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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월가의 일부가 되어가는 미술품 시장
요즘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장에선 무슨 일이…
[63호] 2015년 07월 01일 (수) 하이케 부흐터 economyinsight@hani.co.kr

 

   
▲ 2015년 5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인 1억7940만달러에 판매된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 크리스티 경매인이 해당 작품을 입찰에 부치고 있다. REUTERS

금 대신하는 투자 대상물로 부각되며 가격 급등세…
판매 차익 면세로 부유층 자금 밀물

2015년 5월 크리스티 등 미국 뉴욕의 주요 경매장에선 27억달러(약 3조원)어치가 넘는 미술품이 팔렸다. 2014년의 몇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미술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는 금값이 하락세를 타면서 미술품이 금 투자를 대신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단순히 애호가들의 수집이 아니라 투자라는 얘기다. 요즘은 미술품 시장 자체가 월스트리트의 일부가 되어가는 추세다. 

하이케 부흐터 Heike Buchter <차이트> 기자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다. 이 작품은 2015년 5월1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인 1억7940만달러에 판매됐다. 그런데 기록을 낸 건이 작품 하나만이 아니었다. 같은 경매에서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청동상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남자> 역시 매입자를 찾았는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사람은 이 작품에 1억4100만달러라는 금액을 지급했다.

크리스티 경매 사무소만도 5월 셋째주(11~15일)에 10억달러어치의 회화와 조형품들을 경매에 부쳤다. 경쟁사인 소더비도 5월14일 저녁 3억8천만달러어치를 판매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그리고 뉴욕의 다른 소규모 경쟁 경매사인 필립스까지 고려하면 지난 5월 초부터 같은 달 22일 사이에 소유자가 바뀐 그림들의 현금 가치는 총 27억달러(약 3조원)에 이른다. 이는 아프리카 북동부 국가 에리트레아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뿐만 아니라 금융뉴스 전문 방송사 <블룸버그>가 이들의 2014년 가을 경매 총수입으로 보도했던 23억달러(약 2조6천억원)를 뛰어넘는 수치다.

물론 피카소 그림의 소유자는 경매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VIP들의 동정을 싣는 난에는 래리 가고시언 같은 저명한 갤러리스트와 그리스 해운업자 조지 이코노무 같은 그림 수집가의 이름이 거론됐다. 그밖에 할리우드 스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든가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의 딸 이반카, 그리고 미라지·벨라지오 카지노의 배후 인물로 일컫는 라스베이거스의 거부 스티브 윈도 물망에 오른다. 최근 개막한 뉴욕의 프리즈미술박람회도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중에는 수십억달러 부자인 크리스티사의 소유주 프랑수아 피노의 얼굴도 보였다.

화랑 앞에 구매 고객이 길게 줄을 서는 현상은 동시대 미술품의 인기가 무척 높을 뿐 아니라 그 그림에 엄청난 가격을 치를 수 있는 구입자 역시 많아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초(超)거부들의 수가 전세계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만 해도 3천만달러(약 335억원) 이상의 자산을 소유한 부자가 20만명에 이른다. 부호 자산관리 컨설팅업체 웰스엑스와 스위스 금융기업 UBS가 공동으로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보고서>의 내용이 그렇다.

금 대체하는 월가의 미술품 투자

이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들을 ‘초부유층’(슈퍼리치)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재산을 모두 합산해보면 280억달러(약 31조3천억원)에 육박한다. 그중 4분의 1에 조금 못 미치는 돈이 2170명의 부자들 손에 쥐어져 있다고 보고서는 집계했다.

슈퍼리치들 사이에서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투자와 신분 과시가 결합된 결과다. “어쨌든 식사실 벽을 금괴로 전부 도배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영국의 유력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미술 전문가로 일했던 세라 손턴은 설명한다. 그와 동시에 미술품 시장은 점차 월스트리트의 일부가 되어가는 추세다. 세계 굴지의 자산관리 업체 블랙록의 사장인 래리 핑크는 최근 이렇게 단언했다. “런던이나 뉴욕의 부동산과 더불어 현대미술품이 과거 확실한 투자 대상이었던 금을 오래전부터 대신하고 있다.”

돈 많은 미술품 수집가들이 예전에는 이미 정평이 난 예술가와 명작들에 투자하기를 좋아한 반면 (이를테면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을 주로 선택했다던가 하는 식으로) 요즘은 동시대 미술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첫 전시회에서 자기 작품을 3만달러나 그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신진작가들도 있다.

   
▲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청동상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남자>는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억4100만달러에 팔렸다. 경매가 열리기 전 전문가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REUTERS

그럼에도 그림 시장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곳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최근 있었다. 소더비 화랑은 최근 <폭동>이라는 작품을 2990만달러에 판매했다. <폭동>은 ‘낱말 그림’으로 유명한 뉴욕의 미술가 크리스토퍼 울이 만든 작품이다. 소더비가 이 작품을 판매한 다음날 저녁 크리스티 경매도 울의 그림 한점을 공개입찰에 내놓았는데 팔리지 않았다.

이런 위험이 구입자에게 겁을 주는 건 분명 아니다. 새 미술품 시장에 관한 책을 펴낸 이 분야의 전문가 손턴은 이런 아슬아슬함이 슈퍼리치들에게는 오히려 매력의 일부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미술품 구입자들은 그림을 별장에 그냥 걸어놓으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림을 금융대출 방편의 하나로 활용하려고 한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 같은 곳에서는 몇가지 대출 상품의 담보로 미술품을 받아준다.

피카소 작품의 경우 가격이 거의 2억달러였으니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창업을 한번 해볼 일이다. 미술품을 담보로 대출을 받음으로써 원래의 투자금, 즉 그림을 구입한 자금을 굴릴 수 있어 수익사업에 다시 투자할 수 있다. 그렇게 놓고 보면 피카소의 그림을 사는 데 든 돈은 실제 구입비를 훨씬 밑도는 액수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그림의 주인인 그는 대출 담보인 그림을 곁에 두고 보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 돈이 넉넉지 못한 이들이 돈을 빌리기 위해 물건을 갖다 맡기는 전당포와 달리 앤디 워홀이나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은 슈퍼리치들의 집에 그대로 걸려 있어도 되기 때문이다. 담보물이 정말 벽에 걸려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은행가가 가끔 집에 들를 뿐이다.

하지만 많은 미술품 소장자들은 구입한 작품을 자동온도조절 장치가 있는 창고에 따로 보관하기를 원한다. 그런 공간에 대한 수요는 예술품 수요와 발맞춰 늘어난다. 특히 국제 자유항들이 이 틈새에 눈이 밝았다. 그들은 자유항 부지 일부를 호화 상품의 창고로 지었다. 슈퍼리치들은 자신의 물건을 그곳으로 가져가 보관하기를 원한다. 비단 미술품만이 아니다. 술·시가(엽궐련)·장신구, 심지어 옛모델의 자동차까지 있다. 2014년 <취리히신보>는 ‘스위스 제네바 공항의 면세 창고는 세계 최대 박물관’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미술품 12만점이 그 창고에 보관돼있다는 것이다. 창고 운영자는 누가 어떤 물건을 맡겼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세간에서는 이 창고를 ‘알리바바의 동굴’이라고 부른다.

세밀하게 고안된 ‘안전장치’와 ‘비밀 엄수’라는 특징 말고도 이 창고는 미술품 소장자에게 또 한가지 이점을 제공한다. 여기 보관된 작품에 대해서는 수출입 관세는 물론 부가가치세까지 면제된다. 세금은 물건이 자유항을 떠나 스위스로 향하는 시점에 비로소 부과된다. 싱가포르 자유항에서는 크리스티 경매회사가 고객을 상대로 직접 고급 창고를 운영한다. 미국 부호들은 세금을 절약하는 수단으로 곧잘 미술품을 이용한다. 증권시장에서 얻는 수익과 달리 미술품 구입에 대해서는 자본이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다만 판매자가 그림의 판매 수익을 다른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한다는 전제가 달려 있다. 미술품 판매와 구입에 사실상 면세를 해주는 것이다.

원래 이 면세 규정은 농지를 서로 교환하는 농부들을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이 면세법은 이제 부유층의 거대 자산을 보호하는 방패막이 돼버렸다. 미국 정부는 이 도피처를 봉쇄할 경우 앞으로 10년 동안 약 200억달러의 세금을 추가로 거두게 될 것으로 추산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와 상응하는 면세법 폐지 동의안을 2016년 국가예산안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저항이 일었다. 이런 형태의 거래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변호사 수전 골드스테인 베이커는 “면세제도는 갤러리, 경매사, 공인회계사, 통신판매 전문가들의 사업을 진작시킨다”고 <뉴욕타임스>에서 강조하며 면세법을 폐지할 경우 다수의 관련 사업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했다.

면세 없애면 200억달러 세금 추징 가능

미술시장이 이렇게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통에 피해를 보는 쪽은 일반 대중이다. 미술관들은 과도하게 오르는 미술품 가격과 보조를 맞출 수 없다. 미술비평가 리 로젠바움은 “이 엄청난 가격 상승은 미술관의 작품 구입 예산에 절대적으로 부담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녀의 동료인 <뉴욕매거진>의 제리 솔츠는 피카소의 작품 <알제의 여인들>이 다시 창고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을 우려한다. 지난 60년 동안 이 그림은 전시된 적이 드물었다. 대중에게 가장 오래 공개된 시간이 그나마 지난 열흘간이었다. 그것도 크리스티 경매장의 전시실 안에서 경매에 부친 그림으로.

ⓒ Die Zeit 2015년 21호
Ein Picasso, nur für mich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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