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에디터 > Editor\'s Column
     
정치인과 경제인
Editor’s Letter
[52호] 2014년 08월 01일 (금) 정남기 economyinsight@hani.co.kr

“정치는 정치인에게, 경제는 경제인에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 전문성을 살리려면 그렇게 해야 맞을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인이 경제정책을 좌우하면 국가 경제를 망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항상 옳은 것일까?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큰 정책의 전환이 필요할 때 경제이론에 익숙한 학자나 관료들은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많은 이유를 대면서 판을 흔들지 않으려고 한다. 논란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는 경우가 흔하다. 결국 중요한 고비에서는 정치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사례가 많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불변의 가치로 여겨지던 ‘정부 개입 없는 자유시장경제’와 ‘금본위제’를 폐기해버렸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동력이 됐다. 시대적 과제가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올바른 판단을 내린 셈이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보수 성향의 콘라트 아데나워 전 독일 총리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감한 좌회전을 통해 경제정책의 방향을 진보적인 쪽으로 선회했다. 사회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사회적 시장경제’가 그것이다. 이것이 ‘라인강의 기적’의 토대가 됐다. 나중에 총리가 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경제장관이 주도했지만 아네나워 총리의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각광받고 있는 <21세기 자본론>의 저자인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주장은 새겨볼 만하다. 그는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소득에 대한 누진세에서 더 나아가 금융자산에 대한 누진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조세혁명이라고 할 만큼 파격적인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경제이론을 따지기에 앞서 주권자인 국민의 뜻으로 이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과감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함을 강조한 말이다.

‘정치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행보가 요즘 눈길을 끈다. 박근혜 정부의 새 경제정책의 화두로 ‘가계소득 증대’를 들고나왔다. 재정 확대, 금융 완화라는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펴면서 동시에 가계소득 증대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보기에는 앞뒤가 안 맞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정치적 구호나 수사에 그칠 수도 있고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여겨볼 대목은 있다. 피케티의 말처럼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할 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경제이론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요구와 국민의 목소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이론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정책도 최종적으로는 주권자인 국민의 뜻과 의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정치인 출신 경제 장관이라는 시도가 경제학자와 경제관료가 쌓아놓은 고정관념을 허무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정남기 편집장
jnamki@hani.co.kr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일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최우성 | 편집인 : 박종생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박종생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