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테이너 기지에서 화물을 싣고 나오는 대형 트럭들. 세계적으로 교역 규모가 줄어들면서 미국을 제외한 각국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뉴시스

세계경제 장기 침체 국면… 수출 전망 어둡고 고령층 중심 소비 감소세 지속될 듯

새해 경제 전망이 밝지 않다. 선진국은 부채와 적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고, 수출에 의존하던 개발도상국은 내수로 눈길을 돌리지만 여의치 않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경제가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유가 하락의 영향도 불확실하다. 저유가가 생산비를 낮추고 구매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반면 디플레이션 위험을 키울 수도 있다. 국내 경제도 3%대 중반의 부진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근래 들어 세계경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기구들은 세계경제 성장세가 연 4%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매년 해왔지만 실제 성장률은 3% 내외에 머물면서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것이 일상화돼버렸다. 4%대 성장은 세계경제가 금융위기 이전, 즉 2000년대 중반의 성장세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희망을 접을 때가 되었다. 세계경제는 3%대 초반 구간에서 등락하는 중성장 시대에 접어든 것으로 봐야 한다.

2000년대 중반 고성장기는 선진국의 자산가격 거품에 따른 부채 확대, 개도국으로의 대규모 자본이동 등 중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려운 요인들에 의한 것이었다. 선진국의 빠른 내구재 수요 증가와 생산능력을 높이기 위한 개도국의 장치산업 투자가 세계적 초호황을 이끌었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부채와 적자를 줄여야 하는 선진국들이 자체 생산을 강화하면서 세계교역이 둔화되고, 이에 따라 수출에 의존하던 개도국들은 내수를 중심으로 성장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세계적으로 제조업 생산이 둔화되고 서비스업 중심으로 성장하다보니 생산성 향상 속도가 떨어지고 자본 확대도 어려워지면서 세계경제의 잠재적 성장 능력이 낮아지게 되었다.

유가 하락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불확실하다. 세계적으로 원자재를 적게 쓰는 방식으로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저유가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떨어지면 기업 생산비용이 낮아지고 가계 구매력이 커지면서 경제성장이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러나 현재는 유가 하락이 디플레이션 리스크를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디플레 우려가 큰 유로존이나 인플레이션 경제로의 진입을 노리는 일본 등은 저물가가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를 떨어뜨리고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일부 산유국들은 과거 고유가 시대에 형성된 방만한 재정지출 구조로 인해 외환위기가 발생할 리스크도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로 이미 외국자본 유출과 화폐가치 하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러시아에서 저유가로 인해 추가적인 외환시장 충격이 발생할 경우 세계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상당히 클 수 있다. 결국 유가 하락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역별로 보더라도 전망이 녹록지 않다. 미국의 꾸준한 성장이 예상되지만 과거처럼 다 같이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 혼자서만 독주하는 현상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미국 경제의 긍정적 측면은 민간부문의 소비 여력이 계속 커진다는 점이다. 고용이 꾸준히 호전되고 임금상승률이 높아지면서 가계 실질소득이 늘어나고 있다. 소득 대비 가계부채 규모가 위기 때보다 크게 줄어들면서 부채 조정도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수익성이 개선되고 기업 가치가 높아지면서 투자 여력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커지면서 민간의 소비 확대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경제 성장률 3%대 초반

그러나 다른 선진국들은 상황이 그렇게 밝지 않다. 유로존은 인구 고령화, 금융 중개 기능 저하에 따른 기업 투자 부진 등 구조적 불안 요인이 상존해 장기적인 성장 모멘텀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대규모 실업에 따른 노동력 손실과 투자 저하로 유로존의 잠재성장률이 0.4%까지 하락한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더욱이 유가 하락으로 디플레 리스크까지 커지면서 유로존이 과거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된다.

일본 역시 아베노믹스의 약효가 점차 떨어지고 있어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 일본 경제주체들은 아직 디플레 경제하의 위축된 경제활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비 및 투자 심리 회복이 느리고 기업의 임금 인상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규모 부양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고령화에 따른 노동인력 감소, 과도한 국가부채 부담, 성장 주도 산업의 부재 등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일본은 당분간 1%를 밑도는 저성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중국도 성장 하향 기조가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은 수출 주도에서 내수 주도로 성장동력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단기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가계소득이 별로 늘어나지 않는데다 정부가 주도하는 임금 인상 노력도 계획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출과 투자가 부진해 기업소득이 늘지 않음에 따라 임금과 고용을 통해 가계소득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은 2015년 성장 목표치를 7%로 하향 조정할 계획이지만 이 수치 역시 인프라 확대 및 경기부양 정책을 통해서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기타 경제권과의 차별화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경제가 잘나가는 미국은 2015년 하반기에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다른 국가들은 오히려 통화를 풀어 경기를 더 살려야 하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외환시장의 출렁임이 더욱 확대되고 국가 간 자본의 흐름도 예측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전반적으로 미국 달러화의 강세가 지속되면서 다른 화폐들은 추가적 약세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 유가 하락의 긍정적인 영향에도 세계경제는 디플레이션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있는 운전자. 뉴시스

한국 경제 전망도 밝지 않다. 수출이 경기를 주도하고 생산과 고용을 늘려 내수로 파급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경기회복 방식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작동이 멈췄다. 세계교역은 별로 늘어나지 않고 엔저와 중국의 추격으로 경쟁 여건은 더욱 치열해지면서 내년에도 수출 활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이 한국의 생산능력과 기술력을 쫓아오는 속도는 최근 더욱 빨라졌다.

중국은 2000년대 가전 부문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인 데 이어 2010년대 들어서는 철강·화학 등 소재산업에서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우리 수출을 상당 부분 대체했다. 전세계적 과잉투자 우려를 유발하며 늘려놓은 생산시설에서 상품 생산이 본격화돼 중국 내수시장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도 중국의 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전자부품, 휴대전화 등 첨단 부문까지 위협하는 상황이다. 일본 기업들도 엔저로 높아진 수익성을 점차 단가 경쟁과 투자에 사용하면서 재역전을 노리고 있다.

미래 불안에 위축된 베이비붐 세대

내수 부문에서는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긍정적 영향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석유 순수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9%에 달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특히 가계소비의 경우 저물가에 따른 가계의 실질구매력 확대가 소비 증가 요인이 될 것이다. 기업들도 생산비용 감소에 따른 수혜를 업종에 따라 누릴 수 있다.

그렇지만 내수경기 회복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기는 어렵다. 소비를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장기적 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미래에 대비해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부동산 가격의 대세 상승 종료와 저금리 등으로 노후 대비가 부족해진 고령층들은 연금 보장에 대한 우려마저 커지면서 여전히 소비를 크게 늘리지 못할 것이다. 가계부채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갚아나가야 하는 부담도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주택 건설 투자도 크게 회복되기 어렵다. 정부가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를 완화하고 재건축 규제도 푸는 등 적극적인 부동산 부양책을 발표한 바 있지만 불확실한 경제 여건과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정책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세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을 고려할 때 내년 주택가격이 소폭 높아질 여지는 있지만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정도로 주택경기 상승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정부는 도로 안전 강화 및 시설 확대 목적으로 2015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증액시켰기 때문에 공공부문의 토목 사업 투자는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들을 종합해보면 2015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2014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15년에도 성장률은 3%대 중반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전반적으로 성장 활력이 높지 않고 저유가 영향까지 겹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2%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저물가가 지속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고용 부문에서는 취업자가 40만명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는 2015년에도 이어지고, 상당수가 노후 대비 부족으로 인해 계속 노동시장에 남아 있으려고 할 것이다. 도·소매, 음식·숙박 등 전통적 서비스업과 보건복지 부문을 중심으로 고용 증가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러한 업종의 상당수가 임금수준이 낮은 일자리이기 때문에 고용은 늘어도 고용의 질은 떨어지는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2015년에도 부진한 경제성장세가 이어지면서 서민들의 어려움도 줄어들지 못할 것 같다. 통화정책을 중심으로 상당한 부양 기조가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조 개혁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내수산업 부문에서 시장 창출을 통해 생산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노력이 강화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의 미흡한 성장 기조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다.

gtlee@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