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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율 고가격' 청소년 흡연 잡는다
[Forum] 담배의 경제학
[5호] 2010년 09월 01일 (수) 성명재 economyinsight@hani.co.kr

성명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조세의 제1목적은 정부의 재정수입을 조달하는 것이다. 그 전제 조건은 조세로 인해 국민들의 경제활동이 왜곡되는 현상을 최소화하고, 단순하면서도 최소의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징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수평적·수직적으로도 공평하게 징수해야 한다. 이를 두고 조세의 3원칙, 즉 효율성·간편성·형평성이라고 한다.
예외적으로 이 원칙에 벗어나서 과세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경제적으로 바람직한 경우도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을 초과해 소비가 과다한 경우에는 높은 세율로 소비세를 부과해 소비를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술·담배·석유류 등에 부과하는 세금이 여기에 해당된다.
 
한 해 50억 갑을 피우는 나라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흡연율이 매우 높은 국가다. 연간 담배 소비량은 2000년대 초 50억 갑을 조금 넘는 수준까지 증가했다가 2005년 41억 갑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시 50억 갑 수준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16살 이상 인구 1인당 연간 흡연량은 2406개비다. 그리스·불가리아·에스토니아·체코·슬로베니아·키프로스에 이어 세계 7위권이다. 우리나라의 담배 소비량이 많은 이유는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과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의 담배 가격이 가장 낮다. 담배의 경우 소비자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유난히 높다. 우리나라는 62%다. 그러나 이 역시 미국을 제외하고는 앞에서 거론한 나라들 중에서 우리나라가 최저 수준이다. 프랑스와 아일랜드는 80%이고 슬로바키아는 90%에 이른다.
선진국 중 흡연을 우리나라처럼 많이 하는 곳은 없다. 이웃 일본만 해도 한때 흡연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나 최근 크게 줄었다. 미국과 영국도 30~50년 전에는 흡연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절반 아래로 크게 줄었다.
선진국에서 담배 소비가 크게 줄고 있는 데에는 표면적으로 ‘금연운동 확산’이 기여했다. 그렇지만 이면에는 조세정책의 구조적 개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전문가와 정책담당자 사이에서는 조세를 통한 흡연억제 정책의 효과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주요 선진국들의 경험과 국내의 각종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장기적으로 금연이나 흡연 억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고가격 정책으로 귀결된다. 공통적으로 관련 소비세의 세율을 높게 책정하는 조세정책이 내재돼 있다. 흡연의 중독성으로 인해 고세율·고가격 정책을 전개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소비 억제를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의 담배 소비는 주로 기성세대의 흡연에 의해 이뤄진다. 따라서 가격을 인상하면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부담만 증대된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비 감축 효과가 커진다. 담배 소비는 미래 세대, 즉 현재의 청소년들에 의해 좌우된다. 청소년기에 흡연에 노출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성인이 된 다음 흡연을 하게 되는 확률은 현저하게 차이를 보인다. 청소년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경제력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담배 가격이 비싸지면 원천적으로 담배를 구입하기 어려워진다. 성공적으로 흡연율을 낮추었던 선진국에서는 공통적으로 고세율·고가격 정책을 통해 청소년 흡연을 낮춤으로써 다음 세대에 이르러 흡연율을 성공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미국의 법원에서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원고 쪽 증인이 피해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흡연 억제에 성공한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단기적 흡연 억제 효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조세정책을 통해 세율과 가격을 지속적으로 인상했다는 것이다. 이런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현세대보다는 다음 세대에서의 흡연 억제 효과를 정책 목표로 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담배의 높은 중독성으로 인해, 금연운동이나 규제만 엄격하게 강화하거나, 당장의 흡연 감소를 목적으로 일시에 담뱃값을 2∼3배 수준으로 인상하면 일시적 효과만 거둘 뿐 국민의 반발로 인해 흡연 억제 효과를 지속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중반 세금·부담금을 일시에 대폭 인상해 담배 소비 감축을 시도했다. 그러나 단기 효과에만 집착하고 후속 조처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지 않아 단기 충격에 따른 조세 저항만 가중시켰다. 2∼3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만 담배 소비가 다소 감소하는 듯하다가 이내 ‘도루묵’이 되었다.
국민 건강에 유해한 담배 소비를 억제하려면 관련 소비세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현재 담배에 대해서는 담배 수량을 기준으로 일정 금액을 세금으로 부과하는 종량세 구조의 소비세를 부과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종량세로 부과하고 있어 외형상 유사하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물가·소득·기타 정책적 필요에 따른 할증세율을 적용해 종량세율을 조정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독재국가일수록 술, 담배 싸게 공급
물가 상승이나 소득 증가에 맞춰 종량세율을 조정하는 것은, 명목세율이 상승했다는 점에서 증세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실질가치의 변화가 없는 만큼 증세와 무관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세율을 인상한 이후 현재까지 한 갑당 1322.5원의 소비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실질과세 측면에서 보면 매년 물가 상승률만큼 감세를 해주고 있는 셈이다. 2005년 이후 담배 소비가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도 그런 효과 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세금을 인상하면 세부담이 증대돼 고통스럽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세금이 과중하면 조세 왜곡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담배의 경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야만 소비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담배 세금이 무겁고, 따라서 높은 가격으로 인해 담배 구입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소비 억제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담배소비세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담배세 부담이 높음을 들어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진다고 한다. 그런데 국가가 진정으로 서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생필품을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원활하게 공급해주는 것이다. 서민에게 담배를 싸게 공급해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자 정부의 책임이 될 수는 없다. 현재 복지국가 중에서 담배를 싸게 공급하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는 반면, 독재국가일수록 술과 담배를 싸게 공급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흡연 억제에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로는 영국이 꼽힌다. 흡연율 하락의 원인은 청소년기의 흡연 억제를 통해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비흡연자로 남는 비율을 크게 높여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영국에서는 지난 40여 년간 소득 증가 효과를 감안해, 물가상승률에 연간 2∼5%의 할증세율을 더해 담배종량세의 세액을 연 1회씩 누적해 조정해줬다. 초기에는 가격 인상률이 낮아 흡연 억제 효과가 작았지만 연동제 및 할증세율 적용 효과가 누적되면서 흡연 억제 효과가 커졌다. 다른 국가에도 이런 정책 기조가 파급돼 흡연 억제에 크게 기여했다.
연동제가 동반되지 않은 담배종량세는 흡연을 억제하기보다는 필연적으로 담배 소비를 부추기게 된다. 최근 4∼5년간의 우리나라가 그런 경우다. 최근 성인 및 청소년 흡연율이 크게 상승하고 있는 것은 이런 세제상의 허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잘못된 조세제도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청소년들이 흡연의 노예가 되고 있다. 크게 높아질 다음 세대의 성인 흡연율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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