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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슈] “소비 위축, 세월호 여파 때문 아니다”
15개월 만의 기준금리 인하, 효과 있을까?
[53호] 2014년 09월 01일 (월) 권다희 economyinsight@hani.co.kr
   
▲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 지난 8월14일,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활짝 웃고 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기준금리 인하의 영향으로 강세를 보였다. 뉴시스

전문가들, 금리 인하 효과에 의문… 고령층 소비 감소와 실질소득 증가율 둔화가 원인

한국은행이 1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내렸다. 금융통화위원회의 독자적 판단이라고 하지만 정부의 경기부양 노력에 화답하는 성격이 짙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민간소비 위축이 금리 인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가처분소득 감소, 자산가치 하락 등이 가계를 압박하면서 고령층 중심으로 소비 성향이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오랜만에 큰 칼을 뽑았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권다희 <머니투데이> 금융부 기자

지난 8월14일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15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낮췄다. 기존 2.5%에서 25bp(0.25%포인트) 내린 2.25%다. 마지막으로 금리 인하가 단행됐던 2013년 5월과 비교하면 혼란은 없었다.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당시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회의 직전까지 동결을 시사했다가 예상치 못한 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이주열 총재는 한달 전에 금통위부터 ‘하방리스크’를 강조하면서 금리 인하를 암시했다. 경기부양에 총력을 기울이고 나선 정부와 ‘공조’하기 위해서였으니 모양새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한은의 결정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우선 금리 인하라는 결정이 한은의 경기 인식과 괴리를 보인다는 점이다. ‘한은이 정부와 손잡고 경기부양에 소매를 걷었다’기보다는 ‘정부의 압박에 한은이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추임새를 넣은 것’으로 상황이 읽히는 이유다.

한은은 지난 1월 3.8%였던 2014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월에 4%로 높였다. 이후 소비심리에 타격을 줄 만한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고, 한은은 7월에 다시 3.8%로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하지만 이 수치가 금리정책을 바꿀 만큼인지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현재의 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경제가 이례적인 충격을 받았던 2009년 2월~2010년 6월 2%에 바짝 근접한 수준이지만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은 적어도 3%대 후반이 예상된다.

이주열 총재는 취임 직후인 지난 4월 금리 방향을 인상으로 밝혔다.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란 단서를 달긴 했지만 연초까지만 해도 시장에 남아 있던 금리 인하 기대감은 이 총재의 발언으로 거의 사라졌다. (이 총재는 이후 6월13일 취임 뒤 첫 기자단 만찬에서 당시 발언에 대해 “애초 성장 경로대로 간다고 전제했을 때의 방향이 인상 쪽이었다는 것”이라며 “시기를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니었는데 시장은 이를 기준금리 인상이 가까이 왔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다소 모호하게 해명했다.)

적어도 이 총재는 금리에 관해 6월 금통위까지는 취임 초와 유사한 입장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여러 가지 지표를 놓고 보면 지금의 금리 수준이 경기의 회복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여러 가지 경제·금융 상황을 봤을 때 지금은 금리정책 기조를 당장 바꿀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해서 동결했다”고 밝혔다. 6월 금통위 뒤 기자간담회에서였다.

그리고 6월 금통위 바로 다음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정됐다. 그러면서 분위기가 일순간에 달라졌다. 정부와 정치권은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에 ‘공조’해야 한다고, 즉 한은이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금리 인하를 기대한 기관투자자들은 채권 매입에 속도를 냈고 증권사들도 채권 매입 중개로 쏠쏠한 수익을 얻었다. 기준금리 인하는커녕 인상을 예상하던 시장에서 금리 인하 전망이 속속 나왔다. 일부 증권사는 기준금리를 한번에 50bp 인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까지 내놨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7월 말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잠시 기준금리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금리 인하, 정부 경기부양에 대한 화답

결국 이 총재는 7월 금통위에서 “3개월 전과 인식이 달라졌다. 성장과 물가 경로의 하방리스크가 커졌다”며 금리 인하를 시사했고, 금통위는 한달 뒤 금리를 내렸다. 8월 금통위에서 이 총재는 “금리 인하는 금통위의 독자적인 판단”이라고 강조했지만 ‘외부’에 떠밀려 금리를 낮췄다는 분위기를 부정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한은 직원들 사이에서조차 “내려도 동결해도 비판받을 상황이었지 않느냐”는 자조적인 말이 나온 배경이다.

한국은행법 제1조는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을 “효율적인 통화신용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과 ‘금융안정’으로 명시한다. 포괄적으로 보면 한국은행의 책무는 ‘국민경제의 발전’이다. 물가상승률이 낮은 상황에서 심리 위축을 선제적으로 막기 위해 금리를 낮췄다는 금통위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 한국은행은 내수 부진 등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지난 8월14일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2.25%로 내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이날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최근의 소비와 투자 위축이 (한은이 항상 강조하는 것처럼) 세월호 여파에 따른 심리 위축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는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한은이 3%대 후반의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 전망에도 금리를 내리겠다고 한 배경은 심리 회복을 돕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비심리가 회복되지 않는 게 세월호 사고에 따른 일시적인 추세가 아닌 구조적 영향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국은행은 2분기 민간소비가 5분기 만에 감소세로 전환하는 등 내수가 부진해진 원인이 세월호 이후 위축된 소비심리에 있다고 지목했다. 실제로 7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6월보다 하락하면서 세월호 사고 이후 처음 집계된 5월과 같은 수준을 나타냈다.

그런데 한국은행 쪽은 CCSI를 발표하면서 “최근 경기회복세 둔화와 경기부양론이 이슈로 대두되면서 소비자의 경기 인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기가 안 좋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면서 소비심리가 더 얼어붙었다는 건데, 결과가 원인이 된 셈이다. 여기에 6월 소매판매 중 내구재는 3.6% 늘었고, 7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서비스 물가가 오르면서 다섯달 만에 반등했다. ‘정말 세월호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한국은행 출신의 한 주요 연구소 연구원은 “금리가 높아서 기업이 투자를 안 하고 가계가 자산 구입과 소비를 꺼리는 게 아니다”며 금리 인하 회의론을 제기했다. 특히 최근 소비 위축은 가처분소득과 소비심리가 함께 악화된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한 원인 중 하나로는 최근 몇년간의 주거환경 변화가 지목된다. 전세 가구는 전셋값 급등으로, 자가 가구는 주택시장 부진에 따른 자산 가치 감소로 소득 여력이 줄었다는 지적이다.

실제 전세가격 상승이 가팔라진 시기는 소비증가율이 급격히 둔화된 시점과 일치한다. 전셋값 상승은 2010년부터 가팔라졌고, 2005~2007년 연평균 4.7%였던 가계소비 증가율(실질 증감률 기준)은 2010년 4.4%에서 2011년 2.9%, 2012년 1.9%, 2013년 2%로 급격히 하락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1990~2013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세 주거 가계의 경우 실질 전세가격이 1% 오를 때 전세 가구의 소비는 0.3% 줄어든다.

동시에 주택시장 부진은 노년층의 소비심리를 악화시켰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가구주 연령별 평균소비성향에 따르면 60살 이상 가구의 평균소비성향은 2003년 81.1에서 올해 1분기 73.2로, 50대 가구는 75.4에서 65.6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이는 같은 기간 77.9에서 74.5로 하락한 전체 평균이나 79.8에서 79.1로 소폭 하락한 40대 가구와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움직임이다.

“소비 위축은 경기순환 아닌 구조적 문제”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소비심리가 좋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은 고령층의 소비 성향이 급격하게 떨어진 데 있다”며 “이는 고령층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고 있는데다 금리까지 낮아지면서 예전과 같은 이자소득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금융자산이 필요해진 고령층의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는 설명이다.

소비증가율 둔화가 임금증가율 하락과 함께 2000년대 이전부터 진행돼온 추세라는 점은 소비 위축을 초래한 더 근본적인 배경에도 주목하게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소비 위축의 기원을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에서 찾는다. 외환위기 이후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이 맞춰져오면서 초래된 불균형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1990년대 말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 등이 급격히 추진되면서 가계 근로소득을 위축시켰고,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은 자영업자의 소득 여력을 줄였다. 실제 민간소비는 외환위기 이전인 1990~97년 연평균 7.4% 증가하면서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2006년부터 2013년까지는 8년 연속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하회했다.

여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은 환율 하락과 중국 경제 성장 등을 기반으로 회복할 기회를 얻었지만 가계 상황은 좋아질 여력을 얻지 못해 기업과 가계 간 불균형 성장이 심화됐다는 지적이다.

명목임금증가율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임금증가율을 보면,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실질임금증가율은 연평균 4.2%를 기록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인 2011~2013년의 실질임금은 연평균 0.9% 오르는 데 그쳤다. 수출 호조에 따른 기업 실적 회복이 임금 증가로는 연결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소비 위축은 경기순환상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이유”라며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가계에 불리한 정책이 누적되고 금융위기 이후 기업과 가계 부문의 격차가 더 벌어지며 가계가 저소득 구조의 한계에 도달했다. 이같은 상황이 소비 위축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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