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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의 자격
Editor’s Letter
[56호] 2014년 12월 01일 (월) 정남기 jnamki@hani.co.kr

2014년 금융권은 낙하산 논란과 내부 갈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KB금융의 내분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행히 새 회장 선출로 KB금융 사태는 마무리됐다.

하지만 불과 한달여밖에 지나지 않아 금융권이 다시 시끄럽다. 12월 초로 예정된 우리은행 차기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온갖 로비와 여론전이 거세다. KB금융 사태가 무색할 정도다.

애초 12월 말에 퇴임할 것으로 알려졌던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동문인 대구고 출신 유력 장관이 밀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유임설이 나돈다. 이 행장은 2013년 초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될 때도 같은 성균관대 출신 권력 실세의 후광을 입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인사 때마다 유력 정치인이 거명되니, 사실이라면 대단한 로비력이라 할 만하다.

최근에는 서강금융인회 출신 이광구 우리은행 개인고객담당 부행장이 행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서강금융인회 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요직에 기용됐기 때문이다. 홍기택 KDB산업은행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홍기택 행장은 중앙대 교수 출신으로 현업 경험이 전혀 없었고, 이덕훈 행장은 10년 전 우리은행장에서 퇴임한 뒤 금융권 한켠으로 물러난 상황이었다.

이 밖에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오고 있지만 두사람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까닭은 뒷배경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행장 후보가 발표되고 나면 ‘역시~’라는 말이 터져나온다. 예상대로 힘있는 쪽이 밀었던 사람이 항상 승리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뿐 아니다. 지난 11월 말로 임기가 만료된 박병원 전 전국은행연합회장 후임 선출 과정에서도 사전 내정설과 이에 대한 반발로 적지 않은 갈등이 야기됐다. 그 중심에는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이 있었다. 그는 이순우 행장만큼이나 정·관계에 발이 넓다. 특히 옛 재무부 출신 금융관료(모피아)들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하 전 행장은 가장 유력한 KB금융지주 회장 후보였으나 근소한 차이로 낙마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은행연합회장 내정설이 흘러나왔다.

금융권의 유력한 자리들이니 경쟁자가 많은 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유력 후보들이 하나같이 권력 실세나 금융관료들의 지원을 받는 인물이라는 데는 예외가 없다. 정치권과 관료 집단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앉히겠다는 뜻일 게다.

KB금융 사태를 겪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결국 줄 잘 대는 사람이 거대 은행의 수장이 되는 현실이다. 그런 사람이 회장이나 행장이 되면 자기를 밀었던 사람의 인사 청탁을 들어줘야 한다. 당연한 수순이다. 금융 선진화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권력 실세와 관료 집단의 지원 없는 내부 출신 인사나 외부 전문가가 추천되는 관행의 정착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정남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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