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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ysis] 성장과 발전의 걸림돌 된 유로화
유럽 통합은 과연 경제성장을 촉진했는가?
[62호] 2015년 06월 01일 (월) 자크 아다 economyinsight@hani.co.kr

금융위기로 한계 노출한 유럽 통합 노력… 지역별 격차 해소와 재정 통합이 관건

하나의 유럽을 만들자는 원대한 정치적 구상을 구체화한 첫걸음은 경제 통합이었다. 이를 통해 유럽이 경제적 발전을 이루고 지역 간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단일 시장, 단일 화폐 출범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미국과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금융위기를 통해 유로화의 문제점만 드러났다. 나라마다 경제 발전의 수준이 다르고 국가별 재정이 통합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통합이 성장과 발전의 촉진제인지 아니면 걸림돌인지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크 아다 Jacques Adda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유럽연합(EU)이 처음부터 단일 시장을 목표로 건설된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FC)의 형태로 유럽 통합의 첫 단추를 끼웠을 무렵, 설립자들의 의도는 유럽 대륙에서 다시는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국가 간 연결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유럽 통합으로 유럽 대륙은 강대국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위상을 되찾고 당시 서독을 서구 진영의 품에 안착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유럽공동체를 설계한 로베르 쉬망과 장 모네의 천재성은 ‘통합된 유럽’이라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적 통합부터 시작한다는 전략에서 빛을 발했다.

1973년까지 유럽 통합의 진전과 경제의 급속한 발전은 유럽 단일 시장 설립 전략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유럽 공동시장의 건설은 당시 6개 회원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베네룩스 3국)에서 생산성 및 고용의 급속한 증가와 무역의 확대로 이어졌다.

노동생산성은 노동시간당 국내총생산(GDP)으로 측정된다. 1950년 유럽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45%에 불과했다. 하지만 1차 오일쇼크 직전 기존 회원국 6개국과 장차 유럽공동체에 가입할 6개국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74% 수준까지 상승했다. 이는 유럽 국가들이 국가별 전문화를 통해 국제무역에서 효율성을 높인 측면도 있지만 미국 기업들의 직접투자 증가에 따른 선진 기술과 생산방식 보급에 힘입은 바도 있다. 1973년과 1995년 사이 유럽 경제와 미국 경제의 수렴 과정은 꾸준히 계속됐다. 1995년 마침내 유럽의 시간당 생산성이 미국의 91%까지 올라섰다. 또한 같은 기간 여러 차례에 걸쳐 신규 회원국들이 가입하면서 유럽공동체의 인구는 1억명 이상 증가했다. 이때는 1978년 유럽통화제도(EMS·1979년부터 1999년까지 존재했던 일종의 고정환율제 -편집자)의 도입과 1986년 이후 단일시장 실현을 계기로 유럽 통합이 더욱 심화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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