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 Book
     
자본주의, 그 원초적 본능
[경제와 책]
[5호] 2010년 09월 01일 (수) 조계완 kyewan@hani.co.kr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짐 스탠포드 지음, 안세민 옮김, 부키, 2010

조계완 국내편집장
 
흥미롭게도, 자본주의가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더욱 이상한 것은 경제학자들조차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고전파 경제학 교과서에는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간단히 ‘경제’라고 한다. 오직 한 가지 경제 형태만 있으니, 굳이 이름을 짓거나 정의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자본주의 주류 경제 교과서에는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계급적 구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경제에 존재하는 건 가계와 기업, 소비자 아니면 생산자일 뿐이다. 여기서는 노동자 역시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일 뿐이다. 사회계급적 선에 따른 구분이 없으니 이해를 둘러싼 격렬한 갈등과 대립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오직 하나 ‘가격’이라는 시장의 힘에 의해 조화롭고 공평하게 경제가 굴러가고, 또 가장 효율적으로 자원이 분배되고 최적의 균형상태가 항상 보장되는 그런 경제 세계가 펼쳐진다. 주류 경제 교과서에서는 가치라는 말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가격이 모든 경제현상을 설명·분석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왜 다시 자본주의인가? 사람들이 일을 해서 필요한 상품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것이 경제다. 여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자본주의는 그중 한 가지 형태일 뿐이다. 물론 자본주의는 매우 특별한 경제 형태이다. 자본주의가 지구상에 존재한 것은 겨우 3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호모사피엔스가 존재한 시간을 24시간이라고 하면 자본주의가 존재한 시간은 단 2분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본주의라는 말만 해도 급진적 성향을 지닌 위험인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자본주의 경제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용설명서>(Economics for Everyone)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교양서다. 캐나다의 진보적 싱크탱크 ‘캐나다 정책대안센터’가 운영하는 웹사이트(www.economicsforeveryone.com)에 들어가보면 이 책과 관련된 몇 가지 강의 교재와 통계자료 를 찾아볼 수 있다. 자본주의,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하는 말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을 던지면서 책은 △경제학의 기초 △노동과 자본 △이윤과 생산 △경기순환 △경쟁 △투자와 성장 △고용과 실업 △분배와 환경 △화폐와 금융 △인플레이션과 중앙은행 △주식시장과 금융화 △연금 △정부의 크기 △정부 지출과 조세제도 △세계화 △경제개발과 빈곤 등을 차례로 다룬 뒤 마지막 장에서 ‘자본주의의 성적표’를 보여준다.
오늘날 거대한 규모로 팽창한 ‘금융’은 <자본주의 사용설명서>에서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리되고 있다. “경제의 중심이 실물 부문에서 금융 부문으로 옮겨가는 것을 금융화(Financialization)라고 한다. 1970년대 후반까지 미국의 실물자산(건물, 장비 등)은 금융자산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경제의 금융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오늘날에는 실물자산 1달러당 금융자산은 2달러가 넘는다. 금융시장이라는 꼬리가 경제의 몸통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격이다. …채권이나 주식은 발행되고 나면 실물 부문에 미치는 영향력은 끝이 나고 만다. 채권이나 주식을 발행한 기업은 자금을 조달해 생산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후에 벌어지는 채권 혹은 주식매매는 이것을 발행한 기업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주식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경제가 건실하다고 생각한다. 경영자들은 자신의 노력 덕분에 기업의 가치가 창출되고 주주들의 부가 늘었다고 자랑한다. 주식가격만 보면 어떤 기업은 하루아침에 수십억달러의 가치를 창출한다. 하지만 사실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금융자산의 투기적 거래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주식 거래의 95% 이상은 이미 발행된 주식이 다시 거래되는 것이다. 이런 거래가 과연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이처럼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에 대한 금융의 기여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지만, 반대로 생산활동을 파괴하는 금융의 힘은 막강하다. 즉 오늘날 금융위기가 극명하게 보여주듯이, 금융이 급속히 팽창할 때는 실물경제에 별다른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금융이 침체되면 실물 부문까지 위기에 빠지게 된다. 금융위기가 닥치면 기업은 투자계획을 연기하고, 은행은 대출을 통한 신용창출을 주저하고, 소비자는 지출을 줄이게 되기 때문이다. 금융이 위기에 들어서면 금융거래에 참가하는 개인 또는 기관들에 차례로 손실이 넘어가면서 결국 실물 투자와 생산,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흔히 “기업들이 요즘 신규 투자를 하지 않아서 고용이 국가 최대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기업의 투자란 무엇인가? 자본가들은 왜 ‘야성적 충동’을 상실한 것일까? “투자 여건이 개선됐는데도 왜 자본가들은 투자에 냉담한 반응을 보일까? 이것은 수수께끼와 같다. 기업의 수익률은 늘었지만 신규 투자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기업이 보유한 막대한 현금은 주주 배당금으로 돌아가거나 금융자산에 투자되는 등 생산적이지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금융시장이 활발하게 움직이면 기업은 실물 투자보다는 금융 투자에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금융 투자는 경제성장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현상은) 자본가들이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부를 증식시키려고 하는 원초적인 본능을 잃어간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윤을 얻으려는 자본가들의 본능은 자본주의에 활력과 창의성을 불어넣는 힘이었다. 따라서 자본가들이 이런 본능을 잃어버린다면 자본주의가 활력 있고 진취적이라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기업이 이윤을 얻기 위해 생산에 투자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기업이 투자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을 제외한 경제주체들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자본가들이 투자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에 달려 있다. 자본가들은 이런 경제적인 힘을 기반으로 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만약 기업이 투자를 중단하면 경제가 위기를 맞기 때문에 정부는 정치적 색깔과 무관하게 기업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정부가 기업에 불리한 정책을 펴면 자본가는 지갑을 닫고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경제는 위축된다. 결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기업들은 서로 공모할 필요도 없다. 정부가 기업 친화적인 자세로 돌아갈 때까지 그냥 투자 결정을 미루고 현금을 움켜쥐고 있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민간 기업의 투자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를 만들어야만 위기를 피할 수 있다.
“국가 개입이냐 시장이냐”, 이는 우리 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제기돼온 논란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자본주의 핸드북의 설명은 조금 시각이 다르다. “보수주의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이것이 경제지표가 나빠지는 가장 큰 이유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자기 조정 기능을 수행하는 자유시장을 만들었는데 정부가 세금과 규제, 공적 소유권 등을 통해 자본주의의 이상을 짓밟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가 혹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가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정부의 개입이다. 즉 정부가 경제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야 하며, ‘누구를 위해’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1970년대 초에 ”쓸모없는 경제학자들이 넘쳐나고, 경제이론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제2차 위기’를 맞고 있다”고 외쳤던 영국의 진보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경제와 관련된 질문에 이미 만들어진 해답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비교우위설’과 ‘세계화’의 경우에도 우리는 경제학자들에게 속고 있는 것일까? “비교우위설에 기초한 자유무역 이론은 경제학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서 이론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심지어 실제로 자유무역이 모든 나라에 이익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됐는데도 여전히 그렇게 맏는 경제학자들이 많다.”
이 책은 여러 가지 거시경제 주제들에 걸쳐 짤막한 표와 사례, 그리고 경제석학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내 계산에 따르면, 세계에서 225명의 부자들이 1년 동안 500억달러를 벌어들인다. 이것은 가장 가난한 12개 국가, 또는 세계 인구의 7%(3억8500만 명)가 1년 동안 벌어들이는 수입과 같다.”(영국 경제학자 파타 다스굽타·2001) 책의 군데군데 배치된 이런 친절한 상자 글에서 우리가 자본주의를 사용하면서 알아야 할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계완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일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최우성 | 편집인 : 박종생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박종생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