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2014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지난 1월29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홍보관인 ‘삼성 딜라이트’에서 한 시민이 삼성의 CI(Corporate Identity)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모바일 D램 수요 증가와 경쟁사 파산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독주 계속될 듯

반도체가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지난해 모바일 D램 수요의 증가 등에 힘입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가 엄청난 실적을 거둔 것이다. 특히 경쟁사들이 잇따라 파산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70%를 넘어섰다. 이제 두 회사가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하게 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4배 규모인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의 실적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임효정 <뉴스토마토> 기자

캐시카우(Cash Cow·수익창출원)에서 적자사업으로 추락한 반도체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다. 지난해 한국 반도체의 수출액은 626억달러로, 단일 품목으로는 처음 연간 수출 규모 600억달러를 돌파했다. 한국 수출산업의 맏형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의 회복은 가히 ‘왕의 귀환’이다.

반도체 산업의 호황으로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몸값도 고공행진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이 지난해 스마트폰 사업의 실적 부진을 만회하며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SK하이닉스는 간판 사업인 반도체가 승승장구하며 2년 연속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공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매출은 206조2천억원, 영업이익은 25조300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전년 대비 10% 감소하면서 9년 만에 역성장했고,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은 32% 이상 추락했다. 다만 4분기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웃돌면서 분위기 전환에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2분기 연속(2·3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던 삼성전자는 4분기 매출액 52조7300억원, 영업이익 5조290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건희 회장의 부재와 그간 고공행진의 선봉 역할을 했던 스마트폰 사업의 추락 등 대내외적 악재 속에서 3분기 대비 반등에 성공하며 하락세를 끊어냈다.

실적 반등의 원동력은 단연 반도체였다. 지난해 4분기 반도체 부문은 매출액 10조6600억원, 영업이익 2조7천억원을 기록했다. 디스플레이 부문과 합친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영업이익은 총 3조1300억원으로, 5분기 만에 3조원을 돌파했다. 전사 영업이익이 5조2900억원임을 감안하면 70%가 넘는 수익을 반도체 부문에서 이뤄냈다. 주연의 교체다.

반면 주력 사업인 IT모바일(IM) 부문은 매출 26조2900억원, 영업이익 1조9600억원을 거뒀다. 실적 충격을 보였던 직전 분기 영업이익(1조7500억원)보다 회복된 모습이지만, 전년 같은 기간(5조4700억원)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지는 부진한 실적이다. 반도체에 선두 자리를 반납한 이후 조연에 머물게 됐다.

▲ SK하이닉스의 D램 모듈.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의 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고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REUTERS

삼성·SK 세계 D램 시장점유율 70% 돌파

SK하이닉스 역시 메모리 반도체의 호황에 힘입어 브레이크 없는 실적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1.2% 급증한 5조1094억원을 기록하며 영업이익 5조원 시대를 열었다. 2년 연속 최고 경영실적이다.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 등 그간 SK그룹을 이끌던 쌍포가 크게 주춤한 사이 새 식구인 SK하이닉스가 버팀목으로 올라섰다.

실적 성장은 성과급 잔치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실적 방어 역할을 톡톡히 해낸 반도체 부문에 연봉의 최대 50%를 지급했다. 2년 연속 최고 실적을 갈아치운 SK하이닉스도 직원에게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이는 애초 40%인 한도를 넘어서는 성과급으로, 2년 연속 최고 실적을 기록한 데 따른 특별 격려 차원이다.

모바일 D램 수요의 증가로 인한 메모리 반도체 업황의 호조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사의 반도체 사업 실적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D램 시장의 1·2위 업체로, 두 회사의 점유율은 70%에 육박한다. 2013년을 기점으로 D램 시장이 고성장을 이어가면서 지난해에도 양사는 D램 효과를 톡톡히 봤다. 오랜 치킨게임 끝에 시장이 공급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양사의 경쟁력은 한층 높아졌다.

과거 반도체 업황은 호황과 불황이 ‘PC 교체 수요’에 따라 정확히 반복되는 패턴을 보였다. PC 교체 수요가 발생하는 5~6년을 주기로 반도체의 업황이 일정 사이클을 보이며 변동했고 이러한 주기성은 반도체 업체들이 시장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됐다.

모바일 부문이 급팽창하면서 반도체 시장의 성격도 크게 변해왔다. PC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체 기간이 짧은 모바일용 반도체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반도체 사이클 주기는 2년 이내로 짧아졌다. 게다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수요처가 다양해짐에 따라 지속적인 공급이 가능해진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수요자’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관계에서 ‘공급자’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본격적인 공급자 중심의 시장 변화는 업체들이 벌이는 ‘치킨게임’(어느 한쪽이 포기할 때까지 극단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촉발됐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수년째 공급 과잉과 가격 폭락으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였고, 상처뿐인 싸움에서 반도체 산업은 극도로 위축됐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규모 투자와 함께 빠른 미세 공정 전환을 주무기로 경쟁 업체와의 기술 격차를 더욱 벌였다.

장기적인 시장 불황 속에서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시장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경쟁 업체의 잇따른 퇴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장 지배력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일본 반도체의 마지막 자존심인 엘피다마저 파산하면서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치킨게임은 종료됐다. 지난한 싸움이 끝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공급자가 주도하는 반도체 시장의 주인공이 됐다. 이는 소수의 공급자가 시장 수요를 조절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D램을 중심으로 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는 올해도 장밋빛이다. 평균 판매단가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국 등 신흥국의 스마트폰 보급 확산과 맞물려 모바일 D램 수요가 늘면서 시장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앞서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는 올해 세계 D램 시장의 전체 매출이 528억28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14%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통적인 비수기로 불리는 올 1분기 전망도 긍정적이다. 업계 3위 마이크론의 D램 생산 차질도 국내 업체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30나노 공정에서 20나노로 전환하면서 웨이퍼 생산이 최대 15~20%까지 감소할 수 있다”며 “비수기임에도 올해 1분기 D램 가격은 상당히 안정적일 것으로 보이며, 경쟁사의 생산 차질이 국내 업체에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수출도 사상 최고의 실적을 이어갈 전망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한국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수출액 626억달러 대비 4%가량 증가한 64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조사기관 IHS는 2016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923억9700만달러로 올해보다 9%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양사는 호황기를 놓치지 않고 실적 성장으로 이끌겠다는 각오다. 삼성전자는 올해 D램 부문에서 20나노 공정으로의 전환을 통해 원가를 지속적으로 절감하고 서버와 모바일용 고용량 신제품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낸드 분야에서는 V낸드 제품의 공급을 확대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용량 모바일 스토리지 수요에 적극 대응해 지속적으로 수익성을 확보해간다는 방침이다.

▲ 중국 산시성 시안시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공장에서 직원이 반도체 설계도가 표시된 화면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메모리 반도체, 공급자 주도 시장으로

SK하이닉스는 상반기 중 20나노 초반급 D램의 성공적인 양산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서버와 모바일 시장을 중심으로 ‘DDR4’(동작 속도 등으로 규정한 D램 반도체의 규격. DDR4가 DDR3보다 2배가량 속도가 빠르다.-편집자) 도입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연말까지 해당 제품군 내에서 DDR4의 비중을 50%까지 확대한다. 낸드플래시는 상반기 중 트리플레벨셀(TLC) 제품을 본격적으로 양산하는 것과 함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솔루션 제품의 공급을 확대해 수익성을 향상시킬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3D 낸드플래시 제품의 양산 기반을 확보해 다가오는 시장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의 점유율이 70%를 돌파했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의 조사 결과, D램 시장의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지난해 4분기 시장점유율 합계는 70.4%로 집계됐다. 역대 최고치다. 삼성전자가 40% 이상으로 독보적인 1위며, SK하이닉스가 26% 이상을 차지한다. 이어 미국이 24.4%, 대만이 5.3%의 점유율을 보였다.

하지만 좋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1980년대만 해도 일본은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자랑하는 반도체 최강국이었다. 고공행진하던 반도체(메모리+비메모리) 점유율이 2012년 들어서는 15%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시스템 반도체를 간과한 탓이다.

한국의 현주소도 이와 유사하다. 한국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반쪽짜리 반도체 강국’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이유다.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로 구분된다. 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시스템 반도체는 데이터 연산·제어·처리 역할을 한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집중하는 분야가 바로 메모리 반도체다. 휘발성 메모리인 D램, 비휘발성 메모리인 낸드플래시가 대표적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구별해서 비메모리 반도체라고도 부른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빛을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이미지 센서(CIS) 등이 대표적이다. 시장 규모는 메모리 반도체의 4배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의 시스템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5%에 불과하다.

규모가 큰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두고 국내 반도체 업체는 왜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하는 것일까. 초기 투자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적용된다. 3등과 4등이 필요 없는 승자독식의 세계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처럼 일정한 규격이 없다. 고객사의 주문에 따라 맞춤 제작하는 방식이다. 수준 높은 기술을 요하는 만큼 수익성도 높다. 하지만 인텔과 퀄컴 등이 장악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국내 업체들의 존재감을 찾기 힘들다.

걸음마 수준 맴도는 시스템 반도체 산업

더욱이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국내 업계의 대응은 빈약할 따름이다. 사물인터넷은 각종 사물을 인간과 인터넷(유·무선 통신)으로 연결해 정보의 공유·제어 등을 구현하는 수단이다. 관련 업계는 사물인터넷 산업의 부가가치가 2020년 1조9천억달러(약 2천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사물인터넷의 핵심 중 하나는 시스템 반도체다.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들은 정보를 수집·처리·전송하기 위해 시스템 반도체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앞으로 생활가전·자동차·헬스케어 등 다양한 기기가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면 시스템 반도체의 수요는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2400억달러였던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2017년에는 3천억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이처럼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성장성이 크고 수익성이 좋은 블루오션으로 떠오르지만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마저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는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부문인 시스템LSI 사업은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고, SK하이닉스도 파운드리(위탁생산)와 차세대 공정기술 기반을 확보하는 등 시스템 반도체에 이제 막 공을 들이기 시작했을 뿐 아직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가운데 스마트카의 부상으로 주목받는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장조사기관 IHS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차랑용 반도체 시장은 전년 대비 10% 성장한 290억달러로 집계됐다. 올해는 지난해 대비 7.5% 늘어난 310억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2018년까지 연평균 20%의 고성장이 예측되지만 시장을 주도하는 10위권 기업 가운데 국내 기업은 찾아볼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비메모리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제품의 기능·성능·가격 등이 모두 중요하다. 특히 주문형이 대부분이어서 시장에서 요구되는 기능과 성능을 충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가격경쟁력이 있어도 성공할 수 없다”며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반도체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진정한 반도체 산업의 강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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