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3월1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원지를 낭독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들고나왔다. 세계적 트렌드인 ‘소득주도 성장’의 영향이다. 서민과 중산층의 월급봉투가 두둑해야 내수가 살고 경기가 회복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미국도 빈부 격차가 적고 중산층이 굳건했던 1960년대에 경제가 가장 호황이었다. 문제는 취약한 자영업자와 영세·중소 기업들이다. 이들을 살리면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정부의 당면 과제다.

김경락 <한겨레> 경제부 기자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월4일 “최저임금을 7% 이상 빠르게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 강연에서 나온 이 발언 이후 최저임금 인상이 정부 안은 물론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됐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매년 7% 이상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며 최 부총리를 거들었고, 유승민 새누리당 대표도 최저임금 인상에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 단체에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복되지 않은 경기와 기업 경영의 애로를 강조하며 최저임금 인상론이 확산되는 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재계의 반발과 별개로 최저임금 인상이 경영의 한계선 위에 놓인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가중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바야흐로 최저임금이 노동·경영·정치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는 셈이다. 2016년도 최저임금은 오는 6월께 윤곽이 나온다.

당장 관심은 최저임금 인상폭이다. 현재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 5580원이다. 2014년보다 7.1%(370원) 높다.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2016년 최저임금 인상 수준은 최근 정부 고위 당국자 등의 발언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7% 이상 빠르게”라고 말했고, 이기권 장관도 “7% 이상”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올해 인상폭보다 더 크게 가져가겠다는 게 정부의 뜻인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적정 수준을 따져보기 앞서 지난 10여년간의 흐름부터 살펴보자. 일단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전임 이명박 정부보다 최저임금 인상에 더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기간(2008~2012년) 동안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5.2%였다. 같은 기간 연평균 경상성장률(5.7%)보다 낮은 인상률이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7.2%, 7.1%씩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이명박 정부의 연평균 인상률은 물론 해당 연도 경상성장률을 웃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2003~2007년)에 견주면 박근혜 정부의 인상폭도 크지 않다. 노무현 정부는 해마다 10% 안팎으로 최저임금을 끌어올렸다. 집권 2년차인 2004년 인상률은 13.1%에 이르렀다.

다른 나라에 견줘보면 어느 정도 수준일까. 기준에 따라 상이한 결과가 나온다. 일단 절대 금액을 단순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제도를 운영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기준으로 중·하위권에 속한다. 낮다는 의미다. 26개국 중 17번째다. 달러로 환산한 우리나라 시간당 최저임금은 4.36달러로 회원국 평균 6.78달러보다 낮다. 오스트레일리아가 15.6달러로 가장 높고, 일본이 7.68달러, 미국이 7.3달러다.

반면 각 나라의 물가 수준 등을 고려할 땐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가별 실질 구매력을 반영한 우리나라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5.22달러로 26개국 중 15번째다. 중간쯤 되는 셈이다. 또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최저임금은 조사 대상 22개국 중 8번째다. 우리나라를 100으로 간주하면 미국과 일본은 각각 63.7, 71.6이다. 절대금액은 미국과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높지만, 경제 규모에 견준 최저임금 수준은 우리나라보다 낮은 셈이다. 이처럼 어떤 잣대를 들이대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이 중·하위권에서 중·상위권으로 춤을 춘다. 최저임금 인상폭에 대한 논의가 복잡한 양상을 띠는 배경이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5년 3월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한 내수 살리기 정책을 펴고 있다. 뉴시스

최저임금 수준 OECD 중·하위권

한때 최저임금의 적정선으로 간주된 기준이 있었다. 물론 아직도 이 기준을 준용한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바로 ‘근로자 평균 정액급여(또는 통상임금)의 50%’라는 기준이다. 중위 임금의 50%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 10여년간 노동계가 최저임금 협상을 할 때 내세워온 기준이다. 일부에서는 최저임금제 시행의 물꼬를 텄던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이라는 설명도 내놨다. 현재 이 기준은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계는 이 기준의 퇴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왜일까?

일단 이 기준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 ILO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유럽의회가 2008년께 각국 평균임금의 60%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설정하도록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기록을 찾을 수는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이미 전체 노동자 평균 정액급여의 절반 수준에 이른다. 2013년 기준 최저임금은 월 101만5740원으로, 전체 노동자 평균 정액급여(월 214만원)의 47.5%다. 조금만 더 올리면 정액급여 절반이라는 기준에 도달하는 셈이다. 최근 2년 연속 명목임금 상승이 바닥을 기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둘 때 2014년과 같은 최저임금 인상폭을 올해도 적용할 경우 정액급여 50% 기준을 훌쩍 뛰어넘을 수도 있다.

물론 일부에선 전체 노동자 기준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5명 이상 상용노동자를 기준으로 따질 경우 최저임금 수준이 39.4%에 그친다는 점을 지적하나 이를 최저임금의 적정성 기준으로 삼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이 기준은 목표치가 아니라 하한선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여러 개 국회에 제출돼 있다. 문재인·이인영·심상정 의원 등이 발의한 법률 개정안이 그 예다. 이 법안들은 최저임금 하한선을 정액급여 혹은 통상급여(전체 노동자 기준)의 50%로 법으로 강제하자는 게 특징이다.

과거의 목표가 현재의 마지노선으로 자리 이동을 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계는 다소 난감한 처지에 몰렸다. 민주노총의 경우 자체 표준생계비 조사를 토대로 적정 최저임금 수준을 시간당 1만원으로 제시했으나 객관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에는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최저임금 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노동계도 뚜렷한 적정선 찾기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이처럼 적정선을 찾는 것은 어렵고 혼란스러운 과제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에는 정부, 정치권, 노동계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물론 이후 인상폭 결정을 위한 구체적 논의가 진행되는 국면에서 서로 갈등을 빚을 여지가 크지만 7% 넘는 인상이 필요하다는 명제에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최저임금 인상론이 불붙은 배경에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수성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는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매우 높다. 최저임금 인상론에는 최저임금을 올려 저임금 노동 계층 전반의 임금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OECD는 저임금 노동자의 범위를 풀타임 노동자 중위 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노동자로 정했다. 이 기준에 따른 우리나라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은 2012년 현재 25.2%다. OECD 회원국 중 미국(25.3%) 다음으로 높다. 일본은 14.3%, 뉴질랜드는 12.6%, 독일은 18.3%다.

다른 나라에 견줘 기간제 노동자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징도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이들의 임금을 결정할 때 최저임금이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OECD 통계를 보면 2013년 현재 국내 전체 취업자 중 기간제 노동자 비중은 22.4%다. 조사 대상 34개국 가운데 칠레(29.7%), 폴란드(26.9%), 스페인(23.1%)에 이어 4번째로 높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1.8%, 선진 7개국(G7) 평균은 9.2%다.

기업 규모나 근로 형태에 따라 임금 격차가 크다는 것도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한 특징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300명 미만 중소 규모 사업체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 수준은 300명 이상 대규모 사업체 노동자의 임금에 견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지난해 8월 기준 중소 규모 사업체의 월평균 임금은 대규모 사업체 노동자의 56.7%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대기업 직원이 100만원을 받는다면 중소기업 직원은 60만원도 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론에 불을 붙인 쪽이 다름 아닌 보수 색깔이 짙은 정부라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통상 시장 원리와 자본의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 진영은 최저임금 자체를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간주해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기업의 비용 증가를 우려한다. 진보 성향의 노무현 정부 때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았고 이명박 정부 때는 인상률이 바닥을 기었던 것은 이처럼 정부 성향에 따른 시각 차이가 반영됐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와 이념적으로 비슷한 성격을 가진 현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들고나온 이유는 뭘까. 이는 최근의 경제 환경을 떠나서 이야기할 수 없다. 현재 경기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반짝 회복한 뒤 장기 정체에 빠진 상황이다. 경기 국면을 공표할 책임이 있는 통계청은 벌써 몇년째 현재 국면을 경기 회복기인지 침체기인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시장에선 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을 뜻하는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공공연히 제기된다.

이런 모습은 현재 미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제안된 성장론이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원인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2010년 ILO가 처음 주창했다. 국제통화기금(IMF)·OECD 등도 임금 불평등 해소가 안정적 경제 성장을 위한 전제 조건이라며 ILO의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자영업 구조조정 촉발 가능성

소득주도 성장은 비용과 소비의 원천이라는 양면적 특성을 가진 임금에 대해 후자를 강조한다. 기존 경제 이론이 전자를 강조한 것과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임금을 올려 소비를 진작하고, 진작된 소비가 기업들의 수익성을 개선해 투자와 생산 확대, 다시 임금이 오르는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는 게 소득주도 성장론의 뼈대다. 같은 논리에서 평균소비성향(가처분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율 -편집자)이 높은 저임금 계층의 임금을 올려 내수를 키워야 한다는 것도 소득주도 성장론의 핵심을 이룬다. 보수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언급하고 나선 것도 국제사회에서 제기되는 소득주도 성장론의 영향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어떤 이들에겐 공포가 될 수 있다. 바로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경영자들이다. 임금 인상을 통한 수요 확대와 기업 수익성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는 쪽이다. 당장의 비용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면 폐업할 수밖에 없다. 폐업은 다시 실업의 증가를 뜻한다. 자칫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과 자본 양쪽이 루저가 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이 문제에 대해 노동계나 경영계는 물론 정부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단계적 혹은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거나 자영업 구조조정 대책과 병행돼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만 나올 뿐이다.

다만 다른 나라보다 높은 자영업자 비중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OECD 통계를 보면, G7 국가 중 자영업자 비중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나라는 한곳도 없다. 2013년 말 현재 미국이 6.6%로 G7 국가 중 가장 낮은 자영업 비율을 보였고 캐나다 8.7%, 독일 11.2%, 일본 11.5% 등이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OECD 기준으로 27.4%다.

높은 자영업자 비중은 그만큼 노동시장이 다른 나라에 견줘 취약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저임금 시장을 줄이고 기업 규모나 근로 형태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여 노동시장의 수준을 높인다면 자영업이 선진국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최저임금 인상도 전반적인 노동시장 개혁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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