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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논어리더십] 벼슬하는 것만 정치는 아니다
군자의 학문과 정치
[56호] 2014년 12월 01일 (월) 이인우 economyinsight@hani.co.kr

或謂孔子曰 子 奚不爲政 子曰
書云孝乎 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혹위공자왈 자 해불위정 자왈 서운효호 유효 우우형제 시어유정 시역위정 해기위위정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어째서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서( )>에 이르기를 ‘오로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라. 그 마음이 곧 정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지금 하는 일이 다 정치인데 꼭 벼슬해서 정치하는 것만 정치이겠습니까?” -‘위정’편 21장


1. 불혹의 사업

공자가 본격적으로 교사 활동을 시작한 때는 30살 전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9살 연하의 자로가 젊은 무뢰배 시절에 공자의 학당을 찾아왔고(<공자가어>), 공자 스스로도 학문적으로 자립하였다고 말한 나이가 30대(三十而立 -‘위정’편 4장)였다.

특히 노나라 명문가의 장로 맹희자가 아들 교육을 공자에게 맡기라고 유언한 것이 공자 나이 34살 때의 일(<좌전> 노소공 24년)임을 생각하면 공자는 30대 초반에 이미 교육자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런 공자가 임금이 국외 망명을 하는 정치 상황에 의분을 느껴 제나라로 출국한 것이 36살이었고, 망명 7년 만에 노나라로 귀국했을 때 그의 나이 43살이었다.

더 이상 미혹되는 바가 없었다는 불혹(不惑)의 나이를 망명지에서 시작한 공자는 소공의 죽음을 계기로 곡부에 돌아와 교육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공자라는 사람은 본래 ‘이상국가 건설’이란 큰 포부를 지닌 개혁가였다. 그런 그를 세상이 그냥 내버려두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공자에게 정계 진출의 손을 내민 사람이 있었으니 양호(陽虎)라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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