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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
[64호] 2015년 08월 01일 (토) 홍대선 economyinsight@hani.co.kr
   
▲ 안규문 대표는 2005년 밀레코리아 설립 때부터 회사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최고경영자(CEO) 임기를 10년으로 보장받은 사람은 전세계 밀레 법인에서 그가 유일하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수입차 다음엔 수입가전 시대 온다”

안규문(64) 밀레코리아 대표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 중 몇 안 되는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다. 올해로 취임 10년째다. 116년 전통의 독일 고급 가전업체 밀레는 (주)쌍용 종합상사맨 출신인 그에게 오랜 기간 한국 시장의 전권을 맡겼다. 밀레가 ‘외국산 가전의 무덤’으로 통하는 한국 시장에서 뿌리를 내린 데는 30여년 경력의 세일즈 분야 전문가인 안 대표의 ‘한국적 경영 방식’이 주효했다. 그는 “우리는 소비자들의 안목을 믿는다. 이게 핵심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홍대선 부편집장

밀레코리아가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년을 돌아본다면.

국내 가전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90% 이상 점유하고 있다. 이들의 홈그라운드에서 용하게도 살아남았다. (웃음)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소비자들의 성원 덕분이다. 밀레는 한국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한길만 팠다. 밀레의 진공청소기, 드럼세탁기, 식기세척기, 인덕션(전기레인지), 전기오븐 등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부문의 매출액은 10년간 400% 넘게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안방 시장에서 자리잡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지난 10년을 짚어보면 생사를 넘나드는 구간이 많았다. 처음에는 기업 간 거래인 B2B에서 시작했지만 변화하는 시장 흐름에 맞춰 소비자 중심의 B2C로 사업 구조를 빠르게 전환한 게 주효한 듯하다.

2005년 밀레코리아 설립 때 총매출의 70% 이상은 건설회사에 주방제품을 납품하는 ‘프로젝트 사업’에서 나왔다. 당시는 건설 경기의 호황과 맞물려 서울 강남의 고급 주택을 중심으로 ‘빌트인’(붙박이) 주방가전을 공급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경기 흐름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건설사 위주의 불안정한 사업 구조에서 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B2C로 사업 구조를 바꾸는 게 간단치 않았다. 소비자에게 다가서려면 적극적으로 홍보도 하고 광고도 해야 하는데 본사의 규정에 의해 광고비 지출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명품은 오래 써도 새것 같고 질리지 않아야

고민 끝에 2005년 ‘인터넷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온라인몰을 만들고 사용 후기와 댓글을 달 수 있게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한국 시장은 입소문이 빠르다. 제품 품평부터 소비자 만족도 같은 섬세하고 까다로운 글이 인터넷을 통해 쏟아졌다.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자신감을 가졌다. 백화점 입점을 확대하고 외국산 가전업계 최초로 자체 애프터서비스망도 구축했다. 우리는 소비자의 안목을 믿는다. 이게 핵심 전략이다.

수입가전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아직 미미하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의 점유율이 17%로 올라선 것과 비교되는데.

수입가전의 국내 점유율은 6% 수준이다. 전체적으로 수입가전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수입차가 부쩍 늘었는데 이것도 불과 몇년 안 됐다. 국산차가 고급화하면서 동급에서 수입차와의 가격 차이는 많이 좁혀졌다. BMW 5시리즈와 벤츠 3시리즈는 6천만~7천만원대다. 제네시스를 사려는 사람은 이런 차로 쉽게 옮겨갈 수 있다.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과 LG가 고급 국산 가전 비중을 늘려가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프리미엄 시장의 전체 파이가 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자동차가 갔던 길을 가전이 따라가는 모습이다. 우리는 독일 차의 국내 시장 공략을 많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제품 내구성이 최소 20년이라고 했는데 근거가 있나.

밀레 제품의 20년 내구성은 엄격한 시험을 통해 입증한다. 세탁기는 출시 전에 무작위로 골라 1만시간 연속 가동 테스트를 거쳐야 비로소 제품이 생산된다. 1만시간은 하루에 평균 세탁 시간을 2시간으로 잡고 일주일에 5회(10시간), 1년 52주(520시간)씩 20년(1만400시간) 사용한다고 했을 때 나오는 시간이다. 내구성 연한은 최소 기준이다. 한번 사면 25~30년은 쓴다. 그 어떤 제조사도 20년을 기준으로 제품 내구성을 시험하지 않는다.

   
▲ 밀레 제품의 내구성은 최소 20년이다. 안규문 대표는 “명품은 값비싼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래 써도 새것 같고 익숙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유럽에서는 고급 가전업체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인지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고가의 명품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소비층은 독일에서도 제한돼 있다. 하지만 밀레 제품을 한번 사용한 고객은 계속 밀레 제품을 찾는다. 브랜드 충성도가 높다는 말이다. 품질, 편의성, 디자인 등에서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명품 제품이 모든 대중에게 다가서는 것은 아니다.

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판매한다는 얘기인가.

그렇지 않다. 처음에 마케팅은 소득 상위 3%를 겨냥했다. 초기 주력 제품은 세탁기였다. 이후 ‘엔트리 아이템’(브랜드 입문 제품)을 청소기로 잡으면서 마케팅 대상이 확 넓어졌다. 이는 전략적으로 잘 설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밀레는 청소기의 내구성도 20년이다. ‘청소기가 20년인데 다른 것은 불문가지 아니겠느냐’라고 하는 소비자 반응이 많았다. 3~4년 전부터 청소기 매출이 크게 늘어나더니 이제는 밀레코리아의 제품군 중에서 매출 1위로 올라섰다.

덕분에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 법인 설립 초기 1% 미만이던 소비자 인지도는 2014년 29%까지 올라갔다. 아직 일본에서 밀레의 브랜드 인지도가 1%대에 머물고 있는 것과 견줄 때 큰 격차다. 신임 법인장들이 일본이나 싱가포르 같은 해외지사로 발령 나면 한국에 들러 일주일 동안 마케팅 강의를 듣고 간다. 밀레는 전세계에 47개의 해외지사를 두고 있는데 한국의 마케팅 전략을 높게 평가해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누구나 ‘명품’을 이야기한다. 최고급 가전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나.

명품은 믿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오랜 세월을 두고 써도 새것 같고 익숙하면서도 질리지 않아야 한다. 밀레는 패션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컬러풀한 디자인은 겉보기에 화려하지만 1∼2년 쓰면 금방 싫증이 난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백색가전 특유의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오랜 전통과 역사, 장인의 숨결도 빼놓을 수 없다. 밀레가 생산하는 제품에는 마지막 공정 단계에서 25년 이상 숙련된 기술자들의 장인정신이 스며들어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프리미엄 가전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어떤 차이가 있나.

삼성과 LG가 2014년부터 프리미엄 제품의 비중을 크게 늘리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셰프 컬렉션 냉장고’는 600만~700만원이다. 청소기도 밀레보다 더 비싼 것을 내놨다. 가전 시장도 자동차 시장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고급화된 국산 제품들이 수입 제품과의 가격 차이를 좁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의 선택에 달렸다. 전통 명문과 신흥 명문의 차이다. 밀레 제품은 이미 검증된 최고급 제품이다. 해외 시장에 가보면 동급 제품에서 밀레와 삼성의 가격 차이가 크다. 내구성이나 품질 면에서 소비자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불문가지라고 본다.

2015년 국내 시장에 새로 선보일 제품은 무엇인가.

독일 베를린의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4’에서 소개됐던 ‘빌트인 G6000 시리즈’ 식기세척기를 2015년 11월 출시할 예정이다. 물 사용량과 전력 소비를 최소화한 제품이다. 6.5ℓ의 물로 최대 14인분의 식기를 세척할 수 있게 설계됐다. 9월에는 새 인덕션을 선보일 계획이다. 일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친환경 제품으로 수요가 늘고 있는 제품이다. 발화 속도가 빠르고 냄비 크기에 따라 조리 영역을 감지하는 기능이 장착돼 있다.

그동안 외국계 기업으로서 겪은 서러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답답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진공청소기를 들여왔을 때 받았던 흡입력 테스트와 관련한 에피소드다. 청소기의 흡입력은 바닥에 닿는 호스를 통해 본체가 빨아들이는 집진력으로 측정해야 하는데 호스를 다 빼고 청소기 몸통에 나 있는 구멍으로 측정하더라. 이제 그런 정도는 홈 어드밴티지로 인정하고 있다.

“청소기, 세탁기 내구성 최소 20년”

올해 임기 10년째다. 최근 독일 본사에서 공동 회장이 방한했는데 유임 언급이 있었나.

과유불급이라 했다. 너무 욕심부리면 안 된다. 1977년 1월 (주)쌍용에 입사해 쿠웨이트지사 등에서 종합상사맨으로 일한 경력까지 포함하면 38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한국 시장에 밀레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소개하고 사업 구조를 안착시킨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신제품이 쏟아지지만 제품 수명이 얼마나 짧은가 보라. 우리는 테스트 기간 5년에 20년 내구성으로 품질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 명품은 값비싼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밀레가 제공하는 삶의 편의와 가치를 더 폭넓게 공유하도록 하는 게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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