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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유럽 기업들 존립 위협하는 미국 사법부
미국 법원의 ‘벌금폭탄’ 정당한가
[52호] 2014년 08월 01일 (금) 괴츠 하만 economyinsight@hani.co.kr
   
▲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지난 6월30일 워싱턴에서 미국의 제재를 무시하고 이란 등과 금융거래를 한 프랑스 은행 BNP파리바의 위법 행위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미국 지사 있거나 미국 증시 상장하면 자국 법률 적용…
수십억달러 벌금 부과하며 세계 법원 자처


미국 법원은 지멘스, 다임러, 도이체방크, BNP파리바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유럽 기업들에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천문학적 액수의 벌금 부과는 일부 기업들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다. 프랑스 은행 BNP파리바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무시한 채 이란에서 금융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100억유로(약 14조원)의 벌금을, 스위스 은행 크레디스위스는 탈세를 도운 혐의로 250억달러(약 25조7천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유럽 기업들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에 그치지 않고 ‘세계의 법원’까지 자처한다고 비난한다.


괴츠 하만 Götz Hamann <차이트> 경제부 기자

독일 경영인들은 미국 사법부에 고분고분 따른다. 미국 사법부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는 독일 기업은 상당한 피해를 입고 나락으로 떨어져 결국 천문학적 액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다임러에는 1억3천만유로(약 1800억원), 지멘스에는 6억유로(약 8300억원), 도이체방크에는 최근 무려 14억유로(약 1조9천억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기관이라고 도이체방크에 우호적이지 않은 독일인들조차 미국이 최근 도이체방크에 부과한 벌금액에는 충분히 반감을 가질 만하다.

미국 사법부가 독일 재계에 부과하는 벌금형은 어느 수준부터 굴복을 의미할까? 10억유로(약 1조4천억원)? 100억유로(약 14조원)? 프랑스 은행 BNP파리바는 이란에서 미국의 경제제재를 무시한 채 금융거래를 했다는 혐의로 약 100억유로의 벌금이 부과됐다. BNP파리바에 벌금으로 부과된 100억유로는 기존 벌금 액수를 모두 훌쩍 뛰어넘는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미국이 해방군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던 날조차 편안하게 기념하지 못했을 정도다. 전 유럽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에 그치지 않고 ‘세계의 법원’까지 자처한다며 맹비난을 했다. 하지만 유럽이 미국 사법부에 완전히 굴복하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하는 순간 유럽은 미국 사법부에 완전히 종속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미국 사법부를 향한 유럽의 분노에 독선적인 면이 있다. 독일 50대 기업들의 2013년 미국 매출액은 2600억달러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기업들이 미국 현지의 법을 준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반대로 독일 역시 자국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인터넷 대기업 구글에 독일 법을 따르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 미국에서의 기업활동을 통해 일자리와 배당금 등 독일 내에서 창출되는 부를 감안하면 독일 재계가 미국 사법 당국의 엄청난 벌금 부과에 반발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독일은 미국 정부의 엄청난 벌금액에 항의하기에 앞서 심호흡을 하고 벌금액에 따른 비용과 효용을 따져봐야 한다.

FTA 체결되면 미국 사법부 종속 심화

독일의 법체계에도 미국 법의 영향이 곳곳에 배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 제국주의의 방증은 아니다. 독일 정부가 자국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법체계를 빈번하게 참고했기 때문이다. 독일 경제법의 상징인 기업담합금지법만큼 미국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법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기업인경제연합은 기업담합금지법 제정에 극렬히 반대했다. 독일 로비스트들이 정부를 대상으로 벌인 최초의 대규모 저항이었던 셈이다. 독일기업인경제연합의 임원진은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끼리끼리 시장을 분할하고 소비자에게 더 높은 가격을 전가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전 경제장관은 기업담합금지법에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걸었고, 1957년 국회에서 다수를 확보해 기업담합금지법을 가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독일에서 연방카르텔청이 개입해 시멘트·철도·철강 업계의 담합을 철폐하고 시장권력을 악용하는 대기업에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모두 에르하르트 전 장관의 덕택이다. 다만 에르하르트 전 장관이 기업담합금지법을 무(無)에서 창출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전통과 법률을 참고해서 만든 것이었다.

이후 미국의 경제 관련 법은 하나둘 독일의 법 체계에 영향을 끼쳤다. 그중에서도 경영진의 부정행위 금지 조항에 큰 영향을 줬다. 독일의 내부자거래 금지 조항도 미국법의 영향을 받았다. 법 조항에 따르면, 경영자는 기업의 수익 하락 혹은 기업 인수 계획을 일반에 발표하기 전에 주식시장에서 사사로이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된다.

기업 경영진의 연봉은 공개되는가? 경영진의 연봉 공개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졌다. 경영진이 의무를 위배할 경우 어떻게 되는가? 독일 주식 관련 법은 미국의 관련 법 규정을 모델로 해서 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무시한 채 이란 등과 금융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100억유로(약 14조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BNP파리바의 파리 건물. REUTERS

테일러 웨싱 로펌의 파트너이자 기업인수 전문가인 슈테판 괴텔은 “미국 법체계가 더 현대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미국 사법부가 독일보다 먼저 경제 전반의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 사법부는 선진적인 법체계를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미국 사법부는 확고한 사명감으로 경제에 개입해 부정부패를 줄이는 데 일조했다. 미국은 최근 전세계 선진국들이 자국 공무원들의 해외에서의 부정부패를 처벌하는 규제를 도입하도록 해 관철시켰다. 독일에서는 1998년까지만 해도 뇌물 수수 벌금액이 세금 공제 대상이었다. 이제 미국 수사 당국은 각국 공무원의 비리를 인지하는 즉시 수사를 시작할 수 있다. 개입의 판단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이 미국에 지사가 있는지, 아니면 자국 증시 외에 뉴욕 증시에도 상장돼 있는지다. 미국에 지사가 있거나 미국 증시에 상장돼 있다면 미국 수사 당국은 즉각 수사에 돌입한다.

미국에서 지멘스는 2008년, 다임러는 2010년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미국 증권감독위원회는 지멘스와 다임러가 아프리카, 동유럽, 아시아에서 뇌물을 비롯한 특혜를 제공하고 비즈니스를 지원받았다는 제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돌입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한 장관에게 리무진을 제공한 메르세데스 관계자는 수많은 비리 사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후 다임러는 이 사건에서 교훈을 얻었다.

지멘스의 경우 미국 증권감독위원회와의 협의를 거쳐 로펌 ‘데비보이스앤플림톤’의 법률전문가 100명 이상을 동원해 자사의 내부 서류를 검토한 바 있다. 그 결과 하인리히 폰 피에르 지멘스 전 최고경영자(CEO)는 감독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임명된 지 얼마 안 된 클라우스 클라인펠트 신임 CEO도 바로 옷을 벗어야 했다. 지멘스의 적지 않은 경영진이 독일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거나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러한 고강도의 내부 사정은 지멘스에 결국 약이 되었다. 지멘스 내부에서도 미국 사법부의 엄격한 심판 잣대가 내부 실태를 밝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후 지멘스는 모범 기업 또는 깨끗한 비즈니스의 대명사로 받아들여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멘스의 최고준법책임자를 명예수석고문관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지멘스의 최고준법책임자는 부패 척결을 어떻게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게 임명 사유였다.

미국 법원, 기업 투명성 향상 일조

프리드리히스하펜 체펠린대학의 요제프 비란트 경제윤리학 교수는 “결과적으로 지멘스 사건은 독일 재계에 경고음을 울렸다”고 말했다. 지멘스 사건 이후 올바른 기업경영과 준법을 주제로 하는 경영서적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왔고, 일선 대학에서도 관련 주제에 대한 강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미국 사법부의 대대적인 조치가 없었다면 독일은 기업 부패를 척결하는 데 지금의 수준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사법부의 개입에 장점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엄청난 액수의 벌금형에서 관료주의, 그리고 고비용의 안전대책에 이르기까지 독일 재계가 치르는 대가는 아주 크다. 물론 독일 재계에 부과된 안전대책이 실제 어느 정도 비용 부담을 야기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독일 기업들이 벌금 액수를 공개하기도 한다. 한 예로 루프트한자는 2001년 9월11일 테러 이후 자사의 전체 항공기 장비를 의무적으로 교체해야 했다고 밝혔다. 9·11 테러를 계기로 각 항공기의 조종실과 객실사이에 방탄문이 설치됐다. 그리고 방탄문마다 개인식별번호(PIN 코드)가 설치되도록 했다. 방탄문 1개당 설치비용으로 3만달러(약 3천억원)가 들었다. “해당 규정의 준수에는 논의의 여지가 없었다”고 루프트한자 대변인은 전했다.

방탄문 설치 규정에는 반박의 여지가 거의 없다. 하지만 미국이 자국의 법질서에 따라 전세계를 굴복시키려 한다는 비난은 얼마나 타당할까? 이 비난은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미국 법체계에 능통한 다수의 변호사들은 미국 사법부가 유용할 때가 많다고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하지만 경제법학자 지크프리트 엘징 교수는 “미국의 법률제도가 제국주의적 성격을 띠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다.

뒤셀도르프대학에서 국제법을 강의하며 독일과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엘징 교수는 미국의 법 관행은 ‘긴 팔’ 원칙에 입각한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 변호사, 검사 및 해당 관청은 각자의 활동 범위를 광범위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엘징 교수는 몇년 전 함부르크의 출판사 그루너운트야르(Gruner+Jahr)가 사진 촬영을 위해 미국의 한 여자 모델을 함부르크로 초청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 2008년 미국에서 뇌물 등의 혐의로 벌금 6억유로(약 8300억원)를 부과받은 지멘스는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고강도의 자체 조사를 벌였다. 독일 뮌헨의 지멘스 본사. REUTERS

유럽서 다쳐도 미국서 재판 가능

당시 ‘차세대 신디 크로포드’로 불리던 이 모델은 함부르크에서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이 모델은 함부르크의 병원에서 치료받는 대신 미국으로 돌아가 판사를 찾아갔다. 해당 출판사가 미국에도 지사가 있었으므로 미국 판사가 해당 사건을 맡는 것은 재량 문제였다. 당시 판사가 해당 사건을 맡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우연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판사가 그 사건을 맡을 수도 있었다. 이런 사실은 미국 사법부가 스스로의 활동 범위를 매우 넓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또한 미국 사법부의 엄격한 법적 잣대에 의해 외국 기업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무래도 의문스럽다. 스위스 취리히에 본사를 둔 대형 은행 크레디스위스는 탈세를 도운 혐의로 벌금 250억달러를 내야 했다. 지난 6월은 크레디스위스가 해당 벌금을 완납해야 하는 기한이었다.

하지만 중·소형 은행들이 크레디스위스와 같은 혐의를 받는다면 미국 사법부의 벌금 폭탄으로부터 살아날 수 없다.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베겔린은행은 CEO가 미국 사법부와 맞서면서 존립의 위협을 받았다. 결국 베겔린은행은 2012년 청산 절차를 밟게 되었다. 스위스의 유서 깊은 프라이은행도 공중분해될 위기에 놓여 있다. 프라이은행이 천문학적 액수의 벌금을 납부할지에 대한 답은 분명한 것 같다.

제재조치에 관한 한 해외 기업들은 미국 정치의 볼모 신세를 면치 못한다. 제재조치는 미국 내 정치 상황과 국가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그런 면에서 유럽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조치를 횡포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BNP파리바 등의 은행은 미국 사법부의 제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익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서 거두기 때문이다. BNP파리바가 이란과 수백억달러의 금융거래를 하고도 은폐한 행위는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의 말처럼 100억유로에 달하는 벌금은 공정하지 못하다. 비용과 효용을 따져봐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

ⓒ Die Zeit 2014년 25호 Auf die harte Tour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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