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말 ‘2014 부산국제모터쇼’ 폴크스바겐 전시장에서 레이싱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근 수입차 점유율이 급속하게 높아지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은 수입차 업체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뉴시스

관세 없어진 유럽차들 마케팅 활발… 디젤차 확산과 2030세대 등장으로 소비 증가

2014년 7월1일부터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수입관세가 사실상 사라졌다. 유럽 자동차 회사들은 가격을 내리거나 사양을 추가하는 등 시장 선점에 나섰다. 그러나 수입차의 약진을 견인하는 더 중요한 요인은 트렌드 변화다. 수입차 회사들이 연료비가 적게 드는 디젤 차량을 대거 내놓은데다 2030세대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국내시장 점유율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관세 철폐는 이런 새로운 트렌드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박진우 <오토타임즈> 기자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수입관세가 2014년 7월1일부터 사라졌다. 엄밀히 따지면 배기량 1500cc 이상 차량의 관세율이 기존 1.6%에서 무관세로 바뀌었고, 1500cc 미만은 4%에서 2.6%로 내렸다. 그러나 현재 수입되는 유럽산 자동차 가운데 1500cc 미만은 없다. 사실상 ‘완전 철폐’로 봐도 무방하다.

관세 철폐를 계기로 유럽 브랜드 자동차들은 판매가격을 내리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부동의 수입차 판매 1위 BMW는 관세 인하 전에 이미 판매가격을 낮추는 등 시장 선점에 나섰다. 하지만 가격 인하와 동시에 첨단 텔레매틱스(자동차 IT+멀티미디어) 시스템인 ‘커넥티드 드라이브’를 장착해 결과적으로는 가격이 소폭 상승했다. 관세 인하로 낮아진 가격은 60만~90만원이었지만 텔레매틱스 시스템 옵션 가격이 100만원을 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기 차종인 520d의 경우 6290만원에서 6330만원으로 약 40만원 올랐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가격 조정에 나서 최대 230만원까지 가격이 내렸다. 다만 주력 차종인 E클래스는 지난 5월 이미 관세 인하를 가격에 적용했다. 이에 따라 E220 CDI 아방가르드의 경우 지난해 6220만원에 판매됐지만 올해는 619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아우디는 차종별로 40만~250만원의 관세 인하 효과를 봤다. 아우디에서 가장 잘 팔리는 A6 2.0ℓ TDI는 가격이 60만원 정도 내렸다. 폴크스바겐 역시 변경된 가격을 공개했다. 인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티구안 2.0ℓ TDI 블루모션은 3860만원에서 3840만원으로 가격이 20만원 내렸고, 골프 1.6ℓ TDI 블루모션은 3070만원에서 3050만원으로 20만원 낮아졌다. 플래그십(최고급차) 페이톤은 1억2730만원으로 110만원 내렸다.

영국 대표 브랜드인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가격이 50만~210만원 떨어졌다. 재규어 XF 2.0ℓ 럭셔리는 5990만원에서 60만원이 내린 5930만원으로 책정됐고, 랜드로버 프리랜더는 5910만원에서 5860만원으로 50만원 인하했다. 가장 고가의 레인지로버 5.0ℓ SC 모토바이오그래피는 2억60만원에서 1억9850만원으로 210만원 내렸다. 푸조·시트로앵(이상 프랑스), 볼보(스웨덴) 역시 관세 철폐에 앞서 가격을 내렸다.

한-EU FTA 체결 이후 유럽차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크게 늘려왔다. 2010년에는 65.4%였지만 FTA 체결 이후 2011년 74.1%까지 확대된 것이다. 이어 2012년 74.3%, 2013년 78.5%로 점유율이 늘었다. 관세가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인 2014년 6월에는 시장점유율이 81.1%까지 올랐다.

그렇다고 모든 유럽차가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실제 같은 기간에 프랑스차(푸조·시트로앵)의 시장점유율은 2.1%에서 1.6%로 줄었고, 스웨덴차 볼보 또한 1.8%에서 1.4%로 후퇴했다. 반면 독일차(BMW·벤츠·아우디·폴크스바겐·포르셰 등)는 57.1%에서 71.1%로 점유율이 크게 늘었다. 독일차만큼은 아니지만 영국차(재규어·랜드로버 등) 역시 4.4%에서 6%로 증가했다.

미국차와 일본차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2012년 3월 발효된 한-미 FTA에 따라 미국차에 대한 관세가 기존 8%에서 4%로 축소됐다. 그러나 수입차 시장에서 미국차의 점유율은 2011년 7.9%에서 올해(6월 기준) 7%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FTA 효과를 누리기 위해 미국 공장에서 생산된 차를 국내에 판매하기 시작한 일본차 역시 점유율이 2011년 18%에서 올해(6월 기준) 11.8%까지 낮아졌다. 이는 관세가 사라지는 2016년에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예상이다.

▲ 폭스바겐코리아가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앞에서 휘발유 1리터로 111.1km를 주행하는 XL1을 공개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지난 7월1일 유럽차에 대한 관세가 사실상 없어진 뒤 대대적인 TV 광고에 나서는 등 국내 시장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뉴시스

유럽차에만 쏠린 FTA 효과

FTA가 수입차 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 이유는 ‘단계적 철폐’ 탓이 크다. 3년에 걸쳐 관세가 서서히 내려 소비자가 저렴하다고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유럽산 자동차의 수입관세는 종전 8%에서 한-EU FTA가 발효된 2011년 7월부터 5.6%, 2012년 3.2%, 2013년 1.6%, 2014년 0%까지 단계적으로 떨어졌다. 가격이 6천만원인 수입차 기준으로 300만원의 관세 인하 효과가 있었지만 3년에 걸쳐 분산되면서 그 영향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판촉을 통한 할인지원액이 일상적으로 수백만원에 달했다. 이 점은 관세 인하를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일부 수입차 업체들은 내려간 관세를 이익으로 흡수했다.

유럽차, 그중에서도 독일차가 약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입차 시장이 급격히 ‘디젤’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가솔린(휘발유) 차량은 2010년까지만 해도 수입차 시장에서 72.1%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디젤(경유) 차량은 25.4%에 그쳤다. 한국인들이 미국과 일본의 영향으로 조용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출력이 높은 가솔린차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조는 가솔린 61.1%, 디젤 35.2%의 비율을 기록한 2011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12년 역전 현상이 나타나면서 디젤 차량이 수입차의 51%를 차지했다. 가솔린 차량은 44.2%로 밀렸다. 고유가 시대에 따라 ‘연비’가 최우선 구매 요소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폭발력이 강해 그만큼 효율적인 디젤의 진가가 시장에서 먹히기 시작했고, 배출가스는 각종 매연 저감 장치로 해결했다. 따라서 디젤차에서 강한 ‘유럽’이 수입차 시장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디젤 차량은 2014년 6월 현재 전체 수입차의 68.4%를 차지한다.

수입차 시장이 디젤 일색으로 된 배경에는 독일 자동차 회사인 BMW와 폴크스바겐의 공이 크다. 특히 폴크스바겐은 사업 초창기부터 꾸준하게 디젤을 국내 시장에 소개해왔다. 시끄럽고 매연이 많은 디젤차를 효율 좋고 매연 없는 ‘클린디젤’로 인식시키기 위한 마케팅 활동도 지속적으로 펼쳤다. 그 결과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판매 차량 2만3천여대 가운데 93%를 디젤로 판매했다.

폴크스바겐이 디젤의 ‘지속성’에 초점을 맞추고 소비자에게 서서히 다가섰다면 BMW는 전광석화와도 같은 전략 수정을 통해 디젤 왕국을 건설했다. 사실 2010년까지만 해도 BMW는 폴크스바겐보다 디젤차 판매가 적었다. 당시 BMW의 주력 차종인 5시리즈 또한 가솔린 차량의 인기가 높아 벤츠 E클래스와 함께 가솔린 수입 중형 세단 시장을 쌍끌이 했다.

연료비 덜 드는 디젤차 전략의 성공　

그런 BMW가 일대 전환기를 맞은 시기는 2011년부터다. 한국 시장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5시리즈의 디젤 제품인 520d를 전략 차종으로 육성한 것이다. BMW 특유의 높은 운동 성능을 디젤차로도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는 기술적 자신감과 디젤이 가진 높은 효율이 반영돼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동시에 신차 가격을 본토 독일보다 저렴한 수준으로 맞춘 점도 시장점유율 확대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현재 유럽차는 모두 디젤차를 주력으로 내세운다. 한국 시장에서 가솔린차의 효용성을 강조해온 벤츠 또한 최근의 전략이 디젤 쪽에 쏠려 있다. 디젤차가 아니면 팔리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폴크스바겐과 기술을 공유하는 아우디는 폴크스바겐그룹이 가진 기술력에 아우디의 고급스러움을 더해 디젤차 시장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푸조, 시트로앵, 볼보, 재규어, 랜드로버 등 다른 유럽차들도 디젤을 주력으로 삼은 지 오래다.

▲ 한국토요타 요시다 아키히사 신임 사장이 지난 3월 서울 렉서스 강남 전시장에서 렉서스 콤팩트 해치백 ‘더 뉴 CT200h’를 공개하고 있다. 최근 독일차에 밀렸던 일본차들은 올해 국내 시장에서 실지 회복을 노리고 있다. 뉴시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본차와 미국차도 디젤차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닛산의 경우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에 디젤차를 추가했고, 오는 10월 닛산 캐시카이를 통해 한국에 처음으로 디젤차를 소개할 예정이다. 미국차는 포드가 디젤차를 속속 내놓고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라는 별칭을 가진 해치백 포커스를 국내에 출시해 관심을 모았다. 크라이슬러도 플래그십 300C에 디젤차를 추가해 소비자의 멀어진 관심을 돌리려 애쓰고 있다.

FTA가 가져온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고 오히려 디젤차의 유무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것이 오늘날 수입차 시장의 상황이다. 이런 세태 속에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수치가 있다. 바로 2030(20∼30대) 소비자다. 실질적으로 수입차 시장을 이끌고 있는 연령층이다.

2030세대의 특징은 유행에 민감하고, 합리적이며, 과시하기 좋아한다. 특히 수입차가 선망의 대상에서 일상의 존재로 가치가 낮아지면서 2030 소비자의 시선 역시 수입차로 쏠리게 됐다. 국산차에 비해 높은 성능과 개성이 더해져 젊은 소비층의 수입차 구매력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실제 2010년 수입차 시장에서 2030세대가 구매한 비율은 20.4%로, 4050세대의 24%보다 다소 뒤졌다. 2011년에 22.9%로 높아지긴 했지만 24.7%였던 4050세대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2030세대는 2012년 들어 최대 소비 계층이 됐다. 수입차 시장에서 이들이 구매한 차량의 비율이 27%로 높아지면서 25.8%에 그친 4050세대를 넘어섰다. 2013년에도 27.8%를 기록해 27%의 4050세대를 이겼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수입차 시장을 지배해온 4050세대의 장악력이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는 2030세대에 밀린 것이다.

2013년 수입차 시장에서 2만대 이상을 판매한 자동차 회사는 BMW, 폴크스바겐, 벤츠, 아우디 등 독일 4개사로 나타났다. 이 회사들이 기록한 2030세대의 수입차 구매 비율은 BMW 47.6%(4050세대 43.4%), 폴크스바겐 54.2%(4050세대 38.9%), 아우디 47.7%(4050세대 43.6%) 등으로 모두 2030세대가 4050세대를 앞질렀다. 벤츠만이 2030세대 36.6%, 4050세대 49.4%였다. 이는 전통적으로 벤츠의 구매 연령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벤츠마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소형차 라인업을 확충하는 등 2030세대 중심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 중이다. 2030세대에게 외면받으면 판매량을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차인 포드는 2030세대의 구매 비율이 35.7%에 그치고 있다. 크라이슬러는 31.7%로 더 낮다. 일본차인 렉서스는 2030세대의 구매 비율이 26.8%에 불과하고, 4050세대가 56.8%로 절반을 넘는다. 혼다 또한 2030세대가 36.6%로 낮다. 이들 모두 지난 몇년간 독일차에 밀려 수입차 시장에서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구매층 4050에서 2030으로 이동

FTA에 따른 관세 철폐로 인해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이득이 거의 없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다. FTA가 결코 특수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계적 관세 인하를 실시했지만 관세 인하분 그대로 가격에 반영된 경우는 많지 않았고 이익으로 흡수한 경우가 상당했다. 따라서 이번 관세 철폐로 인해 유럽산 승용차의 약진이 기대만큼 뒤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한-EU FTA 3주년을 맞아 보고서를 발표한 한국무역협회(KITA)는 승용차 관세 철폐로 인해 유럽차 수입이 더욱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수입차가 매년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동시에 유럽차의 소비자 신뢰도가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유럽 자동차 회사들 역시 좋은 기회로 인식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동안 가격 부담으로 적용하지 않았던 편의 품목을 탑재하거나 가격을 내려 경쟁력을 키우는 등 상품성을 강화할 여지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 유럽 자동차 회사의 홍보 담당자는 “가격 조정 폭이 크진 않지만 마케팅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kuhir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