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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한손으론 기부, 다른 손으론 강탈?
[Trend]
[5호] 2010년 09월 01일 (수) 이브 스미스 economyinsight@hani.co.kr

이브 스미스 블로그 Naked capitalism 운영자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다른 갑부들에게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도록 설득하는 노력에 언론은 당연한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이들의 기부가 과연 진심이 담긴 은혜로운 행위라고 볼 수 있을까?
평론가 윌리엄 랭리는 영국 <텔레그래프>에서 억만장자들의 새로운 기부 방식은 상류층의 기부 문화와 양상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기부 방식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이 아니라 권력과 지위의 또 다른 형태를 띤다고 말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다른 점
최근 들어 계몽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대신에 ‘박애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현상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등 억만장자들은 이 현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박애 자본주의가 21세기의 풍경을 바꾸고 대중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박애 자본주의’는 <박애 자본주의: 승자만을 위한 자본주의에서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로>의 저자인 매슈 비숍과 마이클 그린이 만든 신조어다. 이 책은 자선을 통한 나눔과 시장 원리를 혼합한 형태로 등장한 새로운 자선 방법을 조명했다.
과거의 위대한 기부자들은 재단을 통해 기부 활동을 했다. 이들은 시립공원이나 박물관, 병원 등의 시설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게 하는 것 말고는 재단에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않았다.
반면 유명 인사들이 주축이 된 신흥 기부층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하기를 원한다. 상당수가 젊은 시절에 부를 축적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도 관심이 많다. 이들은 공동체 기업, 사회 환원, 이윤 추구형 박애주의에 대해 세련된 경영학 용어를 곁들여 설명한다. 또 정치가와 은행가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다보스 경제포럼 같은 배타적인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런 모습은 토머스 울프의 소설 <허영의 불꽃>에서 ‘우주의 주인들’(Masters of the Universe)로 묘사된 월가 금융인들의 특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자선’이 권력과 지위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자비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시각이 새로운 기부 방식에 대한 과민 반응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흥 기부층의 행동을 보면 선물을 줄 때 함께 마땅히 넘겨야 할 권리를 넘겨주지 않으면서도 기부했다는 쾌감을 즐기고, 그러고는 결국 원하는 것을 모두 독차지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마이클 블룸버그 미국 뉴욕 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들과 대조적으로 매년 익명으로 여러 자선단체에 수억달러를 기부했다. 블룸버그의 기부 사실은 뉴욕 시장에 당선된 뒤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하는 그의 재정 상태를 통해 공개됐다.
 
   
 

정작 도움이 절실한 곳은 소외
박애주의 역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근대 역사 수업을 듣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좋은 주인의 덕목을 갖추기 위한 귀족의 의도에서 출발했다. 소설에서 예를 찾아보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피츠윌리엄 다시가 있다. 그의 수입은 지금으로 치면 <포브스> 400대 부자 안에 드는 수준이었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은 처음에 다시를 구제불능인 거만한 속물이라고 여기지만, 그가 집을 비웠을 때 친척을 따라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된다. 하인들이 다시가 얼마나 좋은 주인인지 강조하자 엘리자베스는 놀란다. 사람이 남을 돕는 성품을 갖췄는지 확인하는 길은 이처럼 간단하다. 가장 중요한 자선은 집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상업의 성격이 바뀌고 산업혁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업가와 거래자가 생겨나자, 자선사업가들의 기부 행위에도 상당한 영향력이 생겨났다. 예를 들어 앤드루 카네기는 기부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확신했고, 수많은 교육 관련 시설을 세웠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은 많은 곳에 세워진 지역 도서관이다. 카네기는 영리하게 지역 공동체도 공동 투자자로 참여하게 해서 부지를 제공하고 운영 예산을 지원하게 했다. 그럼에도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카네기와 직원들의 생활수준의 현격한 차이에 대해 주목한다.
윌리엄 랭리의 글을 다시 살펴보자. 기부의 규모와 엄격한 경영 마인드로 접근하는 방식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빌 게이츠의 자선 활동으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장기적인 효과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갖는다. 가장 많이 제기되는 비판은 빌 게이츠 재단의 기금모금 기관이 자선활동 기관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하고, 세계 금융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에 투자를 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지적은 빌 게이츠 재단의 부와 유명세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기관으로는 지원금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작 지원이 절실한 곳인데도 말이다.
 
“한 손으로 기부, 다른 손으론 강탈”
이런 행태에 대해 오랫동안 비판해온 마이클 에드워즈 전 세계은행 고문은 <포린 어페어>에 기고한 글에서 “빌 게이츠 재단은 한 손으로 기부를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빼앗아가고 있다”고 비유했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책 <작은 변화: 왜 기업은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가>에서 이렇게 묻는다. “왜 부자와 유명 인사가 학교를 어떻게 개혁하고, 빈민에게 어떤 약을 적정가에 공급하고, 어떤 시민단체에게 자금을 지원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새로운 기부 문화의 반대론자들은 전세계의 관심이 유명한 기부자들에게 집중되면서 정작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지적들은 ‘왜 유명 인사들이 애초에 기부를 하게 됐을까’라는 핵심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비판론자들은 세상을 망하게 한 주범이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자들이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기부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부유 계층에 대한 평판이 극도로 안 좋아지자, 자신보다 운이 좋지 못한 이들에게 수십억달러를 기부함으로써 부자들이 쉽게 면죄부를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최근 <가디언>에 이런 글이 실렸다. “만약 부자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진심이 있다면, 다른 약속을 하면 된다. 세금을 제때 제대로 내고, 직원들에게 월급과 연금을 더 많이 주고, 고용 안정을 보장하고 근로 환경을 개선해주면 된다.”
사회문제라는 것은 종종 너무 힘든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단순한 목표조차 이루기 어려울 때가 있다. 구조가 너무 복잡해서 효율적인 방법이 어떤 것인지 정의 내리기 불가능하다. 그래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거대한 사회문제의 협소한 면만 해결하는 접근 방식을 수용하기도 한다. 이런 접근 방식에선 자원을 적절히 배치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발생할 것처럼 보인다. 빌 게이츠가 말라리아 관련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겉으로는 적절한 선택으로 보일 수 있듯이 말이다.
번역 이기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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