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종룡 금융위원장(왼쪽)이 2015년 3월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진웅섭 금융감독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임 위원장은 행시 24회, 진 원장은 행시 28회로 모두 옛 재무부 출신 관료다. 뉴시스

재무부 출신 구조조정 전문가…
금융정책과 경제정책 핵심 요직 거쳐 금융위 사령탑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기획재정부에서 금융정책과장과 종합정책과장을 모두 거친 몇 안 되는 경제관료다. 후배들의 신망도 두텁다. 능력·인품·경력 모든 면에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금융정책 수장으로서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얼마나 소신 있고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느냐가 중요하다. 엘리트 코스만 걸어온 임종룡 위원장은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사령탑으로서 제대로 평가받는 무대에 선 것이다.

황보연 <한겨레>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임종룡(56)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2015년 3월16일 금융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향후 그가 펼쳐나갈 금융정책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통 금융관료로서 전문성과 경험을 두루 갖춘 임 위원장이 소신 있는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반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하는 경제정책에 종속돼 금융 당국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공존한다.

임 위원장은 ‘모피아’(재무부+마피아) 집단 내에서도 ‘성골’로 꼽힌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발을 디뎠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이 행시 동기다. 행시 수석은 신 전 위원장에게 넘겨줬지만 연수원 성적을 합한 종합성적에선 임 위원장이 수석을 차지했다. 당시 행시 합격자들은 성적 순서대로 원하는 정부 부처에 지원할 자격이 주어졌다. 경쟁률이 세서 진입 문턱이 최고로 높았던 재무부에 무난하게 입성할 수 있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관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재무부에서 연세대 출신인 임 위원장이 성골로 분류되는 것은 그가 금융·경제 정책을 아우르는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기 때문이다. 사무관 시절 그가 이름을 알린 곳은 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산업금융과였다. 주변 지인들은 “보안 유지를 요하는 일이 많아서 구조조정 업무 담당자를 교체하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임 위원장도 4~5년 연속으로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했는데 이때 빈틈없는 일처리로 본인을 조직에 각인시켰다”고 전한다. 국제그룹 해체를 비롯해 1980년대에 이뤄진 80여개의 부실기업 정리가 그의 손을 거쳤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이규성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이 미국 유학 중인 임 위원장을 불러들여 금융·기업 구조조정 대책반장을 맡기기도 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이 추진되던 무렵이다.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안의 3개과 과장을 모두 거친 것도 임 위원장이 유일하다. 1999년 1월부터 2002년 9월까지 은행제도과장, 증권제도과장, 금융정책과장을 연달아 맡았다. 금융관료들 내에서 실력을 재는 잣대는 금융정책국 총괄서기관-금융정책과장-금융정책국장으로 이어지는 정통 코스를 얼마나 거쳤는지를 보면 된다는 설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관료였다고 하더라도 세 자리를 모두 맡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임 위원장도 금융정책과장만 했다. 하지만 금융정책국 내에서 금융정책과장 말고도 과장을 두번 더 했다는 것은 독보적인 이력으로 남아 있다.

2002년 전윤철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이 내린 ‘특명’은 그의 이력이 금융정책에서 거시경제 정책으로 넓혀지는 계기가 됐다. 전 전 장관은 금융정책과장으로 ‘잘나가던’ 그를 종합정책과장으로 보냈다. 파격적인 인사였다. 금융정책과장이 ‘모피아’의 핵심 보직이었다면 종합정책과장은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들의 핵심 보직이었기 때문이다.

기업 구조조정 전문 모피아 성골

우리나라 경제부처의 양대 산맥이던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통합된 것은 1994년의 일이다. 이후로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양 조직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실질적인 통합을 이루려면 핵심 보직에서부터 ‘인적 융합’이 필요했다. 임 위원장은 “(종합정책과장 자리가) 내키지 않는다 했더니 전 전 장관이 핏대를 올리면서 무조건 가라고 하더라. 결과적으로 보면 공직 생활에서 시야를 넓히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박병원 당시 경제정책국장(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한테 일일이 코치를 받으면서 경제운용 계획을 짜는 법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그 덕분에 그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잇따라 경제정책국장을 맡았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경제정책국장이 교체되지 않은 것은 드문 일이었다. 이후에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기획재정부 1차관, 국무총리실장(장관급)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전공 분야를 거시경제로 넓히면서 승진에 ‘날개’를 단 셈이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특유의 친화력이 있어 조직에서 후배들의 신망도 두터운 편이다. 기획재정부에서 일하던 시절 후배들이 투표해서 뽑는 ‘가장 닮고 싶은 상사’에 3회나 선정됐다. ‘워커홀릭’으로 불릴 정도로 한번 맡은 일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9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시절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를 하던 회의 도중에 부친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세차례나 받았지만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일은 그가 요직에 오를 때마다 회자되고 있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2015년 3월17일 오후 금융위원회 기자실에서 금융 개혁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임 위원장은 검사·제재 관행 개선과 과도한 건전성 규제 개선 등을 금융 개혁의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뉴시스

나름 평탄한 공직 생활을 이어왔지만 설움도 없진 않았다. 사무관 시절 산업금융과에서 고된 업무를 마친 직후인데도 관세국으로 밀려난 일이나, 2006년 임승태 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에게 금융정책국장 자리를 내준 일 등이 그것이다. 행시 동기이자 라이벌 관계에 있던 신제윤 전 위원장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벌이면서 고배를 마신 적도 있다. 금융정책과장과 기획재정부 1차관을 임 위원장이 먼저 달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신 전 위원장이 금융위원장 자리에 먼저 앉았다.

임 위원장은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2년간 맡아온 경력이 금융 현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막상 국무총리실장직을 내려놓은 뒤 농협금융으로 갈 때의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장관급 퇴직 관료가 맡고 싶어 하는 자리가 아닌데다 조직 내부 관계가 복잡한 농협에서 성과를 내기 만만치 않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같은 ‘모피아’ 출신으로 농협금융을 이끌었던 신동규 전 회장도 농협중앙회와 갈등을 겪으면서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신 전 회장은 “농협금융은 제갈공명이 와도 안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어려운 조건에도 임 위원장은 2013년 6월 농협금융지주 회장 선임 이후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등 농협금융을 4대 금융그룹의 반열에 올려놨다.

현재 금융권에는 가계부채 관리, 우리은행 민영화,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육성, 금융감독 체계 개편 등 풀어야 할 현안이 수두룩하다. 금융정책과 경제정책, 금융 현장을 두루 경험한 임 위원장에 대한 금융권 안팎의 기대는 적지 않다. ‘만능 정책맨’으로 검증을 거친데다 합리적이고 소신 있는 발언으로 주목받아왔기 때문이다. 금융위원장 후보자로 내정되기 전인 2015년 2월3일 범금융 대토론에서도 그는 “금융감독 당국이 간섭하지 않아도 금융회사들은 건전성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금융사에 빨간딱지(민원이 많은 금융사)는 과도한 규제다” “이쪽 국은 이런 지시를 하고 다른 국에 가면 또 다른 얘기를 하는데 감독의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등의 돌직구를 날렸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에 거는 기대에는 전임 금융위원장이 2014년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후 보여준 모습에 대한 실망과도 맞물려 있다. 신제윤 전 위원장은 지난해 7월 최 부총리 취임 직후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의 규제 완화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다. 그는 가계부채 관리에 필요한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가 최 부총리의 부동산 경기부양책에 여지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가계부채 관리와 경기부양 사이에서

하지만 취임 전부터 임 위원장은 야당으로부터 “기획재정부에 종속됐다”(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는 쓴소리를 들었다. 임 위원장은 인사청문회 사전 질의 답변서를 통해 지난해 가계대출을 급격하게 늘린 요인 가운데 하나인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가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필요했다”고 답변했다. 가계부채 대책의 주무를 맡고 있는 금융 당국 수장의 발언인지,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인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지난해 가계대출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이루어진 8월 이후에만 40조원가량 늘었다. 이미 가계부채 관리의 주도권이 기획재정부로 넘어가는 듯한 모습도 포착된다. 지난 3월12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직후 금융위는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금융감독원 등과 공동으로 가계부채 관리 협의체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협의체의 반장은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맡는다.

최 부총리는 지난 3월4일 한 정책포럼에서 “금융업이 뭔가 고장났다”는 발언으로 금융 개혁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뜻을 밝혔다. 금융권이 경기회복에 전방위로 나서야 하는데 오히려 취업자가 급감하고 국내총생산(GDP)에서 금융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5%대로 주저앉았다고 몰아붙였다. 이에 화답하듯 후보자 신분이던 임 위원장도 최 부총리의 발언 하루 만에 금융 개혁 추진체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와 임 위원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75학번, 78학번 선후배 사이다.

임 위원장은 지난 2월17일 금융위원장 후보자로 내정된 직후 “(일일이 금융회사에 간섭하는) 코치가 아닌 심판이 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 그가 심판의 자리에서 펼쳐나가겠다고 한 금융 개혁의 청사진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금융감독 쇄신, 금융회사 자율성 강화, 자본시장 활성화 등이 주요 과제로 거론됐을 뿐이다.

금융권 안팎에서 그를 지켜보는 눈이 적지 않다. 앞으로 금융위원장이 최 부총리의 경기부양 기조에 협조하는 수준으로 본인의 입지를 축소할지, 아니면 금융 당국 수장으로서 목소리를 제대로 낼지가 관심이다. 그 첫 시험대는 가파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책 마련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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