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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귀네스 팰트로가 테프를 먹는 이유는?
에티오피아의 슈퍼 곡물 ‘테프’
[60호] 2015년 04월 01일 (수) 안제이 리바크 economyinsight@hani.co.kr
   
▲ 에티오피아의 한 여성이 ‘테프’를 빻은 가루로 납작한 빵 ‘인제라’를 만들고 있다. 테프는 에티오피아인의 주식이다. REUTERS

철분·칼슘 등 풍부하고 글루텐 없는 최고의 건강식…
가격 폭등 우려 때문에 ‘수출금지령’


에티오피아인의 주식 ‘테프’가 슈퍼 곡물로 떠올랐다. 철분·칼슘·마그네슘 등이 풍부한 반면 글루텐이 함유돼 있지 않아 밀가루의 대체재로서 가능성이 큰 곡물이다. 남미의 슈퍼 곡물 ‘퀴노아’의 뒤를 이어 서양인의 건강식으로 각광받는다. 그러나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이 치솟는 법. 에티오피아 정부는 가격 폭등을 우려해 수출금지령을 내렸다.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은 씨앗을 가져가 재배를 실험 중이다.


안제이 리바크 Andrzej Rybak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수백만개 곡식 줄기가 바람에 부드럽게 나부낀다. 연두색 이파리들 사이에선 미세한 알곡이 빼곡히 들어찬 작은 이삭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애브넷 튜드로스가 자기 밭의 식물을 들여다보는 동안 태양은 불볕을 쏟아붓는다. 이 에티오피아 농부는 “이제 3~4주 뒤면 ‘테프’가 다 익는다”고 말했다. “올해는 테프 농사가 풍년일 거예요.”

테프는 약 5천년 전부터 에티오피아의 고원지대에서 재배됐다. 인류가 경작한 곡식 중에서 가장 오래된 품종에 속한다. 여기서 보통 ‘조상 풀’이라고 부르는 이 난쟁이 좁쌀은 크기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곡식이다. 곡식 낟알 크기가 양귀비씨만큼도 안 되게 작다. 이 낟알 몇개를 합쳐봐야 밀 한알의 무게도 안 된다.

“함유한 영양가로 말할 것 같으면 테프는 아주 큰 곡물이지요.” 튜드로스가 말을 잇는다. 테프 낟알은 비타민과 미네랄, 그중에서도 칼슘·철분·마그네슘·인을 풍부하게 함유한다. 칼로리가 많으면서도 천연적으로 글루텐(밀가루에 들어 있는 단백질로 장의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 -편집자)이 없다. 이 농부의 말처럼 테프와 견줄 만한 곡식은 없다. 바로 이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슈퍼 식물’의 장점들은 유럽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트렌드 연구회사인 미국 뉴욕의 ‘아방가이드’의 사장 대니얼 레빈의 말처럼 “세계는 지금 슈퍼 건강식품을 애타게 갈망”하기 때문이다. 테프는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잠재력이 큰 식물로 분류된다.

할리우드의 스타들 중 건강식에 신경 쓴다고 알려진 이들 사이에서 테프는 이미 인기 상품이다. 배우 귀네스 팰트로, 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그리고 파티의 아이콘이 된 빅토리아 베컴 등이 에티오피아에서 나는 이 곡식을 애용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과 유럽의 건강식품 판매점에서는 벌써 테프 가루가 상품으로 나와 있다. 가격은 1kg에 8유로(약 9500원) 정도다.

테프로 빵, 과자, 국수, 피자를 만들 수 있다. 밀가루에 든 글루텐은 소장 점막에 염증을 유발할 수 있지만 테프는 이 증상을 앓는 모든 환자에게 이상적인 밀 대체물이 되어줄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들 건강식으로 애용

채식주의자도 테프의 장점을 입 모아 강조한다. 철분과 칼슘을 풍부하게 함유한 덕분에 빈혈에 시달리는 임산부에게도 추천할 만한 식품이다. 테프의 탄수화물은 장시간에 걸쳐 점차적으로 인체에 흡수되기 때문에 지구력이 요구되는 운동선수에게도 이 곡물은 매우 적합하다고 하겠다.

에티오피아에서 테프는 전 국민의 중요한 주식이다. 테프로 만든 ‘인제라’는 대표적인 요리다. 스펀지처럼 생긴 둥글납작한 빵인데 안에 구멍이 숭숭 나 있고 팬케이크보다 약간 두껍다. 종종 채소나 고기를 곁들여서 먹는다. 농부 튜드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제라를 한번 먹으면 대여섯시간은 속이 든든하다. 다음 끼니를 먹지 않고도 하루 종일 일할 수 있다.” 1달러 미만의 돈으로 하루를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 나라에서 참으로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에티오피아인 1명이 1년에 소비하는 테프의 양은 평균 30kg이다. 도시에서는 섭취량이 60kg까지 상승한다.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한 농업혁신청 공무원 타레케 베르헤는 “에티오피아에서 이 곡물이 갖는 의미는 어떤 말로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전세계적으로 테프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이 에티오피아에서는 우려를 자아내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몇년 전 남아메리카에서 ‘퀴노아’가 그랬던 것처럼 테프의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른바 ‘안데스의 수수’라는 퀴노아는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경작되는 식물인데, 지금 테프가 그렇듯 한동안 서구의 유행 곡물로 자리잡았다. 그 추세에 힘입어 수출업자와 농부들은 돈을 두둑히 벌었다. 하지만 오로지 퀴노아만 먹고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퀴노아를 살 수 없다. 결과는 기아와 영양결핍이었다.

이에 따라 에티오피아 정부는 테프에 대해 당분간 수출금지령을 내렸다. 허가서를 가진 사람에게만 수출이 허용된다. 그러나 테프로 만든 식품, 즉 인제라나 국수는 자유롭게 수출된다. 베르헤는 “정부는 테프 수출을 자유화하기에 앞서 우선 국내에서의 테프 생산을 증진하려 한다”며 “우리가 최근 이룩한 발전 과정을 토대로 고려할 때 에티오피아는 앞으로 2~5년 안에 국민의 식량 수요를 자급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테프에 앞서 서양인의 건강식이 된 남미의 ‘퀴노아’. 퀴노아를 주식으로 먹고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퀴노아의 가격 폭등으로 기아와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REUTERS

정부의 규제에 대한 비판이 일기도 한다. “커피 경작자들은 수출로 돈을 엄청 벌어들이는데, 왜 우리만 테프를 에티오피아 안에서 팔아야 하는가?” 농부 튜드로스는 묻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에티오피아의 수출금지 정책의 결과와 관련해 테프 수출금지 조치는 농부들이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이 난쟁이 좁쌀 농사를 짓는 농민은 약 6300만명이다. 경작 면적은 이 나라 총경작지의 거의 30%를 차지한다. 그러나 테프는 이 통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에티오피아의 ‘국민 식량’이나 ‘경제 작물’이라는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식물이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인제라를 함께 먹는 일은 이 나라의 전통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오로미아 같은 시골 지역에서는 특히 그렇다.

농부 에르미아스 제브리마리암은 이렇게 말했다. “내 아버지가 테프 농사를 지었고, 그전에는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리고 그분의 아버지가 역시 이 농사를 지었다. 그러니까 나도 이 농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테프를 심기 위해서는 밭을 세심하게 갈아야 한다. 씨알이 매우 작아 씨 뿌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테프는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한 작물”이라고 제브리마리암은 말했다. “가족이 다 동원돼서 정기적으로 잡초를 뽑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좋은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 알곡을 거둬들이는 작업도 전부 손으로 한다. 그런 다음 1천년 전부터 그렇게 해왔듯이 소를 몰아 타작한다. 소가 오랜 시간 동안 수숫단을 밟아대는 것이다. 낟알 전체를 가루로 빻는다. 딱딱한 껍질에서 알곡을 따로 떼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브리마리암이 우리를 자신의 흙집으로 초대했다. 마당에서는 그의 딸 아베베크가 인제라를 굽고 있다. 이틀 동안 발효시킨 테프 반죽을 이제 막 뜨겁게 달아오른 둥그런 팬 위로 붓는 참이다. 팬 표면에 반죽이 골고루 퍼지도록 한 뒤 아베베크는 그릇 뚜껑으로 팬을 덮는다. 2분 정도 지나면 테프 팬케이크가 완성된다.

선진국은 경작 가능 여부 실험 중

밀이나 옥수수와 비교할 때 테프는 장점이 많다. 중앙에티오피아에 위치한 도시 데브레제이트의 농업연구센터에서 근무하는 케베뷰 아세파는 “해발 0에서 3천m까지의 전 고도에서 테프를 재배할 수 있다. 테프는 장기간에 걸친 가뭄을 이겨낼 수 있고 비가 많이 오더라도 무성하게 자라난다. 각종 질병에도 면역력이 강하고 추수 뒤 5년 동안 저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10년 전에는 1ha당 수확량이 평균 1t이 될까 말까 했다. 요즘은 그 양이 평균 1.4t으로 늘어났다. 케베뷰 아세파는 “우수한 종자를 사용하고 땅에 거름을 제대로 준 다음 제때 추수할 경우 1ha에서 3.5t까지 거둬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31년 전부터 테프를 연구해온 이 학자는 데브레제이트에서 1ha당 6t까지 수확한 적이 있다. “현재의 종자보다 줄기가 짧고 뻣뻣한 테프를 생산해낼 수 있으면 수확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이 특징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품종을 교배해보는 중이다.”

이론상 테프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경작이 가능하다. 미국과 유럽의 농업 경영자들은 이미 이 식물의 경작 가능 여부를 실험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산 난쟁이 좁쌀 장사로 흑자를 눈앞에 둔 사람이 적지 않다. 몇년 전에는 네덜란드의 한 회사가 데브레제이트에서 테프 씨앗을 본국으로 가져와 그것을 원료로 특별한 가루를 생산해낸 일이 있다. 이 가루의 생산 공법에 대해서는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특허가 신청됐다.

ⓒ Die Zeit 2015년 5호 Essen oder exportieren?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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