범을 결여하고 있다. 이들은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나 주변부 노동자와도 다르다. 이들은 21세기 전혀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 집단이고,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해 갈수록 그 층이 두꺼워질 것이다. 나는 이들을 ‘새로운 위험 계급’(New Dangerous Class)이라고 부른다. 사실 프레카리아트는 외국인이나 이주노동자, 경제적 약자 등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다. 이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침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회보장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활이 불안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 예컨대 외국인과 이주노동자에게 적대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이 점점 사회에서 다수가 돼가고 있음에도 어떤 정책을 통해 이들을 도울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청년실업률이 13%(2009년)로 근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다.
한국에서도 노동시장의 지형이 크게 변화하고 있고, 새로운 프레카리아트 계층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모든 OECD 국가에서 프레카리아트층이 새로 형성되면서 많아지고 있다. 비정규직 증가 등 노동시장 유연화 때문이다. 한국의 프레카리아트 규모는 일본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전체 노동력 중 임시직 비율이 OECD 국가에서 가장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레카리아트로 분류되는 노동인구 비율이 높다고 볼 만한 근거도 있다.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과 비교할 때 1990년대 후반 64.3%에서 2005년 54.9%로 더 줄었다. 대다수 프레카리아트는 저임금 노동자다.

청년실업자도 점차 프레카리아트화될 것으로 보는가?
전세계적으로 프레카리아트는 청년과 여성층에서 많아지고 있다. 인종적 소수자가 새로운 노동인구로 유입되면서 이 층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들은 유연한 저임금 노동력의 원천이다. 프레카리아트는 고용형태와 생활양식, 그리고 그들이 공유하는 불안정이란 측면에서 범주화된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프레카리아트가 되기를 두려워하거나, 자신의 자녀·친척·친구들이 프레카리아트가 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경우 포퓰리즘과 정치적 극단주의의 구호에 휩쓸리기 쉽다는 점이다. 이것이 지금 세계 경제위기가 직면한 가장 두려운 측면이다. 불안정의 진창에 빠진 프레카리아트들은 자신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선동가 혹은 극단주의자를 지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마피아와 결탁해 사회를 지배하려 한다. 베를루스코니 주변의 엘리트들은 선거에서 승리하려고 프레카리아트의 공포를 이용하고 있다. 미국의 티 파티(Tea Party·세금 인하와 작은 정부 등을 주창하는 보수파 정치운동 단체)의 망령은 프레카리아트의 시대와 그들의 불안정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사태 발전을 방관한다면 굉장히 추악한, 그리고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닥쳤던 공포스러운 사건들과 흡사한 무언가가 앞으로 일어날 것이다.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고, 이런 악몽이 닥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한국의 청년실업자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최근 이탈리아에 갔는데, 그곳의 프레카리아트는 조직화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일할 권리와 시민권 등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노조와 함께 시위도 하고 각종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동을 모색하고 있다. 조직화를 통해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역사적으로 젊은이들은 진보적 발전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만약 젊은이들이 그 열정을 지나치게 개인적인 목표와 생각에 낭비한다면 그들은 고통을 겪는 세대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낙관한다. 청년들은 새로운 정치적 어젠다를 이끌어낼 수 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공동대표인데, 우리 시대에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가?
1986년 유럽의 몇몇 경제학자가 벨기에에 모여 경제발전과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논의를 했다. 기존 복지국가 프로그램은 당시 유럽의 다양한 계층을 포괄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용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사회보장제도에 접근할 수 있으려면 뭐가 필요한지, 어떤 전략으로 이런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내일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으려면, 즉 미래를 설계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을 하고 있느냐, 또는 어떤 일을 하느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Basic Income)이다. 지급받는 자격으로 어떤 조건도 부과하지 않고 나이·직업 등과도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매월 일정한 금액의 현금 기본소득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프레카리아트들이 겪고 있는 삶의 불안을 없애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내일과 모레, 혹은 미래에 소득이 안정적으로 생긴다는 확신이 있으면 삶의 안정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프레카리아트를 극복할 새로운 진보적인 정치적 기획이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개인의 생활과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미래에 대해 덜 불안해하게 된다.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은 더 이타적이 되고 사회적 책임감도 증진된다는 실제 증거도 있다.

기본소득 구상의 현실성을 둘러싸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처음에 이 아이디어를 학자나 정부 관료에게 이야기하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지만, 최근에 기본소득을 시도하는 곳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애초에 유럽 국가나 서구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으나, 흥미롭게도 개발도상국에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브라질이 좋은 사례다. 브라질에서도 1990년대 초반에는 경제학자나 정치인 모두 기본소득 도입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2004년 의회를 통과한 뒤 처음에는 농촌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실시되다 룰라가 대통령이 된 뒤 도시 지역까지 확대됐다. 여성과 아동이 주로 혜택을 받고 있는데, 지금 브라질 국민 5천만 명이 매달 기본소득을 받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에서도 매월 30달러씩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실험 결과 빈곤과 불평등이 줄어들고, 아이들의 영양결핍이 해소되고 학업 성취도도 높아졌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사회적 연대도 강화됐다. 물론 크고 작은 경제적 범죄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우리가 기본소득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은 BIEN이 창설된 1986년보다 지금이 더 절실하다. 근본적인 불안정과 만성적인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경제에서 이런 불안정을 기존의 전통적인 공적 사회보장제도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평등과 이에 따른 사회적 위험을 완화하려면 일정 금액의 재분배를 제공하는 또 다른 메커니즘을 찾아야 한다. 기본소득이 그 한 가지 해결책이다.

노동 유연화 세계에서 ‘분배적 정의’란 무엇인가?
오직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약자인 계층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다른 계층과의 격차를 줄이는 것만이 분배와 관련해 ‘공정한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자선이 아니라 하나의 ‘권리’로서 주어져야 한다. 이 권리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요구를 표현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서로 연대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프레카리아트도 삶의 안정을 되찾고 우리 사회도 건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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