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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논어리더십] 이상주의자 공자의 도덕혁명론
타락한 혁명가 양호
[57호] 2015년 01월 01일 (목) 이인우 economyinsight@hani.co.kr

懷其寶而迷其邦 可謂仁乎 曰 不可.
好從事而失時 可謂知乎 曰 不可.
日月逝矣 歲不我與. 孔子曰 諾 吾將仕矣.
회기보이미기방 기위인호 왈 불가. 호종사이기실시 가위지호 왈 불가.
일월서의 세불아여. 공자왈 락 오장사의.

(양호가 말하기를) 가슴에 보배를 품고서 나라가 혼란한 것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이 정녕 인은 아니겠지요? 공자가 대답했다. 아니외다. 그렇다면 정사에 나서고자 하면서 자주 때를 놓치는 것을 지혜롭다고 할 수 있는지요? 아니외다. 해와 달은 흘러가고,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내 장차 벼슬길에 나가리다. -‘양화’편 1장


이인우 <한겨레 라이프> 편집장

1. 공자와 양호

공자는 위대한 교사였지만 그가 역사 속에서 불리길 원한 진정한 이름은 ‘위대한 건설자’였다.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이상국가의 건설, 그것이었다. 고대 중국에서 어떤 사(士·선비)가 그런 꿈을 가졌다면 벼슬길은 필연의 선택일 터. 하지만 공자는 그 벼슬의 적기(適期)에 오히려 정치권 밖에서 교육에만 전념했다. 공자의 나이 대략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의 시기이다.

훗날 공자는 이때를 ‘불혹’(不惑)이라 이름했다. ‘흔들림 없는 마음’을 뜻하는 불혹은,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유혹이 강렬했고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웠다는 고백이리라.

공자는 그 유혹이 넘치는 연부역강(年富力强)의 시기를 물속에 잠긴 용처럼 ‘탈정치의 정치’로 흘려보냈다. ‘불혹’은 어쩌면 바로 이 회심의 역(逆)선택을 은유한 것인지 모른다.

공자와 같은 유사(儒士) 출신으로 노나라 정권을 거머쥔 양호(陽虎·<논어>에 나오는 양화(陽貨)와 동일 인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일찌감치 권세가의 가신으로 들어가 출세를 거듭해 막후 정치의 실세로 올라섰다. 곡부의 젊은이들에게 양호는 성공한 사(士)의 표상이었다. 그는 ‘능력 있는 후배’ 공자를 자기 밑에 두려고 애썼다. 그럴수록 공자도 양호를 기피했다. 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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